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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울 님의 서재입니다.

다크 판타지에 힐링 게임 캐릭터로 빙의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한여울™
작품등록일 :
2024.02.26 19:02
최근연재일 :
2024.04.0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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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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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 배드 엔딩에서 살아남기

DUMMY

2장 배드 엔딩에서 살아남기




간혹 눈을 뜨자마자 어떤 징조를 느낄 때가 있다.

분명 야근을 일주일째 하고 있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몸이 개운하고.


귓가에는 짹짹거리는 참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면 지각이 아니라 반차를 써야 할 시간이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현상 없이도 내가 X됐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우,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여기서 내보내 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돌로 만든 감옥에 갇혀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니까.

다들 훤칠하게 잘생긴 미남미녀들이었는데 문제는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신세라는 점이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입구 쪽엔 두꺼운 쇠창살까지 박혀 있다.

감옥이라기보다는 맹수를 가두기 위한 우리에 가까운 모습.


그런데 내가 어째서 이런 곳에 갇혀 있는 거지? 지금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볼 이라도 꼬집어볼까 하고 손을 들었다가 말도 안 되는 것을 발견했다.


입고 있는 낡은 가죽옷 사이로 보이는 피부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던 것이다.

뽀송뽀송한 게 완전 아기 피부인데?


이건 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 몸이다.

혹시나 해서 주머니를 뒤져 보았지만 항상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대리석처럼 매끈하게 깎여 있는 돌벽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


부드러워 보이는 금발을 허리까지 늘어트린 소년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수에 찬 금빛 눈동자가 우아하다 못해 신비해 보이기까지 하다.


열 살쯤 어려진 것도 모자라 외모까지 미소년으로 변해 있다니.

살고 있는 집의 전세 보증금을 빼서 전신 성형 수술을 해도 이렇게는 만들지 못하리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했더니 이거 방금 전까지 플레이 하고 있던 캐릭터잖아!?

그러니까 무씨 군······. 아니, 시드 같은데?


삼등신 캐릭터를 실사 풍으로 구현하면 이럴 거라 상상한 모습 그대로다.

잠시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해 보도록 하자.


나는 분명 판타스틱 아일랜드 3 속의 힐링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유성우가 나를 덮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 보니 플레이하던 힐링 게임 캐릭터가 되어 있다.


그렇다는 건 여기가 ‘판타스틱 아일랜드 3’의 세계라는 건가?


마른침을 삼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렁이는 횃불이 갇혀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 와중에 정체 모를 괴물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아무리 봐도 힐링이 아니라 킬링이 더 어울리겠는데?”


지금 당장 수풀을 헤치고 도끼를 든 살인마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


이런 데서 힐링을 하는 건 웬만큼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리라.


몰래카메라나 새로 나온 VR 기기의 비공식 테스트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건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이 정도로 엄청난 현실감을 구현해 내려면 외계인을 부대 단위로 납치해도 부족할 테니까.


그렇다면 여기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때, 건너편 감방에서 좌절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젠장······. 용사 대 마왕 같은 똥겜 속에 떨어진 것도 모자라서 마왕군에게 포로로 잡힐 줄이야······. 이게 그 용사넷에서 본 배드 엔딩인가?”


분명 소리 없는 질문이었는데 누군가 대답을 해 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화려한 갑옷과 방패로 무장한 잿빛 머리 청년이었다.

지금 당장 영화에 나와도 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다.


“뭐야, 너 설마 방금 전에 내가 한 말을 들은 거야? 원주민들에게 게임에 관련된 말은 필터링이 될 텐데······. 설마 너도 용사냐?”

“······.”

“야, 모른 척하지 않아도 돼. 이쪽도 똑같이 게임 속에 빙의된 몸이거든. 뭐, 지금은 마왕군에게 잡혀서 이렇게 끌려가는 처지지만 말이야. X발······.”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남자도 나와 비슷한 상황인 모양이다.

뭐지, 설마 게임 속에 떨어진 게 나 말고도 더 있는 건가?


생각해 보니 용사 대 마왕은 여러 명의 용사가 마왕성 공략을 놓고 경쟁하는 온라인 기반 게임이다.


“뭐, 쉽게 말해 나도 그 이상한 광고 보고 용사 캐릭터를 생성했다는 거지.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 게임 속에 빙의된 상태였고 말이야. 그런데 너 캐릭터 진짜 잘 만들었다. 나는 대충 샘플에서 골랐는데.”


아닌데?

하고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 막 만난 상대에게 내가 ‘용사 대 마왕’의 캐릭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다.

아무래도 이제는 눈앞에 닥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나는 ‘용사 대 마왕’의 세계에 떨어졌다.

그것마저 부정했다가는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짚이는 것이라곤 용사가 되어 마왕과 싸워 달라는 광고메일을 받은 것뿐.

지금은 반쯤 접긴 했지만 나는 한때 용사 대 마왕을 제법 열심히 플레이했다.


아니, 인생의 대부분을 갈아 넣었다.

계정에는 온갖 사기적인 장비와 권능으로 무장한 만렙 용사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그건 전부 어디다 팔아먹고 아예 다른 게임의 캐릭터가 되어 있냐고.


그것도 비실비실한 힐링 게임 캐릭터가!

게다가 마왕군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사람들이 타고 있는 이동형 감옥.

저 멀리 얼핏 보이는 음산한 분위기의 고성.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다 했더니 튜토리얼에서 실패하면 나오는 배드 엔딩 0번이다.


그러니까 습격한 마왕군에게서 붙잡혀 포로가 되는 바로 그 엔딩 말이다.

어째 다들 표정이 우울하다 했더니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 신세였구나.


용사 대 마왕은 용사로 소환된 플레이어가 마왕군에게 쫓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물론 말만 쫓기는 것뿐이지 길을 따라 조금만 이동하면 여신의 축복이 내려진 장비를 얻을 수 있다.


광고에 나온 아이템 풀 세트 말이야. 그거 사실 기본 지급이다.

어쨌든 그것을 장비하면 마왕군의 조무래기가 덮치는 이벤트가 벌어지는데.


녀석들을 쓰러트리면 튜토리얼을 훌륭하게 완수한 것이 되고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참고로 장비를 입기만 하면 조무래기에게 받는 대미지는 0이다.


즉 축복받은 장비를 입으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이 0번 배드 엔딩이라는 뜻이다.


‘······설마 다른 게임 캐릭터라고 용사 전용 장비를 못 입은 거야!?’


이럴 거면 도대체 왜 게임 속 세계에 처넣은 거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이 세계에 집어넣은 녀석은 사이코패스가 분명하다.


사기꾼에 사이코패스라니 여신이 아니라 악신 아니야?

물론 내가 오지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생활을 아주 조금 동경하긴 했다.

자연인이 나오는 방송을 할 때면 밥을 먹다가도 TV를 켰을 정도다.


그런데 여기는 아무리 봐도 오지가 아니라 사지잖아?

튜토리얼에 실패해서 끌려온 거라면 억울하지나 않지. 난 구경도 못해봤다고.


“하여간 언제까지 보게 될지는 모르지만 통성명부터 하자. 현재 소마까지 공략한 용사 레온이다. 아, 여기서는 캐릭터 이름으로 부르니까 본명을 댈 필요는 없어.”


음······. 소마라면 분명 마왕군이 점령하고 있는 구역 중에 하나였지?


모든 용사는 튜토리얼이 진행되는 태초의 숲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중간 보스인 마왕 직속 군단장을 쓰러트리면 갈 수 있는 구역이 넓어지는 식이다.


6번째 스테이지인 소마까지 갔다면 제법 고레벨의 용사라는 뜻이다.

그런 녀석이 어째서 튜토리얼을 실패해야 볼 수 있는 배드 엔딩에 당한 것일까?


짐작 가는 이유가 하나 있긴 했지만 우선은 모르는 척 정보를 더 모으기로 했다.


“라······. 아니, 시드.”


무씨는 조금 그러니까 대충 줄여서 시드로 하자. 지금부터 내 이름은 시드다.

내가 이름을 대자 레온이 새하얀 치열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하여간 배드 엔딩이 떴다고 다 포기하고 죽는 것만 기다릴 수는 없잖아? 그래서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발버둥 쳐 볼 생각이다. 그러니까 시드 너도 협력해라.”


나는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기 위해 몇 번이나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다.

스포일러는 중대한 범죄였으니까.


@


용사 대 마왕에는 수많은 배드 엔딩이 존재하지만 최악을 고르라면 항상 0번이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0번 배드 엔딩을 맞이한 용사는 적이 되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다른 사람이 키우던 캐릭터가 조무래기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마왕성에서 조우하는 적 중에 타락한 용사라는 네임드가 있을 뿐.


그러나 게임이 현실이 되었으니 설정만 존재하는 것들도 확실하게 구현되어 있을 것이다.

이대로 마왕성까지 끌려가면 세뇌되어 마왕군의 조무래기가 되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배드 엔딩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이용해야 했다.

나는 레온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상태창!”


·········.

······.

···.


안타깝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용사 대 마왕은 온라인 게임답게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레벨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나는 ‘판타스틱 아일랜드 3’의 주민이라 그런지 레벨도 능력치도 없었다.

그러니 상태창을 외쳐봐야 아무것도 안 뜨지.


당연히 신체 능력 또한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넘지 못하리라.

그런 연약한 몸으로 용사를 잡아두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이동형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이 가능할까?


어쨌든 나는 용사 대 마왕의 시스템은 아무것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

그렇지만 과연 판타스틱 아일랜드 3라면 어떨까.


“―――말풍선.”


삐용-!

묘하게 맥 빠지는 효과음과 함께 감옥 안을 날아다니는 모기 위에 뭉게구름 같은 것이 떠올랐다.


[흡혈 모기 - Lv. 61] : 위애애애앵-!


오, 이건 되네.


판타스틱 아일랜드 시리즈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 주민들은 인간의 언어를 하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그렇지만 플레이어와는 신기하게도 의사소통이 된다. 그때 뜨는 것이 말풍선이다.


말풍선을 이용하면 동물 주민들의 상태를 알 수 있는데.

호감도가 낮아서인지 지금은 레벨과 이름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저거 뭐야?


무슨 모기 레벨이 60이 넘어?

저기 물렸다가는 산 채로 미라 되겠다.


어쨌든 정말 다행스럽게도 판타스틱 아일랜드 3의 능력이라면 쓸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레온이 자신의 탈출 계획을 설명했다.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설명하도록 할게. 지난 며칠 동안 지켜본 결과 이동형 감옥의 인솔은 주로 헬 메이드가 맡고 있어.”

“헬 메이드?”

“튜토리얼도 못한 초보라 모르는 모양이네. 온갖 잡일을 담당하고 있는 하급 마족이다. 그래서 레벨도 마왕군 중에서 낮은 편이야. 뭐, 그쪽 입장에선 괴물로만 보이겠지만 말이야.”


레온이 낮은 목소리로 웃어댔다.

아무래도 내가 낡은 가죽옷을 입고 있어서 초보 유저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틀린 것도 아니었다.

나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최대한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는 거야?”


얼굴 근육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여 주었다.

내가 빙의되어 있는 힐링 게임 캐릭터 시드는 멸망한 왕국의 후예.


그러니까 왕족이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법 같은 것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닐까.


내 연기가 먹혔는지 레온이 턱을 세우며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내가 용사 대 마왕을 해 본 프런티어거든. 뭐, 같은 용사끼리도 수준의 차이가 있다는 거지. 너무 어려워서 금방 접긴 했지만 덕분에 반년 만에 6스테이지까지 갈 수 있었고 말이야.”


프런티어라······.

대충 선구자라는 의미인가?


게임 속 세계에 떨어졌으니 플레이해 본 경험이 있는 자들이 앞서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레온의 말에 따르면 프런티어의 숫자는 다 해서 천 명 정도였다.


그리고 플레이 경험이 없는 일반 용사의 수는 그 열 배쯤 된다고 한다.

도대체 그 허접한 광고에 낚인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 거야.


레온이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일반 용사지? 그러니 이 선구자 레온님만 콱 믿고 따라오라고. 확실히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흐하하!”


말풍선으로 확인해 본 결과 레온의 레벨은 71이다. 7스테이지에 가도 통할 수준.

그렇지만 감옥에 갇히면 레벨 다운 효과가 있는 저주에 걸리게 된다.


아마도 신체 능력은 나와 크게 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탈출할 생각인데?”


레온이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더니 작은 주머니를 토해냈다.

내용물이 소화되지 않도록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는데. 열어보니 검붉은 구슬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고대왕국 룩스를 멸망시킨 블랙 나이트메어라는 이름의 맹독이야. 이걸 터트리면 지옥의 마수라 해도 순식간에 쓰러트릴 수 있지. 그러니까 딱 10초만 헬 메이드의 주의를 끌어주라. 나머지는 내가 전부 알아서 할게. 아, 중독은 걱정하지 마. 해독약을 미리 챙겨놨거든.”

“······흐음.”


얼핏 들으면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계획이다.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할 때 독만큼 효율적인 것은 거의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레온의 말에는 의심스러운 구멍이 두 개나 있었다.


1. 블랙 나이트메어에는 해독약이 없다.

2. 그리고 지금 여기에 독이 통하는 헬 메이드 또한 없다.


참고로 2번 같은 경우는 말풍선을 켜 놓고 주위를 살피다가 방금 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마치 그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어둠 속에서 쩔그럭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위잉, 치킥 위잉 치킹. 워킹 아머 배식 모드 돌입. 수감자들은 식판에 나눠준 음식물을 섭취 하도록.


불사 군단의 간부 워킹 아머였다.

머리 부분에 있는 투구 안에서 검붉은 안광이 번쩍거렸다.


블랙 나이트메어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에게는 절대적인 위력을 보이는 맹독이다.

그렇지만 불사 군단에게는 생채기 하나 입히지 못한다.


“미, 미친!? 불사 군단의 간부가 왜 호송 따위를 하고 있는 거야?! 헬 메이드 어디 갔어!”


끼이익, 끼기기기긱!


― 헬 메이드는 공주님의 시중 담당으로 전출되었다.


“으아악! 말도 안 돼!”


아무래도 인솔자를 쓰러트리고 탈출한다는 레온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 모양이다.

워킹 아머가 놓고 간 식판에 토사물 같은 스튜가 가득 담겨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왕성에 도착할 때까지 이걸 먹고 버티라는 의미인 모양이다.

최후의 만찬으로 저런 보기만 해도 역겨운 것을 먹고 싶지는 않다.


‘아, 삽 한 자루만 있으면 땅굴이라도 파서 도망칠 텐데.’


판타스틱 아일랜드 시리즈의 주민은 말도 안 되는 노가다 실력으로 유명하다.

삽과 도끼만 있으면 집이며 밭이며 마구 만들어낸다.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 커다란 놀이공원을 세우고 해맑게 웃는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농사, 낚시, 요리, 제작 등등.

몸으로 싸우는 것 빼고는 다 잘하는 주민이라 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는 못한다.


무언가를 하려면 거기에 필요한 도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게임을 진행해야만 구할 수 있다.


‘하아, 그러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건 입고 있는 낡은 가죽 옷이랑 식판과 숟가락뿐인데······. 잠깐만, 숟가락!?’


순간적으로 어렸을 때 본 명작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주인공이 성경 속에 숨겨둔 숟가락으로 벽에 구멍을 내고 탈출한다는 내용.

사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때 사용한 도구는 작은 돌을 부수는 락해머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내 뇌리에는 숟가락이라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일단 숟가락도 무언가를 파내는 물건이잖아?

그렇다면 분명 쓸 수 있을 거야.


꿀꺽······.


이걸 이용해 땅을 파 보자. 어차피 지금 내가 믿을 건 그것뿐이다.

나는 식판에 꽂혀 있는 숟가락을 여신이 내려준 성검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귓가에 누구인지 모를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신은 Lv1 삽을 얻었습니다!]

[Tip : 삽으로는 땅을 파거나 집을 짓는데 방해되는 나뭇등걸 같은 것을 치울 수 있습니다.]


‘돼, 됐다! 그런데 게임 팁도 나랑 같이 따라 온 건가?’


판타스틱 아일랜드 3에는 따로 튜토리얼이 없었다.

대신 게임 팁을 통해 플레이에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곤 했는데.


그것이 발동한 모양이다.

내가 숟가락으로 삽질을 하려고 하자 레온이 이죽거렸다.


“하핫, 뭐야. 설마 그거로 땅굴이라도 파게? 네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마왕군이 쓰는 이동식 감옥은 아다만타이트로 되어 있어. 그딴 숟가락으로는 작은 흠집도 내지 못한다고.”


레온의 말대로다.

이동형 감옥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금속보다도 단단하다는 아다만타이트로 되어 있다.


마왕군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다는 용사를 호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었으니까.

그렇지만 판타스틱 아일랜드의 주민은 벽과 지면의 재질이 무엇이라도 삽 한 자루만 있으면 마구 파헤치곤 했다.


내가 그 능력을 쓸 수 있다면―――.

사정없이 숟가락을 돌벽에 박아 넣었다.

―――푸욱!


낡아빠진 숟가락으로 아다만타이트를 부순다.

차라리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이 훨씬 가능성 높은 일이겠지만.


힐링 게임 캐릭터는 그것을 너무나 쉽게 해냈다.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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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펜리르 더 비스트의 우울 +9 24.03.18 6,641 272 18쪽
23 23. 조각칼 줍기 +6 24.03.17 6,764 245 15쪽
22 22. 엄청난 선물을 받아버렸다 +8 24.03.16 6,864 24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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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주방은 북유럽 식으로 +8 24.03.13 7,602 274 15쪽
18 18. 프라모델을 만드는 즐거움 +8 24.03.12 7,664 269 13쪽
17 17. 조립식 스켈레톤 +6 24.03.11 8,085 259 14쪽
16 16. 중간보스의 위엄 +4 24.03.10 8,679 26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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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오토의 편안함 +7 24.03.06 9,986 326 15쪽
11 11. 도끼가 너무 시끄럽다 +8 24.03.05 10,341 326 16쪽
10 10. 고독하지 않은 늑대 +7 24.03.04 10,630 356 16쪽
9 9. 잘 구워졌습니다 +10 24.03.03 10,821 364 15쪽
8 8. 감자 원정대 +12 24.03.02 11,211 361 14쪽
7 7. 추억 쌓기 +7 24.03.01 11,770 34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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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배경에 임시 거처를 만들다 +14 24.02.27 13,704 432 18쪽
3 3. Tip +15 24.02.26 14,785 41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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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대세는 힐링 게임 +30 24.02.26 19,017 45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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