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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울 님의 서재입니다.

다크 판타지에 힐링 게임 캐릭터로 빙의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한여울™
작품등록일 :
2024.02.2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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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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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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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배경에 임시 거처를 만들다

DUMMY

4장 배경에 임시 거처를 만들다




용사 대 마왕에서 위험한 곳을 몇 개 고르라고 하면 정말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똑같은 던전이라도 가지고 있는 장비나 특성에 따라 체감되는 난이도가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화룡의 둥지, 포세이돈의 요람, 거인의 요새 등등······.


도대체 이걸 어떻게 깨라고 만든 거야? 싶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던전이 수십 개가 넘는다.


그렇지만 딱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누구라도 그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마왕성.


그곳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성으로 마왕과의 최종 결전이 펼쳐지는 장소.

용사 대 마왕에는 수많은 보스가 있지만 대부분 싸우지 않고 그냥 건너뛸 수 있다.


그러나 군단장이나 마왕 직속 사천왕 같은 경우는 미리 쓰러트려두지 않으면 마왕성에서 반드시 등장한다.


보스를 몇 마리 잡는지에 따라 게임의 난이도는 물론 최종결전의 양상마저 달라지는 것이다.


‘음······. 레온이 분명 6번째 스테이지까지 갔다고 했지?’


레이드가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군단장들은 전원 건재할 것이다.


그들과 싸우는 것은 6번째 스테이지의 극 후반부터였으니까.

그러니까 하나하나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군단장들이 전부 저기 보이는 마왕성에 모여 있다는 뜻이다.


녀석들과 비교해 보면 나는 벌레······.


아니, 먼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마왕성 근처에는 얼씬도 거리지 않는 게 맞다.


그렇지만 위험한 장소일수록 빈틈이 있는 법.

나는 마왕성에 오히려 가까이 다가가는 길을 선택했다.


호송 중인 포로가 감옥에서 탈출했으니 아마도 불사 군단의 간부인 워킹 아머가 내 뒤를 쫓을 것이다.


그런데 멀리 도망치지 않고 마왕성으로 갈 거라곤 절대 생각하지 못하겠지.

말풍선을 키고 조심스럽게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자 저 멀리서 두 개의 구름이 둥둥 떠있는 모습이 보였다.


“······!?”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수풀 사이에 몸을 숨겼다.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 Lv. 89] : 프레아 공주님께서 벌써 삼일 째 제대로 식사를 못 하고 계시다고 들었소이다. 이러다 건강이라도 해칠까 걱정이오.

[뱀파이어 퀸 - Lv. 94] : 제 음식이 그렇게 맛이 없는 걸까요? 힘들게 레시피북이라는 것까지 구해서 그대로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도저히 못 먹겠대요······.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 Lv. 89] : 혹시 맛은 보셨소?

[뱀파이어 퀸 - Lv. 94] : 저 피 밖에 못 먹는 거 아시잖아요.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 Lv. 89] : 후······. 우리 마족에게 인간의 요리란 것은 너무 어려운 것 같소. 그래서 만든 스튜는 어떻게 했소이까?

[뱀파이어 퀸 - Lv. 94] : 낮 새 가면서 만들었는데 버리기 너무 아깝잖아요. 워킹 아머 시켜서 포로들 식사로 줬어요.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 Lv. 89] : 크하하! 밤의 여왕께서 손수 만든 음식을 먹다니 포로들이 호강하는구려. 일단 헬 메이드들을 불러 놨으니 맛을 봐 달라고 부탁해 보시오.

[뱀파이어 퀸 - Lv. 94] : 그렇게 해야겠네요!


‘휴······.’


다행히 나를 쫓는 추적자는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라면 밤의 귀공자라 불리는 몽환 군단의 간부잖아?

아무래도 같은 간부인 뱀파이어 퀸에게 무언가 상담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두 간부는 어둠을 뚫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심장마비 걸려서 죽는 줄 알았네.’


다행히 수풀 속에 내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존재감이 먼지 이하라 그런 건가?


그런데 두 간부가 나눈 대화의 내용이 묘하게 신경 쓰인다.


‘분명 프레아라고 했지?’


그녀는 마왕군에게 납치당한 공주님으로 메인 퀘스트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

스토리 진행도가 진짜 극 초반이구만.


‘그런데 그 지독하게 맛없는 스튜가 원래는 공주님이 먹을 음식이었구나······.’


항상 우울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는 이유가 설마 이거 때문인가?

하여간 몽환 군단은 대부분 인간의 피나 정기를 먹고사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말풍선을 사용하면 그들보다 먼저 접근을 감지할 수 있다.

이거 생각보다 엄청 유용한 기술인데?


다만 말풍선을 켜두면 체력 소모가 심해서 오래는 사용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지내려면 다른 경계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다행히 그 후로 다른 마왕군은 만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인 인적 없는 숲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작은 개울이 졸졸 흐르고, 정체 모를 풀벌레가 시끄럽게 울고 있다.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는데 주위에 높은 고목이 서 있어서 아직 어둑어둑했다.

나는 우선 번개 맞고 타버린 나무의 그루터기에 앉아, 주위에 마왕군이 없는지 확인해 봤다.


다행히 잡몹 하나 없었다.


“그런데 마왕성 바로 뒤에 이런 아늑한 장소가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내가 있는 곳은 간단히 말해 마왕성의 배경 취급을 받는 장소였다.


마왕성에 도착하면 거목의 그림자가 비치면서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져 내린다.

그때의 분위기가 거의 공포영화 수준인데, 그때 뒤에 살짝 비치는 배경이 지금 내가 있는 숲이다.


게임에서는 내부가 구현되지 않아 출입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장소.

그런데 여기는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현실이니까 저 멀리 보이는 배경에도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이 적중했다.

심심하면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지고.


마왕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탁기 덕분에 숨쉬기가 조금 많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만큼 마왕군의 출입이 적은 곳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조금만 걸어가면 작은 개울도 있으니, 딱 배산임수의 지형 아니겠어?”


잠시 숨어 지내기엔 안성맞춤이다.

눈을 감고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나무에서 나오는 묘하게 상쾌한 냄새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잡념을 제거해 주었다.


이런 걸 피톤치드라고 하던가?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워 놓으면 제대로 된 캠핑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기 옆에 마왕성만 치워주면 정말 좋겠는데 말이야.’


어쨌든 한동안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으니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야 했다.


일단 채소나 과일 같은 것을 키워서 팔기 전에는 의식주 전부를 자급자족해야 한다.

가지고 있는 것은 입고 있는 다 낡아빠진 천 옷 한 벌과 숟가락 하나 뿐.


그렇지만 내게는 만렙 캐릭터만 열 개 넘게 키워낸 방대한 지식과 힐링 게임 캐릭터의 능력이 있다.


한동안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기로 하자.

그리고 돈을 잔뜩 벌면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는 것이다.


“자, 그럼 임시로 머물 집과 텃밭을 만들어 보실까.”


농사만 지을 수 있으면 채소와 과일을 팔아 골드를 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내 몸을 지켜줄 무기가 되어 주겠지.


@


비록 임시긴 하지만 내가 살 집을 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설마 내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줄이야.


마음 같아서는 나무를 베어 제대로 된 오두막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거기에 필요한 도구가 하나도 없었다.


Lv1 삽으로는 땅을 파는데 방해되는 나뭇등걸까지는 치울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기껏해야 간이 텐트를 만드는 것 정도가 한계인가. 그런데 혹시 이것도 도구로 등록이 되려나?”


나는 근처를 뒤져 번개에 맞고 완전히 박살 나버린 나무의 가지를 하나 주워왔다.


옆이 세모 모양으로 부러져 있어 얼핏 보면 도끼처럼 생겼다.

이게 도끼로 등록이 된다면 집을 짓는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감에 부풀어서 나뭇가지를 도끼처럼 휘둘러보았다.

그런데 평소에는 부르지도 않아도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팁이 조용하다.


“······모양만 닮아서는 안 되나 보네.”


아무래도 등록하려는 도구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야 되는 모양이었다.

우선 가지고 있는 것들로 최대한 그럴듯한 집을 지어보자.


그래야 그곳을 터전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겠지.

배경 숲에는 곳곳에 번개 맞은 나무의 파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걸 세운 다음 커다란 나뭇잎으로 덮고 덩굴로 묶어주는 것이다.

사실 말이 좋아 텐트지 거의 움막 수준일 것이다.


대충 머릿속으로 설계도를 몇 장 그려 보았지만 대부분 비슷한 결과물이 튀어나왔다.


젠장, 도구만 있으면 훨씬 그럴듯한 집을 만들 수 있는데!

까맣게 타오르는 내 속 마음을 읽은 걸까?


[Tip : 집을 지을 도구가 없으신가요? 그렇다면 촌장님을 방문해 보세요. 분명 튼튼한 텐트를 빌려주실 거예요!]


“······아니, 도구가 없어서 곤란하긴 한데 말이야. 이곳의 촌장님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고.”


힐링 게임 출신이라 그런지 머릿속이 너무 꽃밭이다.

우선 근처를 돌아다니며 집을 지을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텐트만 세우는 게 아니라 근처에 당근과 무를 기를 텃밭까지 만들어야 한다.

상당히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나무가 서 있으면 바람막이가 된다.

텐트는 가벼운 소재로 짓기 때문에 강풍이 불면 날아가 버릴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큰 나무는 좋지 않아.”


자칫 잘못하다가는 떨어지는 번개에 맞고 무너지는 나무에 깔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약 30분 동안의 수색 끝에 나는 아주 적절한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배경 숲에서 드물게 햇볕이 잘 드는 장소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4인 가족 정도는 부양할 수 있겠네.”


보통 4인 가족이 자급자족하기 위해 필요한 텃밭의 크기는 30~50평 정도다.

그렇지만 물만 주면 순식간에 싹을 틔울 수 있는 힐링 게임 캐릭터는 극한의 교체 재배가 가능할 것이다.


제대로 된 씨와 비료만 구할 수 있으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채소를 키울 수 있겠지.

혹시라도 비가 내리면 천막이 물에 잠길 수 있기 때문에 집터 주위에 수로까지 파 주었다.


그건 숟가락 하나로 아주 간단히 할 수 있었다.


“우와······. 이거 각이 아주 제대로 잡혀 있는데?”


지금까지 몇 번이나 봤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감각이다. 현장에서 수십 년 구른 사람도 이런 묘기는 부리지 못한다.


“그럼 이제 텐트를 만들 재료를 구해 보실까.”


숲을 돌아다니며 적당한 크기의 나무줄기와 덩굴들을 모았다.

혹시나 해서 식량을 찾아보았지만 그다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원래 이런 숲은 버섯과 각종 견과류. 그리고 이름 모를 열매 등등.


그런 식재료가 잔뜩 있어야 했다.

설마 마왕성이 뿜어내는 탁기 때문에 전부 죽어버린 건가.


그나마 주먹만 한 크기의 시큼한 나무 열매 몇 개를 주운 것이 유일한 수확이었다.

이건 집이 완성된 후에 준공식을 하면서 먹도록 하자.


그래도 처음 짓는 내 집인데 작게나마 축하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재료를 모으자 시공은 순식간에 끝났다.


먼저 나무 옆에 지지대가 되어줄 줄기들을 세운 후, 넝쿨을 이용해 단단하게 묶었다.

그 위에 커다란 나뭇잎 몇 개를 겹쳐주고 단단하게 고정시킨 후 꼼꼼하게 마무리해서 완성이다.


“후우······. 이거 생각보다 힘든데?”


몸을 얼마나 움직였다고 비 오듯 땀이 쏟아져 내렸다.

다행히 바로 옆에 작은 시냇물이 흘러서 간단히 수분 보충과 함께 몸을 닦을 수 있었다.


그렇게 3시간 가까이 작업한 끝에 나는 집터에 텐트를 세울 수 있었다.

완성된 임시 주거지를 보자 묘하게 가슴이 뿌듯해졌다.


“······이게 내가 만든 집이란 말이지.”


내 손재주가 워낙 좋아서인지 숲에서 주운 재료만으로 제법 그럴듯한 텐트를 만들 수 있었다


묘한 쾌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텐트만으로 이 정도 성취감인데 제대로 된 오두막을 만들면 얼마나 기쁠까?


그래, 내 손끝에서 탄생하는 작품을 보는 게 힐링 게임의 묘미 중 하나지.


“뭐, 여기는 판타스틱 아일랜드가 아니긴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벅찬 가슴을 움켜쥐고 있으려니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Tip : 축하드려요! 정말 멋진 집이 완성되었네요! 예쁘게 꾸며서 지나가다 만난 친구들을 초대해 보면 어떨까요?]


또다시 헛소리를 해대는 팁을 가볍게 무시해 준 후. 나만의 조촐한 준공식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검은 구름이 갈라지며 달빛이 내 천막 주위를 비추기 시작했다.


“어? 여기는 원래 1년 365일 어두컴컴한 숲 아니었어?”


놀라운 것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휘이잉-


어디선가 상쾌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한결 숨쉬기가 편해졌다.

마왕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탁기는 아직 건재했지만 이 정도면 일단 어떻게든 버틸만한 정도가 되었다.


‘숲이 나를 주민으로 받아들여준 건가.’


제법 괜찮은 기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경 숲 바깥으로 살며시 나가 보았다.


“크, 크흡-!”


갑자기 콧속을 따끔하게 쏘는 느낌과 함께 숨이 턱턱 막혔다. 결국 깜짝 놀라 다시 배경 숲 안으로 돌아와야 했다.


“헉, 허억, 헉······. 여, 역시 마왕성 근처는 위험해. 한동안 여기 배경 숲 안쪽에서만 활동해야겠다.”


꼬르륵······.

그 순간 어디선가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생각해보니 그 맛없는 스튜를 조금 먹은 후로 계속 굶었구나.

그러면서 몸을 엄청나게 움직였으니 미칠 듯이 배가 고파진 것이다.


“아, 천막 준공식 해야지.”


그래봐야 텐트를 칠 재료와 함께 구한 나무 열매를 먹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열매는 마치 토마토처럼 생겼는데 새가 파먹은 것인지 대부분 반쯤 터져 있었다.

그나마 무사한 것을 골라서 챙겨온 것이다.


열매의 과즙은 마치 피처럼 선명한 선홍색이었다. 새콤한 냄새가 나는 것이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였다.


“열매는 먹고 안에 든 씨는 텃밭에 심어 보자.”


배경 숲처럼 탁기에 오염된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 녀석이다.

애정을 담아 물을 주면 분명 귀여운 새싹을 틔우겠지.

나는 기대에 부푼 눈으로 잘 익은 나무 열매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내 풍족한 식생활 위해 최전선에서 노력해 줄 녀석이다.

아끼고 사랑해 줘야지.


그리고 단숨에 베어 물었다.


콰삭-!


입안에서 얇은 껍질이 터지면 그 안에 든 과즙이 터져 나왔다.

살짝 새콤하면서 달콤한 과육이 혀끝에서 춤추듯 미끄러져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우, 우와······. 뭐야? 이거 너무 맛있잖아?!”


마치 눈물이 날 것 같은 맛이었다. 분명 겉모습은 토마토인데 그 안에 든 과육은 베리류에 가깝다.


대충 ‘토마토베리’라고 부르면 되려나.

밤새 감옥 벽을 파헤치고 땅바닥을 마구 기었다.


그리고 조금도 쉬지 못하고 배경 숲에 텐트까지 세웠다.

지금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


그런데 고작 나무 열매를 하나 먹었을 뿐인데 전신에 활력이 돌아오고 피로까지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보통 야생에서 자라는 나무 열매는 당도가 떨어져 맛이 없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은은한 산미를 머금은 단맛이 이렇게 환상적일 줄이야.

사실 나는 과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도면 작업을 할 때는 주로 드립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애용했는데.

왜 진작 과일을 먹지 않았는지 후회될 정도였다.


나는 순식간에 남은 두 개의 토마토베리 중에서 하나를 더 먹어 치웠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하나에까지 손을 뻗으려다 흠칫 놀라 고개를 흔들었다.


“잠깐만······ 스톱! 이거까지 다 먹어버리면 심을 게 없잖아?”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마지막 남은 토마토베리를 바라보았다.


이걸 입에 넣었다가는 또다시 씨앗까지 전부 먹어치워 버릴 것이다.

여기서는 일단 참아야 한다. 굶어 죽더라도 종자에는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제대로 키우기만 하면 수십. 아니, 수백 배로 불릴 수 있는 녀석이다.


그래, 따서 먹으면 돼.

따기만 하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그런데 이걸 어떻게 심어야 할까.


겉모습이 토마토니까 토마토 기르듯 하면 되려나?

토마토는 작은 화분에서 모종을 만들어 심는 것이 기본이다.


게다가 서리를 맞으면 금방 죽어버린다.

그래서 대부분 늦서리 걱정이 없는 5월 정도는 되어야 모종을 텃밭에 심곤 했다.


‘그런데 내가 이런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 그러고 보니 농사 관련 책을 몇 권 읽어 둔 적이 있었지?’


판타스틱 아일랜드 플레이에 도움이 될까 싶어 한 일인데 그 내용이 이상할 정도로 선명했다.


제법 오래 전 일인데 내가 그렇게 머리가 좋았던가.

어쩌면 이것 또한 농사와 재배가 특기인 힐링 게임 캐릭터라 그런 건가?


자, 그럼 여기서 문제입니다. 지금은 과연 몇 월일까요.

쌀쌀한 것으로 봐서 여름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런데 이거 발아에 필요한 햇빛이 얼마나 될까?


토마토베리가 빛을 쬐면 발아가 더뎌지는 호암성종자라면 그늘을 만들어 줘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지?


[Tip : 씨앗을 텃밭에 뿌리고 물을 주면 다음 날이면 싹을 틔운답니다. 정말 쉬우니까 한 번 해 보세요.]


“······뭐, 그냥 대충 심으면 되는 것 같네.”


고민해서 손해 본 기분이었다.

나는 집 옆에 만들어 둔 텃밭에 Lv1 삽을 이용해 씨앗을 심을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육과 함께 심은 씨 위에 시냇가에서 떠온 물을 정성스럽게 뿌려주었다.


“이거로 잘 자라려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텃밭에 심은 토마토베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저게 무슨 나무의 열매인지 모른다.

그걸 이렇게 대충 심어도 정말 괜찮을 걸까?


제대로 싹이 나지 않으면 어쩌지?

배경 숲에는 생각 이상으로 먹을 게 없었다.


토마토베리의 재배에 실패하면 나무뿌리 같은 것을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것만은 절대로 피하고 싶다.


그러나 내 걱정은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빼꼼-


땅에 심고 물을 준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너무나 앙증맞고 귀여운 새싹이 나온 것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재미있게 보셨으면 살포시 선작 등록 부탁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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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오토의 편안함 +7 24.03.06 9,986 326 15쪽
11 11. 도끼가 너무 시끄럽다 +8 24.03.05 10,341 326 16쪽
10 10. 고독하지 않은 늑대 +7 24.03.04 10,630 356 16쪽
9 9. 잘 구워졌습니다 +10 24.03.03 10,821 364 15쪽
8 8. 감자 원정대 +12 24.03.02 11,211 361 14쪽
7 7. 추억 쌓기 +7 24.03.01 11,770 346 13쪽
6 6. 길막용 몬스터 사용법 +14 24.02.29 12,282 391 17쪽
5 5. 새싹 +20 24.02.28 12,741 443 15쪽
» 4. 배경에 임시 거처를 만들다 +14 24.02.27 13,704 432 18쪽
3 3. Tip +15 24.02.26 14,785 415 14쪽
2 2. 배드 엔딩에서 살아남기 +16 24.02.26 16,757 445 17쪽
1 1. 대세는 힐링 게임 +30 24.02.26 19,017 45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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