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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환생기(六道幻生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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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량
작품등록일 :
2024.09.08 16:40
최근연재일 :
2024.09.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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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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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열지옥(焦熱地獄), 타파나(Tapana) (1)

DUMMY

초열지옥(焦熱地獄), 타파나(Tapana) (1)





새빨간 핏물과 같은 불꽃이 내 전신에서 일렁거리며 날 불태웠다.


뜨겁다. 뜨겁다. 무진장 뜨겁다!


타닥. 타다닥.


내 가죽을 장작삼아 타오르는 이 새빨간 불꽃은 내 전신을 잿더미처럼 검게 물들이고도 아직 더 태울 것이 남아 있었는지 계속해서 타올랐다.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이 내 전신을 꿰뚫어 보며 혈관과 근육의 결을 일일이 해집으며 찢어 놓는 느낌이랄까.


하여튼, 이런 표현으로도 업화의 고통을 묘사하기에는 모자랐다. 나는 고통에 떠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이 형벌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었다.


4경 하고도 4264조 129억 2981만 8591년.


그것이 내가 이승에 치렀던 죄를 모두 불태우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었다.


"으아아아!!!"


나는 세상이 떠나가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밟기만 해도 뜨거운 용암이 솟아 오르는 바닥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더니. 그래도 차라리 이렇게 고통받는 게 나았다. 이러면 생각이라도 안 할 수 있으니까. 아, 이 말은 취소다. 생각해 보니 비슷한 것 같았다.


"크아아아아!!!"


"끄아아아아아!!!!"


옆에서도 죄인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따지고 보면 내 후임 격인 인물들. 1만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맛이 간 것 같았다. 누구는 거의 1경년을 버텼는데. 나는 본능적으로 저들이 무슨 죄를 지어서 초열지옥에 떨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내 오른쪽에서 구르고 있는 대머리 남성은 영유아를 일곱 명이나 강간한 뒤에 죽였으며, 내 왼쪽에서 비명을 지르는 금발의 청년은 사이비 교주로 말도 안 되는 교리들을 신도들에게 강제하다가 결국, 자신이 가장 믿던 신도와 함께 자살한 이였다.


하지만 그들 또한 내 죄를 알고 있는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날 죽일 듯한 눈으로 째려보았다.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지만 죄는 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그저 반성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각은 한없이 흐르고, 끔찍한 비명을 지르던 내 목은 다 쉬어버려 이제는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대충 1억년쯤 지났나? 굉장히 긴 시간이었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리 긴 시각은 아니었다.



내가 계속 불타며 몸을 이리저리 굴리던 와중, 어딘가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이곳에 온 이후로 처음 들어 보는 발소리. 본래 이곳의 죄인은 뜨거운 용암탓에 땅을 밟을 수 없었다.



"흐음. 문제는 없는 건가?"



이 세상의 것으로 빚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려한 외모, 속옷은 하얗지만 겉옷은 검어서 대비를 이루는 아름다운 도포와 윤기가 흐르다 못해 빛까지 나는 듯한 갓까지.



"후우. 역시 초열지옥은 너무 덥군. 응? 뭐야."



저승사자다.



나는 그 존재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허업!"



지레 겁을 먹어 버린 나는 죽었을 때 입에 물고 있던 매실을 뱉고 말았다. 이게 여기까지 따라왔다는 놀라움보다는 매실을 본 저승사자의 표정이 더 기묘했다.



"오 뭐야. 매실이잖아."



초열지옥의 열기에 익다가 못해 타버린 매실을 주워든 저승사자는 특식을 살펴보는 어린아이처럼 매실을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이야, 죽어 있는데 이런 것도 다 먹어보네. 거기 매실을 뱉은 너."



그와 동시에, 내 몸의 업화가 꺼지며 내 밑의 땅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땅에 발을 디뎌도 더 이상 용암이 솟아오르지 않았다.



'뜨겁지 않아.'



"고맙다. 오랜만에 호강을 하는군. 저승에서 매실이 귀한 것은 어떻게 알고 말이야. 거참 고마운 죄인일세."



저승사자는 그 말을 끝으로 매실을 꿀꺽 삼켜 버리고는 웃으며 내게 다가와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이 이승에 있던 시절처럼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몇백년 만에 느껴보는 온전한 신체. 삶이라는 것이 이토록 감사한 것인지 이제서야 나는 알 수가 있었다.



"자, 그럼 보답해보실까. 딱 세 가지만 물어보아라. 뭐든지 대답해 줄 것이니."



저승사자는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겨 날 어디론가 이동시켰다. 아무래도 초열지옥의 열기에서 벗어난 어떠한 공간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도 상상치도 못한 기회가. 이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쳐선 안 돼.'



세 가지의 질문. 나는 고통에서 빠져나오며 느껴지는 삶의 감각을 한껏 만끽하고는 숨을 몰아쉬며 저승사자에게 말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까?"



"오, 그거 흥미로운 질문이네. 보통은 이곳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를 물어보는데 말이지."



저승사자는 몸을 더듬거리더니 품에서 오래돼 보이는 곰방대 하나를 꺼냈다. 곰방대에는 생기가 전혀 없어 보이는 검은색 풀이 있었는데, 나는 그 풀이 나와 같은 영혼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풀은 초열지옥의 열기탓에 금방 타기 시작했고, 그 풀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 저승사자는 기분 좋다는 듯 대답했다.



"후우. 좋아.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 이랬지? 우주의 법칙인 시간에 간섭하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어. 그건 '부처'가 되어 삼라만상을 좌우하는지고의 존재가 되는 것. 하지만 부처가 되는 일은 매우 지난하고 힘든 일이지. 웬만하면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아. 그냥 지옥에서 죄나 다 치르고 환생해서 착하게 살라고."



저런 초능력을 다루는 존재가 시도하지 않는 것을 권고했다면, 이전의 나는 그냥 포기하고 가만히 누워 있었겠지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생긴 시점에서 이미 나는 이성을 놓은 뒤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아직도 죽어 가며 내 배에 박힌 칼을 뽑아주던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삶의 마지막에 마지막의 순간까지도 오로지 나만을 생각해주던 그녀. 자기 마지막 힘으로 내 상처를 지혈해주던 그녀.



나는 도무지 그녀를 잊을 수 없었다. 그저, 한 번만 더 그녀를 보고 싶을 뿐이었다.



앞선 마음은 도저히 뒤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홀린 듯 무언가에 이끌려 저승사자에게 반문했다.



"그 '부처'란 것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알려주십시오."



"음. 정말로 도전할 거냐? 그 말도 안 되는 수행에?"



"도대체 뭔데 그러십니까. 그러지만 마시고 알려주십시오."



"안 된다. 그런 정보로 질문 하나를 퉁치기에는 내 양심이 너무 찔려. 부처가 되는 것은 그냥 대답해주마. 어차피 네놈이 죄를 다 치르고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미리 알려주는 셈 치지 뭐. 어차피 진짜 네가 부처가 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못해 불가능의 영역에 있는데."



"······."



저승사자는 곰방대를 꺼낸 주머니에서 하나의 족자를 꺼냈다. 문득, 저 주머니의 용량이 궁금해졌지만 저승사자의 설명이 시작되었기에 궁금증을 잠시 접은 나는 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 이걸 봐라. 이 세상은 일명 '육도(六道)'라는 환생체제하에 운영되고 있지. 네가 지금 있는 이곳은 '지옥도(地獄道)'. 그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인 '초열지옥(焦熱地獄)'이 네가 있는 곳이다. 뭐, 이 이름이 어려운 이들은 '타파나(Tapana)'라고도 부르긴 하지만."



"그래서 요점이 뭡니까."



그러자 저승사자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 거참 성격도 급하시군. '업화(業火)'의 고통이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지. 정말 흥미로운 놈이야. 그래서 더 설명해주자면······."



저승사자가 말한 부처가 되는 법은 다음과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부처가 되기 위한 조건에 가까웠다.



첫째로, '육도(六道)'의 여섯 개의 도에서 모두 환생하고 각 도에 부여된 '깨달음'을 얻을 것.



둘째로, 부처가 되기 전의 경지를 모두 이룩하고 '눈'을 뜰 것.



마지막으로, 괴로움을 '결단(決斷)'내고 열 가지 이상의 항목에 '해탈(解脫)'할 것.



"자. 이걸로 부처가 되기 위한 조건 설명은 끝이다. 질문 두 개가 남았으니 앞으로 딱 두 질문만 받겠다. 무슨 질문을 할 거냐?"



"제가 할 질문은······."





***





두 개의 질문이 끝나고. 녀석은 다시 초열지옥의 불길에 구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300만년 정도 지나면 가끔 지옥으로 내려오는 아귀들이 이들의 몸을 뜯어먹겠지.



하지만 그는 항상 찾아오는 그러한 일들보다 희박한 확률로 일어나는 기적에 관심이 있는 부류였다. 그 또한 기적으로 저승사자의 직위를 얻은 이이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놈이야. '그런 걸' 물어 보다니. 하마타면 밑천이 털릴뻔했어.'



그는 매실의 맛을 다시 떠올리며, 방금 보았던 죄인이 마지막 질문을 할 때 보였던 눈빛을 떠올렸다. 그것은, 산 자의 것도 죽은 자의 것의 눈빛도 아니었다. 굳이 비슷한 것을 꼽아보자면, 불행한 꿈속에 갇혀 계속해서 허상 속의 상실을 잊지 못하고 다시 불행한 꿈을 찾는 이의 것과 같았다.



물론, 그는 그런 감정에 공감 할 만큼 성인군자는 아니었다. 죄인은 죄인이고, 초열지옥에 떨어질 수준이었다면 인간 말종 수준의 죄를 지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에게는 여타 죄인들과는 다른 것이 있었다.



'그런 건 처음 봤지.'



사실, 업화는 그 정도까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애초에 지옥도는 인간에게 깃들어 있는 악의 뿌리를 뽑고 완전히 새 사람으로 만들어 갱생시키기 위한 것 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녀석의 업화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웠는지 잠시 생각해 본 저승사자는 그저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업화가 그 정도로 타오를 수준의 죄책감이라니. 이승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업화는 죄책감에 타올라 자신을 벌하게끔 만드는 힘. 물론, 최소치의 고통은 있었지만 당사자가 원한다면 업화의 고통은 얼마든지 추가될 수 있었다.



'그만큼이나 형량의 시간이 줄어들기도하고. 하지만 녀석의 업화는······.'



한계 이상으로 불타고 있었다. 나름 '천인도(天人道)'에서 '법(法)'을 닦고 있는 그조차도 열기를 느낄 정도로.



"의식적으로 죄업을 불태운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재미있는 녀석이야. 부디 네 앞길에 법이 있기를."



그것을 끝으로, 저승사자는 초열지옥에서 나갔다. 사방에서 죄인들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그가 지나가는 곳은 항상 조용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승을 나가는 마지막 관문에서, 문지기에게 묵례를 받은 그는 문지기에게 가볍게 읍을 해주고는 도포를 벗어 던졌다. 그가 도포를 벗어던지자마자 그의 전신에 고풍스러운 승복(僧服)이 둘러졌다.



"스승님. 오셨습니까."



머리를 빡빡 민 동자승이 그를 맞았다. 저승사자는 동자승에게 따듯한 미소를 지어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이만 가자꾸나."



아름다운 연꽃의 꽃봉오리가 그들을 감쌌다. 연꽃의 꽃봉오리가 다시 꽃을 피웠을 때는, 이미 그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





나는 업화의 고통 속에서도 저승사자가 알려 준 '십이연기(十二緣起)'라는 이름의 구결의 첫 문단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이때까지 해온 것들이 의식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것의 전제가 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명확한 진리가 없다는 것이다. 고로, 모든 진리들은 변하기도 하며 그대로 유지되기도한다.'



무슨 느낌인지는 알 것 같았지만, 이 구결을 되뇌인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저 내가 '생각한다'는 느낌만 느낄 수 있을 뿐. 업화의 고통탓에 무언가를 제대로 사고하고 분석할 만한 여유는 없다. 어쩌면,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뭘까. 도대체 뭘 놓치고 있는 걸까.'



시각은 빠르게 흐르고, 대충 354만년쯤 지났을 무렵.



"그와아아아!!!"



빈 머리에 배불뚝이 같은 외형을 한 시체들이 어디선가 기어올라와 나와 내 주변에서 고통받던 이들의 몸을 뜯어먹었다.



콰득! 콰지지직!!!



물론, 몸이 실시간으로 재생되기에 소멸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흐아아악!! 흐아아아아!!! 흐아아아아아!!!"



아, 미칠 것 같다.



콰드득- 까드득!!



아귀들은 마치 몇백 년은 굶은 이들처럼 뭉특한 이빨로 우리를 물어뜯었다. 전신이 불타는 것을 마다하면서도 배고픔에 찌들어 우리를 물어뜯는 아귀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렇게 시각은 또다시 속절없이 흘렀다.



대충 100년 정도의 식사가 끝나고, 아귀들은 끝끝내 업화를 버티지 못하고 모두 재가 되어 버렸다. 지나친 식탐을 부린 이의 최후였다. 처음으로 업화에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되뇌이는 것을 한없이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반복되는 구결이 떠오르며 구결의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진리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구나.'



나는 이제서야 내 행동에 잘못된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구결의 힘은 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내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구결의 힘을 받아들이며 업화의 고통을 감쇄시켜 주고 있었다.



'훨씬 나아.'



진작에 눈이 뒤집힐만한 고통에서 그래도 전신의 살을 저미는 수준으로 완화되었다. 앞으로 이어갈 수행이 더욱 원활해질 것이었다.



나는 다시 업화 속에서 구결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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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초열지옥(焦熱地獄), 타파나(Tapana) (2) 24.09.09 9 0 10쪽
» 초열지옥(焦熱地獄), 타파나(Tapana) (1) 24.09.08 17 0 14쪽
1 지옥도(地獄道) 24.09.08 22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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