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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끝 님의 서재입니다.

백리세가 호위무사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하루끝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2.06 11:11
최근연재일 :
2024.03.29 20:20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242,503
추천수 :
6,481
글자수 :
312,105

작성
24.02.13 20:20
조회
9,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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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글자
17쪽

2화: 지나가던 마인

DUMMY

‘왜 나를 치료했소?’


‘당신을 치료하면 안 될 이유가 있나요?’


‘그야 나는···’


‘당신이 마인이라서요?’


‘그렇소.’


‘참 이상하군요.’


‘무엇이 말이오.’


‘지금 제 앞에는 팔을 들어올릴 힘조차 없는 환자 한 명 뿐이라서요. 도대체 그 무섭다는 마인은 어디에 있죠?’


‘······’


‘이제 제가 묻지요.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죽여야 할 침입자입니까? 아니면 평범한 의원입니까?’



꼬끼오~


새벽닭이 울었다. 창문 틈새로 비친 햇살이 장윤의 무거운 눈꺼풀을 찔렀다. 몸을 일으킨 그는 잠자리까지 따라온 과거의 조각을 되새기다가 홀로 중얼거렸다.


“개꿈이군.”


객잔 1층으로 내려왔더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황호였다. 그는 아침잠도 없나 보다. 객잔에서 끼니를 해결하던 그가 장윤을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좋은 아침이오. 장 형.”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 황호가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이렇게 되었소. 이 근처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마침 어제 사귄 벗이 여기에 머무는데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소?”


장윤은 머리를 굴렸다. 황호가 자신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간자일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그의 자세와 기도를 파악했다. 이는 몸이 기억하는 본능이자 무의식이었다. 그리고는 결론 내렸다.


‘그저 우연의 일치인가.’


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강호란 원래 그런 곳 아니겠는가. 어제까지 생판 몰랐던 남과 도원결의를 맺고, 어제까지 둘도 없이 소중했던 인연이 불구대천지수(不俱戴天之讐)가 되는 곳.


안 그래도 이곳 객잔 숙수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마음에 들던 참이다. 아무래도 황호와는 조금 더 오래 지내야 할 듯하다.


황호는 제법 괜찮은 벗이었다. 그가 내뱉는 말의 칠 할은 영양가가 없었지만, 유용한 정보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약간은 과장이지만, 지금 중원은 백리가의 소가주가 누가 되느냐에 온통 촌각을 곤두세우고 있소.”

“그야말로 과장이군. 백리가가 오대세가도 아니고. 호남에서 조금 잘 나가는 가문 아닌가.”

“장 형,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이오. 지금 장강 이남에 정파를 표방하는 세력 하나만 말씀해보시오. 물론 형산파는 제외요.”

“······”

“거보쇼. 말 못하지? 이말인즉슨 뭐다냐, 장강 이남에서 백리가는 정파무림의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는 말이오.”

“그렇군.”

“단순히 그렇다고 넘어갈 일이 아니지. 백리가 대공자의 외척인 남궁세가, 백리가 이공자의 외척인 형산파. 그리고 무림맹. 뭐 생각나는 것 없소?”


소면을 훌훌 넘기던 장윤이 잠시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황호가 던져준 단서를 짜맞춰 보았다. 결론은 금세 나왔다.


“이 년 후 치뤄질 무림맹주 선출의 모의전(模擬戰)이란 말인가.”

“역시 명석하시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솔직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사이가 좋다고 표현하긴 애매하지 않소? 그러니 다들 백리가에 몰려들어서 영향력을 행세하려는 거요.”


마침 무력으로는 후지기수를 진작에 벗어난 대공자 백리혁과 마찬가지로 절정에 들며 잠재력을 마음껏 뽐내는 이공자 백리군.


백리혁은 오대세가의 대표인 남궁세가를 등에 업고 백리군은 구파일방의 일좌인 형산파를 등에 업었다.


장윤이 보기에도 백리가문이 현재 처한 위치가 참으로 절묘하고도 애매했다.


“그러니 백리가 사람들은 줄을 잘 서야지요. 대공자 쪽으로 설 것이냐, 아니면 이공자 쪽으로 설 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아싸리 삼공자를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어쨌든 삼공자도 호남에선 제법 유명한 상단을 등에 업었으니.”


장윤은 사공자 백리운에 관해서 황호에게 물어보려다 말았다. 어제 물어보기도 했거니와, 똑같은 이야기만 주고 받을 것 같아서였다.


“아무튼 우리 같은 낭인이 깊게 생각할 일은 아니오. 일단 백리가에서 우리를 식객으로 받아줘야 줄을 서든가 말든가 하지. 밥이나 후딱 먹읍시다.”


식후에 저자로 나왔다. 목적지는 포목점. 황호의 옷이 낡고 헤졌단다. 장윤도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소화시킬 겸 따라나섰다.


악양 저잣거리는 붐볐다. 그리고 활기찼다. 장윤은 이런 무질서하면서도 역동적인 분위기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과거 그가 몸을 담았던 곳은 엄격한 교리를 준수해야 했기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경직된 분위기가 만연했었다.


‘나쁘지 않다.’


그는 진심 나쁘지 않다고 보았다. 이런 분위기. 신선하고 좋았다.


물론 그렇기에 눈살 찌푸려지는 광경도 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왈패들의 행패. 저잣거리 포목점에서 대놓고 난리를 피는 녀석들. 장윤이 있던 곳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 그러니까 진작에 옷 좀 싸게 줬으면 됐잖아. 왜 우리를 열 받게 해? 엉?”

“아이고···공짜로 가져가셔도 됩니다. 제발 떠나주십쇼.”

“뭐? 그냥 가라고? 너 우리가 거지새끼로 보이냐? 아따 이 아저씨 말 서운하게 하네?”


쾅! 쾅! 콰앙!


왈패의 발차기 몇 번에 무너지는 가판대와 흙투성이가 되어 망가지는 포목들. 상인의 눈에 이슬이 맺히는 건 순식간이었으니.


행패를 부리는 왈패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목에 멍이 들어있는 사내들. 어제 객잔에서 마주친 못난이들이었다.


“저 녀석들 장 형에게 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구먼.”


황호가 씩씩대며 콧김을 뿜었다.


“장 형, 구경만 하시오. 저놈들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 아예 이쪽 부근으로는 얼씬도 못하게 하겠소.”


장윤으로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포목점 상인을 도와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으니. 또한 어제 시비가 걸렸다고 해서 저 왈패를 또다시 혼내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심심함을 해소할 겸, 황호의 실력도 볼 겸 팔짱을 끼고 뒤로 물러섰다.


“네이놈들!!”


황호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내질렀다. 포목점에서 횡포를 부리던 왈패들이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황호의 키는 구척에 가깝다. 근골은 자세히 살펴봐야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으니. 내공의 유무를 따지지 않더라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황호의 등장에 왈패들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그리고는 순간 자신들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이 창피한 듯 되려 황호에게 큰소리를 쳤다.


“덩어리, 너는 뭐냐?”

“뭐긴 뭐야,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대놓고 깽판을 치는데 말리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우리도 명령을 받···너한테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는 없지. 꺼져라. 죽기 싫으면.”

“안 꺼지면 어떻게 할 건데?”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지고. 왈패들이 검을 뽑았다. 이에 맞서 황호는 돌덩이 같은 주먹을 들었다. 장윤은 그가 권법가임을 눈치 챘다.


“설마 검을 안 쓰겠다고?”

“너희 같은 놈에게는 검도 아까워.”

“오만한 놈. 목이 달아나고도 그 소리를 지껄일 수 있나 보자!!”


왈패들과 황호와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쾅! 격렬한 충돌. 황호가 무게를 실은 채 어깨로 들이받았다. 그것만으로도 왈패 하나가 공중을 훨훨 날다가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어이쿠!”


황호가 뒤로 한 보 슬쩍 물러났다. 그러자 그가 있던 공간을 검날이 횡을 그리며 점했다. 잠깐이라도 멈칫했으면 옆구리를 크게 베일 뻔했다.


왈패의 공격이 빗나갔으니 또다시 황호의 차례였다. 황호가 황소처럼 달려들자 왈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어?”

“으랴아아아!!”


빠악!!!


박치기. 황호는 돌머리였다. 분명 같은 이마끼리 부딪쳤는데 왈패 녀석은 동공에 초점이 풀린 채 털썩 쓰러졌다.


‘···무식하군.’


황호의 전투방식을 본 장윤의 평가였다. 어디에도 초식의 묘리나 무도의 궁극을 갈구하는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는 저급한 대결이었다.


하지만 신체의 다양한 부위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점과 타고난 근골이 훌륭하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합격점을 줄 만했다.


이제 남은 왈패 놈은 한 명. 으레 그렇듯 이런 놈들은 숫자가 많을 때 기세등등하고, 혼자 남았을 때는 줄행랑 칠 궁리부터 한다. 도망치면서도 꼭 한마디씩 덧붙이는 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


“네놈들! 그분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서 너희의 얼굴을 봤으니 바로···컥!!”


쐐애애액


어디선가 빠르게 날아온 비수가 왈패의 뒷목에 틀어박혔다. 척수가 절단난 왈패는 입에서 붉은 피를 토하다가 허물어졌다.


날아온 비수는 한 자루가 아니었다. 또다른 한 자루가 황호에게 빠르게 가까워졌다.


위기를 느끼자 본능적으로 장윤의 사고회로가 가속되었다. 세상이 느려지고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두근! 두근! 두근!


호흡소리와 심장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장윤이 비수의 궤도를 계산했다. 비수의 끝이 향하는 곳은? 황호의 견정혈. 놈은 황호의 오른팔을 불구로 만들 심산이다.


스팟!


장윤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어느새 황호의 앞에 나타난 그가 재빠르게 발검했다. 검면과 단검의 끝자락이 정확하게 충돌한다.


까앙!


장윤의 선방으로 비수의 궤도가 절묘하게 바뀌었다. 본래 황호의 어깨를 아작냈어야 할 단검은 위쪽으로 튕겨서 황호의 볼에 얕은 생채기를 내는데 그쳤다.


“제법이구나.”


장년 사내가 인파를 헤치고 모습을 보였다. 지저분한 수염에 덥수룩한 머리와 퀭한 눈. 여러모로 호감 가는 인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세는 능히 일류는 되어보였으니. 황호의 안색이 빠르게 창백해졌다.


“선배는 누구시오?”

“허허, 내 일을 방해하는 후배는 둔 적이 없다만, 그래도 대답하자면 강호에서 비응객이라는 허명으로 불리고 있네.”

“비응객!!”


지켜보던 군중들과 황호가 동시에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비응객은 황호도 익히 알고 있는 별호였다. 검신이 짧은 단검을 주로 사용하고 투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원거리전에 능숙한 정사지간의 고수.


이런 유명한 인물과 안 좋게 엮일 줄이야. 황호의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 한줄기가 또르르 떨어졌다.


“어찌하여 선배는 모자란 후배를 핍박하시오?”

“핍박이라니, 내 일을 방해한 건 너희들이 먼저다만. 나는 이 포목점에 볼일이 있어서 쓰레기들을 시켜서 제일 잘하는 일을 하라고 했다. 헌데 너희가 갑자기 깽판을 치더구나.”


포목점 주인에게 간 비응객이 살짝 입꼬리를 비틀었다.


“오늘이 끝이 아닌 건 알 테지. 나와 척지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자네 딸을 곱게 분칠해서 내가 머무는 장원으로 보내게. 오늘 자정까지 기다리겠네.”


비응객이 여색을 밝힌다는 소문을 듣긴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대놓고 양민을 핍박할 줄이야. 이러면 말이 정사지간의 인물이지, 하는 짓은 사파의 잡졸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격분한 황호가 소리쳤다.


“선배는 부끄러운지 아시오! 조금 힘이 있다고 그 힘을 마구 휘두르면 방금 내가 때려눕힌 왈패와 당신이 뭐가 다르단 말이오!”


황호의 말을 들은 비응객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입조심하거라. 원래라면 버릇없는 네 녀석도 손봐줘야겠다만, 귀찮은 손님이 오니까 물러나야겠구나. 어쨌든 백리지연회에는 참석해야 하니 말이다.”


비응객이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랐다. 수준급의 경신술을 펼친 그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의를 입은 무사들 다수가 우르르 들이닥쳤다. 등쪽에 백리(百里)라고 자수를 뜬 백리세가의 무인들이었다. 상황을 들은 무인들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니까···아 알겠소. 아무튼 자제들 하시고, 시체는 우리가 치울 테니 다들 물러나시오!! 해산이오! 해산!!”


백리가의 무인들이 억지로 인파를 퍼트렸다.

포목점 주인이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비응객이 제 딸을 노리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사정은 딱하나, 백리가에서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백리지연회에 참석하고자 하는 일류고수 하나와 이름 없는 포목점 주인. 어느 쪽이 중요한지는 자명했으니까.


“좋게 좋게 갑시다. 우리한테 매달려봐야 달라질 것 없소.”

“아니! 당신 딸이어도 강 건너 불구경 할 겁니까! 어찌 백리가가 우리에게 이런단 말이오.”

“해줄만큼 해줬지 않소. 가게 앞에 시체 치워주고 비응객 물러가게 해주고. 뭘 더 해달란 거요? 비응객이 당신 딸을 죽인답니까? 그냥 눈 한 번 딱 감으면 될 일을···쯧쯧.”

“어찌···어찌 그런 말을···크헉!”


뒷목에 열이 뻗쳤나 보다. 포목점 주인이 실신하고. 뛰쳐나온 젊은 처녀가 포목점 주인을 안고 오열하고. 딱히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고, 나설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황호 또한 주먹을 꽉 쥐고 분에 떨었으니까.


“장 형···사람이 힘이 있으면 이렇게 해도 되는 거외까?”


들려오는 대답이 없다. 황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장 형?”


장윤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 * *




비응객은 빠르게 장원으로 돌아갔다. 머릿속으로는 얼마 전 우연히 마주쳤던 포목점 딸내미의 얼굴을 떠올렸다.


“살결이 제법 야들야들해보였단 말이지.”


비응객이 군침을 삼켰다. 그 정도면 백리지연회에 참석하는 며칠 동안 데리고 놀 정도는 되었다.


‘그래도 포목점 주인놈이 괘씸하니 돌려보내기 전에 얼굴에 선 하나는 그어줘야겠지.’


마음을 정한 비응객. 그의 뒤통수가 갑자기 아릿해졌다. 낯설지 않은 감각. 누군가 자신에게 대놓고 살기를 쏘고 있다.


“어떤 미친놈이지? 간덩이가 부었군.”


현재 악양에는 백리지연회 때문에 제법 많은 고수가 있다.


그래도 일류 이상의 고수는 흔치 않은 편이고, 절정 이상의 괴물과는 척을 진 일이 없다.


한마디로 지금 비응객에게 살기를 쏘는 자는 목숨이 여러 개가 아니고서야 이미 죽은 목숨이란 뜻이다.


외진 골목으로 슬쩍 들어간 비응객.


곧이어 자신에게 살기를 쏘아낸 정신 나간 놈이 얼굴을 드러냈다.


“응? 너는?”


아까 포목점에서 마주쳤던 무사였다. 자신이 쏘아낸 기습을 막아냈던 녀석. 기감과 반응속도가 제법이라 생각하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따로 쫓아와? 놈의 행동은 용기가 아닌 만용이었다.


“네놈이 내 공격을 막았다고 설마 날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 멍청한 머리를 탓하거라. 내가 제대로 한다면 너는 일 합조차 받아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상대는 말이 없었다. 그저 무심한 눈빛으로 비응객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마음에 안 든 비응객이 소매에서 비수 세 개를 출수했다.


“죽어라.”


정확히 머리 하나 가슴 하나 단전 하나. 세 방향으로 갈라진 비수가 공기를 갈랐고.


깡! 까앙! 깡!


너무나도 쉽게 파훼되었다. 비응객의 눈빛이 흔들렸다.


“뭐냐? 네놈.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비응객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러면 계산을 다시해야 한다. 저 녀석이 어느 정도 실력자인지 파악한 다음 죽이든가 도망을 치든가···


하지만 비응객에게 생각할 여유 따위 주어지지 않았다. 유령처럼 사라진 장윤은 어느새 비응객의 옆에 있었으니.


“헙!!”


숨을 삼킨 비응객이 서둘러 거리를 벌리려고 했으나 한참 늦었다. 장윤이 손이 비응객의 입을 덥석 잡았다.


“읍! 으읍! 읍!!!”


비응객이 손을 뿌리치고자 버둥댔다. 하지만 그럴수록 장윤의 힘은 점점 강해졌다. 위기감을 느낀 비응객이 소매를 펼쳐서 출수하려 했으나,


서걱!!!


공격을 보지도 못했다. 비응객의 오른팔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붉은 선혈이 후드득 떨어지며 땅바닥을 적셨다.


“우읍! 우으으읍!!”


비응객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두려움과 공포에 물들어갔다. 그런 비응객을 쳐다보던 장윤이 천천히 입을 뗐다.


“이런 말이 있다.”


우득 우드득!!!


장윤의 손아귀힘이 강해졌다. 비응객의 입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왔다. 강제로 뽑혀나간 치아가 바닥에 튕겼다.


“강호에 출두하게 되면 가장 먼저 노인과 아이를 조심하고.”


비응객은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으나 무용지물(無用之物). 상대의 힘이 너무 강했다. 턱뼈가 우그러지며 그의 안면이 뒤틀렸다.


“다음은 지나가던 마인을 조심하라고.”


파앗!!


장윤의 몸에서 마기가 폭사되었다. 먹물과도 같은 흑빛이었다. 아직 석양이 남아있는 저녁. 잠깐이지만 악양의 외진 골목에는 밤이 찾아왔다.


하관이 박살 난 비응객의 의식이 흐려졌다. 죽기 전 비응객의 마지막 생각은 이러했다.


‘네가 마인인 줄 어떻게 알아···’


작가의말

작중의 1척은 후한척(23c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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