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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가 내리는 녹슨 서고

바람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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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즘
작품등록일 :
2018.01.08 18:36
최근연재일 :
2018.03.02 23:5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6,876
추천수 :
8
글자수 :
150,591

작성
18.02.0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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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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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6쪽

Ch 3. 시계탑의 나라 (6)

DUMMY

“후아! 잘 먹었다. 역시 요리장님의 솜씨는 제국 제일인 것 같아. 안 그래?”

“음... 꽤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제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뭐? 그런 눈 돌아갈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도 평가를 망설인다고? 도대체 니아는 얼마나 대단한 부잣집에서 살다 온 거야?”


잔뜩 부푼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아시엘은 니아의 답변에 기가 막혔는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한껏 입을 벌렸다. 그녀의 격렬한 반응에도 니아는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 듯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헛웃음을 터뜨린 아시엘은 바로 뒤에서 잠자코 따라오던 하란에게 달라붙어 도움을 청했다.


“하란! 오늘 저녁 어땠어? 정말 맛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응? 어...”

“얘기 좀 해봐! 니아랑 얘기하다 보면 가끔씩 내가 가진 상식이 옳은 건지 의심될 때가 있단 말이야! 내가 틀린 거 아니지? 하란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 그래!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제법 맛은 있었으나 고향 음식보다 입에 잘 맞느냐고 묻는다면 단호히 아니라고 답했을 하란은 아시엘이 거의 애원하듯 엉겨붙어오자 그녀를 한시바삐 떼어놓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아시엘은 그제야 안심한 듯 미소를 되찾고는 다시금 니아와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식사시간은 고작 30분 남짓이었지만 그 짤막한 담소가 끝나기도 전부터 아시엘은 하란에게 말을 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비상한 친화력에 혀를 내두른 하란도 흐름에 휩쓸려 얼떨결에 말을 놓기로 했지만 아직까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시종일관 가만있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과 잡담하기 바쁜 아시엘과 달리 니아는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딱히 말수가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꼭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입에 담지 않아 곁에 있는 아시엘과 비교하면 실제보다 과묵해보였다. 아시엘이 잘 익은 포도송이마냥 주렁주렁 늘어놓는 신변잡기를 주워듣다가 절로 그 신상을 줄줄이 꿰어버린 하란이었지만 좀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니아에게서 알 수 있었던 건 그녀 역시 그와 동갑이라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난 뒤라 깜깜했지만 사방을 에워싼 횃불 덕에 전혀 어둡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수많은 병사들이 연병장에서 짐을 나르거나 목재를 자르는 등 이런저런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난 며칠 동안의 델루아 마을이 겹쳐보였다. 잠시 잊고 있었던 고향에 대한 상념이 다시금 머릿속을 잠식했다. 무의식중에 발걸음을 멈추자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수다를 그치지 않던 아시엘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별 거 아냐. 그냥 고향 생각 좀 하느라고.”

“그래? 음... 갑자기 궁금해지네. 하란의 고향은 어떤 곳이야?”


하란은 처음 대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얼굴을 들이대는 아시엘의 모습을 보며 지금쯤 꿈나라에 빠져들었을 지스틴을 떠올렸다. 만약 그녀가 이곳에 왔다면 꼭 저런 표정을 지으며 이곳저곳을 쏘다녔을 것 같아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다지 크진 않은 마을이야. 연맹에서, 그리고 아일라 대륙에서 가장 서쪽에 있다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평범한 곳이지.”

“그렇구나. 가장 서쪽이라... 한번쯤 가보고 싶은걸. 얘, 네 고향에도 축제 같은 거 있니?”

“물론 있지. 바로 내일이 겨울축제가 시작되는 날이야. 오늘은 그 전야제고. 원래라면 지금쯤 마을사람들과 함께 전야제를 즐기고 있었겠지.”

“어머, 진짜? 아쉽겠네.”


예상치 못한 답변에 흠칫 놀란 아시엘은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겼는지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했다. 그 모습에 괜히 더 울적해진 하란은 기분전환을 위해 다른 화두를 던졌다.


“여기도 곧 축제기간이라고 들었는데 언제 시작해?”

“12월 15일. 딱 보름 후야.”

“아직 많이 남았네. 왜 이렇게 일찍부터 준비하는 거야?”

“아, 그건 말이지. 겨울축제가 루바탄 시의 모든 연중행사들을 통틀어 가장 성대한 축제이기 때문이야. 공식적인 축제기간만 일주일이고 볼거리가 무궁무진해서 다른 지역에서도 구경꾼들이 엄청나게 찾아오거든. 또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는 축제행렬의 구성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전작업이 필요하니까 미리미리 대비하는 거지.”


서슬 퍼런 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밤에도 연신 땀을 훔치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안쓰러움과 묘한 동질감을 느낀 하란은 속으로 그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했다. 부른 배를 꺼뜨릴 겸 기숙사 앞에 피워둔 모닥불 옆에 둘러앉아 아시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머리 위를 지켰던 별들이 저만치 흘러가 단잠을 청하고 있었다.

급격히 밀려오는 피로를 쫓으려 눈을 비비던 하란은 저 멀리서 그림자 하나가 슬그머니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헛것이 보이나싶어 눈가를 문지른 하란은 두 눈에 힘을 준 채 그림자가 일렁였던 금지구역 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안타깝게도 성과는 없었다. 그 짧은 찰나에 꿈이라도 꾼 모양인지 오직 짙은 어둠만이 무거운 침묵을 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지치지도 않는지 여전히 시답잖은 소재로 떠벌이던 아시엘은 하란의 눈초리가 순간 날카로워지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물었다. 하란은 그녀에게 자신이 목격한 걸 얘기해야할지 말지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아무 것도.”


작가의말

동화같은, 하지만 허황되진 않은 포근한 이야기와 느긋한 흐름을 지향합니다.

물론 끝까지 느슨하고 늘어지는 전개로 나아갈 건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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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Ch 5. 준동하는 그림자 (1) 18.02.19 54 0 9쪽
36 Ch 4. 귀신들린 연회 (完) 18.02.13 83 0 8쪽
35 Ch 4. 귀신들린 연회 (7) 18.02.12 67 0 8쪽
34 Ch 4. 귀신들린 연회 (6) 18.02.11 473 0 6쪽
33 Ch 4. 귀신들린 연회 (5) 18.02.10 65 0 7쪽
32 Ch 4. 귀신들린 연회 (4) 18.02.09 359 0 7쪽
31 Ch 4. 귀신들린 연회 (3) 18.02.07 72 0 10쪽
30 Ch 4. 귀신들린 연회 (2) 18.02.07 87 0 8쪽
29 Ch 4. 귀신들린 연회 (1) 18.02.05 71 0 9쪽
28 Ch 3. 시계탑의 나라 (完) 18.02.04 87 0 5쪽
27 Ch 3. 시계탑의 나라 (8) 18.02.03 95 0 7쪽
26 Ch 3. 시계탑의 나라 (7) 18.02.02 462 0 8쪽
» Ch 3. 시계탑의 나라 (6) 18.02.01 127 0 6쪽
24 Ch 3. 시계탑의 나라 (5) 18.01.31 88 0 8쪽
23 Ch 3. 시계탑의 나라 (4) 18.01.30 95 0 11쪽
22 Ch 3. 시계탑의 나라 (3) 18.01.29 259 0 9쪽
21 Ch 3. 시계탑의 나라 (2) 18.01.28 91 0 8쪽
20 Ch 3. 시계탑의 나라 (1) 18.01.27 90 0 12쪽
19 Ch 2. 진홍의 수레바퀴 (完) 18.01.26 95 0 7쪽
18 Ch 2. 진홍의 수레바퀴 (8) 18.01.25 79 0 5쪽
17 Ch 2. 진홍의 수레바퀴 (7) 18.01.24 64 0 9쪽
16 Ch 2. 진홍의 수레바퀴 (6) 18.01.23 82 0 9쪽
15 Ch 2. 진홍의 수레바퀴 (5) 18.01.22 89 0 11쪽
14 Ch 2. 진홍의 수레바퀴 (4) 18.01.21 94 0 7쪽
13 Ch 2. 진홍의 수레바퀴 (3) 18.01.20 155 0 7쪽
12 Ch 2. 진홍의 수레바퀴 (2) 18.01.19 110 0 9쪽
11 Ch 2. 진홍의 수레바퀴 (1) 18.01.18 491 0 10쪽
10 Ch 1. 겨우살이의 법도 (完) 18.01.17 244 0 9쪽
9 Ch 1. 겨우살이의 법도 (9) 18.01.16 57 0 8쪽
8 Ch 1. 겨우살이의 법도 (8) 18.01.15 82 0 7쪽
7 Ch 1. 겨우살이의 법도 (7) 18.01.14 96 0 8쪽
6 Ch 1. 겨우살이의 법도 (6) 18.01.13 92 1 7쪽
5 Ch 1. 겨우살이의 법도 (5) 18.01.12 340 1 8쪽
4 Ch 1. 겨우살이의 법도 (4) 18.01.11 323 0 9쪽
3 Ch 1. 겨우살이의 법도 (3) 18.01.10 149 2 8쪽
2 Ch 1. 겨우살이의 법도 (2) 18.01.09 589 2 8쪽
1 Ch 1. 겨우살이의 법도 (1) 18.01.08 254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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