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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미성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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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미성
작품등록일 :
2018.01.31 18:39
최근연재일 :
2018.02.2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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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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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그 역 - [2]

DUMMY

활공하는 동안 연옥은 자신이 날고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거대한 대포로 쏘아진 느낌, 소름끼치게 무서웠다. 그동안 비행훈련을 해오기는 했지만 언제나 유사시 사고에 대비한 바였다. 이렇게 시가지 위에서 날게 될 줄은······.

그러나 두려워 할 시간이 없었다. 이를 악물고 날개를 움직여 방향을 전환했다. 향상된 동체시력이 아니었더라면 보이지도 않았을 속도로, 주변 건물들을 스치고 날아갔다.

저 아래에 역 입구가 보였다.

연옥은 하강하여 사이를 관통하듯 역내에 진입했다. 비행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슬슬 일이 터질 시간이었다.

승강장에 진입한 다음, 철로를 역주행 하듯 비행했다.

눈부신 헤드라이트. 저 앞에서 열차가 오고 있었다.

저 열차 안에 들어가야 한다. 어떻게? 창문으로? 어려울 것 같다. 천장이 차라리 나아보인다.

그러나 열차와 천장 사이의 틈은 좁아도 너무 좁았다. 그 사이를 날아서 통과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연옥은 강행했다.

날개에 스치는 천장을 느끼며 열차 위를 날았다. 잠시 눈을 감고 주변의 영혼을 느꼈다. 그러자 어느 열차 칸 위에서 일렁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연옥은 날개를 접고 그 칸 위에 안착했다. 다리와 배를 통해 열차의 운동에너지가 엄습했다.


“안착 성공!”


내장이 찢어발겨지는 고통이 분노를 이끌어냈다. 안면에서 불꽃을 피워낸 뒤, 열차의 금속판을 노려보았다. 분노의 시선에 닿은 철판이 녹아내리더니 연기와 함께 구멍이 뚫렸다.

구멍 안에 몸을 던졌다. 열차 내부, 연옥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진입 성공······.”

‘18시 19분 확인, 사건은?’

“지금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 경우 사격하겠습니다.”

‘허가했다.’


연옥은 총을 들고 열차 구석을 바라보았다.

회색 안개가 깔리고 있었다. 승객들 앞을 가로막고 선 연옥은 두 날개를 폈다. 불타는 날개는 일종의 방벽이 되었다. 미지의 안개와 사람들 사이의 화염벽.

안개를 마주한 연옥은 그 안에서 목소리를 들었다. 한국어가 아닌 정체불명의 말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군주의 병사를 감히 막지 말라.’


그리고는 악마의 시선이 쏘아져왔다.

사람을 얼어붙게 하는 시선, 연옥은 일부러 멀거니 섰다. 그 틈을 노리고 구울들을 위시한 악마들이 뛰쳐나왔다.

악마의 모습이 포착된 순간, 연옥은 연발로 맞춘 K2의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와 피격 당한 악마들의 비명이 함께 울렸다. 뇌수를 흘리며 솔방울핥기들이 비명 지르는 가운데, 구울들이 달려들었다.

구울들의 상태가 지나치게 멀쩡했다. 그런 경우 가능한 온전하게 제압하라는 지시가 있었으므로 연옥은 그 무릎만을 쏘아 맞혔다.

연발이었지만 어렵지 않았다. 소총을 한손으로 든 채로도 쉬운 일이었다.

구울들이 달리다 말고 넘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탄창을 교체했다. 악마들은 전부 머리를 맞혀 죽였고, 구울들은 널브러진 상태이지만 아직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안개가 남아있으므로.


“씹할, 씹할! 오진다!”


시민들의 절반은 탈출할 준비를 하고, 절반은 상황을 바라보며 환호하거나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와중이었다.

안개 속에서 포효가 울려 퍼졌다.

남아있던 사람들은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잘 들으면 소 울음소리와 비슷한 포효.

연옥은 총구를 안개에 겨누고 똑바로 섰다. 그 소리가 새로운 악마 출현의 전조임을 알고 있었다.

과연 안개 속에서 또 다른 악마가 뛰쳐나왔다. 머리에 달린 거대한 뿔, 근육질 거대한 인간의 몸체.

타우로스였다. 보통은 거대한 냉병기를 즐겨 쓴다지만 어째서인지 그 손에는 헬기에나 달려있을 법한 개틀링이 들려있었다.

회전하기 시작한 개틀링은 연옥의 시선에 닿은 순간 폭발했다.

사람들 쪽으로 비산하는 개틀링의 파편들을 펄럭이는 날개가 가로막았다. 반면 타우로스에게 튀긴 파편들은 그대로 그 몸에 박혔다.

타우로스는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을 박찼다.

탕, 탕, 탕. 돌진해오는 소머리를 향해 연옥이 사격했다. 전탄 명중. 머리가 반쯤 날아간 채로도 타우로스는 연옥의 앞에 당도했다. 그러고는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며, 몸체만 남은 개틀링을 둔기 삼아 휘둘러왔다.

정면으로 맞설 필요는 없었다. 가능할지 몰라도 불필요했다. 개틀링이 머리를 강타하기 전, 연옥이 살짝 허리를 숙이며 그 무릎을 걷어차자 타우로스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무기를 휘두르던 궤도도 바뀌었다. 빗나간 개틀링의 옆을 연옥이 후려쳤다. 그 쇳덩어리는 악마의 손에서 벗어나 땅을 굴렀다.

연옥은 쓰러진 타우로스의 머리에 추가로 사격하고는, 안개에서 계속 나오는 구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놈들의 무릎도 살짝 걷어차거나 쏘아 맞혀 무력화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우로스는 미동마저 멈추었다. 그것을 확인한 연옥이 보고했다.


“최우선 목표들 처리 완료, 열차 정차 직전······.”

‘부상자는?’


승객들을 쓱 둘러본 연옥이 말했다.


“없습니다. 하지만 잠시 제압해둔 구울들이 아직 남아서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래, 수고했다.’


열차가 정차한 순간, 안개는 사라졌다. 그리고 자리에는 널브러진 악마들의 시체와 땅을 기는 구울들만이 남게 되었다.

다리가 파괴된 구울들이 기어오는 가운데, 시민들은 기겁하면서도 자리에 남아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연옥과 쓰러진 괴물들을 번갈아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며 연옥은 열불이 솟구쳤지만, 굳이 탈출을 독려하고자 윽박지르지는 않았다. 이미 승강장에는 경찰이며 다른 합동경비대 요원들이 대기한 바였다.


“끝났어?”


곧이어 요원들은 열차 안의 구울들을 단단히 묶어 AMB에 옮기기 시작했다. 연옥은 그 작업을 거들려다 말고 멈칫했다.

죽은 악마들의 몸에서 시커먼 기체가 빠져나왔다. 그리고 연옥에게 날아오더니, 연옥의 두 날개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저번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것을 연옥은 기억했다. 그리고 영능에 눈을 뜬 지금, 지금 벌어지는 것이 영혼의 흡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며든 영혼들이 온몸에 퍼진다.

달리는 열차에 안착하느라 충격을 받았던 몸이 가뿐해지고, 온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교육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사람들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남들한테는 보이지 않나? 어째서? 그러나 신경 쓸 상황은 아니었다.

연옥은 고개를 휘젓고는 다시금 작업을 돕고자 했다. 작업하던 요원들이 만류에 나섰다.


“쉬어. 혼자 다 했음서 뭘. 아무튼 잘했다.”

“아뇨, 뭘······.”

“첫 임무부터 대박이네. 십 분 만에 진행한 것치고는 진짜 정신 나간 임무였는데, 표창 수여되지 않을까 이거? 뉴스에 또 나오는 거 아냐?”


어깨를 두들기는 선배들 앞에서 연옥은 어설프게 웃었다. 그러고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거들자니 순식간에 일처리가 끝났다.

그리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때까지 일반 시민들이 남아있었다. 위기에 처한 시민에서 이제는 구경꾼이 된 사람들. 스마트폰을 겨누고는 외치고들 있었다.


“이연옥, 이연옥!”

“슈퍼 빨갱이 이연옥 만세······”


뉴스에서 나온 덕분일까. 실명이 연호되었다. 연옥은 얼굴을 붉히다가 씩 웃고는 합동경비대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 본부에 귀환한 뒤, 동료들의 축하 속에서 몸 상태를 점검받자니 신체능력이 상승되었음을 판정받았다.


“아슬아슬하게 12등급 같은데 이거······. 어디서 영혼약 먹었어?”


*******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임무수행이었습니다. 각 기관이 긴밀히 협조한 가운데 사건에 앞서 예측된 사건을 막고자······”

“이토록 빠른 해결을 수행한 요원은 만수역 구울 사건으로 유명한 이연옥 보안관보로······”

“국내 두 번째 12등급 영능력자 탄생······”


박성진은 뉴스가 나오던 TV를 껐다. 전원 버튼을 너무 세게 누른 나머지 리모컨이 부서지고 말았다. 덕분에 더욱 우울해졌다.

박성진은 자신이 구한 청년을 생각했다. 방금 TV에서 시장이 직접 표창장을 수여받는 모습이 뇌리에 선했다.

인터넷에는 불타는 날개를 휘날리는 초인의 동영상이 돌아다녔다. 그 영상은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서까지 관심을 받고 있었다. 현대의 슈퍼 영웅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자신이 저 비슷한 대우를 받았더랬다. 후퇴 따윈 없는 무적의 캡틴 코리아. 그러나 이제 남은 것은 막 전입한 이등병마저 무시하는 직장 내 왕따요, 주제 파악 못하는 배신자뿐이다.

비록 어려운 처지에 놓였지만 옳은 일을 했노라 자위할 수도 없었다. 사방에서 과도한 폭력에 물든 영능력자의 위험성을 성토하는 마당이니까. 뉴스에서도, 유족들도 옛 영웅을 괴롭혔다. 얼마 전에는 군인 아파트를 떠나 주택에 자리 잡았더니, 집 앞에서 구울들의 유족이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집주인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이 차이를 박성진은 감당할 수 없었다.

술을 마구 들이켰다.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르자 박성진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옷장으로 가서 밧줄을 매달았다. 그 밧줄로 근사한 매듭을 만들었다.

술기운이 용기를 주었다. 모든 것을 끝낼 용기를.

노골적으로 자신을 병신 취급하는 탄약관을 엿 먹일 겸 군에서 총으로 끝내고픈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몸뚱이는 실탄마저 잘 먹히지 않으므로 포기했다.

매듭에 머리를 쑤셔 넣었다. 그리고 무릎 꿇으려던 차,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다시 영웅이 몰락하는가. 전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외눈으로도 보기 괴로운 광경이니 그러지 말라.”


식겁한 박성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챙 모자를 눌러쓴 노인이 서있었다.

다 포기하려던 와중에도 침입자의 존재는 경계심을 불러 일으켰다. 일어서서 술병을 움켜쥔 박성진에게 노인이 말했다.


“옛날에 만났을 때는 날 거부하더라니, 왜 이제 와서 네 영혼을 내게 바치려 하느냐?”

“바치긴 뭘······”

“나는 교수대의 신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환각을 보나 싶어 박성진은 눈을 비볐다. 분명 자신과 저 노인 중 하나는 미친 것이 분명했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먼 옛날 네 조상이기도 했지.”

“내 조상은 한반도 토박인데 할배는 척 보기에 북유럽 출신이시구만······”


박성진의 말을 무시하고 노인이 말했다.


“네 조상이 옛 원한과 오랜 세월을 넘어 자손을 도우러 왔음을 알린다. 영웅이 목 매달릴 것 없다. 목 매달 제물로는 왕이 더 낫지. 왕이 제물로 바쳐지면 그 영토도 정복되는 법이니.”

“그게 무슨······”

“왕을 정복하고 그자의 목을 나무에 매달아라. 그리고 제물로 바쳐. 제물의 대가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라. 전보다 덜 따사롭지만, 영웅에게는 더욱 어울릴 세상이.”


*******


이제 이연옥은 거리에 혼자서 걸어 다니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통에 연예인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거리에서 연옥을 알아본 사람들은 종류마저 다양했다. 자칭 팬도 있고, 무례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둘 다에 속하는 사람도.


“몸뚱이 단단해지는 능력 빼곤 별 거 없던 박성진 그 새끼보다 이연옥 씨가 훨씬 멋있어요······”


한 남자의 말에 이연옥은 안면에서 불을 피워 올렸다. 그것을 팬서비스 해주는 줄로 착각한 남자는 기뻐하며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연옥이 그 폰을 폭발시키고 턱에다 주먹을 날리지 않은 것은 상당한 인내의 결과였다.

나는 분노조절장애가 아니다······.

본부에 돌아와서는 하에스더의 지시대로 명상부터 실시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 합동경비대에 들어온 이후 꾸준히 해온 것이었다. 그 덕분인지 방금 상황도 참아내었다.

어쨌건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본래 영능력자의 등급 상승은 엄격한 절차를 걸쳐 진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미리 보고하고 허가를 얻어야만 영혼약을 복용하여 영적 성장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 악마들의 영혼 흡수니 뭐니 하는 이상한 이유로 성장해버린 연옥은 규정 위반이었지만, 당국은 문책 대신 표창을 내려주고는 새로운 12등급 영능력자의 탄생을 축하해주었다. 영능력자 등급은 봉급에 반영된다. 덕분에 이미 높았던 연옥의 봉급은 이제 삼 년 경력의 선배들과 비슷하거나 더 높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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