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정말 내키진 않지만 오늘부로 난 지구 멸망을 위해 힘써야하는 악당이다. 어쩔 수 없다. 일단 내가 살고 내 가족들을 살리고 봐야지. 그래도 악당 짓을 할 생각을 하면 무지하게 찔린다.
난 악당이다. 뭐 아직 아무 것도 안 했지만, 앞으로 좀 나쁜 짓을 해도 그러려니 할 테지. 그런데 쟨 뭐냐? 지금 TV에선 내가 악당이 된 첫날 있었던 화이트맨의 인터뷰 영상이 방영되는 중이다.
“화이트맨. 저번에 한국에서 있었던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하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더욱 많은 분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저게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웃고 있다. 호탕하기도 하셔라.
“하지만, 모두가 빠져나온 후에 했어도 충분히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요? 실제로도 해일이 닥치기 10분 전에 작업을 완료하신 걸로 아는데요?”
“그런 가정만으로 모험을 할 수는 없죠. 전 모두를 위해 가장 확실한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당당하기도 하시지. 난 앞으로 어떻게 나쁜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한데, 저 놈은 영웅씩이나 돼서 인명을 해치는 일이 참 당당하다. 내가 잘못된 거야? 세상이 잘못된 거야?
“아니 무슨 사이코패스한테 영웅을 시켜 주냐고!”
저 녀석만 아니었으면 나도 악당 따윈 안 했을 수도 있었는데....... 아닌가?
- 악당이 되다(1) -
(중략)
가볍게 몸을 씻고 나오니, 그 사이에 여동생이 와 있었다.
“오빠 왔어? 살 좀 찐 것 같은데? 전 보다 훨씬 낫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세아가 속옷만 입은 날 힐끗 보더니 말을 건넨다. 아무래도 공장에서 일하면서 밥 꼬박꼬박 챙겨 먹으니 마른 몸에 살이 좀 붙은 것 같다. 좋은 일이지 뭐.
“그래, 잘 지냈냐? 넌 좀 빠진 것 같다?”
고작 한 달이지만 사회생활 하면서 터득한 스킬이 저절로 발휘 됐다.
“정말? 요즘 수영 배우는 데 효과가 있나 보네? 이게 은근히 운동량이 많더라니까? 한 번 할 때마다 팔 다리가 막 땅겨. 근데 정말 살 빠진 것 같아? 막 딱 보면 티가 나?”
“크크크. 살 빠졌다니까 좋아가지곤. 겨우 한 달 하고서 그렇게 많이 빠졌겠냐? 그냥 인사 치레로 한 말이다. 내가 요즘 사회 생활하면서 배웠거든.”
(중략)
띵똥.
막 TV를 켠 순간 벨이 울렸다. 아버지가 오신 모양이다. 세영이는 소파에서 둥지를 튼 것 같으니, 내가 열어드려야지 뭐. 아직 속옷 차림이지만 뭐 어때? 집인데.
철컥.
속옷 차림으로 문을 열었는데, 생면부지인 미모의 여성이 서 있다가 소리를 지른다거나, 따귀를 날리는 상황은....... 오지 않았다. 아버지라니까.
“오셨어요?”
“그래 왔냐? 세영이도 와 있네? 바로 옷 입어라. 나가서 먹자.”
얼른 옷을 챙겨 입고 집 근처에 자주 가던 갈빗집으로 갔다. 맛있는 곳이라 자리가 꽉 차 있었다. 다행히 세영이가 예약을 해 두어서 안 쪽 방으로 들어갔다. 얘가 이럴 때 보면 참 꼼꼼하단 말이야.
“일단 생갈비로 3인분이랑 소주 하나, 콜라 하나 주세요.”
“오빠 콜라 말고, 사이다.”
주문하는 도중에 세영이가 끼어든다.
“내가 콜라 먹고 싶어서 그래. 콜라랑 사이다 하나씩 주세요.”
그냥 둘 다 시키고 말지. 샤워하고 막 나온터라 지금은 시원한 콜라가 당긴다.
“네 생갈비 3인분이랑 소주 하나, 콜라랑 사이다 하나씩이요....... 소주는 뭘로 드릴까요?”
"하*트로 주세요."
고향에 왔으니 고향 술로 먹어야지. 솔직히 처음**을 더 좋아하지만 아버지께서 하*트를 드시니까.
"그래 일은 할 만하냐?"
아버지께서 물어오신다.
(중략)
“헹. 결혼은 혼자 하나 뭐? 오빠 여자 친구는 있어?”
세영이 이 녀석이 아픈 데를 사정없이 찌르는구만.
“없다.”
“얘는? 직장 다니다보면 괜찮은 사람 있을 수도 있고, 성실하게 일하는 거 보면 소개도 들어오고 하겠지.”
어머니 말씀처럼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일하는 공장에 젊은 여성은 없다. 다 아주머니들뿐이다.
“엄마. 그런 공장에 젊은 여자가 어딨어? 다 아줌마나 외국인 노동자지. 그냥 나한테 잘보여라 오빠야. 혹시 아냐? 내가 소개시켜줄지? 키힛.”
넌 어떻게 다녀보지도 않은 공장 사정을 그렇게 잘 아는거냐. 신기한 녀석일세.
“어? 고기 다 먹었네? 여기 양념으로 3인분 추가할게요~! 밥도 2공기 가져다 주세요!”
(중략)
양치를 하고, 방에 들어와 막 문을 닫는 순간이었다.
[악당 이용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중략)]
현재 시각 PM. 9:00. 내 눈 앞에 반투명한 빛의 창이 떠올랐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