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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P의 서재

어느 국회의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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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bero
작품등록일 :
2017.03.14 16:02
최근연재일 :
2017.03.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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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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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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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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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단편] 어느 국회의원의 이야기

DUMMY

[ 어느 한 국회의원의 이야기 ]


"형님, 정말 이렇게까지 하셔야만 됩니까?"

"......."

두 남자가 그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밀실에서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현아, 너도 지금 시국이 어떤지 잘 알고 있잖아. 지금이야말로 내가 나설 때야."

"하지만, 형님......."

제현이라고 불린 남자가 마주보고 앉은 다른 남자의 손을 잡았다. 불현듯, 손을 잡은 제현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어허, 이런 때에 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너도 아직 멀었구나. 다 큰 어른이, 게다가 머지 않아 이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지도, 혹은 그에 준하는 역할을 할 지도 모르는 사람이 이래서 되겠어?"

"하지만, 형님......형님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어째서 형님께서.......그렇게까지........자신을 던져가면서까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도 잘 알잖아, 제현아? 우리나라에 너무나도 깊게 뿌리 박힌 독재 정권의 잔재를.......기회가 왔을 때 모든 걸 바쳐서 뿌리뽑지 않으면 그 독소가 영원히 한국이라는 거목을 괴롭히고, 언젠가는 병들게 할 것이라는 걸........"

"그래도, 형님께서 굳이 희생하시지 않으셔도 가능한 방법이 있을 거에요! 전 그 방법을 찾겠습니다!”

"어리석긴. 이미 특검과 여러 언론을 통해 죄가 자명해진 이 마당에도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하고 증거들을 없애는 데 혈안이 된 모습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 더 이상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단 말이야. 언젠가 네게 이야기했던 '최고이자 최후의 기회'가 바로 지금임을 난 직감했단 말이야!”

제현은 벌떡 일어나 진심으로 소리쳤다.

"전 그래도 믿습니다! 형님께서 희생하지 않으셔도 나라를 망친 저 죄인을 끌어내리고 독재 정권의 잔재를 청산할 수 있다고요! 특검에서 수사하고 국회에서도 힘써서 탄핵을 밀어붙이면 되잖아요! 국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긴 힘들 테니 헌재의 탄핵 인용도 시간 문제에요! 스승님 때와는 입장이 다르다고요!”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멍청한 녀석. 지금 저 자가 탄핵된다고 해서 독재정권의 잔재가 모두 사라질 것 같아?”

이번에는 남자가 의자를 넘어뜨리면서 일어나 고함쳤다. 그 남자 특유의 말투인 ‘멍청한 녀석’까지 나왔다는 게 그가 상당히 화났음을 의미한다는 걸 제현은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그 실상과 썩은 부분을 대한민국 전체에 낱낱이 까발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제2의, 제3의 똑같은 일이 벌어진단 말이야! 국정교과서로 벌써부터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보면 모르겠어? 저들은 끈질겨! 지금 완전히 말소하지 못하면 잡초처럼,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은 잔당들이 다시 서서히 세력을 키울 거라고! 그 때는 누가 나서서 그들과 맞설 거냐? 네가? 내가? 그 때가 되면 우린 늙고 나라는 병들어있겠지. 그 때가 되면 이미 늦는단 말이야! 늦기 전에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한단 말이다!”

제현은 다 듣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렇지만.......왜 하필 형님이란 말입니까......."

"애초에 그 죄인의 최측근이 된 것도 다 이러한 기회가 올 걸 예상하고 일부러 접근한 거잖아? 오히려 난 내 목적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남자는 넘어졌던 의자를 세우고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았다.

"잘 들어, 재인아."

남자가 제현이 진정하고 앉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너는 이대로 죄인을 심판하는 데 앞장서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데 힘쓰도록 해. 너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맡기고 조력하는 것도 좋고. 나는 내 할 일을 할테니까, 더 이상 날 말릴 생각은 마라. 이미 다 계획되고 결정된 사항이니."

"하지만, 형님. 이건.......형님의 정치 생활이, 아니, 사람으로서의 생활이 끝나버릴 수도 있잖아요! 더 이상 대한민국 땅에 발을 못 들이실 수도......!”

"이미 각오한 바인걸. 그리고 그 덕에 대한민국이 좀 더 나아지겠지."

남자는 아무런 무늬도 없는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조국의 발전에 내가 거름이 된다면, 그리고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내 정치생활에 한 점 후회도, 미련도 없어. 스승님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전 여전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어째서 이렇게까지......"

"네가 납득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만든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면 넌 그 때서야 말로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알겠어?"

제현의 얼굴에는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완고한 남자의 태도에 결국 눈물을 머금고 그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형님의 노력과 희생, 결코......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서 독재를 씻어내고 올바른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저도 제 모든 걸 바쳐 노력하겠습니다, 형님!”

"그래, 그래야 내가 아끼는 의동생이지. 잘 부탁한다, 재인아."

남자가 일어나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노파심에 충고한다만, 오늘 일은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돼. 지구상에서 오늘 일을 아는 사람은 너와 나, 단 둘뿐이어야 돼. 알겠지?"

"네, 형님. 부디.......몸조심하십시오......."

"그래, 난 바로 계획을 실행에 옮기러 가 볼게. 너도 철저히 준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 몸 바쳐 일할 수 있도록 해!”

남자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손을 흔들며 나갔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재인은 남자가 나간 문을 향해 큰절을 하며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대한민국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애국자이세요, 형님."



- 몇 달 뒤 –



"문 후보님, 이번 생방송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아닙니다. 대선 후보로서 당연한 일인걸요."

제현은 2017 대선 후보주자 자격으로 한 방송의 생방송 인터뷰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한창 인터뷰가 무르익었을 무렵........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최근 화두에 오르고 있는 한 국회의원에 관한 질문입니다.우선 영상을 같이 보시죠."

"네, 그러죠."

영상의 내용은 최근 대통령의 탄핵 심판 기각을 주장하며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대표격으로 있는 김근태 의원의, 소위 말하는 '막말 시리즈'에 관한 것이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지인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특검이 수사 권한을 넘어서 수사하고 있으므로 불법이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한다면 아스팔트가 피바다로 뒤덮일 것.', '경제가 정의보다 우선이다.'등의 망언을 쏟아내어 온 국민의 분노와 원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물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런 그가 지금까지 탄핵 정국에서 내뱉었던 망언들을 편집하여 영상으로 재미있게 만든 것을 방송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제현은 묵묵히 영상을 시청했다.

영상이 끝나고 진행자가 인터뷰를 시작했다.

"네, 영상 잘 보셨나요? 소위 '망언'으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김근태 의원에 관한 영상이었습니다. 김 의원들의 이러한 발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제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제게 물으실 필요가 있는 질문인지 모르겠네요. 저 사람의 발언들은 이미 온 국민이 분노하는 말들뿐이고, 저 또한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입니다. 도대체 특검과 언론 보도로 상당 부분 죄가 명확해진 대통령을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옹호하려 드는지 직접 물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제현은 김 의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저기, 문 의원님.......?"

진행자가 왜인지 당황스러워했다. 재인의 시선에 보인, 카메라 너머의 방송국 스태프들도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웅성거리고 소란스러운 와중에 방금 보였던 김 의원의 망언을 편집한 영상이 방송으로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의원님! 무슨 일이세요? 괜찮으세요?"

제현의 비서가 재인이 서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티슈가 여러 장 들려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내가 오히려 묻고 싶은데......"

"아니, 의원님 그게.......눈물을 흘리고 계시잖아요?"

"뭐, 뭐라고?"

재인은 손을 뺨에 갖다 대었다. 뜨거운 액체가 오른쪽 눈으로부터 흘러나와 그의 볼을 적시고 턱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도 당황해서 비서가 가져온 티슈도 쓰지 않고 얼른 옷으로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허, 허허! 일정이 많아서 몸이 많이 약해진 모양이야. 걱정 말고 가 있어!”

"저,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의원님?"

"거, 괜찮대도!”

제현은 비서를 보내고 난 뒤 다시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임시로 나가던 김 의원의 영상이 끝나고, 다시 카메라에 재인이 잡히자 진행자가 다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네, 잠깐 다시 영상을 보내드렸습니다만 질문을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문 의원님, 아까 답변 도중에 잠깐 눈물을 흘리신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네? 아, 네, 이건.......말이죠, 그......."

잠깐 뜸을 들이던 제현이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에 아직까지도 저런 부역자가 나서서 대통령의 죄를 덮고 스스로 방패가 되려 한다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한탄스러운 나머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던 것 같군요. 하하.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제현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김 의원에게는 참 고맙습니다. 김 의원이 막말을 계속 해 주는 덕분에 저를 포함한 국민들의 분노가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청와대를 향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잊을 만하면 촛불에 기름을 부어 국민들의 마음 속 불씨를 다시 살려 준다고 할까요?"

재인의 반어적인 표현에 스튜디오에 잠깐 웃음꽃이 피며 밝게 분위기 전환이 되었다. 진행자가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네, 그렇군요. 그럼 계속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은......."



.........그 방송을 TV로 시청하던 전국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김근태 의원 본인도 있었다. 김 의원은 의원실에서 혼자 조용히 방송을 보다가 그 장면을 보고서는 중얼거렸다.

"........멍청한 녀석. 들키면 어쩌려고 연기를 저 따위로 하는 거야?"

특유의 말투로 중얼거리던 김 의원은 자세를 고쳐 잡고 오늘의 일정을 살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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