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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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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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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세기의 결혼식.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가온웨딩 컴퍼니는 해외에 지점을 여럿 두고 있다.

미국에도 일찌감치 진출해 있었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LA와 뉴욕, 애틀랜타, 하와이에 지점이 있다.

그 동안은 한인교포들을 중심으로 토탈웨딩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미국 중산층까지 고객을 넓히기 위해 애를 썼다.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불리는 오너의 결혼식을 맡았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빅 이벤트다.

뉴욕 지점 직원들은 차질 없는 결혼준비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집사가 한 명도 아니고, 둘씩이나.... 에휴! 왜 이리 깐깐한 거야!”

“버버리 디렉터와 명품 브랜드 매니저들이 쩔쩔 매는 것 보고도 그래?”

“시어머니도 그런 시어머니가 없어. 젠장....!”


한국 본사에서 파견 나온 가온웨딩 컴퍼니 직원들이 투덜거렸다.

한국의 상류층 자녀들의 결혼을 수도 없이 진행해봤던 이들이다.

오성그룹 장남의 결혼식은 물론이고, 한국 100대 기업 오너 가문의 결혼식을 수도 없이 치러보았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왕족 결혼식도 아니고.

규모와 방식에서 너무 화려했다.

오너의 집사라는 사람들은 웨딩플래너계의 베테랑이도 되는 것처럼 모르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얼마나 깐깐한지.

신랑신부의 헤어스타일링에 사용할 사소한 제품까지 일일이 따졌다.

머리를 말리는 방식과 드라이 제품 브랜드까지 들먹일 때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스타일리스트는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벨에어 집사 윌튼과 파커 저택 브래드 집사는 작은 부분도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업계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어서 융통성을 부릴 여지도 없었다.


- 결혼이 가족을 만들지만, 중세에는 가문이 결혼을 만들었다.


중세시대에는 뼈대 있는 가문이나 귀족, 왕족 집안에서는 서로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자식들을 상대로 결혼장사를 벌이는 일이 많았다.

이를 문트결혼이라고 하는데, 가문 간의 동맹을 이루는 수단이었다.

귀족 간 결혼에서는 귀족 가문, 혈통, 재산, 영토의 가치 그리고 외교관계가 강조되었다.

결혼은 하나의 정치적 경제적 활동의 일환이었다.


“과거 파커가문은 집안의 경사가 있는 날 모든 마을사람들을 불러 신랑신부를 축복하도록 연회를 베풀었다고 해. 가문의 기록에 의하면 50마리의 소와 돼지, 1,200마리의 닭, 10만 개의 계란이 피로연에서 쓰였고, 3.200명이 연회에 드나들었다고 하더라고.”


18~19세기에 있었던 일을 현대에 와서 재현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윌리엄 파커는 지나치게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려고 했다.


“사교계에서 내가 후계자라는 말도 되지 않는 루머가 돌고 있다면서?”

“가주와 재산을 잇지 않아도 정신을 계승하는 것도 후계자이지 뭐.”


류지호는 부담스러워 죽겠는데, 레오나 파커는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


“우리 결혼을 축하하겠다는 것인지 자기들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건지.”

“초대장이 암거래 되고 있다며?”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미국 사교계에서 말들이 많았다.

누구는 초대하고 누구는 빠진 것을 두고 온갖 말들이 돌았다.

초대장을 받은 이와 못 받은 이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자원봉사자, 빈민가 출신들, 뉴욕주와 뉴저지주 거주 한국전 참전용사들도 대거 초대가 되었는데, 교포사회 유력자들이 초대를 못 받은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한 번 해봐서 조금은 쉬울 줄 알았는데....’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한 여자와 결혼했다면 조금은 수월했을 수도 있다.

영국 왕실 결혼식에 버금가는 혼례를 준비하다보니 이전 삶과 다른 의미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달링~ 그냥 즐겨.”

“허니는 괜찮아?”

“어쩌겠어. 우리 손을 떠난 일인 걸.”


류지호는 레오나 파커처럼 천하태평일 수가 없었다.

파커가문 내부의 쑥덕거림도 신경 쓰이고, 미국과 한국의 정재계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민주당과 공화당 초청자 균형도 맞춰야 한다.

미국의 전통적인 유력 가문도 고려해야 한다.

유력 가문에 대한 초청장이 결혼식 주관자로 나선 윌리엄 파커의 이름으로 보내지긴 했지만, 류지호로서도 어떤 식으로든 챙길 필요가 있다.


“결혼식을 하는 것인지 정치행사를 하는 건지.....”


미국의 5大 상속가문의 자녀가 혼례를 치르는 빅이벤트다.

상대는 비공식적인 미국 최고 부자이자 영화산업의 유력자고.

보통 일이 아니긴 했다.


“보스... 가온웨딩 컴퍼니 CEO가 도착했어요.”


비서실장 제니퍼 허드슨의 보고에 레오나 파커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가온웨딩 컴퍼니는 가온그룹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류지호의 외삼촌이 대표이사에 물러나고 초창기 멤버인 윤종원 상무가 자리를 물려받았다.

결혼식비디오 촬영으로 시작해 국내 최대 웨딩업체 대표이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사적으로 류지호와 각별한 인연이다.

그가 류지호의 단편영화를 촬영한 김영복을 소개시켜주었기에.

수많은 기사들이 독립해서 나갈 때도 가온웨딩에서 정년퇴임하겠다며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원년 멤버라는 자긍심도 대단했다.

잠시 인사를 나눈 후에 윤종원이 보고서를 하나 내밀었다.


“신사업입니다.”

“그걸 왜.....?”

“한 번 봐주세요.”


류지호가 펼쳐본 보고서에는 ‘중국 진출 계획’이라고 적혀 있었다.


파락.


핵심만 추려 정리된 사업계획서를 들춰보았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꼼꼼하게 읽는데, 3분이면 충분했다.


“한국까지 일부러 방문해 결혼과 웨딩촬영을 하는 중국 부유층이 많다고요?”

“중국 본토에 한국 웨딩 서비스가 많이 알려졌습니다. 한류까지 더해져서 선호도가 상당히 높아 웨딩사업의 중국진출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류지호는 중국진출에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고 누차 강조했다.

그 때문에 진출시점에 대해 설득하려고 윤종원 사장이 관련 보고서를 가지고 온 모양이다.


“중국 주요도시의 중산층 가구가 증가하면서 웨딩을 포함한 미용, 세탁 서비스 등 생활서비스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시장을 지배하는 업체가 없어 한국 기업들에게 중국이 틈새시장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중국을 향하여 깃발을 펄럭이던 시기가 이 즈음이었던 모양이다.

이전 삶에서 중국에서 사업을 해 본적도 심지어 가본적도 없는 류지호다.

그런데 성공보다 실패사례를 하도 많이 주워들어서 그런지, 중국과 관련해서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바링허우(八零後) 세대라....”

“중국에서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류지호도 알고 있는 용어다.


“중국의 웨딩산업만 놓고 보면 개성과 소비성향이 강한 이들 세대가 결혼 적령기에 곧 진입하게 됩니다. 따라서 관련 산업 시장규모가 급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장규모가 10조 원이라는 이 데이터 믿을 수 있는 겁니까?”

“중국 공식 통계입니다. 향후 5년 내 그 두 배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시장 수익률 또한 17~50%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공식 통계라는 말이 더 믿기 어려웠다.

이전 삶에서 워낙에 통계 장난을 많이 치던 나라라서.


“....음.”


류지호가 고심에 잠겼다.

한국의 웨딩산업은 점차 하향곡선을 탈 수밖에 없다.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하고, 출산율도 날이 갈수록 떨어지게 되며, 새로운 세대가 결혼을 안 하는 풍조가 형성되기에.

가온웨딩 컴퍼니는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토탈웨딩 서비스 업체다.

모그룹은 한국 10대 기업이다.

영세업체들처럼 점포 몇 개 가지고 아등바등 댈 이유가 없다.

현지합작법인을 통해 중국의 주요 성도에 지점을 개설해 공격적으로 진출할 수도 있다.

윤종원 사장은 그런 전략을 오너로부터 허락을 받고자 했다.


“웨딩산업 외에도 헤어살롱, 스파, 피부미용 등 미용서비스 시장까지 급성장하고 있어서 국내 연관 업체들과 함께 들어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또한 세탁 서비스, 포장이사 서비스도 외국기업 진입장벽이 낮고 성장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미국, 프랑스, 독일계 서비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 중국의 생활밀착형 서비스산업이 막 시작단계라고 할 수 있었다.


“아직 한국기업이나 업체 중에서 진출해서 성공한 사례는 없죠?”

“이제 막 진출하는 단계라서... 자영업으로 몇몇 헤어디자이너가 상하이 등지에서 미용실을 열어 성업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의 생활밀착서비스 시장은 한국 기업에게 좋은 먹거리다.

교육, 의료, 법무 등 중국 정부가 보호하고 있는 지식 서비스 업종과 달리 외국 기업에 대한 진출 규제가 거의 없기도 하고.


“현재 중국의 생활서비스 업체는 대략 3,300개로 추정됩니다. 5년 안에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보고 업체 역시 몇 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외국 투자기업 수도 매년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서....”


자칫 진출한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


“다 좋은데... 중국 내 네트워크와 현지화 전략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냐는 거죠.”


류지호는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성공사례가 아니더라도 실패사례라도 많아야 그걸 토대로 전략을 세워볼 텐데, 중국 정부가 내놓는 각종 통계와 분석은 도대체가 믿을 수가 없다.

현지 비즈니스맨들도 합리성보다는 신뢰(꽌시)만 강조할 뿐이고.


“말씀드렸다시피 몇몇 헤어숍 프랜차이즈가 진출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자영업 수준이라면서요?”

“대형 헤어숍 프랜차이즈가 진출해 헤어숍 영업보다 교육 서비스로 더 큰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블루 클럽’ 같은 프랜차이즈도 중국 직영매장을 여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서비스 영업보다는 컨설팅이나 선진 기술의 전수로 돈을 번다는 이야기다.

유통기한이 있는 사업이다.

언젠가 한국에서 알려줄 노하우나 독보적인 기술이 바닥이 날 테니까.


“어쨌든 다양한 업종에서 그에 맞는 전략들이 다양하게 실험이 되고 있다는 거죠?”

“적어도 생활밀착 서비스에서는 그렇습니다.”

“일단은 웨딩사업으로 좁혀서 이야기를 해봅시다.”


다소 삐딱하게 앉아 있던 류지호가 자세를 바로 했다.

덩달아 윤종원 사장도 긴장했다.


“웨딩의 경우, 한류스타 마케팅을 통해 현지 시장 안착보다 현지 고객의 한국방문 사업에 주력하겠지요? 아마도 한국방문 결혼식이나 웨딩촬영 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한 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있을 겁니다. 맞습니까?”

“예. 저희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업계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제주도나 전국 각지에 한류를 활용한 웨딩촬영 전문단지 같은 뜬구름 잡는 사업계획이 돌고 있겠네요?”

“아, 예.”

“일을 벌이려면 제대로 해봅시다.”

“....어떻게?”

“서민이니 중산층이니 그런 거 다 집어치우고.....”

“......”

“고급 브랜드로 밀고 갑시다. 주요 고객은 중국의 상류층으로 하고, 현지 예식도 좋고 중국 부자들이 선호하는 나라에서 치르는 풀 패키지 상품을 만드는 겁니다. 물론 한국방문 패키지도 있어야겠죠. 중국 지사가 아니라, 만달그룹 같은 곳과 합작회사를 따로 만들어서 중국 독립법인으로 운영해 봅시다.”

“영업지역이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류니 한국웨딩문화 전파 같은 거 다 집어치우세요. 철저히 중국 현지화로 나가야 합니다. 모델 역시 한류스타와 함께 중국 현지 인기스타를 내세워서. 가온웨딩은 토탈웨딩에 챠넬이 되는 겁니다.”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철저하게 현지화하든가.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브랜드 이미지가 있으면 된다.

2010년대 중반부터 불게 되는 애국주의 소비에 불구하고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은 도리어 매출이 늘었다.

어설픈 현지화보다 처음부터 고급 브랜드 마케팅으로 밀고 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예식홀, 웨딩촬영, 웨딩드레스, 미용, 스타일링, 신혼여행까지 종합적으로 서비스하는 중국 현지법인을 세우는 방안을 강구해 보세요. 합작회사는 내가 투자하고 있는 Aliba, OICQ, PAIDOU, 만달그룹 같은 곳들과 접촉해 보세요. 날 팔아먹어요. 아마 홀대 하진 않을 겁니다.”


홀대가 뭔가, 모르긴 몰라도 쌍수 들고 환영할 것이다.


“중국 전통 결혼도 철저하게 연구해서 웨딩플래닝 콘셉트를 다양하게 준비해서 들어가세요.”

“예.”


마침 매스컴에서 ‘세기의 결혼식’이라 명명한 예식을 가온웨딩 컴퍼니 뉴욕 지점이 지원하고 있다.

중국 진출 시 프로모션으로 써먹을 수 있다.

류지호를 선망하는 중국의 청년도 많다.

오죽하면 중국에 진출한 PISA 브랜드 첫 모델은 무조건 류지호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을까.


“그룹의 물류회사에서 포장이사는 안합니까?”

“이사 서비스는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귀국하면 회장에게 적당한 규모의 포장이사 업체 하나 인수하라고 전하세요.”

“.....?”

“괜찮은 화장품 업체와 협업을 논의해 보는 것도 좋고. 아네모네 프랜차이즈 해외영업팀과 함께 전반적인 중국의 생활서비스 시장을 리서치 해보고 구체적인 걸 함께 고민해 봅시다.”

“예. 의장님!”


가온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업체가 들어가겠다고 수선을 떨어봐야 현지 텃세로 고생만 한다.

그룹의 생활서비스 부문으로 발을 들여놓고 현지 돌아가는 것을 몸소 겪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암튼 류지호와 레오나 파커의 웨딩사진이 가온웨딩 컴퍼니 전 지점에 걸리게 될 터.


‘내 결혼식으로 여기저기 아주 뽕을 뽑겠구나.’


❉ ❉ ❉


일반 대중의 이목을 끄는 결혼식을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한다.

유명 연예인들 간의 결혼부터 작은 나라 통치자의 결혼, 영국 왕실의 혼례까지.

‘세기의 결혼식‘이라는 이름만으로 국제적인 이목이 쏠린다.

지금까지 ‘세기의 결혼식‘이라 불린 결혼식들은 하나같이 특별했다.

유명인이라는 것도 화제지만 어마어마한 비용이 화제가 됐다.

또 하객으로 참석하는 유명인들과 관람객들까지.

많은 요소들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류지호와 레오나 파커의 결혼식도 수개월 전부터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불렸다.

일주일을 앞두고, 뉴욕시와 관광청이 대대적인 홍보에 열을 올렸다.

지역 매체들에서도 연일 뉴스를 쏟아냈다.

‘세기의 결혼식’을 멀리서나마 구경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10만 명의 관광객이 뉴욕에 모여든다는 다소 믿지 못할 뉴스도 있었다.

JHO Company 특수관계사 GARAM 금융그룹 소유의 타임스퀘어 빌딩 광고판에 결혼 축하 광고가 일주일 동안 나갔다.

이 광고가 한국의 9시 뉴스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한국의 매스컴은 류지호의 결혼식을 속보로 전하고 있다.

미국의 상업주의에 편승한 매스컴들은 한국 대통령의 방미 뉴스보다 내용적으로 또 양적으로도 월등한 뉴스를 쏟아냈다.

트라이-스텔라TV는 독점으로 류지호와 레오나 파커의 러브스토리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76개 국가에 판매가 되었다.

류지호와 파커가문의 재산을 추정하는 지상파 프로그램도 방영됐다.


“왕족 결혼식이냐? 이제 그만 좀 해라. 지겹다 지겨워!”


볼멘소리들이 나왔다.

그런데 그런 목소리들은 금방 묻혀버렸다.

온통 매스컴마다 관련 뉴스로 도배되었기 때문이다.


“류지호도 이제 미국 시민권 따는 건가?”

“난 류지호가 미국 시민권 따도 별로 화가 안 날 것 같아.”

“왜?”

“재벌 중에 현역 갔다 온 사람이 몇이나 되냐? 젊은 나이에 기부도 많이 하고.”

“그건 그래. 군대 안 가려고 국적 이탈하는 재벌 자식들도 많은데.”

“카투사가 군대냐?”

“방위 출신은 짜져 있어. 카투사도 현역이야. 새끼야.”

“방위 무시 하냐, 지금?”

“무시한다. 나 해병대 출신이다.”

“잘났다.”

“류지호는 다른 재벌하고 다르게 세금포탈이나 비자금으로 걸린 적이 없지 아마?”

“감옥 안 갔다 온 유일한 10대 재벌일 걸?”

“이중국적은 안 되나?”

“저번에 국적법 개정 되면서 웬만한 재벌과 언론사 사주 자식들 다 한국 국적 포기했다는 뉴스 못 봤어? 류지호가 한국 국적 포기 안한다고 하긴 한 것 같은데.....”

“나 같으면 벌써 미국시민권 땄어. 허구한 날 가온그룹과 류지호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잖아. 이놈에 나라가.”


한국인들에게 재벌이나 유명인의 국적문제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자녀의 군면탈 문제로 정치생명을 잃기까지 한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병역 관련 이슈는 언제나 관심사였다.

여론조사 기관에서 발 빠르게 류지호의 국적 변경 찬반 조사를 벌였다.

청년층과 장년층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노년층에서 국적 변경을 매국에 준하는 행위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았다.

반면에 젊은 세대는 국방의 의무를 이행했기에 문제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체로 류지호가 한국인으로 남아주길 바랐다.

왜 류지호의 국적문제까지 아까운 돈을 들여 여론조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류지호의 결혼을 축하하는 한편으로 복잡한 시선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링컨 마크 LT.


류지호가 레오나 파커를 예일대까지 통학시켜줄 때 몰았던 신형 픽업트럭 모델이다.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 헨리모터 컴퍼니가 ‘세기의 결혼식’에 맞춰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광고에는 류지호와 레오나 파커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파파라치 컷에 찍혀 대중들에게 알려졌기에 헨리모터 컴퍼니가 과감한 결단을 했다.

뉴욕주의 주요 케이블 서비스 업체들은 류지호가 제작했거나 연출한 영화를 특별 편성하기도 했다.

IVE Entertainment는 Mr. Hollywood SE DVD 패키지 한정판을 출시했다.

‘세기의 결혼식’이란 타이틀이 붙는 순간부터 미국식 상업주의가 판을 쳤다.

상상을 초월하는 결혼식 비용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미국 명문가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이 꼬집었다.


[불과 4마일 떨어진 지역에 극도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뉴욕. 그 중심부에서 미국 최고 부자와 가문이 성대한 결혼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영국의 The Guardian은 맨해튼 북부의 빈민가를 끌어들여 세계적인 부자의 과시적 결혼식을 비꼬았다.

맨해튼과 퀸즈에 형성된 한인타운 역시 들썩였다.

상인회에서 류지호의 결혼식이 열리는 둘째 주 토요일에 한국의 대표적인 결혼 음식인 잔치국수와 갈비탕을 반값에 판매하기로 했다.

‘축 류지호님 결혼’이란 한글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상점까지 등장했다.

누군가는 ‘세기의 결혼식’을 빌미로 돈을 벌고, 누군가는 뜻밖의 축제로 여겼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TV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이번 결혼식의 상업주의에 비난을 퍼부은 유명인사도 있었다.

성 패트릭 성당 한 블록 떨어진 도로에 TV방송 중계차들이 삼일 전부터 자리를 잡았다.

결혼식 당일은 오전부터 일대가 통제될 예정이다.


“실수한 것 같아요. 그냥 이곳 파커 저택에서 비공개로 치룰 걸 그랬어요.”


자신의 결혼식이 화제가 되자 제법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류지호가 투덜거렸다.

윌리엄 파커가 근엄하게 타일렀다.


“매사 겸손하고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건 옳은 일이야. 하지만 말이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란다. 네가 주로 활동하는 플레이그라운드는 신사들이 벌이는 스포츠 게임장이 아니잖느냐. 네 경쟁자들에게 확인을 시켜주어야 해. 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비공개 결혼식을 한다고 해서 제 위상이 하찮아 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나와 대니얼은 곧 세상에서 퇴장을 한단다. 음흉한 늑대 떼로부터 너희들을 더 이상 보살펴줄 수가 없어.”


윌리엄 파커에게 류지호는 여전히 십대인 모양이다.


‘대니얼 할아버지는 절 보호해준 적 없는데요? 괴롭히기만 했지.‘


류지호는 목구멍까지 치밀었던 말을 도로 삼켰다.


“아직도 네 시대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느냐?”

“아직....이겠죠.”


세계적인 복합기업을 소유하고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그 정도면 이룰 만큼 이룬 것 같기도 한데.

그것을 통한 희열이나 성취감이 없다.


“우리 늙은이들은 퇴장하고 네가 세상을 좀 더 좋게 변화시켜야 할 책임이 있겠지.”


자식들인 파커 사형제의 결혼식도 이렇게까지 화려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과한 면이 없지 않았다.


“세계에 선언 하는 것이란다. 네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몹시 부담스러워 류지호는 농담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연설은 준비 안했어요. 레오나와 함께 낭독할 연시만 준비했다고요.”


어림없었다.


“사람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거라.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더 이상 사람들 입에서 럭키 보이니 미라클 보이니 미스터 할리우드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예.”

“이제 나가 보거라.”


류지호가 공손하게 인사하고 윌리엄 파커의 방을 빠져나갔다.


“......”


윌리엄 파커는 류지호가 미국의 영웅이 되는 것까지 바라지 않았다.

다만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강한 사람임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런 한편으로 세상이 나아지는데 기여하는 큰 인물이 되길 바랐다.

무거운 숙제를 남기는 걸지도 몰랐다.

자신조차 가보지 못한 길이니까.


“브래들리....”

“예. 마스터.”

“윌슨을 불러주겠나?”

“언제 오라고 할까요?”

“내일 아침에. 올 때 유언장 가져오라고 하게.”

“수정하실 사항이라도 있으십니까?”

“정신이 더 흐려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검토해 보려고.”

“알겠습니다.”


집사마저 방을 떠나고, 홀로 남은 윌리엄 파커가 휠체어를 밀어 창가로 향했다.

류지호가 정원을 거닐고 있다.


“......”


굳이 화려한 결혼식이 아니더라도 류지호가 대단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최근 뉴욕 타임스가 ‘세기의 결혼식‘ 하객 명단을 입수해서 공개했다.

전 연방대법원 대법관, 전임 대통령 부부, 미 해군사령관, 연방준비은행 전·현 이사장, NBC와 CBS 회장, 미디어계의 거물 에드윈 터너와 그의 친구 말론 회장, 에드워드 버펫과 월가 투자은행 회장들, 미국 미디어업계 전현직 거물 경영자들, 실리콘밸리 스타들, 헨리 게이츠를 포함한 신흥부자들, 미국을 움직이는 오피니언리더들, 연예계의 슈퍼스타들, 참전용사회 노인들, 워싱턴DC 주요 싱크탱크 리더들, 백악관의 축전까지....

미국을 넘어 유럽과 남미 몇 개 국가에서 축하사절로 고위급을 파견하기로 했고, OECD 국가 경제계 거물들도 뉴욕으로 날아오기로 되어 있다.

외교 및 사교무대가 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로연 과정에서 외교의 실마리가 풀리고 비즈니스에서 빅딜의 단초가 마련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권력이란 것이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류지호가 워낙에 유명인사고 엄청난 부를 일궜기 때문에 누구나 한 수 접어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세상은 넓고 드러나지 않은 실세나 세력가들이 무수히 많았다.

류지호가 사는 세상에는 겉과 속을 완벽하게 꾸밀 줄 아는 이들 천지다.

도저히 숨길 곳이 없어 보이는데 날카로운 비수를 몇 개씩 품고 있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언제든지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또한 이익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는 이들도 많다.

그들과 연합해 뭔가를 도모하면 대부분 실현이 된다.

류지호도 그런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20세기의 헨리 게이츠와 스테픈 잡스는 대중들에게 좋은 소리 못 듣던 이들이다.

두 사람의 경영철학이나 방식이 결코 환영받을 만하지 않았으니까.

헌데 게이츠는 자선활동으로 잡스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면서 부정적인 인식이 흐려지고 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버펫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그는 박쥐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골수 공화당 지지자에서 돌연 민주당 지지로 완전히 노선을 갈아탔기 때문이다.

거기에 기부행위가 알려지면서 돈밖에 모르는 투자자에서 존경받는 부자로 세간의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다.


‘세상이 자신들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들이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이 진리인 사람들이다.

겸손 같은 거 모른다.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이 시기까지 MacIntosh에는 아시아 출신 직원이 거의 없었다.

백인 일색이다.

특히 중국인은 미국시민권자도 잘 채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내부정보를 빼돌릴 잠재적 위협 요소라는 이유에서다.

명백한 인종차별적인 태도다.

미국에서 특정 인종 채용 비율이 낮거나 간부로 승진하는 비율이 낮으면 인종차별적인 기업으로 낙인찍힐 우려가 매우 높다.

그럼에도 스테픈 잡스는 꿈쩍하지 않는다.

이전 삶에서 2010년대에 가서야 MacIntosh에서 비백인 직원이 30%대까지 늘어나고, 임원 비율도 그 만큼 늘어났었다. 잡스가 투병으로 인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난 후였다.

미국의 극우적인 성향의 신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류지호를 비난하는 기사를 싣는다.

그런 신문만 보는 이들에게 류지호는 미국의 부를 훔쳐가는 도둑놈이다.

일부 유색인종 극빈자들이 백인부자가 아니라 류지호에게 더 큰 증오심을 품는 어처구니없는 현상도 있다.

한국의 전통 재벌들의 경우도 류지호를 무시하진 않지만 존중하지도 않는다.

류지호가 가진 부와 명성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 부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할 뿐.

그래서 윌리엄 파커가 손녀 결혼식을 떠들썩하게 연출하는 것이다.

꼭 먹어봐야 된장인지 아닌지 아는 이들이 세상에 워낙에 많아야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백 년 전에나 유효한 말이다.

지금에 와서는 자리는 그에 어울리는 사람이 차지한다.

착한 사람이 최상위로 올라간다고 갑자기 악마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악마같이 굴던 사람이 최상위로 올라가면 겸손해지는 것도 아니다.

때론 착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서 과도한 부담감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고, 때론 하층에 있을 때보다 더한 악마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 사람의 본성이 비로소 드러난다고도 한다.


‘생긴 대로 살기는 글러먹었네....’

 

어차피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류지호의 삶의 태도가 완전히 딴 사람처럼 될 순 없다.

인종적 편견이나 상류사회의 격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은 어릴 때나 중요한 과제였다.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90년대까지는 견고한 방패와 진지 구축에 고심했다.

이젠 아니다.

누군가 비수를 들이대기 전에 자신이 먼저 찔러야 한다.

방패는 필요 없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니까.

착해서 패배했다거나 신사적으로 싸워 졌다는 건 통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아름다운 패배는 없다.

그저 실패한 인생만 남을 뿐.


다음 날, 오전.


캐서린 & 윌슨 로펌의 명예 회장 윌슨 변호사가 저택을 방문했다.

검토만 하겠다던 윌리엄 파커는 매우 꼼꼼하게 자신의 유언장을 수정했다.

그 사실은 브래드 집사를 제외하고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작가의말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월요일에 뵙겟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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