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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도님의 서재입니다.

망국의 광전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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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도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25 22:38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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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0,552

작성
20.05.24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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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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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글자
7쪽

18화. 껍질만 뒤집어 쓴

DUMMY

유트의 말을 듣자 기억났다.


남부의 대귀족 비델바흐 공작. 선조가 남쪽 바다에서 고래 잡이를 했다고 하여 ‘백경 공’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흑해를 넘나들며 무역과 해적질을 하는 범선들을 거느린 선주이며, 변방의 아스문간드 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고 부유한 영지를 다스리는 거물. 그는 제국의 남부 정벌전쟁에서 가장 큰 군대를 동원한 귀족이었다.


이반 듀크 경은 비델바흐 공작군의 일원이었다. 처음에 이반 듀크는 소속된 깃발 없이 일개 경기병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전쟁의 여신은 실력과 행운이 따르는 자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를 선물하는 법.


이반 듀크의 직속 상사들이 연달아 죽어 주는 바람에, 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승진을 거듭했다. 십인장, 이십인장을 거쳐 마침내 백인대장 자리까지.


지금의 오만방자한 모습만 보면 믿기 어렵지만, 그는 부하들의 두터운 충성을 얻고, 마침내 비델바흐 공작의 인정을 받고 기사 서임을 받기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모두 이반 듀크가 비델바흐 공작의 충성스런 가신이 될 것으로 알았다. 그는 예상을 깨고 방랑기사가 되어 정처 없는 여정을 떠났다.


꽤 유명인사인 이반 듀크가 조용한 내 영지에 와서는 온갖 수상한 행위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일지요. 이반 경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지요.”


유트는 심각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유트가 알아서 고민하도록 놔두고, 요르킴과 이반 듀크에 대한 전략을 대폭 수정하기로 했다.


먼저 요르킴.


남들이 보기에는 선대 백작을 오랫동안 도와주며 집안 대소사를 처리해준 외삼촌. 장례식에서 바로 칼라일의 후견인 행세를 하려고 들었을 정도니, 곧바로 내쫓기엔 모양새가 안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해를 보면서까지 관용을 베풀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반 듀크.


기사단의 에이스이자 인기 있는 기사지만, 속으로는 칼라일의 가문에 흑심을 품고 있어서 언제 내 등에 칼을 꽂을지 모르는 놈.


실제 원작에서도 그는 칼라일이 가장 약해졌을 때, 기사단을 이끌고 결정적인 배신을 한다.


“하···.”


이반 듀크는 계륵 같은 존재. 버리기는 아까웠다. 처음에는 나의 변한 모습을 천천히 보여주면서, 그의 뿌리깊은 원한을 희석시켜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낙관적인 기대는 그만두겠다.


“유트. 내일 하인들에게 말을 흘려라. 입이 가벼운 놈들로. 내가 무슨 일로 크게 화가 나서 대대적으로 장부와 재고 정리를 하려 한다고 말이야.”


“영주님, 드디어 제 말을 들어주시는군요!”


유트의 만면에 희색이 돌았다. 영주가 되자마자 유트가 매일같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건의하던 과업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요르킴을 자극하고 긴장하게 만들 것이었다. 그가 만천하에 실책을 드러내도록.


* * *


모두가 잠들었을 새벽 시간. 달도 없는 영주성의 어둠 속에서 남몰래 홀로 움직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는 촛불도 없이 벽을 더듬어가며 구석진 방에 이르렀다. 이 방은 아무 쓰임새도 없이 방치된 장소였다. 소리죽여 방문을 열자 토도독, 쥐들이 놀라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림자는 바닥에 꿇어앉아 손을 뻗었다. 흙먼지 쌓인 바닥을 연신 훑었다. 그러던 중 찾던 틈새에 손끝이 닿았다.


끼기익!


바닥에 숨겨진 문이 뚜껑처럼 열렸다. 문 아래로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법한 계단이 보였다. 방 안도 어두웠지만, 계단 아래는 지옥처럼 어두컴컴했다.


그림자는 품 속에서 마른 짚과 양초, 부싯돌을 차례로 꺼내서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서툰 손으로 부싯돌을 비볐다.


드득! 파사삭!


몇 번의 어색한 시도 끝에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는 불꽃을 후후 불어서 마른 지푸라기에 옮겨 붙였다. 그리고 양초 심지가 밝혀지는 순간.


“흐어억!”


그림자의 주인, 요르킴은 양초를 놓치고 볼썽사납게 털썩 쓰러졌다.


애초에 이곳은 빈 방이 아니었다. 불빛이 켜지자, 이글거리는 여러 쌍의 눈이 요르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 살려 주···.”


“여기서 뭘 하십니까, 외삼촌.”


이곳에 있을 거라 꿈에도 상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소가주, 아니 영주 칼라일의 입가에 비웃음이 선명했다.


“우와, 성안에 이런 곳이 숨겨져 있었다니. 신기한데요?”


기사 데이브가 호들갑을 떨었다. 말투와 달리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 외에도 기사단장 비스마르 경, 그리고 요르킴과 친분이 없는 무뚝뚝한 시종들도 보였다.


덫이구나!


요르킴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계단 아래에는 몇 대 전에 잊혀진 영주성 속 비밀공간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요르킴밖에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그 비밀공간은 그간 요르킴의 악행이 모두 모인 장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금화와 은화를 담아둔 자루도, 말린 가죽과 보석들도, 이중으로 작성해둔 장부도 다 이쪽에 보관하고 있었다. 자기 방에 두었다간 언제 들킬지 몰랐기 때문이다.


요르킴은 놀란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렸다. 물건에 이름이 쓰인 것도 아니고, 요르킴의 것이라는 증거도 없었다.


“영 수상한 곳이 있다고 하여서, 아무도 없을 때 확인하러 와본 것이다. 뭐가 발견되면 상의하려 했다.”


“또요?”


“뭐?”


“더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지하감옥에서 다시 문초를 했을 때 계속 말씀이 달라지면 곤란하니까요.”


다 알고 왔구나. 요르킴은 신음을 삼켰다.


어차피 영주는 사법권을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었다. 영주와 그 가신들이 자기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설령 결백하다 해도 처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은 있었다.


이반 듀크 경. 비델바흐 공작의 비호를 받는 그가 자신을 구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일단 그는 이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외삼촌께서 누군가를 애타게 찾으시는가 본데요.”


“!”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준 기사를, 이런 야간 방범근무에까지 동원해서야 되겠습니까.”


요르킴의 턱이 쩍 벌어졌다.


어둠 속에서 올려다본 칼라일의 얼굴은 새삼 낯설었다. 일렁이는 촛불 빛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요르킴이 알던, 예민하고 섬세한 소가주 칼라일은 저런 말을 할 줄 몰랐다.


저건, 모르는 사람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딴 사람이 칼라일의 껍질만 뒤집어 쓴 것이 분명했다. 왜 아무도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거지?


요르킴은 비이성적인 혼란 속에서 섬뜩한 공포를 느꼈다. 달아나야 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대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칼라일이 차갑게 명령했다.


“외삼촌을 처소로 뫼시고, 문 앞에는 경비병을 배치하라.”


덩치 큰 시종들이 요르킴의 팔다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성실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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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4화. 미행자 +2 20.06.24 340 15 8쪽
44 43화. 맹약의 이행 +1 20.06.22 373 18 8쪽
43 42화.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 +1 20.06.19 405 18 8쪽
42 41화. 최선의 판단 +1 20.06.19 374 18 13쪽
41 40화. 사자의 입 속으로 +3 20.06.19 433 21 8쪽
40 39화. 정면돌파 +3 20.06.18 452 16 11쪽
39 38화. 황제의 칙사 +2 20.06.17 452 19 8쪽
38 37화. 한 수 가르쳐 줘야 +3 20.06.17 491 27 9쪽
37 36화. 절대 후회하지 않게 +1 20.06.16 494 22 10쪽
36 35화. 약속대로 +3 20.06.15 554 24 8쪽
35 34화. 사형집행자 +2 20.06.13 541 22 9쪽
34 33화. 대학살 +3 20.06.11 541 21 7쪽
33 32화. 지옥도 +3 20.06.10 587 22 7쪽
32 31화. 척후병들 +2 20.06.08 619 24 8쪽
31 30화. 승자와 패자 +4 20.06.07 637 25 8쪽
30 29화. 미녀 +5 20.06.06 671 31 7쪽
29 28화. 발자국 +3 20.06.05 662 26 7쪽
28 27화. 죽여야 할까? +3 20.06.04 700 28 7쪽
27 26화. 성공이다, 일단 +3 20.06.03 708 24 7쪽
26 25화. 출정 +4 20.06.02 759 28 12쪽
25 24화. 성장통 +3 20.05.31 782 31 11쪽
24 23화. 지하 감옥 +7 20.05.29 787 40 7쪽
23 22화. 호랑이 새끼를 키우다 +2 20.05.28 800 37 7쪽
22 21화. 죽은 사람은 뭐가 돼? +3 20.05.27 803 34 11쪽
21 20화. 가문의 악덕 +3 20.05.26 850 38 7쪽
20 19화. 창작자의 가호 +4 20.05.25 862 45 8쪽
» 18화. 껍질만 뒤집어 쓴 +4 20.05.24 890 4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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