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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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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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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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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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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내 것이 없으면 언제고 한계가 닥치게 되어 있어.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신문·방송 등의 언론기관을 제 4부라고 한다.

입법, 사법, 행정부의 3부를 능가하는 권한과 사회적 영향력이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언제부턴가 3부를 비판, 견제해야 하는 언론이 그들과 영합해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언론이 자사의 이해관계에 집착해 편집방향을 설정하면 공정성을 잃기 쉽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짊어진다.

투명하지 못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지도자는 언론과 맞설 수가 없다.

언론과의 거래를 통한 유착과 공생이 있을 뿐.

세계 어느 나라 언론이나 언론인들은 정치계 내부자이다.

정부 혹은 정치계는 ‘짐승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듯이’ 출입기자들에게 기삿거리를 주면서 언론을 관리하고 통제하려 한다.

재계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뉴스를 제공하는 출입처의 취재원들과 언론이 밀착된다.

미국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일 시기.

워싱턴포스트는 항공모함에서 공군 비행복을 입고 헬멧을 옆구리에 낀 채로 경례 하는 조디 워커 대통령의 모습을 대서특필했다.

조디 워커 대통령은 영화 <탑건>의 파일럿처럼 위풍당당했다.

그 사진 한 장으로 조디 워커는 탑건의 이미지를 갖게 됐다.

반대진영인 민주당에서 전쟁을 개인적이고도 드라마 스토리로 만들어 선동도구로 이용했다고 공격하는 빌미가 됐다.

언론이 정부나 권력에 적대적이면 얼핏 독립적이고 비판적이란 찬사를 듣는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권력 감시나 견제를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 아니다.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가 먹잇감을 물어 뜨는 일에 불과하다.

모든 언론이 정론집필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논조에 따라 얼마든지 궤변을 늘어놓을 수 있다.

언론기사는 거룩한 신의 말씀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다.

언론의 집요하고 무단한 공격에 권력이 굴복하면 다음 대상은 시민이 된다.

한 나라의 정치수준은 언론수준과 비례한다.

독재자가 통치하는 국가에서 언론이 제 기능을 할 리가 없으니까.

언제든지 타락할 수 있는 언론의 대안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시민단체 즉 비정부기구(NGO, Non Govermental Organization)다.

글자 그대로 정부와 똑같은 시스템을 갖춘 비판세력이다.

NGO가 언론이 못하는 비판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대안이 되길 기대했다.

그래서 제5부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비판세력이라고 해서 꼭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감시와 견제에서 비판으로, 그리고 주장과 행동으로, 결국에는 선동으로, 그렇게 변해가기도 하니까.

그들이 비난하는 대상과 똑같아 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정의를 외치는 순간 정의가 아니라고 했다.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가장 부정한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식자들이 또 깨어있는 시민이 언론을 바로세우는 일을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글쎄.....’


류지호는 4부가 카르텔을 형성해 타락하면 어떤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를 <민중의 적> 후속편에서 다룰 생각이다.

카투사로 근무할 때 썼던 <Scoop(특종)>를 초고로 삼았다.

지방신문사를 배경으로 하는 사회고발 영화였다.

상당히 날선 스토리에 암울한 분위기를 자랑했다.

<민중의 적> 후속편의 아이디어로 가져오면서 메인 스토리는 휴지통에 버려졌다.

국회의원·건설업자·사법카르텔의 이권비리를 파헤치는 쓰레기 기자가 참 언론인으로 성장하는 드라마는 왠지 진부하게 느껴졌다.

재개발이나 신도시 비리사건은 주기적으로 터지는 한국의 흔한 사건이다.

신선하지 않았다.

그래서 반인륜이란 키워드에 맞는 범죄를 찾아보았다.

부모를 죽이는 패륜범죄나 묻지마 살인 같은 개인차원의 범죄가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반도체 공장 산재’ ‘대구지하철 및 남대문 방화’ 같은 개인차원을 넘어서는 대형 사건을 궁리했다.

그러다 찾아낸 사건이 80년~90년대까지 대기업 계열의 제약회사가 저지른 비윤리적인 임상실험이었다.

대략적인 사건은 이랬다.

이름만 대면 국민 누구나 아는 대기업 계열 제약회사가 전국에 수많은 고아원을 후원했다.

그런데 그 제약회사가 고아원 원생들을 대상으로 개발 중인 백신을 비양심적·불법적으로 임상실험을 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주기적으로 맞는 주사가 신약의 임상실험이었다는 사실을 오로지 고아원 원장만 알고 있었다.

감독기관에 위법행위가 적발되었지만 사건은 조용히 묻혔다.

류지호가 찾아낸 기사도 겨우 대여섯 건이 안 될 정도로 철저하게 언론보도도 막았다.

사실 1998년에 야당 국회의원에 의해 고아원 불법 임상실험의 일부가 밝혀진 바 있다.

당시 밝혀진 것은 조족지혈이었다.

90년대 이전부터 현재까지도 국내 대형제약업체 대부분이 친권자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되는 고아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임상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1995년 미국에서는 한 다국적제약회사가 뉴욕 소재 고아 구호센터에서 히스패닉, 흑인 등 유색인종 아동을 공급받아서 모두 4차례에 걸쳐 각종 약물에 대한 내성실험 등을 실시해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이전부터 신약의 임상실험을 아프리카 대륙에서 해오고 있던 터라 미국 본토에서 자행된 실험에 큰 논란이 됐었다.

미국의 대형 제약회사들은 남미 혹은 중국대륙에서도 부작용에 대한 검증 차원에서 활발하게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암튼 류지호가 찾아낸 사건은 오성그룹에서 분리하기 전 백설제당 산하의 제약회사가 저질렀던 비인도적 임상실험이었다.

당시에는 오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되기 전이라 해당 사건이 오성그룹 차원에서 무마되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류지호는 관련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나래안전의 특수팀까지 동원했다.

당시 사건 전말의 80%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닷컴버블 붕괴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최근에 그와 유사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바이오벤처 회사가 지방의 소규모 고아원 원장과 공모해 원생들을 신약의 임상실험 대상자로 삼았던 사실이 드러났다.

과거에는 제약회사들이 벌금을 내고 관련자 몇 명 솜방망이 처벌을 받으며 유아무야 넘어갔다.

이번에는 바이오벤처 대표와 고아원 원장이 구속되며 중징계가 예상되고 있다.

천만다행으로 원생 가운데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과거 백신 임상실험에서는 세 명의 고아원 원생이 사망한 바 있다.

그때는 정의가 없었고, 현재는 정의가 되살아나기라도 한 걸까.

아니다.

과거에는 피의자가 힘이 막강했고, 이번에는 힘이 없었다.

이 같은 대형사건의 피해자는 언제나 법·제도·사회 감시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불쌍한 어린이들이다.

전시도 아닌데 왜 아동들이 비인륜범죄에 노출되는 것일까.


“감독님, 진짜 그 시나리오로 가시게요?”


조감독 이동화의 물음에 류지호가 호칭부터 정정해 주었다.


“형이라고 하라니까.”

“아, 네 .....형.”


두 사람은 여주 가온종합촬영소를 둘러보고 있다.


“송 작가의 각색이 잘 빠졌어. 마음에 든다.”

“바이오벤처 회사가 옛날 그 회사죠?”

“그 회사 어디?”

“그 회사요. ‘오’로 시작하는. 지금은 계열분리 돼서... WaW 경쟁....”

“아닌데!”

“진짜요?”

“작년 사회면에 난 기사에서 영감을 받았다니까.”

“에이, 아닌 거 같은데....”

“아닌 게 아닌 것 같다, 쟈샤.”

“제가 자료 좀 찾아봤거든요. 팔십 몇 년도인가.... 수원에 어떤 고아원 아이들한테 백신주사를 맞췄는데 아이가 죽었다더라고요. 근데 그게 시판 중인 약이 아니라 임상실험 중이던 약이었다고. 그리고 어영부영 없던 일처럼 파묻혔던데요? 당시 기사에서 대기업 이니셜이 ‘B'던데.....”

"유야무야 넘어가진 않았어. 벌금도 많이 물고 관련자는 감옥 갔을 걸?“

“그것 봐요. 그때 사건을 참고했구만.”

“고아원생 임상실험은 지금도 벌어지는 일이야. 일반인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부모 없는 아이들이라고 막 그래도 되요?”

“법이 뭣 같으니까. 시나리오에 다 나와 있잖아. 고아는 원장이 동의하면 임상실험이든 뭐든 다 된다고.”

“와, 씨....! 뭐 그런 개같은 경우가 다 있대요?”


그것뿐일까?

일부 보육시설에서는 아동학대는 물론 성폭력까지 자행되고 있다.


“설마... 시나리오처럼 제약회사 사장하고 원장이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죠?”

“모르지.”


쓰레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인간성이 없는 것은 틀림없었다.

자기 딸이나 아들에게도 똑같이 임상실험을 하라고 하면.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뻔 하니까.


“네가 화내는 것 보니까. 고아원 원장하고 사장 캐릭터가 조규환 못지않은가 보다?”

“부모 죽인 패륜보다는 덜 할지도 모르지만, 죽은 원생 아이를 난지도에 버린 건 진짜... 만약 내 앞에 그 고아원 원장 있으면 패 죽이고 싶을 것 같아요.”

“실제로는 화장했어. 극적효과를 위해 난지도로 바꾼 거지.”

“근데요. 전편처럼 형사로 해서 그냥 실컷 패주기라도 하지. 아사모사하게 넘어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강철중이 똑같이 형사로 나오면 처음부터 관객들이 엔딩을 예상하지 않겠냐?”

“그건 그렇지만요.”


<민중의 적> 시리즈의 엔딩은 일종의 열린 결말에 가깝다.

악당이 어떤 벌을 받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하나, 우리는 권력과 금력 등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내·외부의 개인 또는 집단의 어떤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도 단호히 배격한다. 하나, 우리는 뉴스를 보도함에 있어서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한다. 하나, 우리는 취재 보도의 과정에서 기자의 신분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으며,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사적인 특혜나 편의를 거절한다. 하나, 우리는 취재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 하나, 우리는 개인의 명예를 해치는 사실무근한 정보를 보도하지 않으며, 보도대상의 사생활을 보호한다. 하나, 우리는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시인하고, 신속하게 바로 잡는다. 하나, 우리는 취재의 과정 및 보도의 내용에서 지역·계층·종교·성·집단 간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차별을 조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X발로마~]


바이오벤처 사장이 수차례 강철중을 회유·협박한 것에 대한 꾸짖음과 동시에 기레기로써의 자기고백이기도 했다.

류지호와 송진한이 창작한 다이얼로그가 아니다.

1994년 3월 29일 제정되어 2006년 5월 개정될 예정인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의 일부다.


“본부건물의 디자인은 SF영화를 찍어도 될 것 같아요.”

“의도하긴 했어. 뭐든 써먹고 싶어서 일부러 감각적인 디자인을 채택했지. 그걸 바이오벤처 회사 연구실로 써먹게 될 줄은 몰랐다.”

“건물 외양이 너무 튀어서 영화에서 쓰기 그렇더라구요.”

“<민중의 적 EP Ⅱ>에서 나오면 처음이야?”

“제가 알기로는 그래요.”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종합촬영소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특수배경 촬영장도 둘러봤다.


“경찰서 세트는 전부 쓰셔야죠?”

“그래야 할 것 같아. 숙직실만 따로 사운드 스테이지에 만들자.”

“병원은요?”

“로비만 다른 곳으로 찾아봐. 너무 큰 병원 느낌 나면 안 돼.”

“NGO 사무실은 세트로 가실래요?”

“이름 있는 NGO는 아니야. 종로 뷰가 창밖으로 잘 보이는 사무실 알아봐.”

“세트 가벽은 네 면을 다 뗄 수 있게 지어야 할까요?”

“아니.”

“바이오벤처 공간은요?”

“오피스는 강남의 G-Tower 공실을 알아봐. 내가 영화 촬영할거라고 말하면 관리사무실에서 도와줄 거야.”

“감독님하고 일하면 이런 게 좋다니까요. 섭외가 편해서.”

“영화 좀 편하게 찍어보려고 기를 쓰고 돈 번다.”

“캐스팅은 전편의 배우들 연결하실 거죠?”

“응.”

“캐스팅 디렉터는 CHAN하고 계속 가는 거고요?”

“왜? 마음에 안 들어?”

“좋아요. 손 발 맞춰본 게 몇 작품인데요. 근데 주연급 배우 소속사 중에 캐스팅 디렉터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곳이 많아요.”

“김 피디와 네가 알아서 해. 내게 컨펌 받을 필요 없어.”

“그래도 되요?”

“돼.”


어쩌다 보니 <민중의 적> 후속편이 친구 김재욱의 프로듀서 입봉작품이 됐다.

김재욱은 열의를 불태우고 있지만.

친구라고 해서 류지호가 적당이 어르고 달래가며 일할 리가 없다.

고생문이 활짝 열렸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른다.


“대형 기획사라고 괜히 기죽지 마. 네가 걔들한테 꿀릴 게 뭐냐?”

“감독.. 형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죠. 기획사 대표들에게 찍히면 일 못해요.”

“찍히긴... 인마! 너보다 일 잘하고 잘 나가는 조감독 누가 있어? 네가 충무로 원탑이야. 괜히 기죽고 다니지 마. 기획사 대표 같은 소리하고 앉아 있네.”

“그래봐야 조감독인데요, 뭘.”

“조감독이 뭐가 어때서? 이참에 네가 악역부터 메인 두 명 빼고 싹다 캐스팅해 와봐. 네가 추천하는 배우 쓸게.”

“재욱이형도 있는데 제가 어떻게....”

“김 피디는 김 피디고. 넌 너야. 쌍팔년도 선배 조감독들은 주인공도 잡아오고 그랬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야.”


매니지먼트가 대형화 되면서 캐스팅 부분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류지호다.

그럼에도 대형 기획사 임원이라도 이동화에게 함부로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힘을 실어줬다.


“오디션 보실 거죠?”

“중환이형이나 정원이형도 예외 없어.”

“하여간 그 놈에 할리우드 스타일....”

“뭐 인마?”

“그렇잖아요. 요즘 좀 뜬 애들은 지들이 정원이형급인 줄 알고 오디션은커녕 감독 미팅도 지들이 정한다고요. 형이 보자고 하면 몰라도 나나 재욱이형이 미팅하자고 하면, 욕부터 날릴 걸요?”

“그런 싹수없는 애들은 싹 다 걸러.”

“저하고 재욱이형이 배우들한테 찍힌다니까요?”


안 봐도 뻔하다.

주로 드라마로 일약 스타가 된 배우들이 그렇다.


“영화판 생리를 잘 몰라서... 매니저들이 은근히 바람을 넣기도 하고요.”

“네 선에서 다 잘라. 영화판에 배우 없냐?

“쓸 만한 배우는 항상 모자라죠.”

“쓸 만한 배우가 모자란 거냐? 매번 쓰는 배우만 쓰니까 그렇지.”

“그런가요?”

“아직 시간은 많아. 배 감독 <더 로드>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잘 봐두고.”

“예!”


<민중의 적> 후속편의 촬영은 내년 여름으로 잡혀있다.

그 전에 미국에서 <REMO> 최종편을 촬영하고 오기로 했다.


“미국에서 찍는 영화 후반작업은 감독님 없어도 되요?”

“포스트만 거의 10개월 정도 걸릴 걸?”

“무슨 포스트를 10개월씩이나 한대요?”

“기술적으로 복잡한 게 꽤 많아서.”

“<타이타닉> 같은 영화라도 찍으세요?”

“궁금해도 몇 달만 참아.”

“옙!”

“김 피디 불러서 소주 한 잔 할까?”

“영광입니다!”

“영광은.... 자식이. 까불지 말고, 얼른 김 피디 전화 해봐.”


서울로 올라온 류지호는 이동화와 함께 홍대 근처 한산한 곳에 위치한 대포집에서 김재욱과 만났다.

영화인들이 자주 모이는 술집 중에 한 곳이다.

합정사거리에 WaW 픽처스 프로덕션 오피스가 자리 잡으면서 영화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된 곳이다.


“진짜 촬영감독 바꾸려고?”

“영복이형이 좀 바쁘냐?”

“입봉한 영복이형 부사수도 있잖아.”

“윤 기사가 나랑 하고 싶대.”


김재욱은 어지간히 찜찜한 모양이다.

죽상을 한 얼굴이 펴질 줄 몰랐다.


“그 양반 무지 까다로운데.”

“같이 일 해봤어?”

“진인사에서 같이 일해 본 후배놈이 그러는데 무지 피곤한 스타일이래.”


윤기수 촬영감독은 미국 국적자다.

중학교 1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가서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21살 때부터 개퍼(DP 시스템에서 조명을 담당)로 광고와 뮤직비디오 일을 했다.

뉴욕대에서 함께 영화를 공부한 박진택 감독의 부름으로 한국에 들어온 후로 매년 한국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데, 일이 없을 때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광고 일을 했다.

류지호처럼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대 다닐 때부터 윤기수는 영화과 유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천재 영화학도 류지호와 교류가 일찍부터 있었다.


“까탈스러운 것은 열정적이란 이야기도 돼.”


윤기수 촬영감독은 그 스스로가 까다롭다는 걸 인정한다.

사적으로는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다.

일할 때 유독 까다롭게 군다.

충무로가 워낙 말들이 무성하다보니 과장된 에피소드도 많았다.

그는 미국식 계약에 익숙했다.

세세한 계약 조건부터 실제 프로덕션에 이르기까지 주도면밀하고 세심해야 직성에 풀리는 성격이다.

가장 합리적인 계약을 해주는 WaW 픽처스조차 작품당 계약이 관례화된 충무로에서 시간당 계약을 고집하며 제작사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전 삶에는 현장 편집을 처음으로 도입하고 실버리텐션 기법 같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등 한국영화계에서 손에 꼽히는 촬영감독이었다.

이번에도 할리우드식 DP 시스템이라든가, 시간당 계약과 주별 임금 지불 방식 등 미국식 현장문화를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있다.


“피곤한 스타일은 낯설어서 그럴 수도 있어. 윤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완벽하게 처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야. 아마도 까다롭다는 말은 합리성과 자신의 일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보일 거야.”


이전 삶에서 류지호도 자주 접했던 촬영감독이다.

아쉽게도 작품을 해본 적은 없었다.

감각적이고 스타일시한 영화를 주로 해서 그렇지,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상을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미국에서 개퍼 경험을 꽤 많이 해봐서 빛을 다루는 것에 남다른 면모가 있다.

<민중의 적>에서 류지호가 윤기수에게서 바라는 점이 바로 그 부분이다.


“너도 긴장 좀 타야 할 거다.”


김재욱이 화살을 이동화에게 돌렸다.


“저는 왜요?”

“윤 기사가 드라마 해석하는 게 빠삭하단다.”

“NYU 출신이라면서요?”

“촬영 스케일부터 스케줄까지 아주 기계처럼 쫙 꿰고 일한대. 꼭 류 감독 같다고 할까. 그래서 리틀 류지호래.”


윤기수가 한 학번 빠르다.

미국식 마인드인 윤기수는 나이나 학번 따지지 않고 류지호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그게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방식이야. 할리우드 현장은 DP가 시작해서 DP가 마무리하니까.”

“한국에서 일하면 한국 스타일을 따라야지. 꼭 양놈 식으로 해야 직성이 풀려?”

“효율과 합리성. 이게 누구한테 일을 배웠기에 나이롱이야? 넌 피디라는 놈이 시간 관리나 촬영분량 관리가 왜 중요한지 몰라?”

“모르는 게 아니라. 인간미가 없잖아. 인간미가.”

“인간미 같은 소리하고 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꼭 기계처럼 딱딱 떨어져야 속이 시원해? 유도리란 게 있어야지.”

“더 잘 먹고 살자고 그러는 거 아냐. 의미 없이 흘려버린 시간과 금전은 누가 책임지는데?”

“그야....”

“프로덕션 공정을 컨트롤 못해서 피 보는 건 항상 힘없는 스태프잖아. 영화에 돈을 댄 투자자는 어떻고.”

“당연히 동의는 하는데.... 점점 삭막해져 가는 것 같아서 그렇지.”

“그래서 10년 전부터 그렇게 충무로만의 현장 분위기와 끈끈한 문화를 찾아보자고 한 거잖아. 넌 WaW에서 뭘 배운 거야, 대체.”


괜히 말을 꺼냈다가 류지호에게 혼만 나는 김재욱이다.


“소주 체할 것 같아. 그만 해.”

“사레 걸리겠지.”

“아, 쫌!”

“시끄러. 건배나 해.”


세 사람의 소주잔이 허공에 부딪쳤다.


챙.


소주잔을 동시에 비운 세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크으’ 감탄사가 나왔다.

안주를 입안에 넣고 몇 번 우물거린 김재욱이 입을 열었다.


“윤 기사는 2.35:1의 비율 안 한다고 들은 것 같다.”

“1.85:1로 찍으면 되지.”


윤기수는 인물의 감정이 세밀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나, 정적이며 아기자기한 장면 그리고 조명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장면을 유난히 좋아했다.

드라마의 흐름을 좇고 그 강약을 배분하는 것에 탁월함을 보인다.

그가 한국에서 작업한 영화들은 주로 시각적인 면이 강조되었는데. 실은 드라마가 잘 보이는 그림이 좋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뉴욕에서 만나 윤기수가 류지호에게 그랬다.

모든 시나리오에는 그 장면이 필요로 하는 드라마가 반드시 있다고.

그걸 충족시키고 부각시키는 게 좋은 그림이고 촬영이라고 믿는다고.

그래서 윤기수는 유독 빛을 다루는 조명에 에너지를 쏟는다.

빛을 완벽하게 자신이 통제하기 위해서는 DP시스템이 필수인데, 충무로는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동화가 류지호의 빈소주잔을 채우며 물었다.


“형은 카메라 무빙이 있는 샷이나 동적인 걸 좋아하시잖아요?”

“<복수의 꽃>에 정적인 화면으로 폼 엄청 잡은 거 까먹었어?”

“큭큭. 그거 폼 잡은 거였어요?”


류지호가 이동화의 손에서 소주병을 건네받으며 대답했다.


“있어 보이는 척 엄청 했지.”

“척이 아니라, 진짜 있어보였는데요. 괜히 베니스에서 상을 줬을까요?”

“진짜배기 예술가가 영상에 그렇게 힘만 바짝 주겠냐?”

“만족을 못하세요?”

“만족이 어디 있겠냐? 항상 작업 끝나면 쪽팔리고 그런다.”

“다른 감독님들은 뭐 먹고 살라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내 영화가 뭔지 잘 모르겠다. 아직은....”

“여러 장르를 두루 잘 찍으시는 거죠.”

“내 것이 없으면 언제고 한계가 닥치게 되어 있어. 물론 내 것이 있어도 한계는 마주하겠지만.”


그런 게 천재와 범재의 차이가 아닐까.

천재는 그냥 해보면 아는 걸 범재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도전 끝에 깨닫는다.

김재욱이 소주를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고는 투덜거렸다.


“이제는 발로 찍어도 작품 잘 뽑아내겠더구만. 겸손한 척은....”

“발연기는 들어봤어도, 발연출은 못 들어봤거든.”

“하여간, 충무로에서 가장 까다롭다고 소문난 류지호와 촬영기사가 만나게 된다니, 참 볼만 하겠다. 아휴. 까다로운 두 인간이 어떻게 함께 할지. 거의 재앙이다 진짜...”

“그래도 난 이명수 감독이나 이창선 감독보다는 양반 아니냐?”

“내가 볼 때는 똑같아. 동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저는 두 분 감독님하고 작업 안 해봐서 잘 몰라요.”


시큰둥하게 대답한 이동화가 열심히 안주에 젓가락질을 했다.

감독이 까다롭든 무던하든.

무슨 상관이랴.

조감독은 그저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개 같은 성향의 감독일지라도 그에 맞춰서 촬영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프로다.

이동화는 그렇게 믿고 있고 그런 자세로 일하고 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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