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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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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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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5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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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이상

DUMMY

‘엄벌’이란, 지상에 사는 사람이 쏟아내는 분풀이.

그게 진실이다.

아이가 억지로 계단을 올라 위로 향한다고 한들, 모두와 함께 지낼 수 없었다.

괴물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며 다시 지하로 추방될 터였다.


“···뭐라고요?”

“나에게서 이기고 싶은 게지. 동시에 제 이모를 이기고 싶은 거고. 그 와중에, 서주 양은 마땅히 교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감히 일탈하지 않고.”

“지금 말 다 했어요?”

“틀린 소리도 아니지 않은가? 이게 서주 양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교화가 끝나고서, 자네는 이모가 그토록 바라왔던 둥지 역할을 해줄 생각이 있는가?”


아이는 절대 지상 사람에게서 인정받을 수 없었다.

희망조차 가져선 안 된다.

금방 겪었듯, 그건 ‘엄벌’을 겪게 만들 미끼였다.

그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두 가지뿐이었다.


먼저 하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

지상 사람에게 무슨 짓을 당하든 반항하지 않으면 된다.

되지도 않을 희망으로 계속 고통받다가 죽어주면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아니겠지.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언제 시간 내서 서로 대화하고 있겠는가? 바깥일 때문에 힘든데, 어떻게 계속 웃고만 있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철 좀 들라 훈계하겠지.”

“······.”

“그러다 다시 사이비에 빠지면? 나 같은 범죄자를 족치고, 서주 양은 치료하려 들겠지. 자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또 다른 한 가지 선택지.

그건 바로 체념이었다.


“매번 그렇게 해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지 않은가? 서주 양이 어떻게 감히 자네에게 반항하겠나?”


평범한 사람에게 범죄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지상 사람에게 아이는 괴물이다.

그러니 굳이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욕설을 들어도 되고, 맞아도 되고, 죽어도 괜찮았다.


마찬가지로 아이는 자신을 괴물이라고 여기면 됐다.

지상 사람은 자신과 다른 종족이다.

이제는 더 나빠질 것도 없었다.

욕을 퍼부어도 되고, 때려도 되고, 죽여도 괜찮았다.


“어찌 감히 자네를 포기하고, 도피하겠는가?”


악마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래서, 제 탓이라고요? 이 난장판이?”

“적어도 선택권은 있었지. 서주 양보다는 말일세.”

“나한테···, 선택권이 있었다고요?”


인영이 악마 앞에서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이 뭘 할 수 있었겠냐는 뜻이었다.


“진짜 저한테 선택권이 있었다면 여기까진 안 왔어요.”


확고한 자기 확신이다.

억울함이 섞인 항변이기도 했다.

이딴 상황 따위는 바란 적도 없다는.


“그래, 원하는 대로 하게나.”


그 모습을 예현이 담담히 바라보았다.


“경찰을 불러와서 서주 양을 데려가게나.”

“자신만만하시네요. 아무리 공권력이라도 종교는 함부로 못 건드린다고, 너무 자신만만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걱정되는가? 알겠다네. 직접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해주도록 하지. 아버지의 이름을 앞세워서 말일세.”


도플갱어는 대놓고 선언했다.

서주를 붙잡아두지 않겠다고 말이다.

유송과 맺었던 내기를 생각한다면 정말 이례적이다.


혹여 서주가 불쌍해서 포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굳이 손대지 않는 편이 인영을 추락시키기 더 좋다고 여긴 걸까.

그건 오로지 당사자만이 알고 있겠지.


“이제 원하는 건 다 얻었군. 만족하는가?”

“······.”

“그럼 돌아가서 다시 서주 양과 일상을 준비하게나.”


그리고 인영 역시 알고 있었다.

이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서주와 원래대로 회복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질지도 몰랐다.

목사에게 의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억지로 떼어내어 봐야 원망만 커질 뿐이다.


기이했다.

요구하려고 했던 모든 일이 이뤄졌다.

심지어 상대는 어떠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협상으로 따지자면 대성공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청사진은 흐릿하기만 했다.


“왜 그런가. 계획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서주 양을 돌려달라 했겠지.”

“······.”

“자, 이제 선택한 대로 행동하면 된다네.”


인영은 단호히 떠나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예현이 올려다보고 있으니 더욱 속이 답답하겠지.

우묵한 눈은 꼭 사람을 위에서 짓누르는 듯했으니까.

그래서인지 이번 침묵은 유독 소란스러웠다.


“하아···, 그럼 한 번만 더 져주기로 하겠네.”


침묵을 먼저 깬 건, 예현이었다.

피곤하기라도 한지, 눈가를 매만지며 근육을 풀었다.

그다음엔 본래 목적이라도 되는 듯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녹음한 예배 내용이라네. 들어보게. 정말 사이비라면 이상한 말을 했을 것 아닌가?”

“······.”

“이번에도 미리 준비했다고 의심하는가? 불쑥 찾아온 만큼 그럴 수는 없었다네. 동시에 나를 사이비라고 확신한다면 혹시나 싶을 말도 많이 했지.”


인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의미로 주는지 생각하는 듯했다.

그 와중에 예현은 느긋하게 지갑을 열었다.

다른 물건이 또 있다는 듯.


“어차피 의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다 그렇게 보일 것 아닌가?”

“그건 그렇겠지만···.”

“아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여기에 연락해보게.”


그렇게 말하며 명함 하나를 꺼내 앞으로 내민다.

그곳에 적힌 이름은 아주 익숙했다.

다름 아닌, ‘피녹호’라고 적혀 있었으니 말이다.


“내 후원자일세. 만나보면 알 테지, 얼마나 부유한 청년인지.”

“그래서요?”

“첫 번째는 증명일세. 보면 알 것 아닌가? 내가 형제자매에게 돈 몇 푼 뜯어봐야 의미 없다는 사실 정도야.”


그 말은 사실이다.

돈 따윈 의미 없었다.

다만, 권력을 원할 뿐.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기회를 주고 싶어서일세.”

“기회? 다시 선택할 기회 말인가요?”

“그렇다네. 방금 말했다시피 부유한 청년일세. 동시에 야망도 있지. 어떤 형식으로든 연을 만들어둔다면 꽤 괜찮은 자리에 고용될지도 모르네.”


아마 인영은 그 말대로 연락을 취할 터였다.

예현이 처음부터 노림수를 깔아둔 대로.


“그럼 이상론을 실천할 여유가 생길 수도 있겠지.”

“이상론이라면 아까 그···.”

“가족끼리 오순도순, 바라는 바 아니었는가?”

“당연하죠. 그럴 수 없어서 포기한 것뿐이지.”

“그럼 그럴 수 있는 상황을 쟁취하게나. 누군가는 평생 바라기만 해야 할, 일생일대의 기회일세.”


욥을 둔 내기.

미리 짜둔 수많은 계획.

예현은 그중 첫 번째 수를 내밀었다.



***


홀로 남은 예현.

조용히 휴식을 취하다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교회를 돌아다니며, 모든 방을 구석구석까지 살핀다.

혹여 누군가 있을까 하는지.


그렇게 확인이 끝나자 교회 문단속을 하고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제 시킨 대로 얇은 벽이 시야를 가린다.

빈약하게나마 차고를 흉내 낸 것이다.


드르르륵!


예현이 셔터를 올린다.

그러자 내부에 있는 새까만 승용차가 드러났다.

썬팅까지 짙은지라, 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끝나셨습니···”

“셔터가 올라가 있다네.”


차 문이 반쯤 열리다가 닫힌다.

예현은 그 모습을 슬쩍 흘기더니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반사된 백미러에는 유송이 살짝 보였다.


“앞으론 조심하게. 보는 눈이 없다는 확신이 들 때만 모습을 드러내게나.”

“알겠습니다.”

“모습을 바꾸는 건, 저쪽 차고에 도착한 후라네. 항상 이를 원칙으로 둘 테니, 자네도 염두에 두도록.”


승용차는 부드럽게 도로로 빠져나갔다.

점차 멀어지는 교회.

목사로서 제대로 행세한 하루는 이렇게 마치는 듯했다.


“그럼 모습을 드러내는 건, 차고가 완전히 닫히고 난 후에 하겠습니다. 그리고 평소엔 주변 확인을 한 후···, 어?”

“무슨 일인가?”

“뒤쪽에 누군가가 교회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 말에 예현이 고개를 돌렸다.

썬팅이 짙어서 어두웠지만, 문을 두드리고 있는 형체는 보였다.

작은 키에 선명한 굴곡이라.

분명 여자였다, 그것도 누구인지 쉽사리 짐작이 가는.


“속도를 줄이게. 티 나지는 않게끔.”

“알겠습니다.”


‘티 나지는 않게끔’

그건 이쪽이 알아챘다는 사실을 숨기겠다는 뜻이다.

다만, 느리게 가는 만큼 더 오래도록 상대를 관찰할 수 있겠지.


“······.”


검은 그림자는 교회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언뜻 보이는 다급함에는 당혹스러움마저 비쳤다.

하지만 별수 없는 일이겠지.

문이나 창문을 깨지 않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테니까.

결국, 작아진 형상은 멀어진 승용차를 향해 뒤늦게 시선을 돌린다.


“이제 골목을 꺾어 들어갑니다. 따로 지시사항 있으십니까?”


승용차가 우회전했다.

서로에게 향하던 시선은 자연히 끊길 수밖에 없었다.

다만, 유송은 가뜩이나 느린 속력을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빙 둘러서 돌아가도 됩니다. 그러면 뒤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흐음···.”

“아니면 잠시 갓길에 주차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내린 다음, 고개만 내밀어서 확인하면 됩니다. 저쪽에선 잘 보이지도 않을 테니 말입니다.”

“아닐세. 그냥 이대로 가지.”


이미 그 머릿속에서 계산이 끝난 모양이다.

유송도 더는 묻지 않았다.

승용차는 다시 속도를 내며 저택으로 향했다.



***


이른 새벽.

녹호는 저택을 어슬렁거리며 태블릿을 끄적였다.

완전히 집중에 빠진 모습이, 밤 동안 계속 이어온 작업인 듯했다.


그러다 피곤했는지, 주머니에서 사진첩을 꺼냈다.

육포를 한 입 씹으며 제 얼굴을 본다.

굳었던 얼굴에는 다시 한결 여유가 생겨났다.


“도련님, 깨어 있으셨습니까?”

“그래.”


그때, 두오가 출근하다가 곧장 다가갔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견적 확인 중이었어.”

“어떤···.”

“집 구조를 바꿔야지.”


녹호는 그런 두오에게 태블릿을 건넸다.


“내 비밀은 아무한테도 드러나선 안 되니까 말이야.”

“아···.”

“내 개인실은 차고랑 연결되도록 둘 생각이야. 동시에, 그 두 곳은 아무나 못 들어오게 할 거고.”

“보안 레벨을 차등하시겠다는 뜻입니까?”

“말하자면 그렇지.”


모든 곳에서 방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밀도란, 부피가 넓어질수록 낮아지는 법.

그렇기에 구역마다 보안 레벨을 따로 두는 편이 좋았다.


“또, 여분 방으로 쓸 만한 곳은 저기 멀리에 둘 거야.”

“저곳이 점 찍어둔 장소입니까?”

“그래. 그리고 시야가 차고에 가지 못하도록 저기 정원수를 줄 세워서 심어둬.”

“알겠습니다. 조경업체에 연락해두겠습니다.”

“아, 산책로도 손 봐야 해. 보안 레벨이 낮은 곳일수록 밝은색으로 마감해. 무의식적으로나마 차고에서 먼 쪽으로만 돌아다니도록.”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크게 주의할 필요가 없다.

각자 허용 구역을 제한해두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는 순간은 낯선 사람이 들어왔을 때겠지.


손님이거나 불청객이거나.

뭣도 모르기 때문에 우연히 차고 쪽으로 갈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석 색깔까지 바꿀 요량이다.

무의식적으로 차고와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말이다.


작가의말

역시 나쁜 짓일수록 꼼꼼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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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캐비어 알탕 +1 24.01.30 56 1 12쪽
31 31화. 빚 +1 24.01.29 59 1 12쪽
30 30화. 모텔 +1 24.01.26 68 1 12쪽
» 29화. 이상 +1 24.01.25 58 1 12쪽
28 28화. 엄벌주의 +1 24.01.24 58 1 13쪽
27 27화. 욥 +1 24.01.23 63 1 12쪽
26 26화. 고래 사이 새우 +1 24.01.22 62 1 12쪽
25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1 24.01.19 69 1 12쪽
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3 24.01.18 76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80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78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90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94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93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100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111 3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112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127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123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30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37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35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56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7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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