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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김한영 님의 서재입니다.

S급 헌터가 오타쿠에게 빙의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김한영
작품등록일 :
2024.02.20 16:08
최근연재일 :
2024.03.0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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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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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0. 사냥감을 잃은 헌터는 누구를 사냥하는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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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0. 사냥감을 잃은 헌터는 누구를 사냥하는가(2)


나는 이 세계가 좋았다. 선천적인 능력, 집안의 배경이 한 헌터의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그래도 이곳은 레벨업이라는 바로 눈에 보이는 노력의 결과가 있고 몬스터만 잘 죽이면 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는 곳이었다.


생각하고 고민할 이유가 없다.


웨폰즈가 루와 동조하는 이유도 납득은 간다. 하지만 우리를 중심으로 모든 사회 시스템이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게임으로 치면 어떤 마을의 NPC는 모두 용사를 위해 대사 스크립트가 만들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웨폰즈를 나오고 나서 전 세계 미궁을 돌아다니며 레벨업만 반복했다. 전함을 빌려 마리아나 해구에 들어가 리바이어던과 싸우고, 에베레스트산을 올라 아지다하카도 홀로 잡아가며 이를 갈았다. 매일 고독하고 학살하고 다녔던 어느 날 밤이었다.


“신유, 아직도 포기 안 했어?”


지팡이 소리와 함께 힘없고 나긋한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나타났다.


“을묘. 왜? 내가 나중에 루한테 지기라도 해?”

“음... 어렵네. 네 미래가 궁금해?”

“궁금하긴 하지.”


고양이상의 30대 여성인 을묘, 슈리아 사란은 시각장애인이다. 그녀는 지팡이로 주변을 더듬으며 나를 찾아왔다. 슈리아는 조심스럽게 모닥불 옆에 앉았다.


“미래시라고 그랬지? [을묘:건록]은.”

“나는 말한 적이 없었는데?”

“예전에 들었어. 루한테.”

“병오... 별 걸 다 이야기하는 사이였네. 그래서 병오를 막고 낙타의 숲을 네가 가지고 가려고?”

“갖고 가는 게 아냐. 잘라 버릴 거야.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해.”

“네 뜻이 그러하다면.”

“어때? 너의 미래시로 보았을 때 나는 병오를 이겨?”


을묘에게 커피를 탄 컵을 전해주며 물었다.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뜸을 들였다.


“그 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뭔데?”

“내가 만약 병오를 못 이긴다고 말하면 너는 포기할 거야?”

“.....”


어려운 질문이다.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왜 못 이기는지 이유를 물어볼 것이고 그 이유를 극복하여 어떻게든 루를 제거할 것이다.


“알다시피 미래는 중요하지 않아.”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어이없네. 너는 미래시로 누구보다 많은 어려움을 피해 왔는데?”

“피한 게 아니야. 노력한 거야.”

“노력이라.....”


모닥불에 땔감을 하나 집어넣으며 ‘노력’이라는 단어를 음미했다.


“웨폰즈 중에서 나보다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 있을까?”

“나야말로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좀 놀랍다. 재오.”

“왜?”

“누구보다 노력한 너니까 알 거 아니야.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은 노력했다고 말하지 않아.”

“그러네. 생각이 짧았다.”


고개를 올려 별을 쳐다보았다. 별이 평소보다 무척 더 멀게 느껴진다.


“[신유:건록]의 힘은 성장과 끈기라고 난 이해 했어.”

“맞지.”

“네 미래를 물어 본다면, 미안하지만 잘 모르겠어. 네가 어떻게 될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

“말해주기 싫구나.”

“아니, 정말 모른다는 거야.”

“너도 모르는 미래가 있어?”


불을 쬐고 있지만 갑작스러운 바람에 한기를 느꼈다. 미래야 항상 확정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웨폰즈는 늘 을묘의 능력에 많이 의지했다. 그래서 을묘가 모른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고, 을묘가 모른다는 건 처음이었다.


“정확하게 내 능력을 말하자면 나는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 미래를 모두 볼 수 있어.”

“무슨 말이야?”


을묘는 지팡이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가운데 사람을 그리고 시간을 상징하는 직선을 그렸다.


“나는 과거를 기억하는 기간만큼 미래를 볼 수 있어.”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너의 범위라는 거지?”

“응. 그런데 그 이후가 보이지 않아.”

“그 이후라니?”

“너는 분명 병오와 만나. 그 후야.”

“그 후가 안 보인다고?”

“정확하게 지금의 미래가 안 보여.”


한숨이 절로 나오는 선문답이다.


“신기하게도 너를 따라가다 보면 과거의 내가 보이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과거로 회귀할 줄.


“을묘의 물상은 뿌리야. 나의 뿌리는 건록의 힘을 따라 무한대로 펼쳐질 수 있어. 아무래도 내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아.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통합되는 것처럼.”

“모든 시간이 현재와 같다는 걸까?”

“어쩌면?”

“어떻게 그 힘을 얻었어? 알려줘.”


확실히 슈리아의 을묘 힘은 비전투능력이라서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이지. 가장 크게 성장했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그 힘이 필요하다.


“노력하면 되지.”

“노력. 마치 그 옛날 국영수 중심으로 학교 수업만 열심히 하면 수능 만점 받는다는 이야기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미안, 한국에서만 통하는 비유였어.”


슈리아는 옅게 웃었다.


“참으로 편견 없는 친구라니까. 넌.”

“재오.”

“응?”

“너는 루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같으냐 물어보면 아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야지.”

“왜?”

“왜긴, 나는 용사잖아.”

“용사. 낭만 있네.”


을묘가 힘을 쓰자 바닥에서 칼과 방패를 든 픽셀 용사의 모양으로 풀이 자랐다.


“네가 말하는 용사는 이렇게 레벨업을 하고 장비를 얻어서 마왕을 무찌르는 영웅인 거지?”

“그러면 다른 용사가 있어?”

“그런 용사는 현실에 없다는 걸 알잖아.”

“왜 없어. 이렇게 레벨업하고 몬스터를 잡아서 아이템을 드랍해서 더 좋은 장비를 갖추면서 나는 성장하고 있는데. 나 심지어 이제는 혼자서 15단계 미궁도 쉽게 잡을 정도로 성장했어.”


슈리아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레벨이 없으면? 게이트 밖에서 너는 용사야?”

“그야....”


어려운 문제였다. 레벨 36의 능력치와 간여지동 스킬, S급 장비를 두루 갖춘 나는 최강의 헌터 웨폰즈 중 한 명으로, 사람들로부터 백귀라는 이명으로 칭송받는 헌터다. 그러나 게이트 밖에서는? 95%가 게이트화 된 이 세상에서 5%의 ‘진짜’ 땅에서 나는 무엇인가.


“봐. 너도 말 못 하잖아. 다른 친구들도 그런 이유야. 게이트가 출현한 지 29년이 되었어. 거의 한 세대야. 오히려 그 이전 세대로 돌아가길 두려워하는 사람들뿐인데. 과연 너의 정의가 명분이 있을까? 오히려 유치한 용사 놀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네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캐릭터인 줄 몰랐네.”

“을묘 고집 어디 안 가지.”


진짜 무서운 애들은 실눈 캐릭터라더니... 하지만 나 또한 지지 않지.


“5%에 있잖아. 진짜 세상에 사는 사람들.”

“5%... 어쩌면 그들은 새 시대에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인류일 수 있어.”

“하하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을묘! 그건 궤변이야. 내 자식 현이와 다미는 최강의 헌터 사이에서 태어난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리고 걔네들이 진짜 신인류인 거고.”

“간단하네! 현이와 다미만 없으면 너도 명분이 없는 거잖아.”


칼을 소환하여 을묘를 겁박하려 했다.


“적당히 해. 남의 자식 데리고 농담하는 거 아냐.”

“너야말로 농담 가지고 함부로 무기 꺼내는 거 아냐.”


을묘의 덩굴은 뱀처럼 칼을 쥔 내 팔을 올라타고는 세게 조였다. 서로 씩씩거리다 을묘가 압박을 풀고는 사과했다.


“미안해. 너의 각오가 어느 정도일까 싶었어.”

“그래... 나도 예민했다.”

“게이트가 없어져도 너는 부모니까. 그보다 위대한 게 어디 있겠니.”


직선적인 성격이 좋은 건 아니지만 슈리아는 너무 완곡하게 표현하는 성격이었다.


“미안한데, 슬슬 할 말 없으면 돌아가 줄래? 아니면 내일 나랑 같이 미궁 들어가던가. 할 말 다 한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직선적으로 나서야 한다.


“답답했구나. 미래를 본다는 건 어쩔 수 없어. 내가 하는 말이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거라서.”

“나는 지금 당장 레벨업만 중요하니까, 레벨업에 영향 미치는 말 아니면 마저 하거나. 아니면 돌아가 주라.”

“레벨업. 재오, 레벨업 하지 마.”

“무슨 말이야?”

“레벨업 의미 없어. 레벨을 올려서 포인트 찍어서 뭐 하려고. 그게 진짜 너야?”

“흥미 있는 이야기다 이건. 해봐.”


턱을 괴고 이야기를 들을 준비 했다.


“레벨을 올려서 만든 네가 정말 이재오가 맞아?”

“으흠 계속해 보시죠?”

“왜 게이트가 아니 낙타의 숲이 이렇게 RPG 시스템을 적용해서 레벨을 올리게 하는 것 같아?”

“강해지고 낙타의 숲에 닿으면 그만큼 게이트가 넓어지니까.”

“그래. 레벨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레벨은 결국 경쟁이야. 직업을 정하고 능력치를 올리고 스킬 포인트를 올리고. 하지만 그건 가짜야.”

“정말 강해지는 건데? 왜 그게 가짜야.”

“네가 강해지는 게 아니잖아. 게이트 속 헌터인 백귀가 강해지는 거야.”

“백귀가 나야!”


을묘는 내 노력을 무시했다.


“그렇다면 게이트를 없애는 건 너를 지운다는 소리잖아!”

“무슨 말이야?”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네가 게이트를 없애 버리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거야. 넌 그런데도 5%의 ‘진짜’ 사람들을 지키겠다며. 그래서 루를 이기고 낙타의 숲을 베어내겠다며!”

“됐어! 짜증 나니까 너랑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래. 네 맘대로 가! 대신 이것만 기억해. 나는 한국에 있어. 이게 내가 친구로서 네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도움이야.”


을묘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슈리아!”

“슈리아 사란!”


차마 다가가 잡지는 못하고 이름만 불렀다.


“기억해. 더 자세하게 말은 못 하는데.... 나는 한국에 있어.”


슈리아가 떠난 숲속은 무척이나 을씨년스러웠다.


몇 년 전 과거의 기억인데 갑자기 회귀를 하게 되면서 미래 예시가 되어버렸다. 이젠 알 것 같다. 슈리아는 내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알고 있던 거였다. 하지만 그걸 그 당시에 말해버리면 미래가 바뀔 것 같으니까 에둘러서 이야기 했던 것.


생각해 보자. 슈리아는 레벨업을 하지 말라고 말했고 본인이 한국에 있을 거라고 했다.


루와의 대결에서 루는 [게임적 리얼리즘]이 끄고 나를 레벨 1로 만들었다. 기껏 전 세계를 돌아 레벨 40을 만들었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간여지동까지 끄지는 못했다. 추측건대 병오 힘으로 낙타의 숲을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 간여지동까지 해제 시켰다면 완전히 맨손 싸움이라 본인도 이긴다고 장담을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루가 깨어나기 전에 나는 어떻게든 재오가 슈리아를 찾게 만들어야 한다. 과거의 슈리아를 만난다면 어떻게든 길이 있을 것이다. 11년 전, 슈리아 사란은 이제 갓 성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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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헌터가 오타쿠에게 빙의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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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00. 사냥감을 잃은 헌터는 누구를 사냥하는가(2) 24.03.05 2 0 11쪽
7 EP01. 판타지는 가난한 자의 현실을 먹고 자란다(6) 24.02.28 4 0 12쪽
6 EP01. 판타지는 가난한 자의 현실을 먹고 자란다(5) 24.02.26 4 0 14쪽
5 EP01. 판타지는 가난한 자의 현실을 먹고 자란다(4) +1 24.02.25 10 1 13쪽
4 EP01. 판타지는 가난한 자의 현실을 먹고 자란다(3) 24.02.21 8 1 12쪽
3 EP01. 판타지는 가난한 자의 현실을 먹고 자란다(2) 24.02.20 5 1 12쪽
2 EP01. 판타지는 가난한 자의 현실을 먹고 자란다(1) 24.02.20 9 1 12쪽
1 EP00. 사냥감을 잃은 헌터는 누구를 사냥하는가(1) +1 24.02.20 2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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