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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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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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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1.1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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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DUMMY

그 말대로였다.

언제든 신분을 훔치고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었다.

당장 죽이고서 며칠 뒤, 유송의 행세를 하다가 돌연 사라지면 된다.

그럼 아무리 조사해도 허공에 증발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


“저도 대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이메일로 경찰에 예약 메시지를 보내면 됩니다. 정원에 시체가 묻혀 있다고.”

“하, 협박이야?”


녹호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일이다.

돈과 능력이 있었고, 이를 활용해 무마할 방법을 짜내면 됐다.

치밀하지 못한 반항 따위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저는 녹호 씨를 적대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런 대비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입을 닫고 있어야지. 내 성격 긁지 말고.”

“아니요, 그러면 안 됩니다. 정말 당신을 위한다면 그래선 안 됩니다.”


하지만 유송은 반항하려고 꺼낸 말이 아니었다.


“지금은 괜찮아 보이겠지만, 언제까지고 괜찮기만 하겠습니까? 언젠가는 문제가 생길 겁니다.”

“······.”

“더군다나 아직 어머님께 미련이 있지 않습니까. 당당하게 만나 뵈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간언이었고 걱정이었다.

녹호로서는 혼란스러운 경험일 터였다.

제 말에 반박하는 아군이라니, 어떻게 대할지 몰라서.


“···미리 몸 풀어둬. 흙 파야 할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저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


덥디더운 유리온실.

녹호는 화단에 걸터앉았고, 유송이 삽으로 화단을 덮고 있다.


“야, 역시 두 번째라서 빠르네. 경력직이 좋아?”


흙더미에 시체 하나가 더 안착했다.

이게 끝일지 아닐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그저 살인이 더 없기를 바라야만 했다.


“다 했으면 슬슬 가지.”

“후우, 후우···. 알겠습니다.”


유송은 땀을 뚝뚝 흘리면서 삽으로 바닥을 짚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40도는 될 법한 기온에서 사람만 한 흙더미를 퍼냈는데 어떻게 안 지칠까?

더군다나 따로 운동해 오지도 않았을 텐데.


“이제 아저씨 부르고 쉬어.”

“후우, 알겠···. 예?”

“아저씨 부르라고.”

“여기로 부르면 이 현장을 보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이동해서···”

“그럴 필요 없지. 서로 다 알고 있는데.”


그 말대로였다.

두오 역시 전말을 모두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이제와서 배신하기에는 너무나 깊이 들어오기도 했다.

잘못 폭로했다간 지하시설까지 모조리 걸리고 마니까.


이번 시신 처리 역시 별일은 아니었다.

삽질 정도는 얼마든지 협력해도 좋았다.

그편이 더 빠르고 효율적이었겠지.


“왜? 불만이야?”

“아닙니다.”


혼자서 해야 했던 삽질.

아무래도 어머니를 들먹인 벌이었던 모양이다.

유송 역시 크게 불쾌한 반응은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어쩌면 이쪽이 더 안심이었을지도 모르지.


“부르셨습니까?”


잠시 후, 두오가 유리온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대충 알지?”

“현재 상황을 물으신 거라면, 그렇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미 유리온실에서 했던 일을 알고 있다.

갑자기 가방을 들고 이쪽으로 들어왔다면, 뻔하다고 보는 것이다.

아니, 단지 그뿐만은 아니겠지.

새롭게 생긴 문제, 그리고 해결책도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다만, 그 빈자리는 어떻게 하실지···.”

“뭘 물어? 당연히 내가 가져야지.”

“알겠습니다.”

“CCTV도 알아서 지워두고, 필요한 작업이 있으면 처리해서 보고해.”


방금 한 뒤처리만으로도 큰 무리는 없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의 시각, 두오에게 확실한 마감을 지시했다.

이런 일일수록 철저한 편이 좋았다.


“그리고 조사한 내용을 듣고 싶은데.”


녹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온실 밖으로 나가자, 두오 역시 그대로 뒤따랐다.


“영화관에 자료 준비해뒀지? 최종 조사라고 했으니까 말이야.”

“그렇습니다만, 추가 조사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최종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그렇게 대충이었지?”

“그건···”

“아, 됐어. 듣다 보면 알겠지.”


바로 옆 별관.

영화관은 그중 1층이었다.

별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영화관은 평소와 비슷했다.

빔 프로젝터가 하얀 벽을 주시했고, 소파와 테이블은 관람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천장에 촘촘히 박힌 조명이 환하게 빛난다.

화면이 비칠 벽은 어두컴컴한 것이, 밝은 상태에서 진행할 듯했다.


차이점도 있었다.

미리 준비된 간식은 옆에는 문서 뭉치와 통장이 얹어졌다.

죽은 예현이 남긴 물건이다.

화이트보드가 소파 옆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수성 매직과 자석도 미리 준비해놨다.

브리핑 도중 메모도 할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다.


“시작하겠습니다.”


두오가 준비한 ppt를 띄웠다.

제목만 덜렁 띄운 첫 장이 넘어가자, 목차가 눈에 들어온다.


“기본 인적 사항, 생활 패턴, 인물 관계도 순으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우선, 흥신소에서 의뢰한 내용입니다.”


김예현, 사진과 나이가 적힌 프로필이 화면에 떠올랐다.


“이름 김예현, 성별 남성···”

“다 빼고.” “예, 특이점만 짚겠습니다. 흥신소에서 신원을 조회했지만, 큰 과거사를 찾지 못했습니다.”

“조사 내용을 말하라고 했을 텐데? 왜 실패를 말하지?”


질책하는 말.

하지만 두오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 사실이 가장 큰 특이점입니다.”

“흐음?”

“실력이 괜찮은 곳입니다. 그런데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면, 오히려 이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김예현은 중년입니다.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흔적이 남았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러 행적을 숨겼다는 말이야?”

“예. 아마 떳떳하지 못한 과거가 있어, 따로 신분 세탁을 한 듯합니다.”


지금도 사이비 목사 노릇을 한 사람이다.

지워야 할 과거라면 당연히 동종 전과겠지.


“사기꾼이라···. 판을 크게 키우면 예전 피해자랑 마주칠 수도 있겠는데?”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정도라면 분명 개명과 성형 수술을 동시에 했을 겁니다.”

“흥신소가 정말 믿을 만한가 봐?”

“경험상 일 처리가 허술하진 않습니다. 금액에 따라 그 깊이 차이가 있어서 문제입니다만···.”


한 번 눈치를 보고서 계속 말을 이었다.


“검경에 접근하면 알 수 있을 듯합니다.”

“범죄자니까 조회가 가능하다?”

“예. 불법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추가 조사라는 말이 이 때문에 나왔겠지.

돈을 더 들여서 작업을 의뢰해야 하니까.

물론, 녹호가 도덕성이나 금액을 고려해야 하는 처지는 아니었다.

알아서 진행하지 그랬냐고 불호령이 떨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의외로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인다.

반개한 눈꺼풀 아래로 고요한 계산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그러다 결론이 났는지 자세를 고쳐 앉고서 입을 열었다.


“···됐어. 중요한 일 아니니까.”

“그래도 알아둬야 만약에 대비할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지. 그런데 함부로 들추다간 그 만약을 만들 수도 있는 법 아니겠어?”


두오가 방금 한 말을 곱씹어 들었다.

그리고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흥신소는 기록을 남길 겁니다. 그걸로 협박할 만큼 신의 없는 곳은 아니지만, 다른 고객이 조사를 의뢰하면 자료를 내어줄 겁니다.”

“범죄자 조회는 보통 지문으로 하나?”

“그렇습니다.”

“흠, 지문을 바꿔둬야겠어. 혹시나 모르니까 말이야.”


누군가 지문을 훔쳐서 예현을 뒷조사할 수 있다.

정체를 알아내 과거 행적을 폭로한다면 상당한 타격이 되겠지.

그리고 그런 소란은 경쟁자, 언론인, 정치인이 아주 좋아할 만한 소재다.


그렇기에 녹호는 철저히 대비했다.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막을 수 있는 재난은 미리 막았다.

극적인 위기 따위, 허용하지 않았다.


“두 번째 항목으로 넘겨 봐.”

“알겠습니다. 다음은 생활 패턴입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김예현은 골프장 출입이 잦았다고 합니다.”

“골프장?”

“예. 외출한 날엔 그곳에서 성공한 사업가 행세를 하며 지냈습니다.”


사기꾼이라면 충분히 할 법한 행동이다.

좋은 투자 종목이 있다는 말로 돈을 뜯을 수 있으니까.

다만, 녹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동시에 두 가지 사기를 진행한 듯합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예배 전날, 그러니까 화요일과 토요일은 항상 교회에 있었습니다. 세뇌를 위해 모든 과정을 매번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할 셈이라고 하기엔 할애하는 시간이 비등합니다.”


월, 목, 금요일은 골프장.

화, 수, 토, 일요일은 교회.

둘 중 하나를 사소하게 여겼다고 볼 수는 없었다.

모두 진심을 다해서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겠지.

두오가 한 판단은 그렇기에 합당했다.


“···아니야.”


하지만 녹호는 반대 의견을 표했다.


“다른 생각이십니까?”

“생각을 해봐. 투자 사기를 친 다음엔 도망쳐야 하잖아? 그럼 교회는 어떻게 하고?”

“그건···.”


골프장에서는 친분을 만들기는 쉬운 편이다.

투자금을 뜯어내기까지, 몇 개월 내로 끝낼 수 있다.

금세 작업을 끝내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잠적해야 한다.


하지만 사이비 교회는 자리를 잡기도 힘들지만, 두고두고 수익을 낸다.

장기적인, 어쩌면 영구히.

도망치기보다는 뻔뻔하게 제자리에서 버텨야 할 일이다.

투자 사기와는 완전히 반대였다.


“골프장으로 해 먹으려면 교회까지 위험해지지. 하나는 작업 칠 생각이 없다는 뜻이야.”

“그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럼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라고 항상 생산성 있는 일에 매달려? 그건 아니잖아.”


그런 모순 속에서, 녹호는 짐작이 간다는 양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순한 취미인가 보지.”

“취미···, 말입니까?”

“그래.”


준비한 문서 뭉치를 들고 화이트보드로 간다.

그다음 자석으로 한 장씩 전시하듯이 붙여댄다.

전부 교회와 관련된 내용이다.


“교회는 일이고, 골프장은 취미야. 성공한 사업가인 척하면서 논 거지.”

“고작 그런 일에 사기를 쳤단 말입니까?”

“사기가 아니라 허세라고 봐야지.”

“그렇다면 말이 되지만···.”

“그나저나 정말 천직이네. 업무를 생활화하고 있다니, 직업 선택을 잘했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부풀리고 싶어 한다.

명품과 짝퉁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예현이 골프장에서 거짓말을 일삼은 이유도 그런 맥락이었을 터였다.

허영심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어서 허세를 부렸고, 그게 사기 행위로 이어졌겠지.


“그리고 성공한 사업가라는 말도 틀린 건 아니더라고.”


녹호는 장부를 펼쳐서 두오에게로 내밀었다.


“나름 벌이가 괜찮더라. 십일조 내는 신도 열 명만 모아도 앉은 자리에서 한 명 월급이 나오잖아?”

“단순 계산상 그렇긴 합니다.”

“여기서 주일헌금, 건축헌금, 감사헌금까지 받으면 훨씬 두둑하지.”


역시 사이비인지라, 다양한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

작은 규모인데도 꽤 많은 수익을 올렸을 정도다.

물론, 녹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금액이겠지만.


작가의말

...

저는 종교 문제에 관심이 없습니다.

주인공이 무슨 말을 하든, 그게 작가의 사상을 나타낸다고 할 순 없습니다.

제가 피카레스크를 쓰는 이유는 할 말 못 할 말 안 가리고 쏟아낸 다음, ‘점마가 그런 거지, 제가 그랬나요?’라는 변명을 위해서입니다.

부디 무조건적인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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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99 세비허
    작성일
    24.02.26 05:51
    No. 1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55 아르잔
    작성일
    24.07.27 17:18
    No. 2

    멀쩡한 새끼가 하나도 없네 싶은 마음이 슬슬 들었는데
    피카레스크를 쓴다길래 그게 뭔가 검색해보고
    이 소설은 이런 소설이구나 하고 이해했습니다
    주인공 뿐만이 아니라 주요인물들도 도덕적결함이 있는 악당인 장르라니..
    히어로없는 아포칼립스물 하고 비슷한건가..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8 icya
    작성일
    24.07.28 03:47
    No. 3

    악인의 입장으로 사건을 보기 위한 장르입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을 다양하게 이해할수록 좋으니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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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욥 +1 24.01.23 64 1 12쪽
26 26화. 고래 사이 새우 +1 24.01.22 63 1 12쪽
25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1 24.01.19 69 1 12쪽
»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3 24.01.18 77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80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78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90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94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93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100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111 3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112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127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124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30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37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35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56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77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9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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