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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도님의 서재입니다.

망국의 광전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김환도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25 22:3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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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0,552

작성
20.06.0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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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28화. 발자국

DUMMY

평지였던 숲길에 점차 높낮이가 생겼다. 나무는 점점 높고 울창해져 빛도 잘 들지 않았고, 사냥터지기 부자는 길을 찾는 데 확신이 없다고 두 손을 들었다. 여기까지 길눈이 밝은 건 약초꾼 핀 혼자뿐이었다.


나는 조금 난감해졌다.


“영주님, 무슨 고민을 그리 하십니까?”


데이브가 약삭빠르게 내 옆에 붙었다. 가끔 보면 이 놈은 기사 같지 않은 구석이 많았다.


“이쯤이, 카르파티 산맥 지류가 시작되는 부분 같은데 말이야.”


“아하 그런가요. 그렇다면 잘 온 것 아닙니까?”


“원래는 여기서부턴 사냥터지기와 어린애들은 짐말을 태워 마을로 돌려보내려 했었다.”


“그러면 그렇게, 아!”


데이브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다가 나와 같은 생각에 이르른 모양이었다. 평소의 숲과 달리, 산 속 깊은 곳에 사는 몬스터가 출몰하고 있으니, 정식 전사가 아닌 세 사람을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렸다.


“산 속 길잡이를 해줄 자가 없어지면 아무래도 곤란하겠죠.”


데이브의 생각은 나와 사뭇 달랐다. 역시 귀족의 핏줄을 속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영주님. 저, 계속 따라가면 안되나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약초꾼 핀이 어느새 고개를 돌리고 나에게 간청하고 있었다. 작은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인데다, 한참 거리가 떨어져 있었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감히 윗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태도에 데이브가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나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돌아가고 않으냐. 산맥 위쪽은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저는 매일이 그랬습니다. 제발 저만 돌려보내지 마세요. 이대로 돌아간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나는 조금 놀랐다.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건 처음이었다. 까무잡잡하고 눈이 큰 핀은 평소 입을 여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이국적인 외양 탓에 말이 어설플 거라 생각했는데, 선입견이었다.


“왜지? 이건 즐거운 모험 따위가 아니다. 앞으로 더욱 고생스러울 일이 많을 텐데.”


어느새 제각기 앞뒷 사람과 떠들던 일행들이 대화를 멈추고, 우리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짐말이 푸르릉대는 소리와 사람들의 가죽 각반이 풀숲을 헤치는 소리만 들렸다.


“···말주변이 부족해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돌려보내면 후회하실 거예요. 도시나 마을에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이런 곳에서는 도와드릴 수 있는 점이 많습니다.”


“······.”


“산 윗길에서도 길잡이가 필요하실텐데요.”


“널 지켜줄 수 없다고 해도?”


“몸은 자기 자신이 지키면 되는걸요.”


핀이 이렇게 되바라지게 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황망하게 사냥터지기 부자를 돌아보았다.


“너희들에게 핀을 데려가라고 할 심산이었는데, 둘이서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나.”


아버지 쪽은 우물쭈물했다. 더 따라간다고 하여 충성심을 보여야 하는 분위기인지, 아니면 돌아갈 기회를 잡아야 할지 망설여지는 모양이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영지의 사냥터가 너무 오래 비어 있었다. 빨리 돌아가서 정비를 해라.”


사냥터지기는 감음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아들 샌더는 돌아가기 싫은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동갑인 친구 핀을 흘겨보다가 아버지의 꿀밤을 얻어맞고 입이 댓발 나왔다.


샌더가 주섬주섬 짐을 챙기면서 곰살맞은 소릴 했다.


“레드 뱃 눈알로 기막힌 술을 담궈 놓을테니, 돌아와서 드세요.”


“고생 많았어. 조심히 가라.”


“술값은 싸게 받을게요.”


“어이쿠, 돈 내야 하는 거였어?”


샌더는 그 사이 정이 든 용병들과 주먹을 마주치며 인사도 나누었다. 평지를 벗어나면 쓸모가 없어질 짐말도 그들에게 맡겼다. 데이브와 나달이 죽상을 하고 짐말에 싣던 짐을 나누어 졌다.


길 위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속전속결, 지형이 더욱 험해지면서 그들 부자는 금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용병들은 이별의 헛헛함을 덜기 위해 여행자의 노래를 나누어 불렀다. 듣기에 나쁘지 않기도 했고, 짐승을 쫓는 데 큰 도움이 되기에 놔두었다. 아직 몸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완만한 경사가 이어졌다. 중간중간 마른 덤불에 숨겨진 구덩이들도 있었다. 약초꾼 핀은 선두를 이끌면서 안전한 길을 안내했다.


그의 말마따나 그냥 돌려보냈으면 꽤 아쉬울 뻔했다.


칼라일과 한 살 차이가 나는 저 소년의 정체는 대체 뭘까? 그저 이국의 서커스단 출신 떠돌이 고아라는 점 외에도 뭔가 더 있는 게 아닐까?


궁금해지려는 찰나, 핀이 갑자기 땅에 엎드려 바닥에 코를 박았다. 용병들도 노래를 멈췄다.


“?”

“잠시만요.”


그가 엎드려서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흙바닥이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나달이 의심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동감이었다.


“발자국이요. 지나간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흙바닥에 뭔가 보일 듯 말 듯한 무늬가 있었다. 그리고 희미한 궤적이 이어지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사람?”


나달이 장화 자국 같은 발자국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핀이 몸을 일으키면서 주위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하지만 역시나 핀을 뺀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뭐가, 말을 해.”


한 용병이 다그치자 핀이 답답하다는 투로 살짝 한숨을 쉬었다.


“발 크기를 보면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크죠. 맨발은 아니고 커다란 가죽신을 신은 것 같고요.”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지나간 경로의 흔적을 보세요. 나뭇가지가 끊긴 자국이랑, 나무에 쓸린 자국이요. 키가 작은 거예요. 저보다도 훨씬.”


“아!”


대부분은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추적해본 경험은 있었다. 나는 그런 체험을 한 기억은 없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는 있었다.


“카르파티 산의, 드워프.”


그 이름을 꺼낸 이가 내가 아니었다면, 아마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드워프는 몇백 년 전에 모두 멸종했다. 사실 요즘 젊은 세대 상당수는 드워프의 존재 자체를 미개한 시절의 전설로 취급하는 지경이었다.


다들 내가 농담을 한 건지 아닌지 몰라서 섣불리 말을 보태지 않고 망연하게 서 있기만 했다. 나는 핀의 눈을 마주보았다.


“너는 본 적이 있는 거지?”


“······.”


“드워프 말이야.”


아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뭔가가 있는 법이다. 핀은 남들이 보지 못한 발자국을 보았고, 나는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아는 소년이 보였다.


그리고 핀을 채근하는 나를, 온종일 수도승처럼 침묵하던 이반 듀크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사실 핀의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카르파티 산맥에는 멸종한 줄 알았던 드워프들이 숨어서 살고 있다. 내 여정의 목적 중 하나도 그들을 찾아가는 것이었기에 잘 왔구나 싶어서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른 점이 있었다.


“큭.”


핀이 큰 소리도 못 지르고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그의 목덜미에 가느다란 침이 꽂혀 있었다.


작가의말

비축분이 어제 부로 끝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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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5화. 스틸 게이트 +4 20.06.25 399 12 8쪽
45 44화. 미행자 +2 20.06.24 340 15 8쪽
44 43화. 맹약의 이행 +1 20.06.22 373 18 8쪽
43 42화.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 +1 20.06.19 405 18 8쪽
42 41화. 최선의 판단 +1 20.06.19 374 18 13쪽
41 40화. 사자의 입 속으로 +3 20.06.19 433 21 8쪽
40 39화. 정면돌파 +3 20.06.18 452 16 11쪽
39 38화. 황제의 칙사 +2 20.06.17 452 19 8쪽
38 37화. 한 수 가르쳐 줘야 +3 20.06.17 491 27 9쪽
37 36화. 절대 후회하지 않게 +1 20.06.16 494 22 10쪽
36 35화. 약속대로 +3 20.06.15 554 24 8쪽
35 34화. 사형집행자 +2 20.06.13 541 22 9쪽
34 33화. 대학살 +3 20.06.11 541 21 7쪽
33 32화. 지옥도 +3 20.06.10 587 22 7쪽
32 31화. 척후병들 +2 20.06.08 619 24 8쪽
31 30화. 승자와 패자 +4 20.06.07 637 25 8쪽
30 29화. 미녀 +5 20.06.06 671 31 7쪽
» 28화. 발자국 +3 20.06.05 663 26 7쪽
28 27화. 죽여야 할까? +3 20.06.04 700 28 7쪽
27 26화. 성공이다, 일단 +3 20.06.03 708 24 7쪽
26 25화. 출정 +4 20.06.02 759 28 12쪽
25 24화. 성장통 +3 20.05.31 782 31 11쪽
24 23화. 지하 감옥 +7 20.05.29 787 40 7쪽
23 22화. 호랑이 새끼를 키우다 +2 20.05.28 800 37 7쪽
22 21화. 죽은 사람은 뭐가 돼? +3 20.05.27 803 34 11쪽
21 20화. 가문의 악덕 +3 20.05.26 850 38 7쪽
20 19화. 창작자의 가호 +4 20.05.25 862 45 8쪽
19 18화. 껍질만 뒤집어 쓴 +4 20.05.24 890 4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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