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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진 님의 서재입니다.

삽살개랑 무인도 정복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아야진
작품등록일 :
2022.07.16 20:09
최근연재일 :
2022.08.24 18:00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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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0
추천수 :
172
글자수 :
60,754

작성
22.07.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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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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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1쪽

<무명도 러브하우스>

DUMMY

- 4화 -


갈매기 한 마리를 통째로 주기로 약속을 하고 나서야 별이는 화를 풀었다. 어차피 내가 죽으면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었지만 별이는 꽤 기대하는 눈치였다. 마치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처럼 파도는 잔잔해졌고 간헐적으로 퍼붓던 소나기도 멈췄다. 갯바위에 앉아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별이를 따라 나도 갯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일 외에는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까. 군대처럼 안 가는 시간.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데 무인도의 시계는 멈춰있는 것 같았다.


“털은 금방 또 자랄 거야.”

“...”

“여기 매일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

“가끔 날씨 좋을 땐 배도 지나가고, 갈매기도 날고, 자네도 봤잖아? 비행기도 지나가.”

“... 오광 호 선장님이 그러는데, 이 섬은 이름도 없는 섬이라더라.”

“섬은 원래부터 이름이 없어. 다 인간이 마음대로 갖다 붙인 거지.”

“... 말 되네.”


다시 먼 바다에 시선을 묶은 나를, 별이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땠어? 자네가 살았던 도시는?”

“뭐 그냥... 별거 없어. 시끄럽고 차도 많고...”

“도시에서 살고 있는 개들은 정말 호텔에도 살고 유치원도 다녀?


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재촉했다.


“그건 주인 잘 만난 운 좋은 애완견들이고.”

“운이 나쁜 개들은 어떻게 되는데?”

“로드킬이라고 들어봤어?”

“...?”

“주인한테 버려진 개들은 들개처럼 여기저기 숨어다니다가 차에 치여 죽어 나가.”

“개 같네.”

“... 개 같지. 도시에서는 사람이나 개나 쓸모없어지면 전부 버려져.”

“그걸 누가 판단하는데?”

“...”

“쓸모가 없어졌다는 판단 말이야. 그 판단을 누가 하냐구.”


이제 사회에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생각은 해봤어도, 그 판단을 누가 하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스스로 씌운 올가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그냥 자연스레 알게 되는 거야. 어느 날 갑자기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내 자리가 사라지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나가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돼.”


별이는 갯바위에 엎드려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런 도시가 뭐가 좋다고...”

“... 널 버리고 떠난 주인이 도시로 갔구나?”

“아들이 아파트에 사는데 거긴 양로원도 있고 병원도 있대.”

“관리비도 있고 층간소음도 있고 미세먼지도 있어. 주차 칸 두 개씩 차지하는 왕재수도 있고.”


별이는 갯바위 위에서 몸을 세워 하울링을 시작했다.


“아우우우우~~~.”

“그건 자꾸 왜 하는 거야? 청승맞게.”

“자네도 해봐. 속이 좀 시원해져.”


진짜 그런가? 여전히 하울링을 하고 있는 별이를 보며 황당하지만 따라 해보고 싶어졌다.


“아우우~.”

“턱 좀 세우고... 더 길게.”

“아우... 우우우~~.”

“아우우우~~.”


무명도에서의 죽음을 결심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개새끼랑 하울링이나 하고 있을 줄도 몰랐지만, 아직 살아있을 줄도 몰랐다. 그래도 아비라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딱 한사람! 그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다.


“... 은비야~~”

“은비? 은비가 누군데?”

“... 내 딸.”

“딸은 밉지 않은가 보네.”

“... 어떻게 딸을 미워하겠어. 능력 없고 부족한 내 잘못인데...”

“아우우우우~~~.”

“은비야~~~~.”


문득 별이가 하울링을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별이도 나만큼 외롭고, 나만큼 절망적이고, 나만큼 죽고 싶지만 버텨내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음을 막아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나처럼 별이도 도시로 떠난 주인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꼭 죽어야겠어?”


별이가 내뱉은 뜻밖의 질문에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죽으러 온 거니까...”

“내일 오광 호 오면 타고 돌아가. 자네 딸 은비가... 어쩌면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무능력하고 가난한 아빠 때문에 부끄럽대... 내가 죽어도 죽은 줄도 모를 거야. 그래서 일부러 아무도 없는 이 섬까지 온 거고.”

“깨갱!”


시무룩한 표정이 신경 쓰였던 건지, 별이는 게 한 마리를 잡아 건넸다. 하지만 이젠 이 섬까지 온 목적을 이룰 시간이 된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난 이제 됐어. 그래도 다행이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혼자 죽을 줄 알았는데.”


무거운 표정으로 갯바위에서 일어서는 나를 따라 별이도 일어섰다. 죽음의 장소로 봐두었던 정상까지는 누구의 동행도 없이 혼자 가고 싶었다. 별이도 그걸 알아챈 것 같았다.


“털은 미안해. 내가 하는 일이 항상 이래...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털은 금방 다시 자랄 거라며.”

“게 잡아줘서 고맙고, 내 마지막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사실 요즘 이렇게 많은 말을 한 적도 없는 것 같아. 갈매기는 잡아주고 죽고 싶었는데...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별이는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더니 축 늘어진 내 손바닥을 핥았다. 순식간에 별이의 따뜻함이 온몸으로 전달되어 오는 것만 같아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마지막 인사 같았다.


“... 이제 그만 갈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 서둘러 돌아섰다. 태풍이 잠잠해진 지금이 죽기엔 가장 좋은 시간 같았다.


<태풍의 눈>


갯바위에 별이를 두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동안 별이의 서글픈 하울링이 들려왔다. 이상하게도 머릿속엔 온통 이 섬에 혼자 남겨질 별이 걱정뿐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오른 절벽의 꼭대기에 서니 갯바위에 있는 별이가 콩처럼 작아 보였다.


“하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싶었던 건 무명도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별이를 눈에 담고 있었다. 까마득한 절벽을 눈앞에 두고 질끈 눈을 감았다. 이제 정말... 갈 때가 됐다. 외롭고 고단한 삶이었다. 삶은 결코 소주 한잔으로 털어버릴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은비야... 아빠가 너무 미안해... 이런 아빠라서... 이런 못난 아빠라서... 미안해.”


쉬이이이익~~.

쾅!

우지끈!


절벽으로 몸을 던지려는 찰나였다. 잠잠했던 태풍이 무명도를 산산조각이라도 낼 것처럼 강하게 휘감으며, 어젯밤 별이와 내가 비를 피했던 집을 순식간에 부숴버렸다. 회오리가 삼켜버린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고 갯바위에 서 있는 별이를 집어삼킬 듯이 높은 파도가 몰아쳤다.


“별아! 위험해!!”


나는 미친 듯이 산을 달려 내려갔다. 집채만 한 파도가 별이를 집어삼켰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헐레벌떡 달려 내려간 갯바위에는 별이가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런 별이를 보자 감당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안 피하고 거기 서 있어! 왜!!”

“... 멍멍.”

“그렇게 죽고 싶으면 그냥 죽어버려! 왜 병신같이 파도를 다 맞고 지랄이야!!”

“...”

“그래! 죽자!! 같이 죽어버리자!!”


성큼성큼 걸어가 성난 바다와 맞닿은 갯바위 위에 섰다. 당장이라도 높은 파도가 달려와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별이는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와 요동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높은 파도를 보며 질끈 눈을 감았다.


촤아아악-.

철썩-.


재난영화에서나 봤던 집채만 한 파도는 어쩐 일인지 갯바위를 피해 쓰레기더미를 때렸다. 작은 파도가 뱉은 물방울들이 별이와 날 씻겨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쏟아졌다.


“씨발... 왜 내 맘대로 죽지도 못하게 하는데!!”


태풍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고, 바다는 보석을 품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촤아악-.


파도에 쓸려온 쓰레기들이 별이와 내가 있는 갯바위 옆에 어수선하게 흩어졌다. 제법 쓸만한 목재와 형형색색의 슬레이트들도 보였다. 같은 생각을 한 건지 별이와 나는 태풍에 폭삭 무너진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명도 러브하우스>


“잘 보란 말이야.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지만 말고.”

“망치가 왜 필요한데?”

“그럼 못을 손으로 박냐? 집 안 고칠 거야?”


오후 한나절을 쓰레기더미에서 보냈다. 제법 많은 양의 목재와 공구, 소품들을 무너진 집 앞까지 옮기고 나니 전에 없던 자신감도 솟는 것 같았다. 별이는 심드렁한 얼굴로 주워온 물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집을 고칠 줄은 아는 거야?”

“가게 쫄딱 망하고 건설현장에서 막노동 짬밥이 1년이야.”


별이는 난장판이 된 마당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기왕이면 별이가 좋아하는 마당을 그럴싸하게 꾸며주고 싶어졌다.


“창문만 크게 내면 끝내주는 sea view 가 나오겠는데... 유리는 안 떠내려오나?”

“...?”

“유리창만 있으면 바다가 더 잘 보일 거라고.”

“할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못 알아보면 안 되는데...”

“오긴 개뿔. 백날 기다려봐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집과 바다를 바라보던 별이가 내게 물었다.


“... 이제... 죽는다는 말은 안 하는 거지?”

“... 보류야, 보류. 잠시 보류. 집 고쳐주고 너 잘 사는 거 보고 나면 죽을 거야.”

“잘 살면 안 되겠다.”

“... 내가 죽는 게 싫어?”

“멍멍.”

“할 말 없으면 짖네.”

“지나가는 비행기 구경하는 것보다는, 자네랑 있는 게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이 감정은 뭐지?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건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딸 아이가 넘어질 듯 넘어질 듯 걸어오다 내 품에 안겼을 때 느꼈던 행복과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아까 죽으러 올라갔다가 왜 다시 내려온 거야?”

“나도 모르겠어.”

“정말 죽어 버릴까봐... 무서웠어.”

“그럼 좀 말리지 그랬냐? 가만히 서 있었던 주제에.”

“... 주인 할아버지가 섬을 떠날 때... 말려도 보고 붙잡아도 봤는데... 소용 없었어.”

“넌 아까 파도칠 때 왜 갯바위에 서 있었던 거야? 죽을 수도 있었어.”


별이는 대답 없이 마당 안으로 공구들을 옮겨놓고 있었다.


“왜 거기 서 있었냐고 묻잖아.”

“거기에 서 있으면... 자네가 와 줄 것 같았어.”

“...!”


참고 참았던 서러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어린아이처럼 마당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내 곁을 별이는 묵묵히 지켜주고 있었다. 사람은 아니었지만 별이를 끌어안고 싶었다.


“별아~~ 이리 와. 나 좀 안아주라.”

“징그럽게 왜 이래. 빨리 집수리나 시작해.”

“분위기 깨지 말고 이리 오라고 좀!”

“징그럽다고!”


그날 밤!

별이와 난 마당에 앉아 새로 지을 집을 설계하며 들떠갔다.


“방은 두 개가 좋겠지? 하나는 내방, 하나는 별이방.”

“징그럽게 왜 자꾸 이름을 불러.”

“아닌가? 그냥 방 하나만 만들어서 별이 끌어안고 잘까?”

“아우우우우~~~.”


털이 홀랑 빠진 닭처럼 마당에 서서 달을 보며 하울링을 하는 별이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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