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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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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0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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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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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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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이름 없는 성녀

DUMMY

123화 <이름 없는 성녀>


“정말 죄송해요!”


캣니스는 바닥에 머리 박았다.

캣니스 뒤에 다른 사람들도 조용히 무릎 꿇었다.

몇 번이고 거듭하여 무례에 대해 사죄했다.

맹인 부부의 집에 들어온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정말 죄송해요! 사람 사는 집인 줄 모르고 들어와서 소란을 일으켰어요!”


쾅, 큰 소리 나게 한 번 더 머리 박았다.

이마가 깨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연신 사과하는 캣니스의 목소리에. 부부는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눈이 먼 상태에서도 여사제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거 같았다.

정말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은 잘 전해졌다.


“손님들. 저희는 괜찮으니 일어나세요. 밖에 소리가 났어도 마중하지 않은 우리 잘못도 있으니까요.”


부인이 환한 미소 지으며 캣니스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고집이 센 캣니스는 손을 뿌리쳤다.


“신자님들은 잘못 없어요! 전부 다 제 잘못이에요.”


상대방은 어떻게든 속죄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부인은 용서하는 말에도 꼼짝하지 않는 여사제 때문에 한숨 쉬었다.

잠깐 여사제 앞에 서 있다가, 이내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여사제님. 자꾸 무언가를 보상하려는 행동이 저희를 더 곤란하게 하는 거예요.”


자꾸만 고개 젓는 대상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러자 효과가 있는지 고개가 뻣뻣이 굳고, 조금까지 잘만 말하던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부인에게 제압당한 캣니스는 탁자로 돌아와서 앉았다.

보지 못하는 표정은 여전히 울상이었다.


“참 이상해요. 집주인인 우리가 손님들께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이어진 한마디에, 캣니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착한 마음씨는 좋아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필요하지 않답니다, 여사제님.”


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에 부인은 부엌에서 끓인 물을 가져왔다.

맹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정한 양을 컵 안에 따랐다.


“드세요. 여독이 조금 풀릴 거예요.”


탁자 위에 컵 세 개를 두고, 남은 컵은 직접 일어서서 나눠줬다.

가더를 제외한 일행들은 컵을 받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런 일은 저희에게 시키시면···”

“어머. 이 산속에 산 지 십 년이 넘어요. 배려는 감사하지만, 오랜만의 손님을 맞이하는 제 기쁨을 가로채지 말아줘요.”


캣니스는 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또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 숙였다.

부인은 눈도 안 보이면서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다 눈치채는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렇게 귀여우신 분들을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다니, 제 남편의 걱정이 참으로 극성이었네요.”

“아니요. 그렇지 않···”

“환자가 있었잖아요. 마음이 급한 분들께 묻지도 않고 검을 들이민 제 남편이 나쁜 거예요.”


이쯤 되니 그들은 부인의 성격을 알 거 같았다.

눈이 안 보인다고 하여 성격이 수동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옳고 그름에 관해서 특히 주관이 뚜렷했다. 제 주관을 밀어붙일 강단도 있었다.

당연히 힘이 강한 남편이 이 집의 중심일 줄 알았는데, 어쩌면 남편은 부인에게 꽉 붙잡혀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느낌 주었다.


“좋은 부인을 뒀군.”

“성급하게 공격한 점 사죄드리겠습니다.”

“아니. 우리도 지레짐작하고 대응했으니 피차일반일세.”


오해가 풀리자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남편도 부인도 이제는 그들을 손님 맞이하듯이 대접했다.

특히 부인은 오랜만의 손님을 굉장히 반가워했다.


“제 남편이 얼마나 극성이냐면요. 부부가 되기 이전의 강에 몸을 담근 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잠시 잠수하느라 기척이 없다는 이유로 직접 찾아오곤 했죠.”

“와아. 그때부터 마음이 있었던 건가요?”

“설마요. 제가 이이를 얻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어쨌든 눈도 안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걱정하면서 소리 지르던지. 머리에 나뭇가지 묻었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르네요.”


좋게 말하기를 풋풋했던 연인의 연애사, 나쁘게 말하면 남편의 흑역사를 풀었다.

남편은 다 듣고 있을 텐데도 한 마디 않고, 묵묵히 덩치 큰 모험가들과 시간을 가졌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네요? 오랜만에 손님이 왔다고 저도 모르게 주책 부렸네요.”


그렇게 이야기 나누기를 긴 시간이 흘렀다.

컵 안에 찻물이 다 떨어지고, 기껏 끓인 주전자가 다 식은 시간이었다.


“오늘의 즐거움은 내일로 미뤄둘게요.”


즐거웠던 손님과의 시간을 접었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그들을 놓아주었다.

남편은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몸이 약한 부인을 양팔로 안아 들었다.


“그런데 모험가시면 잠잘 때 쓸 침구는 준비되어 있겠죠?”

“물론이네.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되어 정말로 미안하군.”

“천만에요! 그러면 아침에 다시 보도록 해요. 빨리 떠나려 하지 말고 환자분의 열이 내릴 때까지 편히 머무르세요.”


그들은 부인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아침에도 아픈 아쿠아를 데리고 서두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었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쉰 그때였다.

갑자기 남편이 살기를 뿌렸다.


“너희들. 혹시나 말해두지만, 함부로 이 층에 발을 들이면 읍···”

“어머 이이가 손님께 주책도 참! 편히 쉬다가 가세요! 편히! 아침에 봬요!”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두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캣니스를 비롯한 모두는 뒷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이 층의 방문이 닫히고 그들은 하나둘 움직였다.


“그러면 우리도 잠자리에 들도록 하지.”


예상치 못한 호의를 받은 밤이었다.



*****



“어머. 정말 천사 같다~”

“그래그래. 숲속에 천사님이 내려온 거 같아~”

“후후. 정말 그런가요?”

“당연하지. 너무 아름다워서 눈이 멀 거 같아~”

“못된 남자에게 잡혀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거야~”


아침이 되었다.

그들이 만난 지 반나절 만에, 부부가 사는 집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베르 길드가 아침부터 집 안을 청소하고 수리하여 사람 사는 공간처럼 만들었다.


“자 이걸로 치장 끝~”

“정말로 예뻐. 다시 시집가도 되겠는걸?”


그동안 성녀 일행은 부인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집 안에서 즐거워하는 부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 방 안에서 전신 거울을 앞에 둔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부인의 뫼로를 칭찬했다.


“그러면 나가볼까?”

“남편에게 잡혀가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해~”


집 안에서 여러 말이 오가는 동안 바깥에서는 나무를 패고 있었다.

똑딱, 똑딱. 나무패는 소리 안에서 끼익, 낯선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자자. 모두 주목~”

“남편분은 특히 주목~”


게로드와 게이로드가 등장했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부인이 나왔다.

부인은 집 안에서 입는 옷이 아닌 특별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분이 묻은 얼굴은 게로드와 게이로드의 손을 거친 상태였다.

결혼 한 여성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새 신부처럼 아리따운 모습이었다.

경외 받는 시선 속에서 붉은 과실처럼 붙어있던 부인의 입술이 떨어졌다.


“어때요? 잘 어울려요?”


드레스 단을 잡고 한 바퀴 돌았다.

이에 나무를 패다가 멈췄던 남편은 도끼까지 떨구었다.

마치 부인과 마주 선 채로 죽어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생겨나는 창피함은 온전히 부인의 몫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사람 민망하게 가만히 있지 말고···.”


이 상황이 수줍은 부인은 남편의 가슴을 툭 주먹으로 쳤다.

그러자 남편이 와락 부인을 끌어안았다.


“깜짝아! 말로 하라고 했지. 누가 이렇게 안으라고···”

“아름답습니다.”


남편은 부인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 금방 사라질 요정이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

부인은 남편의 돌발행동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다가 그나마 자유로운 양손으로 마주 등을 안아주었다.


“아니, 이이도 참. 손님들 앞에서 뭐 하는 거예요?”

“···나는 당신밖에 안 보여.”

“진짜로 보이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예쁜 거 잘 알겠으니까 적당히 하고 좀 놔봐요!”


은근히 남편의 반응을 기대했던 일은 언제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서 발버둥 쳤다.

그러나 일편단심인 남편은 부인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사랑한다. 아름답다. 몇 번이고 속삭인 뒤에야 부인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어휴. 하여간에 나이 들어서 주책. 이 주책!”


남편의 품에서 벗어난 부인은 바로 등짝을 때렸다.

기껏 꾸민 옷이 망가졌다, 화장이 엉망이 됐다, 칭얼거렸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두가 알았다. 정말로 엉망이 된 건 남편을 놀려주려다가 호되게 당해 새빨개진 얼굴뿐이었다.

물론 엉망이 된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어지러울 터였다.

본인은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모양이지만 말이다.


“금실이 좋군.”


흐뭇하게 지켜보던 네 사람 중 브레드가 말했다.

그 말에 부인의 얼굴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붉어졌다.


“아아. 손님들 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이야···.”


뒤늦은 부끄러움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행위를 용서치 않았다.

부인의 손을 맞잡았다. 제 쪽으로 끌어당기며 허리에 팔을 둘렀다. 한 팔로 다리를 받치며 높이 들어올렸다.


“기쁩니다. 부인.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이토록 저를 기쁘게 해주십니까?”

“밥! 식사가 준비됐으니 얼른 들어오라고 말하려 했을 뿐이에요!”

“아아. 그리 바쁜 와중에 저를 위한 선물까지 준비해주시다니. 남편 된 자로서 다시 없을 영광입니다.”

“자, 잠깐! 손님들이 있는데 이러면···!”


캣니스는 얼른 가더의 눈을 가렸다.

가더가 왜 눈을 가리냐고 물을 틈도 없이. 다들 나무 오두막 안으로 분주히 움직였다.


“정말로 금실이 좋군.”


다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두막으로 들어간 상황.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 브레드가 얼굴이 빨개진 부인과 남편에게 한 마디 던지고 들어갔다.

이윽고 오두막은 문이 닫혔다.

그래도 여전히 오두막 밖에서는 두 사람의 소리가 있었다.


“너! 거기 안 서!”

“하하하. 부인. 언제는 부부니까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고 했잖습니까?”

“이 주둥이! 주둥이! 입 맞출 줄밖에 모르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 입이라면! 제발 생각 좀 하고 말하라고!”

“인제 와서 무얼 그리 부끄러워합니까? 우리는 부인이 말했듯이 꺼릴 것 없는 부부인데.”

“그러니까 손님도 와 있는데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고-!”


어제의 날카로운 분위기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남편의 목소리가 밝았다.

물론 찰싹찰싹 때리는 부인의 매타작이 함께였다.

오두막 안에서 식사와 식기구를 옮기는 모험가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져갔다.


“너, 있다가 두고 봐···!”


얼마 안 가서 녹초가 된 부인과 미소가 떠날 줄 모르는 남편이 들어왔다.

누가 이번 싸움의 승자인지를 확실히 알려주었다.

적막한 산속에 사는 것치고는 금실이 좋은 두 사람이었다.


“부인. 두고 봐야할 건 부인일 거 같습니다.

”아. 좀-!“


부인의 비명을 마지막으로, 조찬을 즐겼다.



*****



“어때요? 상태에 진전이 있나요?”


여전히 산을 떠나지 못한 한밤중.

빌린 방에서 캣니스가 아쿠아의 물수건을 갈던 중에 누군가 들어왔다.


“힘들게 신성력으로 불을 밝힐 필요 없어요. 어차피 우리는 쓰지도 않는 초예요.”


이 집의 부인이 다가와서 앉았다.

직접 들고 온 초에 불을 붙여서 아쿠아의 안색을 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캣니스는 당황하며 방 안에 띄워둔 신성력을 회수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천만에요. 아픈 사람을 돕는 일인 걸요.”

“그래도요.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쉴 장소를 내주셔서 한숨 놓았어요.”


이 집에서 빌린 대야에서 물수건을 꺼냈다. 뜨거운 물을 섞어서 미지근한 물기를 짰다.

뜨거운 숨을 내뱉는 아쿠아의 이마 위에 수건을 얹었다.

벌써 아쿠아가 열병이 난지 이틀째다.

신성력은 무의미하며,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 병세에 캣니스의 마음은 나날이 초조해져 갔다.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이 아가씨는 아픈 일을 금방 털어내고 일어날 거예요.”


캣니스가 무릎 위에 얹은 손에 다른 손이 겹쳤다.

다 잘될 거라는 듯 미소 짓는 부인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렇죠? 아쿠아 님이 무사히 낫겠죠?”

“물론이에요. 이렇게 아리따운 사제님이 간호하니 금방 털고 일어설 거예요.”

“정말로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분명 잘될 거예요. 이제 제가 자리를 지킬 테니, 사제님은 내려가서 쉬세요.”

“아니요. 부인께서 들어가서 쉬세요. 이 이상 민폐를 끼칠 수는···”

“쉿-”


부인이 콧잔등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일렁이는 불빛이 잔잔하게 얼굴을 비쳤다.


“오늘 우리 부부를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오랜만에 즐거웠으니 이 정도 일은 맡겨주세요.”

“하지만 그럴 수는···”

“지금은 의절한 몸이지만, 저도 한때는 프로텐시아 신을 모신 사제였답니다. 이 병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으니 마음 놓고 푹 쉬세요.”


어서 가서 쉬라고 단호하게 말하자, 캣니스는 옅은 갈등을 보였다.

부인의 말대로 자리를 뜰지 아니면 이 자리에 남을지 고민하였다.


“제가 신의 이름으로 맹세해야 할까요? 이 아가씨를 해치지 않을 테니 내려가서 쉬세요.”


이렇게까지 말하면 따르지 않는 게 실레였다.

아쿠아의 병세에 대해 비밀스러운 치료가 있을지도 모르니 남겠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끝내 캣니스는 부인의 말을 받아들이고 일어섰다.

부인의 배려에 감사하며 나가는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오늘 밤. 신자님에게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랄게요.”

“긴장하지 마시고 잠에 드세요. 제가 보기에는 이틀이면 출발할 수 있을 테니 마음 편히 여독을 풀어요.”


캣니스는 축복하고 돌아오는 말에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곧 옅게 미소 짓고는. 허리를 숙이고 나갔다.

방 안에 홀로 남은 부인은 쿡쿡, 웃음을 흘렸다.


“정말 귀여운 사제님이네요.”


그렇게 말하고는 촛불을 아쿠아의 머리맡에 두었다.

방 밖에서 자리를 지키는 두 사람의 인기척을 새로이 느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부인은 남편과 모험가 중 한 명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채 아픈 이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결계를 쳐놔서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해요.”


방 안에 미세한 움직임이 생겼다.


“그러면 무슨 일인지 이야기 해줄 수 있나요?”


번뜩, 눈이 뜨였다.

이불이 흘러 내려가고 그 안에 있던 사람이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 열병을 알았다고는 믿기 힘든 안색이었다.

일렁이는 촛불 빛이 새하얀 얼굴을 자세히 밝혔다.

똑바로 뜬 녹색 눈동자는 낯선 이를 경계하였다.


“무슨 목적이야?”

“무슨 목적이라니요?”

“왜 알면서도 모른 척했어?”


부인은 짧게 웃었다. 아쿠아가 노골적으로 보내는 감정을 무시했다.

그리고 이불 밑에 숨겨진 가위도 모른 척했다.


“고양이 같은 분이시네요. 그저 한 사람의 오지랖이라고 보시면 될 텐데요.”


쿡쿡, 웃음을 흘리며 주전자의 물을 따랐다.

물이 담긴 컵을 건넨 뒤 살포시 무릎 위로 두 손을 모았다.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서 오지랖을 부렸을 뿐이랍니다.”


이 말을 끝으로 부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반월을 그리던 눈웃음도, 입꼬리도, 무표정하게 변했다.

이미 볼 수 있는 것이 없는 눈동자가 아쿠아의 모습을 담았다.

이윽고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지나치게 낮은 목소리였다.


“셀레브리디 교단의 성녀님. 제 이야기를 들어보겠어요?”


다시 조용히 미소를 짓는 부인.

이번 미소에는 어쩐지 슬픔을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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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외전 다섯 번째 용사5 24.03.18 7 0 20쪽
173 외전 다섯 번째 용사4 24.03.15 10 0 19쪽
172 외전 다섯 번째 용사3 24.03.13 9 0 18쪽
171 외전 다섯 번째 용사2 24.03.13 7 0 14쪽
170 외전 다섯 번째 용사1 24.03.08 9 0 13쪽
169 146화 십강 사무엘 24.03.06 7 0 25쪽
168 145화 십강 사무엘 24.03.04 8 0 17쪽
167 144화 십강 사무엘 24.03.01 10 0 20쪽
166 143화 십강 사무엘 24.02.28 13 0 12쪽
165 142화 십강[十强] 24.02.26 11 1 14쪽
164 141화 십강[十强] 24.02.23 10 0 21쪽
163 140화 십강[十强] 24.02.21 9 0 15쪽
162 139화 십강[十强] 24.02.19 8 0 17쪽
161 138화 십강[十强] 24.02.16 11 0 20쪽
160 137화 십강[十强] 24.02.14 8 0 15쪽
159 136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2.12 8 0 15쪽
158 135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2.05 11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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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133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31 10 0 21쪽
155 132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9 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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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128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7 9 0 11쪽
150 127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5 10 0 13쪽
149 126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5 6 0 22쪽
148 125화 이름없는 성녀 24.01.10 6 0 14쪽
147 124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8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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