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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님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님과 반역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우님
그림/삽화
Hololi
작품등록일 :
2020.05.21 06:44
최근연재일 :
2020.06.24 07:26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3,957
추천수 :
266
글자수 :
92,874

작성
20.05.21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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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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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001. 얼떨결에 용사

DUMMY

나는 목을 매달았다.

몽롱하지만, 지금은 의식이 있다. 몇 초나 지났으려나.

그리고 고스란히 압력이 느껴진다.

눈알이 밖으로 튀어 나갈 것 같다. 덕분에 생긴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졌다.

얼굴은 또 어떤가. 터질 것 같다는 느낌 그대로다.

늦었지만 발을 허둥거려봤다. 그저 허공을 붕붕 찰 뿐이다.

예상대로 숨을 쉴 수는 없다. 하지만 숨을 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억지로 코로 물을 들이켜는 것 같기도 하고, 바닷물을 잔뜩 마신 것 같기도 하다.

기침을 하고 싶었지만 기침조차 할 수 없었다.

두피부터 쥐가 나기 시작했다. 팔을 잘못 베고 잔 것 같은 느낌에서, 삽시간으로 머리 전체로 퍼진다.

초점이 흐려진다. 동시에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게 주마등인가.

나는, 내 방 옷걸이에 목을 매달았다.

내 인생은 어땠나. 진짜 별거 없지만.

굵직한 기억들만 지나간다.


기억도 나지 않을 때 부모가 이혼했다는 것을 알게 된 초교 저학년.

중학생 때부터 시작한 전단지 알바.

학교의 일진 녀석들한테 발각되어 당하기 시작한 따돌림.

그게 지속하여 무기력했지만 일할 수밖에 없었던 고교 시절.

겨우 들어간 대학교와 학자금 대출.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존감.

좆 같은 사장들.

주휴수당과 초과수당 얘기하니 자르는 좆 같은 사장들.

휴학 후 군입대.

좆 같은 선임들.

좆 같은 간부들.

좆 같은 후임들.

제대.

좆 같은 2학기 복학.

좆 같은 알바.

좆 같은 과 계집애들.

휴학.

캐삭 전에 아이템 강화하듯 시도했던 사설 토토.

학자금 증발.

작업 대출 후 재시도. 그리고 증발.

원리 균등상환의 미쳐버린 월 상환금과 대출 만기일의 압박.


게임이 질려서 시도한 강화가 전부 실패했으니, 캐릭터는 삭제해도 좋다.

그런 마음으로 목을 매달았다.

사실 토토로 돈 많이 벌면, 좆같이 굴었던 놈들한테 떵떵거리고 싶었는데. 그런 미련이 남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몽롱한 상태에서 이런 생각들을 하는 순간, 고통스럽지만 이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통증도 잘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그 와중에 내가 죽으면 누가 슬퍼할지 생각했다.

아, 적어도 한 명 있을지도.

2학기 복학한 다음, 유일하게 나에게 잘해줬던, 정서빈이라는 여자애.

그걸로 걔도 따돌림받게 됐지만.

그리고 그 때 이후로......

휴학하고 연락 안 했는데 잘 지내려나.

연락 한번 해볼걸.



#




“오오······.”


순식간에 일어나는 빛을 보며 사제들과 귀족들이 감탄한다.

이들이 이것을 겪는 건 3번째. 마계에 대항할 용사를 소환하는 의식이다.

그리고 열 번은 더 되는 시도 끝에, 밝은 빛이 일어났다. 성공했다는 뜻이다.


“성공이야······. 성공이야!”


“이번 용사님은 꽤 강한 분이었으면 좋겠는데요.”


“앞선 두 용사가 실패했으니······.”


사제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빛이 줄어들며,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이 세계의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으며 신기한 복장의 용사.

그렇게 등장한 용사는,


“커헉, 케헥······. 크흐흡······.”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기침을 하고 있었다.

애당초 용사 소환이 3번째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사제들은 당황했다.


“용사님!”


“괜찮으십니까?!”


사제들이 긴 로브를 질질 끌며 용사에게 달려갔다. 누가 봐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기에.

사제들이 가까이 다가서자, 용사는 기침을 이어가며 당황스럽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앞선 두 용사 모두 이런 반응이었다. 소환당하여 갑작스레 낯선 세상에 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순식간에 몰린 사제들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용사는 기침을 멈췄고, 자신의 목을 계속 어루만지며 고개를 휙휙 돌린다.


“갑자기 낯선 곳에 오셨으니, 당황하실 법도 합니다.”


여성 사제가 용사에게 가까이 다가선다. 이젠 설명을 해줘야 한다.

그 와중, 잠시 당황했지만, 용사와의 첫 만남이므로 엄숙한 분위기를 내는 사제들의 뒤편.

뭔가 분주히 움직인다.

기계를 조작하는 이들. 대상의 지력, 체력, 근력, 마력. 모든 것을 종합하여 수치로 보여주는 마도 기계다.

얇은 유리판으로 된 부분에 문자가 새겨진다.

마도 공학자들은 이를 보고 한 숨을 내쉬었다.


“50······. 50이라니······.”


“이건, 평범한 농노보다도 못하잖아.”


한번 한번 작동하는데 값이 들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쓰이는 마도 기계에 나온 수치는 형편없었다.

다들 걱정하는 한편, 금발 머리의 귀족 여성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그녀는 용사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말했다.


“괜찮아요. 수치는 조작하면 되고, 실제로 강하던 약하던 상관없어요. 다들 알잖아요?”


“그렇지만······.”


“어차피, 용사란 돈이 되잖아요. 강하나 약하나······. 마왕을 쓰러트릴수 있네 없네 하지 말고, 출정식 계획과 광고주, 투자자 모집에나 집중하시길.”


“안 그래도 보고드릴 참이었습니다. 이번 출정식에는 광장에서부터 성문까지, 대략 20만여명이 모일 예정이며, 이로 인한 광고효과로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은······.”


“리에니온 공화국의 강경 우파 세력이 마왕 토벌을 위해 투자금을······.”


간단하게 보고를 들은 귀족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용사는 돈이 된다. 마왕을 잡지 않아도, 돈이 된다.

죽으면 그것 나름 아름답게, 인류를 위한 희생으로 포장한다. 어마어마한 조의금은 왕국의 것이다.

그래서 왕국은 용사를 계속 소환할 예정이다.



#



무겁다. 진짜 존나 무겁다.

입대 후 신교대에서 처음 군장을 멨을 때가 절로 떠오른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무겁다. 덥다.

이 미친 뙤약볕에 나는 수십 킬로그램은 될 법한 중갑과 검을 몸에 걸친 채, 수많은 인파의 환영을 받으며 걸어가고 있다.

오넬 왕국 이랬던가.

처음 눈을 다시 떴을 때, 새하얀 빛만 보여서 나는 내가 사후세계에 온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용사님이라니?

뭔가 이상한 곳에 온 것은 틀림없다. 심지어, 소설이나 게임에서나 보던 판타지 세계에 와버렸다.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는데, 이들은 나를 용사라고 칭한다.

근데 보통 이런 상황이면, 힘이 엄청나게 강해진다던가, 뭔가 생기던데.

지금 이 상황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졌지만, 소설이나 게임은 현실과 달랐다.

내 모습은 자살 전과 전혀 다르지 않다.

마른 몸, 덥수룩한 머리, 면도하지 않아 듬성듬성 난 수염.

난 그대로이고, 특별하지도 않다. 그런데 용사란다.

그것도 웃기는데, 나는 지하에 감금당했었다. 대략 1주일.

그 사이에 어느 고위 사제가 나에게 말하길, 뭔가 능력이 있다고는 한다.

그래서 기대했다. 내가 판타지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건가. 근데 내 능력이란 게,

어딜 맞을지 미리 알고, 그 부위의 방어력을 강화할 수 있는 능력.

미친, 아무래도 학창 시절에 하도 맞고 다녀서 그런 능력이 발현된 모양이다.

곱씹어보니 그것도 허탈한데, 이게 대외적으로 홍보가 된 건지.

다들 나를 ‘불굴의 용사, 김백삼’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 순간 나는 내 실명을 밝힌 것에 후회했다. 난 내 이름을 증오한다.

그걸 지금, 이 길을 에워싼 수천, 아니 수만 명의 사람들이 불러제끼고 있으니 환장할 지경이다.

좀 멋있는 가명이라도 댈 걸 그랬다. 덜 쪽팔렸을 텐데.

뭐, 이름은 그렇다고 치자.

나는 절대 마왕을 잡을 수 없다.

싸움이라니, 태어나서 해본 적도 없고, 강하지도 않다. 중학교 시절부터 줄곧 처맞기만 했다.

나는 감금당하는 동안 나의 평범함과 얼마나 찌질한지에 대해 계속하여 말했으나, 이 새끼들은 마치 게임 사이트의 1:1문의 속 자동응답기 마냥, “용사님은 할 수 있습니다.”라며 나를 세뇌하려 들었다.

복장과 대접만 반대일 뿐, 이건 사형장에 보내지는 죄수가 아닌가?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저 인파를 뚫을 자신도 없다.

그런데, 어차피 자살할 거였으니까 상관없나.

하지만 마왕이니 괴물이니 하는 녀석들에게 찢어져 죽는 건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파티원이라는 덩치 큰 남자 녀석이 날 토닥였다.


“용사님, 긴장 되시나 봐요?”


난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땐 몰랐지. 얘가 얼마나 나쁜 새끼인지.



#



“카를라, 아무래도 그 소문 말인데······.”


“쉿, 용사님이 듣겠어.......”


“아니, 아무래도 저 새끼 용사 아냐.”


“쉿! 조용히!”


백삼은 앞서가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다 들린다’라고 생각했다.

큰 덩치의 검사, 레그너와 엘프 사제인 카를라는 용사와 동행을 하게 됐다.

용사의 동행자. 꽤 높은 경쟁률과 힘든 테스트를 겪은 뒤 선발된다.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와 동행하기에 이들에게 역시 엄청난 명예와 부가 쥐어진다. 그렇기에, 모집 시기가 되면 꽤 많은 이들이 지원한다.

하지만 이번 3번째 모집은, 앞선 2번과 달랐다. 용사 일행이 전멸했기 때문이다.

죽은 뒤 얻는 명예가 대체 무슨 소용인가. 3번째의 동행자 모집에서 지원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그리고 세간에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용사란 사실 거짓이라는.

백삼이 계속하여 쳐지며 숨을 헉헉대자, 레그너의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되어갔다.

기본적으로 용사란, 강한 신체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근데 고작 중갑 입고 얼마나 걸었다고 헉헉댄다니?

레그너는 걸음을 멈추었다. 카를라는 안절부절못하며 용사의 눈치를 봤다.

용사 김백삼이 겨우 그들이 선 자리까지 오자, 레그너는 입을 열었다.


“용사님, 곧 있으면 마왕성으로 가는 비밀 포탈 앞인데 말이죠.”


“후우······. 그래서?”


백삼은 눈이 풀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마왕성에 당도하면 꽤 많은 괴물들과 마주하게 될 텐데. 저희 역시 준비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서?”


“그래서, 포탈에 들어가기 직전에 대련으로 몸을 풀까 합니다만.”


레그너는 곧장 등 뒤에 있던 대검을 뽑았다. 백삼은 잠시 주춤했다.


“왜 뒤로 빼시는 거죠? 자신이 없으신 건가요?”


레그너가 대검을 크게 들었다. 휘두르는 궤적이 뻔히 보이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카를라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백삼 역시 검을 뽑았다. 용사의 성검이라고 하던 물건이다.


캉!


백삼이 검을 뽑자마자, 레그너의 내려치는 대검과 부딪힌다.

그리고, 성검이란 물건이 단번에 부서졌다.

거기서 레그너는 곧장 검을 멈췄고, 백삼은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후······. 씨발.”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검을 잡는 법도 잘못됐으며, 성검이라던 물건이 부러졌다.

의심과 소문은 사실이었다.


“씨발!!! 개 좆같네 진짜!”


레그너가 소리 질렀다.


“레······ 레그너, 진정···”


카를라가 그에게 손을 뻗었으나, 레그너는 그 손을 바로 쳐냈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있는 백삼을 노려보았다.


“이딴 새끼를 위해서 몇 년을 고생했다고? 씨발······.”


“······ 난 몰라, 그냥, 시켜서······.”


“좆같네, 후우······. 됐어, 마왕은 그냥 내가 잡고, 내가 용사가 되면 돼. 씨발 진짜.”


레그너는 그렇게 말한 뒤 자신의 가방과 짐 더미를 백삼에게 던졌다.


“빨랑 들고 따라와. 죽여버리기 전에.”


‘······. 아깐 용사님 용사님, 굽신거리더니 태도가 확 달라졌네?’


백삼은 혼자 생각했고, 레그너는 이를 갈더니 포탈이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백삼은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여기도 똑같구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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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12. 위기(수정) +14 20.06.07 184 18 11쪽
11 011. 광체화 +13 20.06.06 167 14 11쪽
10 010. 거래 +6 20.06.05 150 12 11쪽
9 009. 빚 +7 20.06.02 156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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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07. 격돌(2) (수정) +15 20.05.27 225 1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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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03. 재(수정) +6 20.05.21 283 10 12쪽
2 002. 마왕(수정) +8 20.05.21 402 16 15쪽
» 001. 얼떨결에 용사 +19 20.05.21 577 5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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