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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로드 님의 서재입니다.

그녀의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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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데블로드
작품등록일 :
2017.03.31 13:02
최근연재일 :
2017.04.02 21:2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2,889
추천수 :
37
글자수 :
86,977

작성
17.03.31 13:08
조회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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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 그의 일기_03

DUMMY

그녀와의 다섯 번째 만남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여전히 저를 아들처럼 대했지만, 그녀와 만나는 공백의 시간은 이제 2주로 줄어있었죠. 물론 대가가 있는 만남이기는 했지만 그녀도 저와 만나면 즐거워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문자를 하루에 4~5개 정도 주고받으니 거의 연인이나 다름없는 거라고 저 혼자 여기고 있었죠. 여자 앞에서 소심했던 성격도 조금씩 밝게 변해갔습니다.


그날은 그녀와 보내는 첫 일요일이었습니다.


열심히 검색해서 분위기 좋은 데이트 코스와 첫 키스 하기 좋은 명당도 알아봤습니다. 그녀는 첫 만남 이후로 더 이상 뽀뽀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무턱 대고 제가먼저 하자니 그녀가 싫어할까 봐 겁이 났죠. 그래서 그날은 작정하고 그녀와 첫 키스를 하리라고 굳게 마음먹고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왔습니다.


늘 그랬듯이 제가 먼저 약속 장소로 나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을 좋아했죠. 오늘은 그녀와 어떤 일이 있을까··· 그런 기대를 하는 시간이 좋았거든요. 하지만, 그날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부터 평소와 많이 달랐습니다. 마치 앞쪽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 것처럼 보였죠. 그녀가 제 맞은편으로 앉고 나서야 그것이 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은 그녀가 앞섬에 망토를 벗겨내자 아기띠에 얌전히 잠들어 있는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별로··· 그런데 그 애는 뭐야?”


“예쁘지? 우리 아들이야.”


“엉? 아들?”


세상에, 아들이랍니다. 아들은 저 하나뿐인 줄 알았는데 말이죠. 두 살은 돼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스무 살이라고 했지만 그건 그녀의 직업상의 나이라는 걸 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확신하건대 그녀는 분명 아직 10대일 것이 분명했습니다. 정말 그녀가 스무 살이라면 그야말로 신의 축복을 받은 절대 동안인 거죠.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백 좀 들어줘.”


그녀가 먼저 일어났고 전 그녀의 커다란 백을 어깨에 메고 그녀의 뒤를 따랐습니다.


근처 식당에 들어간 우리는 돌솥밥을 시켰습니다.


“이모~ 이것 좀 데워주세요.”


그녀는 직접 싸온 죽을 꺼내 아주머니에게 건넸습니다.


“아유~ 애가 참 예쁘기도 하네. 얼마나 됐어요?”


“15개월이요.”


“눈이 초롱초롱한게 애 아빠를 쏙 빼닮았네.”


아주머니가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저는 그냥 멋쩍은 미소만 보였죠. 제 아이도 아닌데 저를 닮을 리가 있겠습니까?


가만 보니 아기는 그녀와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특히 입술은 정말 빼다 박았더군요. 아마 아이는 그녀의 친언니나 오빠의 아이인데 사정상 그녀가 보고 있던 중에 저를 만나러 나온 거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즉, 그녀도 저와의 만남을 저 못지않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혹시 그녀도 절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어머, 이모 이 사람 애 아빠 아니에요. 내 아들이에요.”


“깔깔깔 그래요. 애 엄마가 혼자 아들 둘이나 키우니 고생이 심하겠어.”


아주머니는 주방으로 가셨고 그녀는 아이와 놀아주느라 저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습니다.


밥이 나왔습니다. 그녀는 아기부터 챙기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아서 제가 대신 비벼 주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다 먹을 때까지 그녀는 한술 제대로 뜨질 못하고 있더군요.


“다 먹었어? 그럼 나도먹게 애기 좀 봐.”


“어? 내가?”


“그럼 누굴까?”


그녀의 눈이 희번덕 했고 저는 아무런 토를 달지 못하고 아기를 받아 안았습니다.


태어나서 아기를 안아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기분이 묘해졌죠. 너무도 작은 사람이 제 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느낌이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낯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아이도 불편한지 칭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일어서서 좀 얼러 줘봐. 갠 많이 움직여주는 걸 좋아해.”


그녀가 조언을 했습니다. 전 얼른 일어나서 천천히 걸으며 식당 안을 돌아다녔습니다. 다행히 손님은 우리뿐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는 더욱 커져갔죠. 결국 보다 못한 식당 아주머니께서 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이리 줘봐요.”


아이는 신기하게도 아주머니가 안고 토닥여주니 진정하더군요.


“잘한다 잘해. 애도 제대로 못 안아주니?”


그녀가 핀잔을 주었습니다.


“호호호··· 젊은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새댁이 고생이 많겠어.”


“사는게, 사는게 아니에요.”


아주머니의 말에 맞장구치는 그녀.


우씨~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애 아빠가 평소에 애 좀 봐주지 그랬어.”


아~, 아주머니까지 저에게 핀잔을 주십니다.


“이모, 이 사람 애 아빠 아니라니까요. 아들이라구요.”


“내 정신 좀 봐, 그랬지. 새댁이 속이 참 깊네.”


그녀가 식사를 마치고 아이를 아주머니에게 받기 전에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이거 메.”


“엉?”


그녀는 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기띠를 저에게 내밀더니 직접 착용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곤 아주머니에게 아이를 받아와서 아기띠 안으로 쏙 넣어주었죠. 아기는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봤고 저는 멍하니 있을 뿐이었습니다.


“대공원 가자.”


그녀가 신나는 표정으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저의 계획이 물거품 되어 버리는 순간이기 했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것 같으니 따를 수밖에요.


“야~ 표범이다 표범.”


그녀가 한심스러운 얼굴로 저를 쳐다봅니다. 대공원이란 곳은 정말 좋은 곳이더군요. 학창 시절 때도 동물원이 있는 곳으로 소풍을 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TV에서만 보던 동물들을 실제로 보니 너무너무 신나고 들떠있었습니다.


“호양이~ 호양이~”


아이도 신나 하는 것 같았습니다. 맹수들을 보며 모두 호랑이라고 하며 신기해하는 것 같았죠. 예상외인 건 그녀였습니다. 5월 중순의 휴일인 데다 날씨도 화창해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는데 어려 사람들에게 치여서 그런지, 저질체력이라 그런 건지 몰라도 꽤 지쳐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은 저기다. 바다속 동물을 만날 수 있대.”


저와 아이는 신나서 바다 동물관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녀가 제 옷을 잡았습니다.


“꼭 가야겠어?”


“가, 가면 안될까? 보고 싶은데. 힘들면 앉아서 쉬어. 우리끼리 후딱 보고 올게.”


그녀가 갑자기 도끼눈을 뜨며 저를 째려봤습니다.


“야! 그게 말이 돼? 어느 엄마가 대공원에 애들끼리만 놀고 오라고 그러니! 그러다 잃어버리면 책임질 거야?”


내가 어린앤가······


“동물이 그렇게 보고 싶으면 매일 다섯 시에 하는 동물의 왕국이나 꼬박꼬박 챙겨보면 될 것이지. 몇 시간 동안 동물들만 보러 다니고 놀이기구는 하나도 못 탔잖아!”


속사포처럼 쏴대는 그녀. 결론은 그거였습니다. 그녀는 놀이기구가 타고 싶었던 겁니다.


“그, 그럼 놀이동산으로 갈까?”


“그러고 싶어?”


말투가 많이 누그러진 그녀.


“응, 그러고 싶네. 갑자기.”


“좋아, 그렇게까지 말하니 들어주지. 가자.”


저는 힘이 쭉 빠진 채로 그녀의 뒤를 따라 놀이동산으로 향했습니다.


“꺄아~아~아~”


그녀가 지르는 비명소리입니다. 바이킹을 타고 있는 그녀를 저와 아이는 먼발치 벤치에 앉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뭐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눈이 벗어나는 곳으로 가지 말라는 엄포까지 내려놓았습니다. 결국 저와 아이는 그녀가 만족할 만큼 놀이기구를 탈 때까지 따라다니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갈 무렵에서야 그녀의 놀이기구 탐방은 끝이 났습니다.


“진짜 재밌었어. 그치?”


깡충깡충 뛰어와서는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아, 네. 님은 참 재밌어 보이셨죠~ 네~


“애기 좀 줘봐. 기저귀 갈아야 될 거야.”


그녀는 백에서 기저귀 하나를 꺼내어 아이를 안고 여자화장실로 갔습니다.


결국 오늘은 그녀를 위한 들러리 역을 한 셈이 됐지만 저도 즐거웠고 그녀도 많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봤으니 나름 알찬 하루를 보낸 셈이네요.


대공원을 나온 우리는 점심때 갔던 식당엘 다시 갔습니다.


닭볶음탕을 시켜놓고 기다리며 아이를 바닥에 눕혔는데 갑자기 깨더니 크게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아이를 다시 안으려고 했는데 그녀가 조용히 아이 곁으로 다가와 아이의 가슴을 토닥여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녀가 부른 노래는 ‘과수원길’ 이었습니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 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에 과수원길~ 과수원길~



* * *


부드러운 음성이 마치 은색 실타래가 실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한 올 한 올 풀려 마침내 아이의 가슴을 감싸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처음 들어봅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아이는 어느새 조용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코트를 아이의 가슴에 덮어주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아들은 엄마 안 찾아?”


밥을 먹다가 그녀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사실 그녀와 만난 후에 외갓집에 몇 번 연락을 해 봤습니다만 여전히 어머니의 소식은 없다는 말 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고물상 주인아저씨에게 어머니를 보신 적이 있냐고도 전화해 봤지만 못 봤다고 하십니다. 전에 살던 동네에 혹시 왔을 수도 있을까 했는데 역시나 헛된 생각이었죠.


“아직도 연락이 안 돼?”


그녀가 다시 물었고 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꼭 찾아. 그때까진 내가 엄마 노릇해줄게.”


감동이더군요. 그녀가 자꾸 저를 아들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또다시 그녀가 돌아갈 시간이 됐습니다. 이 시간만 되면 왠지 모를 아쉬움이 생겼죠.


“바래다줄까?”


처음으로 그녀에게 바래다준다는 소릴 해보았습니다.


“응, 그래.”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죠. 아이구 바보. 왜 이제야 이 말을 꺼낸 걸까요. 생각해 보니 나란 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를 제가 안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마치 우리를 젊은 부부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그녀가 사는 아파트 입구입니다. 아이를 다시 그녀가 데려갔습니다.


“여기야, 이제 가. 수고했어.”


“문 앞까지 같이 가주고 싶은데······”


“안 돼, 언니들이 보면 골치 아파질 수도 있어. 다음에 보자.”


“아이하고 인사하고 싶은데.”


“그래.”


코트를 살짝 들춰 아이의 잠든 얼굴을 봤습니다. 새근새근 예쁘게도 자더군요.


‘용기를 내. 강민혁. 어서, 넌 할 수 있어.’


심호흡을 한번 하고 시선을 아이에서 그녀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그녀도 예상 못 한 거라 그런지 좀 놀라는 모습이었죠.


“이거 뭐야?”


황당하다는 식의 그녀였습니다.


“아들이 해주는 거야.”


나이스 아닙니까? 멋진 대답이었죠. 임기응변이었지만. 흐···..


“뭐~어?”


그녀는 허탈한 듯 미소를 지어 보였죠.


“갈게. 2주 후에 봅시다.”


전 그대로 뒷걸음치며 그녀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녀도 제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지켜봐 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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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 그와 그녀의 사연_02 17.04.01 172 2 11쪽
9 3. 그와 그녀의 사연_01 17.03.31 209 2 11쪽
8 2. 그녀의 일기_04 17.03.31 151 2 13쪽
7 2. 그녀의 일기_03 17.03.31 124 3 13쪽
6 2. 그녀의 일기_02 17.03.31 198 2 15쪽
5 2. 그녀의 일기_01 17.03.31 174 2 14쪽
4 1. 그의 일기_04 17.03.31 183 3 14쪽
» 1. 그의 일기_03 17.03.31 206 2 12쪽
2 1. 그의 일기_02 17.03.31 252 2 16쪽
1 1. 그의 일기_01 17.03.31 399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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