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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퓨이아 님의 서재입니다.

F급이 잘나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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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북십자성
작품등록일 :
2019.07.29 20:40
최근연재일 :
2019.08.13 20:00
연재수 :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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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3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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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313

작성
19.08.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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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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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유례없는 하루 (1)

DUMMY

──2개월 전의 일이었다.

“미치겠네 진짜······.”

안성운은 한숨을 내쉬며 자판기 앞에 섰다.

“매일 신나게 갈구더니 진짜 이렇게 잡쓰레기 버리듯 쫓아내다니, 이게 사람이야 짐승이야.”

억울한 심정에 허공에 대고 말을 건네는 성운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했다.

어제만 해도 직장인이던 그는 항상 상사에게 시달리며 이런 생각을 품었다.

<내가 이딴 회사 언젠가는 그만두고 만다.>

허나 소심한 탓에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고 매일 비굴하게 살아왔다.

그러다가 회사 사정으로 인한 인력 조정에 따른 해고 조치로 뜻하지 않게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유일한 낙은 자판기 커피 하나지만─.

“뭐야, 이거 왜 안 나와?!”

하필이면 바로 그 순간에 자판기는 고장이 나있었다.

“아, 진짜! 내 동전 내놔!”

스트레스가 쌓여있던 탓에 성운은 거칠게 자판기를 두드렸다.

“······하, 내 인생은 대체 왜 이러냐.”

허나 마지막에 가서는 삶을 한탄하며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저기에서 뒹구는 놈들도 원래는 이렇게 살았을까······?’

성운이 바라본 방향에는, 건물들 너머로 허공에서 갑자기 뻗어나오는 거대한 탑이 있었다.

천공탑.

어느 날 갑자기 엑스포 공원 상공에 나타난 거대한 탑.

더는 잃을 것도 없거나 모험심이 넘치는 많은 자들이 들어가 탑의 수호자들과 싸움을 벌이는 곳이었다.

성운처럼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향하는 곳.

‘그래, 까짓거 하고 말지!’

기어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결심을 굳힌 성운은 탑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등을 돌렸다.

‘가자마자 죽으면 본전도 못 챙기는 거잖아?’

소심한 소시민은 보는 이를 더 답답하게 만들 정도로 결정을 잘 못한다.

그런 그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이 시간이면 보나마나 광고겠지.’

별 생각 없이 꺼낸 휴대전화의, 발신자 정보가 없는 문자 내용은 이러했다.

『가지시겠습니까, 갖지 않으시겠습니까? Y/N』

“뭐야 이건?”

들어본 적도 없는 신종 사기나 상술인걸까 싶던 성운은 문자를 삭제하려 했다.

그러나 삭제 표시가 나타나질 않았다.

“고장인가?”

몇 번을 시도해도 똑같았다.

성운의 관심은 문자 입력창으로 향했다.

잠시 망설이던 성운은 속는 셈치고 무덤덤하게 Y를 입력한 뒤 발송했다.

“윽?!”

성운의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주변 풍경에 노이즈가 끼더니, 눈앞에 홀로그램 문자들이 나타났다.

『귀하께서는 탑에 오를 기회를 가지셨습니다.』

그 직후, 성운의 시야가 암전됐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성운은 탑의 입구에 있었다.

소환자와 방문자들이 만나는 장소에.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방문자는 플레이어가 된다. 겁을 지레 먹고 돌아가도 되지만, 탑에 오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잃을 것도 없이 삶에 체념한 인간들이었다.

아마 성운 역시 그래서 소환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곧 그들은 홀로그램 안내에 따라 적성 검사를 받는다.

‘······왜 이렇게 됐냐.’

성운 역시 대기줄에 서있었다.

난데없이 탑에 납치당했다.

살기 막막한 세상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납치 사례는 의외로 많은지 대기자는 꽤 많았다.

“야. 저기 좀 봐.”

“뭐를.”

누군가가 가리킨 방향에는 두껍고 화려한 갑옷을 입고 중무장한 전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이름 앞에는 알파벳이 나타나있었다.

B와 A가 다수이나, S와 SS 같은 문자들은 황금빛으로 돋보이기까지 했다.

“30층에서나 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적성 좋은 신참 데려가서 파티원으로 삼으려는 거겠지.”

“참 할 것도 없는 놈들이다.”

“운 좋게 S급 나와 봐. 인생 역전이잖아?”

“그럴 운이 있었으면 로또나 샀어야지.”

플레이어의 적성은 해당 인물의 능력과 잠재력을 결정한다.

좋은 적성은 시작부터 베테랑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때문에 누구 하나 자신의 적성에 기대를 걸지 않는 자가 없다.

‘적어도 B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다만 성운은 그리 큰 욕심은 없었다.

너무 낮은 등급을 받으면 너무 약하여 죽기 십상이고, 너무 높은 등급을 받으면 보나마나 최전방의 파티에 초대되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신세가 될 것이다.

적당히 죽지 않으면서 차근히 레벨을 올려나갈 수준, 그것이 성운이 바라는 것이었다.

“뭐야, C?! 야이 C, 지금 장난하냐고 C!”

앞에 있던 사람이 안내창에 C 타령을 내질렀으나 안내창이 허무하게 사라지자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떠났다.

마침내 성운의 차례가 왔다.

침을 삼키며 성운은 발판 위에 섰다. 그러자 푸른빛이 성운의 몸을 훑으며 스캔을 시작했다.

『적성 검사 중······.』

안내창이 나타나자 성운은 빌었다.

‘제발 좋게 나와라, 제발······!’

로딩 표시가 몇 초간 이어지는 탓에 쓸데없이 긴장감만이 고조되다가, 마침내 글자가 표시되었다.

‘제발 무난하게······!’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당신의 적성은 「F」입니다.』

“······믱.”

너무 뜬금없고 너무 예상을 빗나가서 성운은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글귀는 변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슬쩍 들여다보던 사람들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이스갓 맙소사! F급이 나왔다!”

“전설은 사실이었어! F급이 나왔다! 채팅창 켜! F급 탄생했다고 알려!”

“인터넷에다 인증사진 올려! 전설은 진짜였다고!”

어느새 주변에서는 대단한 소동이 시작되었다. 하나같이 의도적으로 과장된 몸짓과 리액션으로 F급이란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성운만 빼고.

“······장난하냐고.”

세계 최초의 F급 플레이어 안성운의 첫 소감은 그러했다.

* * *

플레이어의 등급들 중 일반적인 것은 C. 평범하지만 성장에 한계가 있다.

그 다음은 D. C만큼이나 흔하지만 능력치 성장이 느리다.

그 밑은 드물게 E. 보통은 등급을 받자마자 자살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안내창의 설명서에는 분명히 있으나, 실체가 단 한 번도 확인된 적이 없는 전설의 등급이 바로 최악의 능력치와 성장치를 가진 F등급이었다.

현재의 성운은 2개월이 넘도록 5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뭔 엿 같은 상황이냐고오오──!”

성운은 절규했다.


『「F」 안성운 Lv.13』

근력 16

지구력 14

지력 15

생명력 18

방어력 15

저항력 11

기량 8

신성 9


이것이 바로 성운의 능력치.

참담하다못해 부분적으로는 1레벨 B만도 못하기까지 하다.

생명력도 방어력도 의미가 없는 수준에, 그렇다고 공격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천상탑의 시스템에는 무기 숙련도라는 것이 있다. 같은 무기를 계속 다루며 숙련도를 쌓으면 공격스킬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숙련도는 기량을 통해 올리는 것인데 성운의 기량은 겨우 8.

어떻게든 힘겹게 레벨을 올리더라도 능력치 증가량은 보통 1이나 2.

이런 약함 탓에 받아주는 파티조차 없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다.

탑의 각 층은 저마다 다양한 저주를 품고 있다.

수호자들의 공격이 상태이상을 일으키는 것은 저항력 스탯으로 버텨낼 수 있으나, 탑의 저주는 얕봤다간 큰 코 다친다.

“진짜 살기 싫어지네······.”

성운은 내심, 다 포기하고 지상으로 도망칠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상에서도 달리 갈 곳이 없다.

아무하고나 비교를 하자면, 가령 마침 성운의 시야에 들어온 C급 플레이어.

사실 그는 적성 검사 때 성운의 바로 앞이었던 자다.

평범한 C급인 그는 최근 오로라 C라는 C급스러운 별명도 얻은 참이었다.

오로라 C의 레벨은 27.

같은 시간만큼 탑에 있었는데도 성운의 2배 이상.

그런 것이다.

F급의 비참함이란, 그렇게 한심하기 그지없다.

“아니, 성운 씨 아니십니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어떠 A급 청년이 있었다.

이름조차 외우기 싫은 1살 연하의 청년.

발이 넓어서 이곳저곳에 연줄을 대고 있는 놈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성운이 억지로 인사했다.

개인적인 의뢰로 잡템을 모아준 적이 몇 번 있었으나, 그에게는 아 좋은 소문이 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과한 자신감과 잘난 척이 싫었다.

“요즘엔 잘 지내고 있어요? 무리하다 죽진 말고요. 당신 F급이잖아요.”

성운은 속지 않았다.

그가 종종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미 그의 악명은 알 사람은 다 안다.

“제가 지금은 집중하고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이만─.”

“아아, 잠깐만 기다려 봐요.”

대충 둘러대고 자리를 뜰 생각이었는데 그가 갑자기 멈춰 세웠다.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인데, 이거 받아요.”

그가 건넨 것은 약초와 신비한 빛을 가진 사탕.

약초는 잠시 지구력 보너스를 부여해주며, 사탕은 지속시간 동안 상처를 회복시키고 피로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살기 힘들어도 힘내세요, F급 씨.”

성운은 대꾸하지 않았다.

돌아보지도 않고 멋대로 떠나버리는 그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재수 없는 자식.’

일부러 F급이라 부르며 이것을 건넸다.

아마도 그는 성운의 처지를 동정하면서도 동시에 우월감을 느꼈으리라.

성운이 딱히 구걸을 하고 다니는 일은 없다.

하지만 성운은 세계 최초, 유일한 F급 플레이어이다.

그저 돌아다니기만 해도 불쌍히 여겨져서 이런저런 동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성운은 속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결국 기부를 받기 위해 무릎까지 꿇기도 하였다.

거지 행세나 하려고 온 탑도 아니고, 이런 생활을 하려고 목숨을 걸지도 않았다.

성운은 점점 자신의 처지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얼마나 모았더라······.”

기분전환이나 하려고 성운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수호자들에게서 드랍 된 다양한 아이템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수호자들에게서 얻는 물품들은 모두 고액의 가치를 갖고 있다.

플레이어들이 그것을 지상에 유통시킴으로서 천상탑의 경제가 돌아간다고 봐도 좋다.

그러나 그것은 곧 수호자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한다는 소리이다.

F급인 성운은 가뜩이나 성장도 느리고 전투력도 낮기 때문에 상대할 수 있는 수호자가 제한된다.

이것이 더욱 성운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었다.

“······진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세계 최초, 세계 유일의 F급.

안성운은 오늘도 한숨을 쉬며 탑에서 생존투쟁을 하고 있다.

이 날이 그의 인생이 뒤바뀌는 하루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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