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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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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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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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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950

작성
24.01.2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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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7화. 욥

DUMMY

“오랜만이에요!”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 않니?”

“그래도요.”


고작 며칠.

그것도 이전과 같은 생활을 이어갔을 뿐이다.

새삼스레 힘든 일일 리 없었다.


하지만 그건 육신에 한정된 얘기.

서주에게 집이란, 더 이상 휴식 공간이 아니다.

가족은 말 몇 마디로 자신을 유린한 괴물이다.

그 당시엔 발가벗겨져서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겠지.


“유난히 일찍 오기도 했구나.”

“네, 꼼꼼히 준비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부탁?”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배가 끝나고 상담을 하고 싶은데···.”


큰일이라도 되는 양 긴장한 모습.

아마도 상담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나 움츠러들 리 없을 테지.


하지만 못할 얘기도 아니었다.

무려 직접 축복까지 받았다.

비밀을 공유하기도 했고, 단둘이 있을 때는 예현도 다정한 말투를 썼다.

서주로서는 충분히 바랄 수 있는 일이다.


“흐음.”


예현은 손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당장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듯했다.

침묵은 길어졌고 어딘가에선 초조함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목사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힘들겠구나.”


서주가 비틀댔다.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했는지 얼굴에는 절망감까지 서렸다.


“예배 끝나고 올 손님이 있단다.”

“손님···.”

“일찍이 잡힌 약속인 만큼 취소할 순 없을 것 같구나.”


하지만 뒤이어 나온 이유에 어렵게나마 고개를 끄덕인다.


“예배 준비는 여기서 쉬다가 시작하렴.”

“정말요?”

“아직 이른 시간이잖니? 아니면 해야 할 일이 많은 게 아니라면, 천천히 시작해도 된단다.”


예현이 한 조각 작디작은 보상을 내렸다.

그러자 서주는 이를 덥석 받아 물었다.


“급한 일은 없어요! 감사합니다!”

“다행이구나. 그럼 아무 곳이나 편히 앉으렴.”


체면도 없이 단발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종종걸음을 치며 냉큼 소파에 앉았다.


사각사각


업무실은 조용함이 편안하게 흘렀다.

예현은 쉬지 않고 예배를 준비했다.

서주는 그 모습을 힐끗대면서 휴식을 취했다.

휴대폰을 만지거나 눈을 감고 쉬거나.

그러다가 예배 준비 시간이 됐는지, 홀연히 밖으로 나간다.


점차 문 너머에는 북적거리는 소리가 커진다.

사람이 한둘씩 오고 있다는 뜻이다.

그때쯤 되자, 예현도 서서히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그리고 펜을 내려두고서 두 눈을 감았다.


“······.”


긴장을 낮추기 위한 명상.

밖과 달리, 집무실은 고요가 내려앉았다.

어쩌면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 정적도 한 진동 소리와 함께 깨졌다.


“···되었나.”


예배 시간이 되었다.

예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향했다.

그러자 시선 삼십여 쌍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오늘도 예배 잘 부탁드립니다.”


수많은 인사말이 지나갔다.

당연하게도 그 안에 든 감정은 호의.

사람이 바뀌었다고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 자네들도 잘 지냈는가?”

예현도 자연스레 인사를 건넸다.

신도가 모여 있는 의자를 가로지르며 한 명 한 명씩 악수를 나눴다.


“네, 별 무리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굽어살피셨다는 뜻일세.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게나.”

“예, 목사님.”

“저도 집에 작은 경사가 있었어요.”

“아버지께서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니, 정말 축하할 일일세.”

“아···. 맞습니다, 목사님.”


걸음마다 훈훈한 덕담이 오갔다.

누가 봐도 자연스러웠고 또, 훌륭한 종교지도자였다.

진짜인지 아닌지를 넘어, 사이비라고 의심하기도 힘들었다.

연기는 완벽했다.

단 한 순간을 제외하고선.


“며칠 전에 또 귀한 손님이 왔다 갔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목사에게 답했다.

그 얼굴은 도플갱어에게 매우 익숙했다.


“···그렇, 그런가?”

“네, 전부 목사님 덕분입니다.”


다름 아닌, 그 친어머니였으니까.


“내가 한 일이 무어가 있겠는가? 아버지께서 손을 내미신 덕이지.”

“돈까지 필요 이상으로 생겨났습니다만···.”


아주머니가 곤란한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도 있는 법이다.

간 작은 사람은 갑자기 돈이 들어오면 당황하기도 하니까.


“당장은 아껴두게나. 혹여 모를 일 아닌가, 갑자기 일이 생길지.”


예현은 그 모습을 보다가 몸을 휙 돌렸다.

손을 뻗어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시 발길을 재촉해, 남은 사람들을 한 번에 가로질렀다.

단상에 도착해서야, 겨우 한숨을 내쉰다.


“···그나저나 대화하길 꺼리는 형제자매도 보이더군.”


흔들렸던 호흡을 다잡는다.

중후한 얼굴은 능숙하게 새 조명 장치를 조작했다.

그러자 신도가 있는 쪽은 어두워지고, 오직 목사만이 환하게 보인다.

마치 뮤지컬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최근 힘든 일을 겪은 이가 있는가?”

“······.”

“괜찮다네, 말해보게나.”


도플갱어의 첫 예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시작은 관중을 재촉하는 것.

그러자 눈치를 보던 신도 한 명이 입을 연다.


“···남편이 다쳤어요. 일을 나가야 하는데, 다리가 부러졌어요.”


조용한 와중에 울리는 목소리.

신도는 말하면서도 눈치를 보았다.

모두가 감사하다고 하는 와중에, 혼자만 불평하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네. 갑작스레 겪은 재앙에 누가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네···.”

“어떤 옛사람도 우리의 아버지를 저주한 적 있었다네. 참으로 슬픈 일이지.”


예현은 느긋하게 좌중을 살폈다.

시선은 진중하고 표정은 중후하니, 묵직한 느낌이 주변을 배회했다.

마치 이 공간을 통째로 손아귀에 넣은 듯했다.


“혹여 걱정하지는 말게나. 그분도 종국에는 축복받았으니 말일세. 흠, 그래. 이번에는 그 이야기가 좋겠군.”


거짓말.

하지만 목사는 멍청하게 문장으로 현혹하지 않았다.

은연중에 즉흥적으로 하는 얘기라는 어조를 띄었고, 진솔한 사람인 척 가장했다.

말을 꾸미는 것이 아닌, 상황을 연출해서 신뢰를 심는다.

직접 속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믿게끔.


“욥이라는 인물이 살았지. 아버지를 진심으로 따랐고, 풍요를 누리며 살아왔다네.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고, 수많은 가축을 거느렸다지.”

“······.”

“이 인물을 두고서, 사탄은 아버지께 내기를 제안했다네. 과연 아무리 신실한 인간이라도 고난을 겪는다면, 제 창조주를 원망하지 않을까 하고 말일세.”


미리 준비한 각본에는 욥이 존재했다.

녹호가 말하길, ‘고래 사이에 낀 새우’라고 했지.

그 고래가 사탄과 하나님인 모양이다.


“아버지께서는 그 내기에 응하셨다네. 다만, 그 몸을 상하게 만들지만 말라고 하셨지.”


인영을 두고 한 비유이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내기 대상이 됐으니 말이다.

그나마 유송이 끝까지 지키려고 했으니 다행일 테지.

하나님이 그 몸만은 상하지 않도록 보호했듯이.


“사탄은 그 가축과 가족을 모조리 몰살했다네. 이유도 알 수 없는 고난이 계속 닥쳐왔지. 참 의아한 일 아니겠나? 전지하신 아버지께서 왜 이리도 무심하신지.”

“아···.”

“결국 욥은 하늘을 향해 외쳤다네. 자신에게 왜 이러느냐고. 이런 벌을 겪어야 할 정도로 큰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제발 구해달라고.”


예현은 성경에 적힌 일을 간략하게 추려서 전달했다.

예언이기도, 계획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욥, 인영을 빗댄.


“결국, 목소리는 천상에 닿았다네.”


마음대로 간추린 성경이 그 입을 향해 흘러나온다.

어떤 의미로는 비약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거짓 한 점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더욱 두려운 법이다.


성경이 지닌 신뢰.

계속 쌓아온 권위.

그 두 가지는 신도에게 의심을 빼앗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언처럼 마력을 지니며, 계획처럼 단단함이 느껴진다.

굳이 윽박지르지 않더라도,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위대하신 분이 욥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 그리고 가르침을 내렸다네.”

“······.”

“한낱 인간이 천상의 뜻을 어찌 판단하느냐 꾸짖었지. 하지만 신앙을 버리지 않았음을 치하하기도 했다네. 그동안 빼앗은 모든 것을 두 배로 내려주면서 말일세.”


이야기는 어느새 끝에 다다랐다.

‘어쨌든 간에 하나님을 믿어서 복을 받은 이야기’

너무나도 간단하기에, 이해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건 의심하는 것보다 편했다.

더군다나 굳건한 신앙은 비난받을 존재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맹목은 불경이기도 했다.


‘신과 악마가 인간을 가지고 내기했다는 이야기’

‘심지어 그 노름에 한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갔다는 비극’


이 꺼림칙한 설화를 굳이 성경에 넣었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가령, 믿음이 아니라 의심을 바랐다거나 하는.


“그럼 내기는···.”


누군가 의문을 중얼댔다.

당연한 의아함이었지만, 주변에서 눈총이 쏟아진다.

그렇기에 질문한 당사자 역시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예현은 그런 상황을 못 본 척 말을 이었다.


“우리 역시 고난에도 신앙을 견고히 해야 한다네.”


사이비가 그렇듯, 맹목을 요구하면서.

다만, 스스로에게까지 그럴 필요는 없겠지.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위대하신 분’은 자네들에게 축복을 내리실 테니.”



***


예배가 끝났다.

예현은 단상에서 내려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 예배도 정말 좋았습니다.”

“목사님, 고생하셨어요.”

“아니라네. 지루한 이야기만 해줄 뿐인데 무어가 힘들겠는가?”


신도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주고받는다.

비록 많지 않은 수지만 열렬한 인기였다.

대단하고도 유용한 일이다.

흙탕물에 깨끗한 물 한 방울이 떨어져도 흙탕물일 뿐이듯, 이 맹목은 계속 이어질 테니까.


“다들 얼른 돌아가게나. 이제 해가 짧아져서 더 늦으면 위험하다네.”

“하나님께서 보살펴주실 텐데, 무슨 일 있겠어요?”

“아버지께서도 피곤하시지 않겠는가. 천상에도 휴식할 시간을 주시게.”

“아···, 그건 생각도 못 했는데···.”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간다.

얼굴에는 아쉬움이 잔뜩 서린 채였다.

예현은 그렇게 모두를 배웅했다.

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기라도 하는 듯이.


“목사님, 손님은 늦게 오시나요?”


그중 서주가 미련이라도 남은 듯 소매를 붙잡아온다.


“그래, 돌아가게.”

“아···.”

“서주야.”


하지만 예현은 단호히 돌려보냈다.

교회 내에 아무도 남지 않도록.


“후우.”


모두가 떠나가자 그제야 숨을 내쉰다.

근엄하게 부풀렸던 몸은 은근히 늘어졌고, 표정 역시 다소 풀렸다.

발길 역시 느긋하게 교회 안쪽으로 향할 수 있었다.


작가의말

악당은 부지런해, 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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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이상 +1 24.01.25 58 1 12쪽
28 28화. 엄벌주의 +1 24.01.24 58 1 13쪽
» 27화. 욥 +1 24.01.23 64 1 12쪽
26 26화. 고래 사이 새우 +1 24.01.22 62 1 12쪽
25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1 24.01.19 69 1 12쪽
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3 24.01.18 76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80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78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90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94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93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100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111 3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112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127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124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3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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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의심 +1 24.01.01 13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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