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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작가님의 서재입니다.

대항해시대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완결

로미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16 19:01
최근연재일 :
2022.07.10 10:26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9,148
추천수 :
558
글자수 :
253,585

작성
22.05.2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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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
추천
12
글자
12쪽

전설 속 소드마스터(2)

DUMMY

챙. 챙. 챙. 채채챙.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검격. 그리고 방어.


눈으로 감히 쫓기 힘든 검의 움직임.

검과 검이 맞부딪히며 일어나는 불꽃.


쉴새없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검을 쫓던 관중들의 눈은 점차 초점을 잃어갔고 정신은 아득해져 왔다.


다르다.

소드마스터 간의 비무는 차원이 달랐다.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실 정도의 시간이었을까?

그 사이 두 사람의 검은 이미 수십 차례의 경합을 주고 받았다.


목을 노리던 묵직한 검격은 훌리오의 손목 움직임 한 번에 가볍게 분해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공중에서 반원을 그리며 허리를 향해 베어오는 참격은 훌리오의 검날에 막혔다. 다시 거두어진 스캇의 검은 당겨진 활시위처럼 매섭게 뻗어나갔으나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회전하는 힘을 이용해 몸을 한 바퀴 돌린 스캇은 자세를 바로 잡고 높이 들어진 검의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검의 기운이 달라진다. 서늘하고 예리한 기운이 검날을 휘감아 돈다. 위에서 아래로 번개처럼 내려치는 스캇의 검···.


이번에도 실패였다.


짧은 시간, 수십여 차례에 달하는 스캇의 공격을 훌리오는 아무렇지 않게 봉쇄시키고 있었다.


두 다리를 땅에 못 박은 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검의 폭포를 바라보던 관중들.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모두들 한 마디씩 토해내고 있었다.


“방금 봤어요? 검이 어찌나 빨리 움직이던지 난 어지러워서 잘 볼 수가···.”


“저도 그래요. 검이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고, 불꽃은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역시 소드마스터간의 대결은 다른 가봐요.”


“에이, 소드마스터라도 다 같지가 않아요. 저기 봐요. 저 훌리오 대장은 지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잖아요. 지금껏 한자리에 서서 우리 치안대장의 검을 다 막아냈어요.”


“그러니깐요. 역시 스페인에 훌리오 대장은 다르네요. 스캇 대장에게는 아직 무리인가봐요.”


빠르게 몰아치는 호흡을 애써 진정시키려는 스캇.

그런 그를 담담히 바라보는 훌리오가 말했다.


“빠르다. 그리고 무겁다. 그러나···.”


“······”


“아직 부족하다.”


스캇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훌리오의 주위를 돌며 맹렬한 기세로 베고 찌르고 다시 베어보았지만 그의 갑주 한 번 스치지 못했다. 모든 검격이 봉쇄되고 무산되어 공중에 흩어진 것이다.


훌리오, 그는 인간의 움직임으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허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리스본의 국왕, 치안사령관, 페르낭, 궁정의 모든 대신과 귀족들까지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포르투칼이 자랑하는 신성 검사. 소드마스터 대회를 2연패한 검사이자 리스본 치안을 책임지는 치안대장.


이대로 물러난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모든 명성과 자존심이 한낱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스캇은 고개를 들어 훌리오를 바라봤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호흡을 유지한 채 예의 그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 말 없는 그의 얼굴에서 은은한 가소로움이 풍겨나오는 듯 했다.


‘그래, 제대로 한 번 보여주마.’


일순간 스캇의 검이 불에 달군 듯 붉어졌다. 검의 주위에는 일렁이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오, 저기 봐. 뭐야?”


“스캇의 검 색깔이 변했어.”


“뭐야? 이제 스캇도 진짜를 보여주려나봐?”


검이 내지르는 공격을 일컫는 검격, 검이 일으키는 바람을 지칭하는 검풍, 검이 내뿜는 기운을 말하는 검기. 여기까지가 일반시민이 알고 보통의 검사들이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다.


허나 일정 수준을 넘어선 검사, 국가의 공인을 받은 검사들이 뿜어내는 검기에는 은은한 색이 담긴다.


검기는 외부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검사의 몸속을 도는 강건한 기운이 검날에 은은한 색으로 표출 되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그의 검에서 피어오르던 것은 검기.

허나 지금 스캇의 검을 붉게 달아오르게 한 것인 검기가 아니었다.


- 검혼 -


전설 속 데얀이 사용했다는 기술.

검에 부여된 최초의 속성. 대장장이가 검을 만들 때 밀어넣은 검에 내재된 힘. 그리고 그 검에 쓰러져간 자들이 남긴 검 안에 갇힌 힘.


그 힘을 일컬어 검혼이라하며

그 검혼을 쓰는 자를 지극의 소드마스터라 한다.



변해있는 관중들의 분위기를 느낀 훌리오의 얼굴에 흥미로운 듯한 미소가 어렸다.


‘검혼을 사용할 줄 아는 자였나? 재밌군.’


천천히 움직이는 훌리오.

바닥으로 향했던 검끝을 세우고 손잡이를 어깨 뒤로 보내 두 손으로 검을 맞잡는 그. 대련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준비 자세를 취하는 훌리오였다.


연무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반응에 긴장과 기대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었다.


타닷.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나 스캇 치안대장.


처음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단순한 공격.

언뜻보면 같아 보일 수 있다. 아니 단순히 보기에 처음보다 속도가 한껏 느려졌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 검이 만들어내는 잔상이 검이 지나간 흔적에 그대로 남아있기에 느려 보이는 것이다.


훌리오는 달라진 눈빛으로 내려치는 검을 틀어막았다.


채앵.


‘빠르다, 그리고 강맹하다.’


위에서 아래, 아래에서 위로. 맞닿은 두 검.

그리고 그 검에 기운을 불어넣는 두 소드마스터의 손과 어깨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먼저 피한 것은 훌리오였다. 위를 막고 있던 검날의 방향을 바꿔 상대의 검이 자신의 오른쪽 아래로 흐르게 했다. 왼쪽으로 반 걸음 돌아선 그는 비어있는 스캇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간다.


훌리오가 가하는 첫 번째 검격.


이것으로 끝나리라, 오늘의 대련은.

그렇게 끝나리라 생각했다.

눈앞의 인영이 흔들리기 전까지는···.


훌리오의 검이 옆구리를 베고 지나기 직전 스캇의 그림자가 묘하게 일렁였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의 검이 베고 지나간 것은 스캇의 잔상···.


검이 아니라 스캇이 지나간 자리에도 잔상이 남은 것이다.


‘잔상이 남는 움직임이라, 검혼을 제대로 사용하는 자이군.’


어느새 그는 훌리오의 등 뒤로 돌아가 대각선 아래에서 위로 검을 그어 올리고 있었다.


위험하다. 검을 들어 막는 것은 이미 늦었다.


눈 깜짝할 사이 훌리오의 오른발과 상체는 뒤로 빠져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것이다. 하지만 연이어 뻗어오는 검격.


하나가 아니었다···.

마치 여러명이 동시에 공격하는 듯, 여러 갈래의 검격이 훌리오를 덮쳐오고 있었다. 단순한 눈 속임이 아니었다.


검혼을 담은 검은 검격을 나눈다. 비록 하나하나의 기운은 강맹한 검격 하나에 미치지 못할 지언정, 눈속임은 아니다. 나뉘어진 검격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피하거나 막지 않으면 목이 뚫리는 것이다.


훌리오는 검격이 닿기 전 미세한 시간의 틈에서 바라봤다.


모두 일곱, 나뉘어진 검격은 모두 일곱이었다.


자신이 내지르는 검의 움직임 한번으로 7개의 검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7개의 검을 막으려면 자신 또한 검을 7번 휘둘러야 한다. 훌리오는 왼발을 다시 뒤로 물리며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검을 휘두르며 7개의 검을 모두를 상대하고 있었다.


훌리오와의 대련에서 목표했던 것은 단 한걸음.

허나 그는 이미 셀 수 없는 걸음을 뒤로 물러나 있었다. 이제 그런 것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제 대결은 한걸음의 문제가 아닌 훌리오와 스캇의 승패의 싸움으로 넘어가 있었다.


“하하, 재밌구나. 아주 재밌어.”


순간 터져나오는 외침. 스캇의 칠검을 동시에 상대하느라 낭패하리라 생각됐던 훌리오의 외침이었다.


이내 스캇의 검격 모두를 무산시킨 훌리오가 두 손 안에 검을 고쳐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쥔 검 또한 붉게 물들어 갔다.


붉게 달아오른 검을 쥔 두 소드마스터.

검혼을 사용하는 진정한 승부가 펼쳐지려 한다.


“그만!”


궁정 연무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힘찬 외침.


주앙 3세였다.


“오늘 대련은 여기까지.”


관중석 계단을 내려오던 주앙3세는 어느새 마주한 두 사람의 가운데에 서 있었다.


훌리오와 스캇에게 한 차례 시선을 준 그는 이내 관중들을 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 대련은 목숨을 건 승부가 아닌 단순 비무에 불과하다. 너무 승부에만 과열되어 하나가 피를 보는 것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결과이지. 그래서 오늘의 승부는 여기까지 하겠다. 그리고 오늘의 승부는···.”


마주한 두 사람의 사이로 이동한 그는 스캇의 오른손, 훌리오에 왼손을 잡고 번쩍 들어 보였다.


“무승부다!”


순간 밸렝 궁전의 대연무장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가득찼다.


“우와! 봤어요? 우리 포르투칼의 치안대장이 훌리오를 물러나게 하는 거?”


“아, 그럼 봤죠. 단 한걸음이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뒤로 물러났죠. 그게 가능한 일인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러니까요. 천하의 훌리오하고 우리 스캇이 무승부래요, 무승부.”


“네. 근데 폐하께선 왜 한창 재밌어지려는데 멈추시지? 잘만하면 우리 스캇이 이길수도 있었을 텐데···.”


“비무 대련에서 누가 다치면 안 되니까 그렇죠. 아무튼 우리 치안대장 대단하네요. 우리 포르투칼과 리스본의 자존심을 세워준 셈이에요.”


오늘의 대련 소문은 금세 리스본 시민들에게 퍼지고 국경을 넘어 스페인과 그 이웃 나라에까지 퍼질 것이다. 주앙 3세가 노리던 바가 정확히 맞아들어가고 있었다.


궁정안의 모든 포르투칼인들이 기쁨에 들떠 있을 때 웃지 못하는 몇 사람.


스캇 데 페레로는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실력을 다 토해냈음에도 훌리오에게 털끝만한 상처 하나 주지 못했음을···. 터질 듯한 호흡을 끝내 감출 수 없던 자신과 달리 대련내내 안정되어 있던 상대의 호흡을.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지금 시작되리라는 것을.


바로 그때 주앙 3세가 대련을 중단시켰다. 그 또한 둘의 상태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오늘 대련으로 시민들에게 자신의 명성과 치안대의 지위는 한껏 드높아질 테지만 폐하에게는 아니라는 말이다.


어느새 스캇의 곁으로 내려온 페르낭이 말했다.


“수고했네.”


“면목 없습니다.”


“아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어. 이제 치안대를 향한 시민의 반응이 호의적으로 바뀔테지. 비록 황제의 시선은 그대로일테지만···.”


다가온 시종들에게 검과 갑주를 거칠게 넘겨주는 훌리오. 한껏 짜증이 난 듯 보였다.


‘허, 무승부라고? 당치않은 오명이 하나 생겼구만. 저 애송이를 상대로···.’


뒤돌아서 스캇을 한차례 바라보던 훌리오는 이내 휙하고 몸을 돌려 연무장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관중석에 나란히 앉아있던 레온과 랄프. 그들도 소드마스터 대련이 보여준 묘한 짜릿함에 한껏 고조된 상태였다.


연무장으로 향한 고개도 돌리지 못한채 레온의 어깨를 툭툭치는 랄프.


“야야, 봤어? 비겼어. 천하의 훌리오랑. 너 잡아가둔 치안대장 녀석 진짜 대단한데?”


“응, 근데 딱 거기까지야.”


“뭐가?”


“훌리오의 반격이 시작되려 할 때. 폐하께서 영리하게 끊어주셨지. 계속했다면 스캇은 단 일검에 쓰러졌을 거야.”


“응? 넌 그렇게 보였어? 내가 보기엔 비등비등했는데. 잘만 하면 스캇이 이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랄프가 다시 물었다.


“근데 레온···. 넌 어느 정도야? 방금 저 둘과 비교하면?”


소드마스터가 보여주는 그 모든 동작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머릿속에 새겨넣은 그.


레온은 대답을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내가 이겨···.’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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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첫 항해(1) 22.05.29 361 11 11쪽
» 전설 속 소드마스터(2) 22.05.28 381 12 12쪽
16 전설 속 소드마스터(1) 22.05.27 402 13 10쪽
15 포르투칼 국왕, 주앙 3세(3) 22.05.26 396 11 11쪽
14 포르투칼 국왕, 주앙 3세(2) 22.05.25 460 11 11쪽
13 포르투칼 국왕, 주앙 3세(1) 22.05.24 574 17 13쪽
12 보랏빛 라벤더 22.05.23 551 19 11쪽
11 리스본의 선택 22.05.22 561 16 11쪽
10 판결을 앞두고 22.05.21 597 16 11쪽
9 드디어 아침이다. 그러나.. 22.05.20 655 18 11쪽
8 리스본의 개, 베니 22.05.19 662 20 11쪽
7 새벽의 정면승부 22.05.18 717 21 10쪽
6 가자. 돈 받으러! 22.05.17 823 20 10쪽
5 달빛 아래 핀 꽃 +1 22.05.16 883 29 10쪽
4 밀항 시도 +1 22.05.16 1,027 38 11쪽
3 항구의 여명 22.05.16 1,140 38 11쪽
2 1523년, 리스본의 밤(2) 22.05.16 1,210 40 10쪽
1 1523년, 리스본의 밤(1) +1 22.05.16 1,614 4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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