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影野輯錄

주유강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마눌밭
작품등록일 :
2012.11.15 06:53
최근연재일 :
2013.01.13 14:24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240,507
추천수 :
1,830
글자수 :
294,577

작성
10.05.20 07:46
조회
4,784
추천
28
글자
11쪽

주유강호-사천편[제1화]

DUMMY

사천으로 돌아오는 길은 선부(船夫)들의 자질구레한 실랑이질 조차 없이 조용했다. 그 날의 대사건을 꿈처럼 느끼게 할 정도로 평안한 흐림만이 이어졌다. 덕분에 천강은 몸과 마음에 받은 충격을 상당부분 수습할 수 있었다. 특히 취금이 소림의 대환단이라고 하며 자신에게 복용케 한 정체 모를 약은 자칫 몇 주 이상을 허비하게 했을 상처를 단 며칠 만에 치료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환단의 효과가 대단한 것만은 틀림 없었다.


천강이 웅묘파의 낡은 대문 앞에 당도했을 무렵에는 상처는 붉은 흔적을 남겼을 뿐, 거의 완벽하게 아물어 있었다. 그는 잠시 동안 '웅묘관(熊猫館)'이라 쓰여 있는 현판을 올려다 보았다. 다시는 보지 못했을 지도 몰랐다는 생각이 미치자 불현듯 감상적이 되었다. 그러나 그 감정도 잠시 뿐 장차 자신에게 닥쳐올 일들을 생각하니, 이곳을 뒤로 하고 어딘가 잠적하고 싶었다. 천강은 그런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서 도장의 문을 힘껏 열었다.


거친 소리를 내며 열린 문의 건너편에는 군데군데 깨지고 잡초만이 무성한 연무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때 많은 문도들의 기합소리로 가득 찼을 이 곳에는 단지 두 개의 인영(人影)만이 천강을 맞이하고 있었다. 검을 들고 허허로이 초식을 전개하는 대제자 곽 지화와 한 쪽 탁자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충로였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몇 채의 건물은 천강이 이 문파에 몸 담은 지 몇 해 동안 눈에 띄게 쇠락해 있었다.


몇 해 전까지 웅묘파는 청성, 아미, 당문이 삼분하고 있는 이 곳 사천에서 꽤 유력한 중견 문파로 자리잡고 있었다. 비록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위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독문무공인 무의구검(無儀九劍)과 원앙퇴(鴛鴦腿), 그리고 가문소유의 염정(鹽井)에서 나오는 상당량의 소금은 문파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데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독이 되었는지, 당문의 세력 다툼에 말려들어 염정을 고스란히 빼앗긴 이후로는 쇠퇴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허름한 현판처럼 이름만 남아있는 웅묘파의 장문인(掌門人) 충로는 중천의 해에도 아랑곳없이 거나하게 취해 있었고, 그 곁에서 춤을 추는지 수련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대제자의 연무만이 현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었다. 천강은 장문인에게 가기 위해 연무장을 가로 질렀다. 이 때까지도 두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여 그에게 일별도 하지 않았다. 천강은 충로 앞에 서서 포권을 하며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충로는 여전히 자세를 풀지 않고 있는 천강을 흘긋 바라 보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술잔으로 시선을 돌렸다. 곽 지화의 칼춤(?)역시 끊임없이 이어졌다. 천강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들의 응대를 보며 자세를 바로 했다.

"자네 왔는가?"

천강의 인사에 대한 회답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곽 지화는 물론 아니었다. 그는 천강이 이 문파에 의탁했을 때부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보일 듯 말듯 고개를 숙이는 게 전부였다. 충로에 대해서도 깍듯하긴 했으나 별다른 대화가 없는 것으로 보아 천성이 그런 것일 터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원으로 난 무거운 문을 힘겹게 열고 나오는 동총관 이었다. 살아 온 세월만큼의 주름이 얼굴을 가득 덮고 있었으며, 이 곳에서 태어나, 뼈를 묻을 곳도 여기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웅묘파의 산 증인에 다름 없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당문의 소유가 된 염정을 관리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염정은 이곳의 내원을 지나서 웅묘관의 후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항상 인부들의 소음과 소금을 끓이는 열기가 가득했다. 자신의 것이었을 때에는 그 모든 것이 즐거움으로 다가왔겠지만, 지금의 장문인에게 있어서는 단지 자신의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스런 자극에 불과했다. 그는 당문에게 염정을 빼앗기고 온 그날 내원으로 통하는 곳에 두꺼운 문을 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처와 자식들을 모두 처의 친정으로 보낸 후, 간단한 집기만을 챙겨 연무장이 있는 외원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치졸한 일 일수도 있었지만, 무력한 그에게 있어서는 최대한의 항의였다.


염정과 텅 빈 내원은 모두 당가에서 파견된 사람으로 채워졌다. 잡부들은 그대로 자리를 유지했지만, 회계를 비롯한 관리직은 모두 당문도(唐門徒)들로 갈아치웠다. 다만 평생 이곳을 도맡아 관리해 온 동총관은 적당한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 염정관리를 하고 있었다.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자 많았던 문도들과 하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대제자만이 홀로 연무장을 지키고 있었다. 충로는 긴 세월을 그저 술로 소일했다. 웅묘파는 동총관과 천강이 벌어오는 수입으로 근근이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천강은 충로에게 다시 한 번 포권지례를 한 후 동총관의 집무실로 향했다. 장부와 어음 등이 모두 먼지로 변했다는 보고에 동총관은 한동안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찾은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연유를 물을 즈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충로였다.

"나 좀 보세"

충로는 천강의 보고 중간에 갑자기 들어와 그를 데리고 나갔다. 동총관은 천강의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충로를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은 손해난 부분을 메우는 것에 모든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천강은 웅묘파에 정식 입문을 한 제자도 아닌 일개 고용인에 불과하였지만, 장문인은 천강과 죽이 잘 맞는 것 같았다. 과거 문파가 정상이었을 때 동총관은 이런 관계를 좋지 않게 생각했지만, 지금에 있어서는 장문인이 그나마 타인과의 접촉을 완전히 끊지 않는 것만도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앞장을 선 충로는 늘 가던 다관(茶館)으로 들어갔다. 이 지방은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다관이 발달해 있어, 골목 골목에 많은 수의 다관이 들어서 있었다. 각 다관은 몇 종류의 특색 있는 형태로 발달해 있었다. 크게 세 종류 정도로 구분이 되었는데, 사람들이 모여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한다(閑茶),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끽강다(喫講茶), 설서인이라는 이야기꾼이 극을 공연하는 서다(書茶)로 크게 구분되었고, 그 외에 악기연주나 천극 등을 공연하는 다관 등 세분하자면 한이 없었다.


두 사람이 들어선 곳은 땅콩을 주전부리 삼아 차를 마시며 소일하는 한다(閑茶)였다. 차를 나르는 다박사(茶博士)는 주문을 듣지도 않고, 다기를 내와 차를 따랐다. 천강은 뜨거운 물이 들어있는 찻잔에서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렸다. 반면 충로는 찻잔을 들고 뚜껑으로 휘휘 저으며 한 모금을 들이켰다.

"당문에서 연락이 있었네, 자네를 보는 즉시 끌고 오라더군."

천강의 얼굴이 어두워 졌다.

"그냥 지나갈 리가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군요."

"그만큼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지 않나. 우선 자네 입으로 직접 말해주지 않겠나?"

충로는 미리 당문으로부터 언질을 받았지만, 당사자인 천강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듣고 싶어했다.


천강은 손불여에게 전언을 부탁 받은 일부터, 이름 모를 암살자와 종지행의 등장, 취금의 무예, 루주 곽 근창과 대라신공의 등장, 세 장로와 루주의 대립과 죽음까지 단숨에 보고했다. 그의 보고를 들은 충로는 침음성을 흘렸다.

"너무 많군, 언제부터 사천 무림이 자네 중심으로 돌아가게 됐지?"

충로의 표정에는 다분히 장난기가 스며 있었으나, 천강은 장난으로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도 비슷한 소리를 하더군요, 당시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 어떤?"

"청성에서 당문을 걸고 넘어지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문의 사람이 청성을 해하였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 게다가 그곳은 교통과 주류생산의 요지 입니다. 이쪽 세력을 견제하면 청성에게 떨어지는 이익은 루주와 문도 몇 명 없애는 것에 비하는 남는 장사였지요."

"거기에 화산이 뛰어들었다? 청성과 화산이 공동으로 뛰어 들어 귀주 지역의 세력확장을 노린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겐가?"

"화산이 그것도 청성의 비급을 패로 쓰면서까지 끼어들었다는 것도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든 얘기지요."

"비급의 행방은 혹시 아는 바가 없나?"

천강은 가로로 머리를 저었다.

"애석하게도 저는 정신을 잃고 있어서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 모릅니다. 단지 취금 그녀가 일의 종언을 알려 줬을 뿐이지요."

"취금, 취금이라……"

"무엇을 노리는 걸까요? 그녀는."

"내가 묻고 싶은 심정이라네, 혹시 그쪽 사람이 아닐까?"

"종지행의 말을 들어보면 해남도 쪽과 관련이 있지 싶습니다."

"해남도라, 우선은 그녀를 다시 찾는 데 주력해야겠군."

"직접 움직이실 생각입니까?"

"할 일도 없지 않나, 유람을 다닌들 누가 뭐라 하겠나. 게다가 다른 사안들은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을 거네"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느닷없이 한 사람이 끼어 들었다. 두 사람은 일제히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충 장문인, 주형 오랜만입니다. 헤헤"

온화하고 하지만 힘있는 목소리에 서글서글한 눈매, 미소가 얼굴의 일부가 된 청년이 서 있었다.

"자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왜 여기서 서성이는가?"

충로의 핀잔을 청년은 넉살 좋게 받아 넘겼다.

"아 주형이 왔는데 야박하게 그럴게 뭐 있습니까. 마침 손님도 없고 해서 차나 마실까 해서 들른 참입니다."

"장 형제 왔는가? 그런데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인가?"

"주형도 참......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한가해서 차나 마시러 왔다고요."

"자네 다관도 어지간히 파리를 날리나 보군"

충로가 다시 한마디 거들었다.

"헤헤, 세상의 찻잎이 다 없어지지 않는 한 망할 리야 있겠습니까? 제가 가서 몇 마디 말을 시작하며 대번 손님으로 가득 차겠지요."

격의 없는 웃음과 함께 천강 옆에 자리잡은 이 사내는 근처 서다(書茶)에서 설서인(說書人)으로 일하는 장 평이란 자였다. 평서를 공연하는 이야기꾼답게 말 하나는 청산유수였다. 충로와 천강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었으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이 사내의 방문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박사는 재빨리 장 평에게 찻잔을 내왔고, 식어버린 천강과 충로의 차를 따뜻한 물로 갈아 주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한담이 이어지고, 장 평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불쑥 자리를 떴다.

"이 곳을 나가는 즉시 바로 당문으로 가게."

"장 평에게 소식이 갈 정도면 다른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지요?"

충로는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천강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찻잔을 들고 끝까지 털어 넣었다. 쓴 찻잎마저 입에 넣고 씹었다. 그 모습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각오였다.

"조심하게."

천강은 충로의 당부를 뒤로 하고 당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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