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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요거트의 글방

밀수업자 - The Smuggler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완결

플레인Y
작품등록일 :
2019.07.28 20:59
최근연재일 :
2019.12.13 09: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3,233
추천수 :
70
글자수 :
163,984

작성
19.08.24 08:00
조회
136
추천
2
글자
11쪽

6화 - 실종(3)

DUMMY

호렌은 문득 온 몸으로 직감한다. 다가온다. 그 불길한 느낌이. 익숙한 그 느낌이. 카르토와 수민이 사라졌을 때의, 마치 자신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거인의 손과도 같은 그 느낌이다. 그리고 멀지 않다... 이 예감의 근원지는! 그는 그렇게 직감한다.


“설마... 지금... 지금 이 상황은...!”


“그래, 맞아.”


그 여자의 목소리다.


“참 빨리도 알아채는군.”


“당신... 당신이 설마!”


호렌은 보이지 않는 그 여성을 향해 소리 지른다.


“당신은 지금 나의 세계에 들어온 거야!”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 그 여성의 목소리다. 하지만 다르다. 아까 전의 흐리멍덩한 목소리의 주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당당하다. 목소리에 자신감이 가득 넘치고 힘이 들어가 있다!


“당신도 알 수 있듯 이곳은 어두컴컴한 지하도지. 당신은 지금 내 손 안에 있어.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 친구들 모두 다!”


잠깐... 친구들? 그러면, 수민과 카르토는...


“당신... 내 친구들을 어떻게 한 거야! 당장 원래대로 해 놓지 못해?”


호렌의 목소리가 마치 펄펄 끓어오르는 물처럼 격앙된다.


“당신 참 순진하네.”


“뭐... 뭐라고?”


“내가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순순히 당신 친구들을 내줄 것 같아?”


“무... 무슨...”


“다 불으란 말이야! 당신이 하려던 거래, 의뢰한 사람이 누구이며, 무엇을 어떻게 거래하려 했는지 말이야!”


지하도를 가득 메운 여성의 목소리는, 어느새 그 가운데 선 호렌을 압도하고 있다. 마치 어린 나무에 불어 오는 폭풍과도 같이.


“허튼소리 하면 당신 친구들은 죽는다! 우물쭈물하고 있어도 당신 친구들은 죽는다! 그러기 전에 빨리 불어!”


잠시 어두컴컴한 지하도 안에 적막이 흐른다. 조그만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적막이다. 그 고요함을 깨는 건, 몇 걸음의 발걸음 소리.


“흐흐흐... 도망가려고? 도망갈 곳은 없어! 허튼짓 하지 말고 빨리 불으라니까!”


“역시 당신... 이곳에 초행자가 맞기는 하는가 보군.”


호렌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신감을 가득 실은 목소리가.


“이 지하도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기는 한 건가?”


“하하하... 지금 이 지하도는 완벽한 내 세계고, 또 당신 친구들의 목숨은 내가 쥐고 있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다 들통났다고.”


호렌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뭐가 들통났다는 거야? 헛소리 작작하라고! 당신 친구들이 죽기 전에 빨리 불기나 해!”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렌을 압도하던 여성의 목소리는 조금 위축되어 있다. 애써 의기양양하게 말해 보려 하지만, 말끝이 조금씩 움츠러들고 있다.


“당신은 이 지하도가 있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이 지하도가 어디로 통한다는 것까지는 몰랐나 보군. 그리고, 나는 방금 당신의 능력의 비밀도 알아냈다.”


“뭐... 뭐야?”


“당신의 목소리는 쭉 내 근처에서만 들려 왔지. 아까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몸을 숨기고 있었을 때도, 당신의 목소리는 내 바로 옆에서 생생히 들려 왔지.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군. 당신의 능력은 내 가까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방금, 이 지하도 안을 ‘나의 세계’라고 했지. 즉 그렇다는 건!”


호렌은 벽에 있는 무언가를 누른다. 그와 동시에, 지하도의 천장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지하도의 천장에 틈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호렌은 눈을 가린다. 30초도 안 되어, 지하도의 천장이 완전히 하늘을 향해 열리고, 지하도는 완전히 하늘 아래 노출된다. 그리고 지하도 안에는, 단 한 사람의 그림자가 뚜렷이 나타난다.


“잘 보란 말이다. 여기가 어딘지 말이야!”


그곳은 우주선 정박지 한가운데. 때마침 시간은 오후 3시경의 한낮. 하늘에는 몇 점의 구름만 떠 있을 뿐.


“이 도시에서 레드 클라우드 카페가 왜 비즈니스 명소인지를 생각해 봐. 그리고 내가 당신의 말에 순순히 정보를 넘겨 줄 것 같았으면, 애초에 내가 밀무역을 하고 있겠어?”

“다... 당신...”


“이제 도망칠 곳은 없어. 내 그림자 안에서 당장 나오시지.”




잠시 후, 호렌의 그림자 속에서 서서히 누군가가 나온다. 이윽고 완전히 일어서 호렌 앞에 선 그녀는 바로, 그 조종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여성이다. 얼굴은 잔뜩 벌게져 있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 뒤를 따라, 누군가가 그림자 안에서 더 나온다. 가죽점퍼를 입은 남자는 수민, 그리고 품 넓은 옷을 남자는 카르토다.


“뭐... 뭐지?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수민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한다. 카르토 역시 말은 없지만, 적잖이 당황한 듯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자기 얼굴도 꼬집는다. 조종복의 여성은 선글라스를 벗는다. 금색 눈동자를 한 여성의, 파르르 떨리는 두 눈이 드러난다.


“당신... 잘도...”


“아까 전의 패기는 어디 갔어? 당신 조금 전에 나한테 뭐라고 했지?”


“하지만... 그건...”


“호렌, 지금 어떻게 된 상황이야?”


카르토가 뭔가 물어보려 하지만, 호렌은 손을 들어 카르토를 제지하고는 그 여성에게 말한다.


“다시 한번, 똑바로 말해 보라고.”


“불지 않으면... 당신 친구들을 죽이겠다고 했지.”


“그렇군...”


호렌은 옷 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며 말한다.


“그것도 그렇고, 아까 우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내 동료들을 납치했던 그때, 당신은 이미 우리에 대해 대략적인 정보를 수집했던 상황이었을 거야. 맞지?”


“......”


여성은 떨리는 눈으로 호렌을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도 답은 하나다.”


호렌이 주머니에서 꺼내든 건 다름 아닌 권총. 호렌은 꺼내든 권총을 바로 그 여성에게 겨눈다.


“자... 잠깐... 무슨 짓이야!”


“당신이 우리의 비밀에 접근하려 한 이상, 살려 둘 수는 없지.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호렌은 눈을 조금도 깜짝이지 않고, 권총을 장전한다. ‘철컥’하는 작지만 깊은 소리가, 정박지의 우주선들에 부딪혀 울려 퍼진다.


권총을 장전하고 발사하려 하는 호렌도, 겨누어진 총구를 눈 바로 앞에 둔 여성도, 그 광경을 놀라움이 가득 찬 얼굴로 바라보는 수민과 카르토도, 아무 말이 없다. 침묵이 흐른다. 1분의 시간이, 마치 하루가, 아니 한 달이 가기라도 한 듯. 하늘에 뜬 해는 그대로 떠 있지만, 네 사람은 마치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여행이라도 한 듯한 눈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호렌의 손가락은 서서히, 아주 서서히 방아쇠를 당기려 한다.

EP6.png

“잠깐, 호렌.”




바로 그 때, 침묵을 깨고, 수민이 입을 연다. 호렌도, 그 여성도, 카르토도, 모두 수민을 돌아본다. 수민은 주위를 한 번 돌아보고 입을 연다.


“일단은, 살려 주자.”


“아니, 너 지금 제정신이야?”


호렌은 수민을 보고 대뜸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이 여자는 우리의 정보를 캐냈어! 게다가 너와 카르토를 납치하기도 했고, 죽이려고 하기까지 했어! 거기다가 나를 속이기까지 했어! 너와 카르토를 봐서라도 이 여자는 더더욱 살려 둘 수 없어!”


“너무 경솔하군, 호렌.”


이번에는 카르토가 말한다.


“우리는 그 여자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네 말마따나, 지금 저 여자를 죽이게 되면, 우리는 그만큼의 정보를 얻을 기회를 놓치는 거야.”


“아니, 그래도 너와 수민은 저 여자한테 납치당했잖아.”


“그러니까,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


호렌은 다시 자신이 총을 겨눈 여성을 바라본다. 여전히 여성은 어쩔 줄 몰라하며 몸을 떨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말이 없다. 그저 처분을 맡기겠다는 듯 조용히 호렌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문득, 호렌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다. 언젠가 그의 아버지가 했던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신관으로써, 종교에 있어서는 매우 깐깐한 사람이었다. 호렌은 그의 가족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와는 별개로, 그런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날이면 날마다 밖으로 나다니는 게 그의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의식했기 때문인지 일탈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는 신관의 아들로 사는 삶을 매우 답답해했고, 몇 년 전, 마침내 집을 나가 자립하기로 했다. 그가 집을 떠나기 전날 저녁, 그의 아버지는 그를 불렀고,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옛 현인들이 하던 말이 있었지. 무슨 상황이 오더라도, 마음속에는 항상 등불이 밝게 빛나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네... 알지요.”


“네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도 잘 알고 있다. 살다 보면 흔들림과 유혹이 있다. 그럴 때일수록, 네 중심에서는 불이 밝게 빛나야 한다.”


“네...”


“네 앞길에 신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빈다.”




‘그래... 왜 꼭 이렇게 큰 갈림길에 섰을 때만 마음에 결정을 못 내리고, 이렇게 갈팡질팡하고 있는 거지. 할 때는 해야 해. 할 때는 해야 한다고!’


호렌은 다시, 총알이 장전된 총을 똑바로 여성의 이마 한가운데 겨눈다.


“참 유감이군.”


호렌이 방아쇠를 막 당기려는 바로 그때.


“호렌!”


또다시 수민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까보다 훨씬 큰, 마치 호렌의 머리 전체를 휘감는 듯한 목소리다. 호렌은 방아쇠를 당기려다 말고 수민을 돌아보고 말한다.


“내 결심은 이미 섰어. 너 나 쉽게 결정 못 내리는 거 잘 알잖아! 그러니까, 내 결정을 존중해 줘!”


“그게 아니고.. 저 여자를 죽이지 않고도 우리의 비밀을 유지할 방법이 있다고.”


“뭔데?”


수민은 바로 호렌에게 대답하지 않고, 조종복의 여성을 돌아보며 말한다.


“당신! 우리 동료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성은 여전히 몸을 떨면서도, 수민을 돌아보며 황당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 개인 사업자라고! 동업은 내 직성에 안 맞는단 말이야!”


그 광경을 쭉 지켜보던 카르토가 한마디 한다.


”당신, 나름 삶의 신조가 있는 것 같은데, 설마, 그만 살고 싶은 건 아니겠지?“


”아... 아니야, 아니야!“


여성은 바로 표정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바뀐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나를 받아 주었으면 하는데!“


”들었지?“


호렌은 수민의 말을 듣고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여성을 향해 권총을 겨눈 손을 내리지 않는다. 그의 눈이 점점 흔들린다. 조종복의 여성, 수민, 카르토를 번갈아 본다. 그렇게 1분쯤 후.


”좋아.“


호렌이 천천히 입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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