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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가 내리는 녹슨 서고

바람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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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즘
작품등록일 :
2018.01.08 18:36
최근연재일 :
2018.03.02 23:5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6,875
추천수 :
8
글자수 :
150,591

작성
18.01.2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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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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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Ch 2. 진홍의 수레바퀴 (3)

DUMMY

오전교습의 마지막 차례인 전략회의는 항상 격납고에 인접한 작은 사무실에서 열렸다. 본디 기존의 커리큘럼에서는 격납고만큼이나 커다란 교육회관에서 여러 후보생들을 모아놓고 대규모로 진행했지만 하란만큼은 예외였다. 이 근방에서 가장 촉망받는 유망주이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실력 격차가 워낙 심하다보니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겐빌 교관과 개인교습이나 다름없는 일대일 지도를 받게 된 것이다.

겐빌은 이미 조그마한 강단 앞에서 하란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란과 리사라는 겐빌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그 앞에 비치된 간이의자에 앉았다. 처음에는 정말로 하란 한 명만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전략회의였지만 두어 번 청강 형식으로 참석하게 된 리사라가 더 폭넓은 전략이해도를 보이는 바람에 이런 모양새를 띠게 되었다. 비천을 직접 조종하진 않더라도 파트너 역시 외부에서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조종사에게 정확한 조언을 하려면 전략의 이해는 필수라는 점을 고려한 판단이기도 했다.


“어서 와라. 자, 일단 전날 레이스에 대한 복기와 분석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강단 뒤편에 설치된 칠판에 제3하늘트랙의 구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커다란 지도를 펼친 겐빌은 하란을 잠시 쳐다봤다. 우승을 차지한 만큼 당연히 칭찬을 듣게 될 거라 생각한 하란은 그의 표정이 어제와는 사뭇 다른 걸 눈치 채고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우승한 것에 대해선 이미 소회를 나눴으니 굳이 더 언급하지 않겠다. 애초에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네가 어떤 식으로 레이스를 소화했는가를 찬찬히 되돌아보는 것이니까 말이야. 하란, 내가 무슨 얘기를 꺼내려는지 어느 정돈 눈치를 챘겠지?”


하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스 막바지에 고장이 발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체결함이 이번에 처음 일어났다면야 운이 안 좋았다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 문제가 터진 부위는 과거에도 몇 차례 고장이 난 적 있지. 그리고 그 고장이 왜 일어나는지도 이미 알고 있고. 안 그런가?”


하란은 항변하고픈 강렬한 욕구를 느꼈지만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기록을 단축해보려는 오랜 욕심이 똬리를 틀고 있었고 무리해서라도 더 획기적인 궤도를 창출해낼 수 있는 주행방법을 고안하고픈 소망도 기저에 존재했지만 사고의 위험 앞에선 전부 하잘 것 없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제가 너무 안일했어요. 고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또 문제가 생기진 않을 거라고 멋대로 방심한 저의 탓이에요.”

“그래. 물론 잘 알리라 생각하지만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너를 탓하기 위해서가 아냐. 레이서에게는 누구나 무리해서라도, 설령 비천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해도 과감하게 모험수를 둬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이야. 하지만 어제의 그 상황은 그런 선택을 감행할만한 이유가 눈곱만큼도 없었어. 굳이 그러지 않았더라도 안정적으로 페이스 배분에만 신경 썼다면 어차피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었을 테니까 말이야. 마지막 구간이었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일찍 문제가 생겼다면 단상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은 네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겐빌의 어조는 더할 나위 없이 차분했지만 하란에겐 나지막한 그의 음성이 동틀 무렵의 안개처럼 서서히 모여들어 자신을 에워싼 채 옥죄는 것처럼 느껴졌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사라는 마음이 편치 않은지 쭈뼛쭈뼛 손을 든 채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죄송해요. 기체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이니 아직 제대로 수리하지 못한 제 실책이 커요. 조종사를 보좌하는 파트너로서 부품을 구하기 힘들더라도 대회전까지는 어떻게든 조달했어야 했는데...”

“리사라, 마음은 알겠지만 네 잘못이라 치부할 순 없어. 아직 수리하는 데 필요한 주요부품이 작업장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이미 고장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고 있는 만큼 하란이 무리한 주행만 하지 않았다면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거야.”

“하, 하지만... 혹시... 고치지 못한 결함 때문에 하란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저, 저는...”


리사라는 삽시간에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낄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란은 그녀의 눈물에 혼비백산하며 어떻게 달래야 할지 시급히 머리를 쥐어짰다.


“리사라, 미안해. 내가 너무 무신경했어. 쓸데없는 욕심을 부려선 안 됐는데...”


하란의 거듭된 사과에도 리사라는 좀처럼 터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겐빌은 연신 혀를 차며 잠시 강단 주변을 서성이다 하란에게 손짓했다.


“안 되겠다. 오늘 회의는 이만 중단하는 게 좋겠어. 지금 못한 얘기는 나중에 마저 하자.”


겐빌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쫓기듯 부리나케 회의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하란은 믿음직하지 못한 그의 뒷모습에 안 그래도 지끈거리던 머리가 더 아파졌다. 하여간 저 인간은 평소엔 잔뜩 무게를 잡는 주제에 난처한 일만 생기면 꼭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더라. 그는 내년에 성인이 되면 저런 책임감 없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한 뒤 여전히 격하게 몸을 떨며 우는 리사라를 다독였다.

수압을 견디지 못해 터져버린 둑처럼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던 리사라는 한참 후에야 울음을 그쳤다. 가까스로 진정된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하란의 안색을 살피다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미안해. 결코 울지 않으려했는데. 무조건 참아야했는데... 어제도 간신히 버텼는데 왜 이러는 걸까... 그 순간 가장 곤란을 겪었을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닌 하란인데...”

“아냐. 사과하지 마. 결과적으론 큰 사고로 이어진 것도 아니고 어차피 레이스 도중이라 무섭다거나 당황할 새도 없었어. 그럭저럭 잘 해결됐으니까 너무 깊게 생각하진 말자. 내일 부품 받아오면 충분히 고칠 수 있잖아?”

“응. 그런 결함 따윈 내가 꼭 고쳐서 다시는 고장 안 나게 만들어줄게.”


리사라는 그제야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보였다. 물기가 막 가신 연녹색 눈동자 한 쌍이 한낮의 흐린 그림자 속에서 영롱히 빛났다.


작가의말

오늘은 사정이 있어 일찍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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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Ch 5. 준동하는 그림자 (完) 18.03.02 72 0 8쪽
41 Ch 5. 준동하는 그림자 (5) 18.02.28 395 0 10쪽
40 Ch 5. 준동하는 그림자 (4) 18.02.26 53 0 8쪽
39 Ch 5. 준동하는 그림자 (3) 18.02.23 80 0 10쪽
38 Ch 5. 준동하는 그림자 (2) 18.02.21 62 0 7쪽
37 Ch 5. 준동하는 그림자 (1) 18.02.19 54 0 9쪽
36 Ch 4. 귀신들린 연회 (完) 18.02.13 83 0 8쪽
35 Ch 4. 귀신들린 연회 (7) 18.02.12 67 0 8쪽
34 Ch 4. 귀신들린 연회 (6) 18.02.11 473 0 6쪽
33 Ch 4. 귀신들린 연회 (5) 18.02.10 65 0 7쪽
32 Ch 4. 귀신들린 연회 (4) 18.02.09 359 0 7쪽
31 Ch 4. 귀신들린 연회 (3) 18.02.07 72 0 10쪽
30 Ch 4. 귀신들린 연회 (2) 18.02.07 87 0 8쪽
29 Ch 4. 귀신들린 연회 (1) 18.02.05 71 0 9쪽
28 Ch 3. 시계탑의 나라 (完) 18.02.04 87 0 5쪽
27 Ch 3. 시계탑의 나라 (8) 18.02.03 95 0 7쪽
26 Ch 3. 시계탑의 나라 (7) 18.02.02 462 0 8쪽
25 Ch 3. 시계탑의 나라 (6) 18.02.01 126 0 6쪽
24 Ch 3. 시계탑의 나라 (5) 18.01.31 88 0 8쪽
23 Ch 3. 시계탑의 나라 (4) 18.01.30 95 0 11쪽
22 Ch 3. 시계탑의 나라 (3) 18.01.29 259 0 9쪽
21 Ch 3. 시계탑의 나라 (2) 18.01.28 91 0 8쪽
20 Ch 3. 시계탑의 나라 (1) 18.01.27 90 0 12쪽
19 Ch 2. 진홍의 수레바퀴 (完) 18.01.26 95 0 7쪽
18 Ch 2. 진홍의 수레바퀴 (8) 18.01.25 79 0 5쪽
17 Ch 2. 진홍의 수레바퀴 (7) 18.01.24 64 0 9쪽
16 Ch 2. 진홍의 수레바퀴 (6) 18.01.23 82 0 9쪽
15 Ch 2. 진홍의 수레바퀴 (5) 18.01.22 89 0 11쪽
14 Ch 2. 진홍의 수레바퀴 (4) 18.01.21 94 0 7쪽
» Ch 2. 진홍의 수레바퀴 (3) 18.01.20 155 0 7쪽
12 Ch 2. 진홍의 수레바퀴 (2) 18.01.19 110 0 9쪽
11 Ch 2. 진홍의 수레바퀴 (1) 18.01.18 491 0 10쪽
10 Ch 1. 겨우살이의 법도 (完) 18.01.17 244 0 9쪽
9 Ch 1. 겨우살이의 법도 (9) 18.01.16 57 0 8쪽
8 Ch 1. 겨우살이의 법도 (8) 18.01.15 82 0 7쪽
7 Ch 1. 겨우살이의 법도 (7) 18.01.14 96 0 8쪽
6 Ch 1. 겨우살이의 법도 (6) 18.01.13 92 1 7쪽
5 Ch 1. 겨우살이의 법도 (5) 18.01.12 340 1 8쪽
4 Ch 1. 겨우살이의 법도 (4) 18.01.11 323 0 9쪽
3 Ch 1. 겨우살이의 법도 (3) 18.01.10 149 2 8쪽
2 Ch 1. 겨우살이의 법도 (2) 18.01.09 589 2 8쪽
1 Ch 1. 겨우살이의 법도 (1) 18.01.08 254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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