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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아재

몰락할 백작가의 차남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바라아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9.03 10:15
최근연재일 :
2020.09.21 07:2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6,527
추천수 :
291
글자수 :
115,351

작성
20.09.19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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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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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다비드(1)

DUMMY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있으십니까?”


목검을 어깨에 올려놓은 채 테이릴이 묻는다. 나는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다시 일어나 그에게 답했다.


“아버님께서 성과를 보시겠다잖아.”


이걸로 몇 번째 대련이지? 열 몇 번까지는 셌었는데 그 뒤로는 바닥을 구르느라 바빴으니까.


“제 생각에 지금 도련님 수준이라면 무투제에서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무투제. 시데이나의 수확제때 펼쳐지는 행사 중 하나.

신분 여하를 가리지 않고 전사라면 누구나 참가를 희망하는 행사로, 시데이나는 몰라도 시데이나의 무투제는 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명성이 높은 행사다.

무투제는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먼 미래 유망주가 될 아이들을 모아 벌이는 토벌전과, 성인이 된 전사들이 벌이는 모의전으로. 데른이 나에게 참가하라고 한 것은 전자, 토벌전이다.


“굳이 살을 깎아 가시며 노력하실 필요는.”

“테이릴. 내가 단련을 시작하고 두 달이 안 됐어. 이번 무투제에 참가하는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몇 년 이상 무를 수련한 사람이 대부분일 테고.”

“도련님께서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만 그런 이는 흔치않습니다.”

[나도 네 기사의 말에 동의한다. 애초에 네 나이에 마력을 각성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두 사람의 말대로 지금의 나는 꽤 강할지도 모른다. 검을 수련한 기간은 길지 않지만 비정상적인 수단으로 마력을 각성했고, 매일같이 혹독한 수련을 거듭했으니.

문제는 지금 왕국이 여러 천재들의 각축장이라는 거지.

소설 속에서 왕국은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불씨였다. 쉴 틈 없이 수많은 재앙이 몰아쳤다.

그런 상황에서 왕국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한 세기에 한 번 태어날 법한 천재들이 수십 수 백 명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소설 속 다렌도 그중 하나였으며, 그와 동시기에 활약했던 영웅은 차고 넘칠 지경이다.

눈부신 재능을 가진 괴물들. 그들 또한 지금쯤 10살에서 15살 사이일 테고, 개 중엔 무투제에 참가하는 이들도 있겠지.

지금 나는 반드시 왕도로 가야 한다. 여기에 변수가 있어선 안 된다.

그들의 재능을 압도해야 한다.


“아직 낮이잖아. 한 번 더 하자.”

“지금 노을이 들어가고 있습니다만.”

“달이 안 떴으면 낮이야.”


손바닥을 까닥거리니 테이릴이 쓴웃음과 함께 자세를 취했다.

대치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빈틈이 없다.

변칙적인 호흡은 언제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게 만든다. 가벼운 스텝은 그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게 한다.

느슨하게 쥔 검은 어느 순간 범의 송곳니마냥 날카로워지고, 가늘게 뜨여진 저 눈은 짜증이 날 정도로 섬세해서 내가 준비한 수를 모두 파악해낸다.

기사인 테이릴과 꼬마인 나 사이엔 드높은 벽이 서있다.

먼저 들어갈까? 아니면 들어오는 걸 받아쳐볼까.

전자로 의견이 기울었다. 지금의 나로선 파고들어오는 테이릴을 막아낼 수 없다. 자그마한 기회라도 만들려면 먼저 검을 휘둘러야 한다.

숨을 가다듬으며 기회를 노린다. 하나 둘. 지금. 숨을 내쉬는 순간 발을 내딛었다. 반박자 빠른 동작에도 테이릴은 느긋이 나를 바라본다. 보고서 대처할 수 있단 자신감이다.

어설픈 변칙이 먹히지 않는다는 건 지겹도록 경험했다. 그러니 이번엔 올곧게, 내가 펼칠 수 있는 최선의 검을 휘두르겠다. 땅을 밟는 발에 힘을 더한다.

테이릴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정면에서 부딪힐 생각인가? 내가 그와 맞부딪힐 수 있을까.


[동작을 수정하기엔 늦었다. 부딪혀라.]


에일린의 말에 미혹을 떨쳐낸다. 해보자. 어차피 죽는 것도 아닌데.

목검끼리 부딪히며 낸 둔탁한 충격음이 귓가에 스민다.


“제기랄.”


충격으로 떨리는 손 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테이릴의 힘에 목검이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이번 건 좋았습니다. 도련님이 두 살만 많았어도 좋은 수가 되었을 겁니다.”


목검을 되돌리며 칭찬하는 테이릴. 순수한 의도겠지만 격차를 느끼고 난 뒤라 저 말조차 짜증난다.


“쓸데없는 칭찬은 됐어. 다시.”


*


무투제의 토벌전은 두 가지 경기로 나뉜다.

우선은 예선전인 난투. 참가자들을 몇 개의 조로 나눈 후 각 조 내부에서 난투를 벌인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3명의 참가자만이 본선인 토벌전에 오를 수 있다.

난투가 끝나고 하루를 쉰 후 토벌전이 이어진다.

토벌전은 난투전을 통과한 참가자들이 한 편을 취해 시데이나에서 내미는 괴물을 토벌하는 경기다. 참가자들의 수준을 고려해 그보다 두세 단계 높은 괴물을 내밀고, 그 괴물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각 사람들의 공헌도를 채점해 순위를 매긴다.

위험하지 않냐고? 토벌전을 할 때는 수많은 시데이나의 기사들이 참가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참가자가 위험해 질 것 같은 순간 시데이나의 기사가 나서 보호해주니 죽을 염려는 없다.

내 목표는 예선전을 통과한 후 토벌전에서 1인분을 하는 것 정도. 10살이면 무투제 참가 최소 연령이다. 이 정도만 해줘도 충분히 데른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이번엔 내 쪽에서 먼저 들어와 봐.”

“부탁하신 대로. 망설임없이 가겠습니다.”


난투에 대비하기 위해 테이릴과 대련을 한 지 이주일 째 나는 여전히 테이릴에게 한 방도 먹이지 못했고, 내 몸은 멍 자국으로 한 가득이다.

서로 진검을 나눴다면 나는 골백번은 넘게 죽었겠지.

대련을 시작할 땐 이 정도로 압도적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마력을 각성한 인간인데 그렇게까지 차이가 날까 싶었다. 적어도 한 방은 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목검을 맞댄 후 인정해야 한다. 테이릴이 더럽게 강하다는 걸.

나는 하루 종일 테이릴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몸에 목검을 대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지. 하지만 테이릴은 아이를 다루듯 나를 가지고 놀았다.

힘이고 체격이고 뭐고 간에 기술에서 차이가 났다. 그는 나보다 몇 수 앞을 노닐고 있었고, 필사적으로 짜낸 내 한수들은 그의 앞에서 무력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테이릴.”


흙바닥에 드러누운 채 목소리를 냈다. 아직 세 시간도 되지 않았을 텐데 벌써 몸이 너덜너덜거린다.


“몸 어디가 안 좋으십니까? 평상시 도련님이셨다면 지금부터 반나절은 더 하자고 그러셨을 텐데.”

“무투제 참가신청을 하러 가야지.”


시데이나의 차남으로 참가할 예정이었다면 시녀에게 맡기고 대련에 집중했겠지. 하지만 나는 귀족의 신분을 숨길 예정이다. 다른 이에게 참가를 맡길 순 없다.


“엘드 상회로 가자. 받아야 할 물건이 있어.”


*


시데이나의 거리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닐고 있다. 신분 또한 다양하다. 호위와 시종을 데리고 거니는 이들도 있고, 투박한 옷차림으로 노점을 거니는 이들도 있다.

소란스러운 거리의 모습에 축제가 머지않았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엘드 상회 또한 여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그것은 얼마 전부터 상회에서 약을 팔게 된 오토도 다르지 않았다.

성심성의껏 진료를 마친 후 나를 발견한 그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내가 그의 여동생을 구한 후로 그는 언제나 나에게 성실했다.


“요새 장사가 잘 되나봐?”

“워낙 시데이나를 찾는 분들이 많으시니까요. 자연스레 저도 바빠졌답니다.”


그저 부가효과일 뿐이라고 그는 말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거다. 엘드 상회에 뛰어난 약사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내 귀에 들릴 지경이니까. 그의 뛰어난 실력이 인정받고 있단 거겠지.


“아 참. 도련님. 베크가 도련님이 오시면 집무실로 찾아오시면 된다 했습니다.”

“알겠어. 고생해. 오토.”

“예. 감사드립니다.”


바쁘게 일을 하던 베크는 내가 찾아오자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찾아오실 때가 되었다 생각했습니다.”

“준비해 달라 했던 건?”

“여기에 있습니다.”


베크가 건네는 상자를 열어본다. 적당히 낡고 해진 옷과 빛이 바랜 하얀 색의 가면. 그리고 검은 색 가발.

내가 부탁했던 그대로다.


“잠시만 나가줄래? 갈아입어 볼게.”


베크와 테이릴을 내보낸 후 복장을 착용해 보았다.

그리 좋지 않은 천이라 착용감은 별로였지만 못 입을 수준은 아니다.

가발을 쓰고, 가면을 걸친 후 거울을 본다. 이 정도라면 겉모습은 합격.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쉬이 들키진 않을 것이다.

모습을 확인하고서 바깥으로 나간다.


“베크. 준비 잘 해줬어. 이 정도면 될 것 같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도련님.”


웃으며 답하는 베크에게 들어가서 일을 보라 말을 하고 테이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테이릴.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예?”

“신분을 감출 생각인데 호위가 따라붙어서 어쩌자는 거야. 그동안 내 대련에 어울리느라 고생했잖아. 적당히 쉬고 있어.”

“..알겠습니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테이릴을 내버려 둔 채 상회를 빠져나왔다.

혼자서 길거리에 나서는 것도 오랜만이다. 다렌이 되고 난 후에는 언제나 시녀나 호위가 곁에 붙어 있었으니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가 어려웠지. 언제나 다렌의 가면을 쓰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에일린이 곁에 있긴 하지만 평민을 연기한단 명목이 있으니 편하게 지내도 된다. 그걸 자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무투제의 참가도 참가지만, 조금 거리를 돌아다녀 볼까. 기껏 얻어낸 자유시간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해볼까.


“저기.”


한 발을 내딛은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쭈뼛거리며 다가온다.


“너 혹시 무투제를 참가하려면 어디로 가야하는 지 알아?”


복식은 평범하나 얼굴이나 머리카락이 깔끔하다. 관리를 받았단 소리다.

팔찌나 목걸이 같은 장신구 또한 고급스런 물건. 평범한 사람이 손 댈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무엇보다 걸음걸이나 발성이 안정돼 있다. 어릴 적부터 교육을 받은 거겠지.

귀족. 그것도 이름 있는 자작 이상.

아! 일러스트 속 모습과 달라져서 추측이 어려웠지만 겨우 떠올렸다.

본 자작가문의 다비드.

주인공의 동료 중 한 명.

다비드도 기사가문의 일원인 만큼 무투제에 참가하러 온 걸 거다.


‘에일린. 주변에 이 아이의 호위가 있습니까?’

[글쎄다. 그 아이를 주시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만.]


가문의 사람 몰래 놀러 나온 거겠지. 귀족 티를 내면 금방 들킬 테니까 신분을 감추려 하는 거고.

조금도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나쁘진 않다. 언젠가 만나려고 했던 사람이니까.

크로노에서 비중이 많단 말은 깊은 불행 속에 처박혀 있단 의미와 같다.

다렌의 불행을 보아라. 가족을 잃었고, 따르는 이를 떠나보냈고, 가문은 몰락했으며, 영지는 간신히 명맥을 이어나갈 수준이 되었다. 비중이 있다 한들 조연일 뿐인데.

주인공의 동료라는 역할을 꿰찬 다비드는 이보다 더한 불행에 내던져진 사람이다. 행복이란 단어와 격리된 듯한 인간이다.

그를 웃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크로노에서 가장 좋아하던 캐릭터를 구하기 위해서 그와 친분을 맺을 계획이었는데. 잘 됐다.

상황도 괜찮다. 시데이나의 다렌이었다면 다비드가 쉬이 다가오지 못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순전히 평민 아이. 다비드와 부담 없이 웃고 떠들 수 있다.

연기를 좀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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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야기를 바꾸다(2) +2 20.09.06 317 14 12쪽
5 이야기를 바꾸다(1) +2 20.09.05 379 13 12쪽
4 강해질 방법(1) +2 20.09.04 445 16 12쪽
3 소설의 조연이 되었다(3) +6 20.09.03 439 19 12쪽
2 소설의 조연이 되었다(2) +3 20.09.03 476 21 12쪽
1 소설의 조연이 되었다(1) +5 20.09.03 782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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