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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원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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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won
작품등록일 :
2017.03.07 09:37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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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0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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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용장, 지장, 그리고 덕장의 시대

DUMMY

용장, 지장, 그리고 덕장의 시대


서울중앙지방법원 실무관 이중원


‘야구에는 세상사, 인생사가 다 들어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상은 동의하는 바이다. 야구는 스포츠 치고는 대단히 드물게도 정적이고 그래서 농구, 축구 등 동적인 스포츠와는 달리 심리전과 운영적인 측면이 대단히 크게 작용한다. 이는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화려함과 박진감과는 거리가 멀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여러 가지 교훈을 많이 보여준다. 여러 선택의 분기점에서 구단주, 단장, 감독, 선수들의 결정을 보고 표본이나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향후 내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때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다룰 글은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를 이끌어왔던 리더, 즉, 감독들의 변천사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감독들의 흥망성쇠를 토대로 하여 이 시대에 맞는 리더가 무엇인지를 다루려고 한다.

1980년대에 프로야구가 개막하고 잠시 동안 여러 팀들이 각축을 벌였던 것도 잠시, 한국 프로야구 계를 지배하다시피 했던 팀은 해태 타이거즈였다. 타이거즈는 전체 시즌의 절반 이상을 우승하는 독식을 하였고 그 덕분에 타이거즈는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팀이 되었다.

이런 일방적인 강세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김응룡 감독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에 있었다. 그는 대표적인 ‘용장’ 형 감독으로 선수들보다도 더 커다란 체구와 불같은 성격을 앞세워서 선수단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는 군대식으로 위계질서가 딱딱 잡혀있던 당시 스포츠 계의 흐름과 잘 맞는 지도 방식이었다. 팀의 분위기가 흐려졌다 싶으면 의자를 땅에 집어던지는 식으로 기강을 잡고, 자기 팀 선수가 피해를 입으면 달려 나가 불 같이 항의하고 퇴장 당하는 모습은 마치 사자 무리를 이끄는 용맹한 아비 사자와 같았고 이는 타이거즈 선수단을 똘똘 뭉치게 하였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타이거즈 왕조를 이끌던 김응룡 감독은 9회의 우승을 달성한 후 2000년 10월 타이거즈를 떠났고 구단은 김응룡 감독의 이 용장 형 리더십을 계승하고자 그를 보고 자랐던 제자들에게 감독 자리를 연이어 맡기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타이거즈 왕조의 처참한 몰락을 이끌었다. 이후 타이거즈는 2009년 김응룡 감독과는 전혀 다른 성향인 조범현 감독이 맡아 우승을 시킬 때까지 11년의 시간동안 무관에 머물러야 했다.

어째서 이런 상반된 결과가 나온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시대의 트렌드가 바뀐 것이었다. 20세기까지 한국 프로야구 계를 수놓았던 용장의 시대가 저물고 ‘지장’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었다. 스포츠 계가 엄격한 규율과 상명하복의 군대 식 분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면서 선수들은 용장보다는 지장을 더 따르게 된 것이다.

불 같은 카리스마로 선수단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용장과 달리 지장은 선수들을 지략으로 따르게 한다. 그들은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고 선수들에게 그것을 시켜서 더 나은 결과를 창출하고 이 성과를 통해 선수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한다.

이런 성향의 지략 형 리더로는 메이저리그의 토니 라루사 감독, 한국의 김재박 감독, 김성근 감독, 선동열 감독 등이 있다.

라루사 감독은 30개나 되는 팀 중에 8팀만이 갈 수 있는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를 거의 단골처럼 드나들었고 역대 감독 최다승 2위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또한 한국 프로야구는 1997년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우승 이후 김재박 감독(4회), 선동열 감독(2회), 김성근 감독(3회)이 자신들의 팀을 이끌고 우승을 휩쓸며 2000년대가 지장의 시대임을 알렸다.

지장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이 네 감독은 그러나 2010년대가 오면서 거짓말처럼 리그의 왕좌에서 차례대로 사라지게 된다.

라루사 감독은 2011년 세인트루이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후 바로 은퇴 선언을 하고 물러났다. 팀을 우승시킨 감독이 은퇴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의아한 일이다. 그 이유는 팀의 내부 사정에 있었는데 선수들과 감독의 불화가 심화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라루사의 작전 지시가 내는 성과에 만족했던 세대와는 달리 2010년대의 선수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지장 형 감독에게 불만을 표하였다. 승리 투수 요건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투수 교체, 안타를 칠 자신감이 넘치는 선수에게 번트 지시나 히트 앤드 런 지시, 베테랑 선수들의 후보 강등 등은 이전 시대보다 더 인간적인 대우를 원하는 현 세대에 맞지 않았다.

이렇게 마지막 지장이라 할 수 있는 라루사 감독이 물러나게 되면서 메이저리그는 오직 한 유형의 감독만이 남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덕장’ 형 감독이다. 포수 출신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이 덕장들은 선수들과 많은 의견 교환을 통해 전략과 작전을 수립하고 당장의 성적보다는 선수들의 자신감을 높여주고 사기를 고양하는 식으로 팀을 운영하였다. 이로 인해 덕장들이 이끄는 팀은 선수들의 성장이 빨랐고 선수단 전체의 수준이 높아져갔다.

가장 대표적인 덕장의 케이스로는 탬파베이 레이스의 ‘조 매든’ 감독이 있다. 탬파베이는 메이저 최악의 저예산 팀으로 하필 같은 지구에 가장 돈이 많은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그리고 역시 돈이 많은 편인 토론토와 볼티모어가 있는 터라 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구 꼴찌를 도맡았던 팀이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는 패배주의가 팽배했다.

그런 탬파베이를 맡은 매든 감독은 선수들을 특유의 편안한 형님 리더십으로 이끌었다. 그가 내건 슬로건은 ‘성실에는 규율이 필요 없다’였다. 그는 선수들에게 최대한 자율을 주면서도 적재적소에 따스한 조언을 해주면서 그들을 이끌었고 그로 인해 탬파베이는 쟁쟁한 강호들을 꺾고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탬파베이는 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자신의 2~3배 예산을 쓰는 팀을 상대로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이런 메이저리그의 트렌드는 한국에도 이어져왔다. 우승까지는 시키지 못했지만 덕장의 효과를 가장 크게 보여준 이는 롯데 자이언츠를 맡았던 로이스터 감독이다. 그는 부임 직전까지 4년 연속 최하위를 했던 자이언츠를 바로 4위로 올렸고 이후 3년 연속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로이스터가 처음 부임하고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며 내린 진단은 간단했다. 그것은 ‘선수들이 겁에 질린 채 경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투수들은 홈런을 두려워하고, 타자들은 병살타를 두려워하고, 주자들은 주루사를 두려워하며, 수비수들은 실책을 두려워한다. 그간 어설픈 용장이나 지장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이렇게 위축될 대로 위축되었던 선수들이었으니 8위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로이스터 감독은 ‘노 피어’(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투수는 공을 가운데로 뿌리고, 타자들은 언제나 풀 스윙을 하며, 주자들은 가능성이 보이면 주저 없이 뛰게끔 하였고, 수비수들은 신나게 뛰어다니며 몸을 날렸다.

이것들 모두가 좋은 결과를 낳지는 못했지만 일단 공격력에서만큼은 리그 역사상 그 어떠한 강타선에게도 밀리지 않는 최강의 타선이 만들어지면서 팀의 성적은 수직 상승하였다.

그리고 2011년 덕장 형 리더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류중일 감독의 삼성 라이온스가 첫 우승 후 내리 4연속 우승을 하게 되면서 한국 야구는 덕장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덕장의 시대는 비단 야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야구가 세상사를 담고 있다는 격언처럼 이 시대의 트렌드는 덕장을 비추고 있다. ‘소통, 동참, 공감’이라는 멋진 중앙 법원 슬로건 역시도 덕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덕장이란 어떤 것일까. 단지 항상 웃기만 하고 박수만 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전혀 아니다. 사실 덕장은 지장보다도 더 머리를 써야 하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사기를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그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심리를 파악하려면 대단히 세심한 관찰력과 이해심이 필요하다.

부하 직원이 하는 일이 정확히 어떠한 것이고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떤 배려를 해줘야 사기가 끓어오르는 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이 바로 덕장의 길이다.

그렇게 하여 휘하의 인재들 모두의 마음을 얻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리더의 팀은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최고의 효율을 내는 일류가 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말은 쉽지만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살아오면서 본 이 나라의 대부분의 조직들은 여전히 용장과 지장 형 리더들이 이끌고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덕장의 트렌드가 이 나라에 오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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