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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허접 흡혈귀의 권속이 너무 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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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4.01.01 10:40
최근연재일 :
2024.01.17 14:00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217
추천수 :
13
글자수 :
117,734

작성
24.01.0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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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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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현기증

DUMMY

"아무튼, 그래서 너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탈출이 불가능할 것 같다?"


끄덕끄덕.


"그래서, 내가 도와 줬으면 좋겠다?"


끄덕끄덕.


"...딴 데 가서 알아보도록."


"우, 우에에엥! 그 부분을 제발 어떻게 좀!"


남자의 매몰찬 거절에 기껏 그쳤던 울음을 샤를로트가 다시금 펑펑 울며 남자의 바짓단을 잡고 늘어졌다.


"하아...방금 전에 마법 함정 정도는 네 눈에는 보인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 그건 그렇느니라."


"그렇다면 피해 가면 되지 않나. 그리고 그 정도의 기척 차단 능력이라면, 도적단 녀석들이나 파수견들 따위는 몇십, 몇백이 있어도 들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말이 틀리나?"


"우와아앙! 자신이 없는 게다! 혹시라도 실수로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밟아버리기라도 한다면!?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를 않는 게다!"


"그게 나랑 뭔 상관..."


"그러니! 그대가 이 몸을 좀 지켜달라는 게다! 철창을 가볍게 휘어 버리는 그대의 완력이라면 이 한 몸을 지키는 데는 충분하고도 남을 터이니 말이다!"


"하아."


막무가내의 태도로 땡깡을 부리는 샤를로트의 모습에 깊은 한숨을 내쉬는 남자.


솔직히 말해서 샤를로트를 한 번 더 도와주는 것 정도야 별로 어려울 것은 없지만, 이미 남자에게는 그럴 기력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


이미 자신의 목숨을 책임질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벌써 한 달 동안을 아무것도 먹지 않아 기력은 쇠하였고, 눈앞은 침침하기 그지없으며, 다량의 피를 빨린 것 때문인지 현기증까지 나는 상황.


그간 단련해온 강철의 육체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죽음을 거부하고 있지만, 남자가 생의 의지를 되찾지 않는 이상에야 길게 버티는 것은 불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남자에게는, 생의 의지를 다잡을 이유가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그러니, 나를 내버려 둬라. 난 이대로, 여기서 조용히 사라지고 싶으니.'


라는 말을 꺼내기 위해, 남자가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샤를로트가 칭얼거리듯 중얼거린 말이, 남자의 힘없이 감겼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우으으. 다른 건 다 어떻게 돌파한다 치더라도, 처음 잡혀 왔을 때 봤던 그 역십자 문신의 남자만큼은 피할 자신이 없는 게다. 그 남자, 지나가면서 얼핏 본 것에 불과하지만 분명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꺄아악!"


지금까지의 무기력한 모습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흉흉하게 빛나는 남자의 두 눈동자가 샤를로트의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에 식겁하며 물러나는 샤를로트였지만, 남자의 우악스러운 양손이 샤를로트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으윽!"


"역십자 문신. 틀림없나?"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샤를로트.


"어디에 새겨져 있었지?"


"모, 목덜미에 새겨져 있었느니라."


"목덜미, 목덜미라."


씹어 삼키듯이 중얼거리는 남자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한 소년의 얼굴.


천진하게 웃고 있는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그 앳된 소년의 목덜미에는,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검과도 비슷한 모양의 역십자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남자가 지녔던 모든 삶의 의미를 한순간에 앗아갔던 그 사건, 정말로 어떠한 전조도, 예고도, 하물며 범인에 대한 단서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그 사건의 유일한 단서.


아니. 지금껏 단서인지조차 몰랐던 그 역십자 문신이, 소년의 것과 같은 모양으로, 같은 위치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 정말로 단순한 우연일까?


'확인해 볼 가치는 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갑작스러운 남자의 변화에 눈치를 보던 샤를로트가 움찔하며 물러섰다.


"생각이 바뀌었다. 도와주지. 탈출."


"그, 그게 정말인가!? 정말 잘 생각했노라! 갑자기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야 아무렴 어떻단 말인가."


언제 쫄았었냐는 듯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남자의 곁에 찰싹 달라붙는 샤를로트.


"좋다! 역시 그대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 줄 알고 있었느니라!"


"단, 그쪽을 도와주는 데는 조건이 있다."


"조건? 들어는 보겠노라. 말해 보거라."


"네가 봤다는 그 역십자 문신의 남자. 내 목적은 그 남자를 찾는 거다. 그 남자, 지금, 이 동굴에 있는 건 확실하겠지?"


"최소한 이 몸이 조금 전에 멀찍이서 확인한 결과로는 확실하도다. 그대와 대화하는 이 짧은 사이에 동굴에서 나간 게 아니고서야 말이다."


"얼굴은 기억하고 있나."


"이 몸이 이래 봬도 사람 얼굴은 제법 잘 기억하는 편이니라."


"좋아. 너와 나, 둘 중 어느 누구도 그 남자를 찾기 전까지는 이 동굴에서 못 나간다."


"에, 에에...돌아다니다가 운 좋게 출구를 발견하더라도 말인가?"


"당연히, 못 나간다."


"우으으. 일단 알겠노라. 어차피 그대가 없으면 탈출도 요원한 일일 테니 말이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수긍하는 샤를로트의 모습에, 남자는 살짝 손을 들어 올린 채로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다시 손을 내리고 등을 돌렸다.


"그 남자를 찾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지켜 주겠다. 찾은 이후에는, 나도 확신은 못 하겠군. 내가 곁에서 떨어지면, 기척 차단이든 뭐든 써서 몸을 숨기도록 해라."


"으음! 알겠노라! 이래 봬도 도망치는 것은 특기니라! 그 문신의 남자가 아니라면 도망치는 것 정도는 가능한 게다."


흡혈귀로서 자랑할 만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당당하게 외치는 샤를로트였다.


"그러면 바로 출발하지. 흡."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철창 하나를 위아래로 잡고 힘을 주었고, 그러자 이번에는 철창이 휘어지는 대신에 뚝 하고 끊어져 버리며 적당한 길이의 작대기 같은 형태가 되었다.


"..."


그 모습에 샤를로트가 혀를 내두르던 말건, 남자는 무뚝뚝하게 다섯 개 정도의 철창을 기계처럼 정확하게 같은 동작으로 끊어냈고, 소매를 약간 찢어내 네 개의 철창을 묶어 샤를로트에게 건넸다.


"들고 따라오도록."


"아, 알겠노라."


한 손에 끊어낸 철창을 움켜쥔 채로 남자가 뚫린 철창의 틈새로 몸을 숙여 지나가려던 순간, 샤를로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그대의 이름을 듣지 못했노라."


"...통성명 같은 게 굳이 필요한가?"


"그야 물론이니라! 여차 하는 상황에서 서로를 확인할 수단 정도는 필요하지 않더냐?"


"웬일로 일리 있군."


"웬일로는 빼거라. 아무튼 다시금 소개하겠노라. 이 몸의 이름은 샤를로트 디 네크로스. 그대의 이름은?"


순간적으로 늘 하던 대로 가명을 댈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무슨 변덕에서인지 남자는 오래간만에 자신도 불러본 기억이 까마득한 본인의 진짜 이름을 입에 담았다.


"감마. 감마 나인이다. 내 이름은."


"...무슨 이름이 그따윈가?"


"..."


"아아앗! 그대여! 아니, 감마여! 기다리거라! 같이 가는 게다!"


기껏 본명을 말해줬더니 돌아온 무례한 대꾸에,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두운 동굴의 통로를 앞서 나갔고, 그 뒤를 샤를로트가 총총걸음으로 쫓아가기 시작했다.


* * *


조명이라고는 10m 거리 정도의 간격으로 배치된 횃불 정도밖에 없는 어두운 동굴의 통로.


한 거한이 늘어지게 하품하며 그 통로를 걷고 있는 중이었다.


"흐아아암. 보스도 참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이거 진짜로 뒤탈 없이 끝나는 거 맞아? 안전한 건수라고 듣기는 했다만."


거한이 향하는 곳은 자신들의 아지트 제일 깊숙한 곳에 있는 '저장고'였다.


아직 '상품'을 출고하기까지는 납품기간이 제법 남아 있었지만, 오늘 오전에 들여 온 상품 하나의 상태가 영 이상했었기에 그는 그 상품의 상태를 점검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놈 살아는 있겠지? 내가 그걸 여기까지 어떻게 업고 들어왔는데 죽어 있으면...어휴."


생긴 것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무겁던 창백한 안색의 남자.


뒷골목에서 주워 왔을 때부터 여기까지 오기까지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은걸로 보아 애초부터 상태가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는 상품이었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고객들 중에서는 일부러 병든 놈들만 사가는 이상한 놈들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죽어 있지만 말아라. 송장 치우기 귀찮으니까. 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무거운 남자와 창백한 계집애 하나가 들어 있던 저장고를 들여다보던 남자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는 안색이 굳었다.


"뭐야 이거, 철창이 왜 끊어져 있."


"왁!"


"으아악! 뭐야!?"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남자의 바로 옆에서 나타난 검은 의복의 소녀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고, 거한은 식겁하며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몽둥이를 그쪽 방향으로 휘둘렀다.


"꺄, 꺄아아악! 지, 진조 살려! 어떻게 좀 해 보거라 감마여!"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넌 이제 뒈졌...커헉!"


머리를 감싼 채 덜덜 떨며 쪼그려 앉은 소녀를 향해 몽둥이를 내리치려던 거한을 향해 한 남자가 소리도 없이 다가와 숙련된 동작으로 양팔을 이용해 거한의 목을 휘감았다.


'무, 무슨 힘이. 꼼짝도 안 하잖아?'


전력으로 남자의 팔을 떼어내려던 거한이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남자의 양팔.


좀 둔하다는 소리는 듣지만, 이 도적단 내에서 힘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거한이었다.


물론 마나를 이용해 신체 능력을 올리는 기사들이나, 신성력으로 인해 축복 받은 성기사들에 미칠 바는 아니다.


그래도 타고난 용력에는 제법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던 거한이었지만, 그 자부심은 실시간으로 산산조각이 나는 중이었다.


"끅, 끄륵."


이거 놓으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강한 힘으로 거한의 숨통을 압박하는 남자의 팔.


결국 거한은 단 3초 만에 의식을 잃고 추욱 늘어져 버렸다.


"후, 훌륭하도다. 감마여. 멋진 솜씨였느니라."


슬쩍 실눈을 뜨고 혼절한 거한을 확인한 샤를로트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당당한 포즈를 취하며 거한을 제압한 남자. 감마를 치하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죽이는 편이 뒤탈이 적을 것 같은데, 재고의 여지는 없나?"


접근해 오는 거한을 먼저 눈치채고, 손에 쥔 철창으로 그대로 목을 꿰뚫으려던 감마였지만, 그것을 샤를로트가 제지해 기절시키는 것으로 끝낸 상황이었다.


"아무리 막돼먹은 도적단 놈들이라고 할지라도 죽이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살인은 지양하거라."


"..."


그냥 무시하고 죽일까, 라는 생각이 잠시 감마의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샤를로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금발 소녀의 함박웃음이 자꾸만 떠오르는 그였다.


-아빠! 아빠는 나쁜 사람들을 마구 혼내주고 다니는 거지?


-마구 혼내주지는 않는데, 임금님께서 나쁜 사람들이라고 지정해주신 사람들만 족치, 아니. 혼내주고 다닌단다.


-와아! 아빠 멋져요! 그런데요,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많이 혼내지는 말아 주세요.


-응? 우리 딸이 왜 그렇게 생각할까? 나쁜 사람들은 가만히 냅두면 우리 딸이나 엄마 같은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닐 텐데?


-우으음...그건 싫지만, 그래도요! 나쁜 사람들도 열심히 착한 일을 배우면, 어쩌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떠오르는 과거의 편린은 두통이 되어 감마의 머리를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고, 감마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최소한 서둘러라. 금방 깨어날 수 있을 정도로 손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 녀석이 정신을 차리면 일이 꽤 귀찮아질 거다."


"두 말 하면 잔소리이니라! 이런 칙칙한 동굴 따위, 이몸도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은 게다."


"좋다. 그럼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둬야겠군."


"한 가지?"


"본의는 아니다만, 네가 말하는 대로 살인은 가급적 지양하겠다. 하지만 그래야만 할 상황이 온다면 난 주저 없이 놈들의 목숨을 끊어놓을 거다. 이론은 받지 않아."


"뭐...거기까지는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대의 판단에 맡기겠노라."


샤를로트는 살짝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생각 외로 가볍게 수긍하는 것 같았다.


"그럼 가도록 하자꾸나. 이 칙칙한 동굴을 탈출한다고 생각하니 흥이 오르는구나."


그렇게 말하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통로를 앞서나갔고, 감마는 늘어진 거한을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 대충 숨겨두고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작가의말

의문의 연참이 독자님들을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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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엘팡스 자작령으로 24.01.17 1 0 14쪽
19 엘팡스 자작령으로 24.01.16 3 0 16쪽
18 막간 : 어두운 장막 너머에서 24.01.15 5 0 11쪽
17 맹세 24.01.14 6 0 14쪽
16 맹세 24.01.13 6 0 14쪽
15 맹세 24.01.13 5 0 15쪽
14 맹세 24.01.12 5 0 13쪽
13 맹세 24.01.11 6 0 13쪽
12 맹세 24.01.10 7 0 11쪽
11 현기증 完 24.01.09 1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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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현기증 24.01.07 10 1 12쪽
8 현기증 24.01.06 11 1 13쪽
7 현기증 24.01.05 10 1 12쪽
6 현기증 24.01.04 11 1 13쪽
5 현기증 24.01.04 13 1 12쪽
4 현기증 24.01.03 13 1 15쪽
» 현기증 24.01.02 18 2 13쪽
2 현기증 24.01.02 24 1 13쪽
1 현기증 24.01.01 4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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