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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아재

몰락할 백작가의 차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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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아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9.03 10:15
최근연재일 :
2020.09.21 07:2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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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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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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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흡혈귀와 성기사(2)

DUMMY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저녁이 되어 가는 데 저를..”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줄 게. 일단 따라와.”


테이릴의 물음을 묵살한 채 엘드 상회로 향했다.

노을이 질 무렵이 되어 가게를 정리하던 직원들은 갑작스런 내 등장에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달리느라 거칠어진 숨을 달랜 후 문 근처에 있던 직원 하나를 붙잡았다.


“베크는.”

“예?”

“베크는 어디 있어.”


직원은 일순 망설였다. 자신의 상사에 관해 멋대로 말한다는 게 걸리는 듯 했다. 그럼 입을 나불거리게 만들면 된다.

목소리를 높일 필요는 없다. 입가를 굳히고, 목소리 톤을 살짝 낮추고, 담담한 어투로 말하면 충분하다.


“뭘 망설이지? 내가 어려서 만만해 보이나?”


눈빛은 차갑게. 아무런 감정 없이 직원의 눈을 바라본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도련님.”


그럼 귀족의 권위가 알아서 나를 거스를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다시 물을게. 베크는 어디 있어?”

“2층의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겁니다.”

“대답해줘서 고마워.”


스치듯 대답하고 2층으로 향한다.

집무실의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간다. 베크는 서류를 살피다 고개를 들었다. 내 얼굴을 확인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반갑습니다. 도련님.”

“그래. 반가워.”

“여기는 어쩐 일이신지요?”

“오토는 어디에 있지?”

“오토라면, 지금 저녁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다급함을 짐작해준 듯 베크는 여러 물음을 삼키고 내 질문에 답해주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아?”

“예. 제가 가게를 추천해 줬으니까요.”

“안내해줘. 최대한 빨리.”


한시가 급하다. 상황은 이미 내 손을 벗어나 제멋대로 뻗어나가고 있다. 당장 거리 어딘가에서 오토와 성기사가 싸우기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다.


“따라오시죠.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베크의 걸음이 느리다. 몸을 쓰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답답하다. 마음 같아선 테이릴에게 베크를 업으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


[다렌. 좀 진정하거라.]

‘지금 한 시가 급한데 어떻게 진정을 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세상사람 누구나 네 다급함을 눈치 챌 것 같구나.]


상회의 문을 나서기 직전, 에일린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너는 네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 아니더냐.]

‘..그렇죠.’

[그런데 조급함을 보여서야 되겠느냐.]


그녀의 말이 맞다. 갑작스레 펼쳐진 상황에 냉정을 잃었다. 그래서 생각하기보다 먼저 몸을 움직였다.


‘고마워요. 에일린.’

[무얼. 네가 하려던 일이나 잘 해결하거라.]


베크가 안내해 준 가게는 술과 음식의 냄새로 그득하게 차 있었다.


“저기 있군요.”


베크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빠르게 한 사람을 찾아냈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린다.

낡고 해진 검은색의 로브를 입은 남자가 김이 나는 닭다리를 두 손으로 집어서 먹고 있다.

오토. 마자리스로 마약을 제조한 천재 약사의 제자.

약학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대륙에서 수위에 꼽힐 인재.

그리고 확실치 않은 검은죽음 백신의 레시피를 명확하게 만들어 줄 사람.

분명 소설 속에선 회환과 후회, 그리고 집념으로 가득 찬 추한 얼굴이라 묘사되었는데, 지금 오토의 얼굴은 장난스런 웃음이 어울릴 듯한 평범한 청년의 얼굴이다.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단 이유로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는 거구나.


“이보게. 친구.”


베크가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오토를 불렀다. 오토는 씹고 있던 음식을 단번에 삼키고는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낸 후 말했다.


“베크님. 오늘 집무실에서 계속 일을 처리할거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네만. 귀한 손님께서 방문하셨거든.”

“손님?”

“이 분이 자네에게 편지를 보낸 분일세.”


오토의 벽안이 내 쪽으로 향한다.


“편지라면. 다렌 H 시데이나님. 맞으십니까?”

“그래. 맞아.”


그 눈빛에 열망이 담긴다. 그것은 데일 듯 뜨거운 의지였으며, 희망을 가진 이의 열정이었다.


“인사드립니다. 저는.”

“오! 도련님!”


오토의 달뜬 목소리를 다른 목소리가 끊어냈다. 아침에 들었던 목소리. 이안이다.


“저녁을 먹으러 오셨습니까?”


가면을 쓰자. 여기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태연하게, 우연한 만남에 놀라는 척 해야 한다.

살짝 눈을 치켜뜨고, 입꼬리는 슬며시 올리고, 놀랐다는 듯 어깨를 움찔거린 후, 반가움의 표시로 손을 내민다.


“사람을 만나는 김에 식사를 하러 왔어. 이 곳의 음식이 그렇게 유명하다던 걸?”


악수를 나누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오늘 아침의 악수가 조심스런 애정의 표현이었다면, 지금의 악수는 날카로운 경계의 표현이다.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계산이 끼어들어가 있다.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정말 맛있었거든요.”


대화를 나누며 확신했다. 교회는 오토의 여동생을 노리고 있다.

이안이라는 남자가 이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을 땐 교회의 명령과 관계되어 있을 때 뿐 이거든. 나는, 이안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했던 나만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 여기에 오길 잘했네.”


너스레를 떨며 이안이 앉아 있던 자리. 그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이들을 살핀다.

목에 걸린 십자가. 팔목에 끼워진 로자리오. 평상복을 입고 있지만 분명 교회의 사람들이다.

어째서 교회의 사람이란 걸 드러냈지? 오토의 경계를 사게 될 텐데? 만일 곁에서 추적을 할 생각이었다면 저런 일을 할 리 없다.

그렇다면 다른 의도가 섞여있다는 거겠지.


“즐거운 식사되시길. 저는 이만 자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안. 나도 좋은 식사가 되길 바랄게.”


이안을 떠나보내며 생각을 거듭한다. 왜 저런 행동을 했을까.

경계를 심기 위해서? 감시받고 있단 걸 알리기 위해서? 이런 사실을 인지시키면 어떻게 될까. 거동이 조심스러워지고, 신경이 교회 측 사람들에게 쏠려. 다른 곳에 신경을 쏟기 어렵게 돼.

..만약, 성기사가 두 팀으로 나뉘어져 있다면?

이안의 일행이 신경을 끄는 틈에 다른 이들이 오토의 숙소를 습격했다면?


“오토. 관은 어디에 놔뒀지?”

“도련님? 그건 여기서 할 이야기가.”

“급한 이야기야. 다른 건 내가 어떻게든 책임 질 테니까. 말해. 당장.”

“그야 평소처럼 숙소에 놔뒀습니다.”


여기서 오토의 평소처럼 이라는 건, 온갖 마법적 방비를 끝내고 다른 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든 후 그곳에 보관해뒀다는 이야기.


“관의 위치. 지금 추적할 수 있지.”

“예. 물론 가능합니다.”

“당장 추적해봐.”


이 모든 게 내 피해망상일 뿐이라면 상관없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건 내가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추측이 망상이 아닌 현실이라면.


“..어? 이럴 리가.”


상황은 급변한다.


“말도 안 돼. 왜 경보가 울리지 않았지? 왜 위치가..”


확정됐다. 교회는 오늘 이안의 여동생을 죽일 생각이다.


“진정해. 당황한다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오토를 다잡는다.

여동생이 죽게 되면 오토는 무너진다.

그건 곤란하다. 오토를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크로노의 실력 있는 의사들은 대부분 나사가 빠진 정신병자들이니까.

난 내 정신을 깎아가며 그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오토. 네 여동생은 지금 성기사들에게 납치당했어.”

“그럴 수가. 그럼 제 여동생은..”

“아직 그녀가 죽은 건 아냐. 되돌릴 수 있어.”


오토는 어리벙벙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네 여동생을 구해줄게.”


믿기지 않겠지. 꼬마아이가 일을 해결해 준다고 하면.


“정말입니까?”


하지만 궁지에 걸린 오토는, 썩은 동아줄이라고 잡고픈 그로선 믿기지 않더라도 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 그러니까 내 질문에 답해줘.”

“..예. 알겠습니다.”

“숙소를 나선 지 얼마나 됐지?”

“1시간 정도입니다.”


1시간. 1시간이라.

생각을 정리한다. 오토가 숙소에서 빠져나오고 1시간. 마법적 방비를 해제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테니 오토가 빠져나오자마자 일을 저질렀다 쳐도 아직 30분. 오토의 여동생은 살아있다.

교회의 놈들은, 특히 괴물을 처단하는 성기사는 쓸데없는 허례허식에 관심이 많다. 예식을 제대로 행하지 않으면 자신이 처단한 이들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믿거든.

흡혈귀를 처단할 때 행하는 예식에 걸리는 시간은 2~3시간. 그 시간이 지나기 전에. 오토의 여동생이 죽기 전에.

이안을 설득해야 한다.


“고마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성기사와 담판을 짓고 올 테니까.”


멍한 표정의 오토를 내버려 둔 채 이안에게로 향한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솔직히 내가 정말 이안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안정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그래도 해야 한다. 내가 만들어낸 비극이니, 내가 해결해야 한다.


“도련님?”


식사를 마쳤는지 빈 접시를 앞에 두고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이안은 내 접근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기 안 해도 돼. 어차피 다 눈치 챘잖아.”


짜증날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내 눈엔 저게 연기라는 게 보인다.

당돌한 물음에 이안이 옅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설마 오토를 불러들인 게 도련님일 줄이야.”


주변에 있는 교회 놈들에게서 진득한 적의가 느껴진다. 허나 거기엔 관심 없다. 어차피 저들은 날 해하지 못한다.

시데이나라는 이름은 한낱 교인이 건드릴 수 있을 정도로 가볍지 않다.


“그래. 오토를 불러들인 건 나야.”


지금 내가 낼 수 있는 패는 없다시피 하다.

지켜야 할 것을 빼앗겼고, 명분 또한 이안이 쥐고 있지. 정보의 우위도 마땅치 않다. 가진 것만 비교해보면 내 패배는 확정되어 있다.

하지만 본래 도박이라는 게, 손패가 좋다고 무조건 적인 승리를 거두는 건 아니거든.

가면을 쓴다. 당당하고 건방진 이의 가면을. 자신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신용하는 오만한 귀족의 가면을.


”문제는 이 사실을 이제 아버님도 알고 있단 거지.”


태연스레 거짓을 고한다. 어차피 상황이 끝나기 전까지 이안은 내 거짓을 확인할 수 없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무슨 소리냐고? 시데이나의 뜻이 바뀌었단 거야.”


즉, 내가 어떤 헛소리를 지껄인다 한들 이안은 내 말이 데른의 뜻인지 내 뜻인지 구분할 수 없단 말이다.


“고해성사의 술법을 펼쳐. 남들이 들으면 곤란할 이야기거든.”


고해성사의 술법. 대상이 되는 두 사람과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이다.

본래는 외부에서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이지만, 실제론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마법.


“여러분. 뒤로 물러나 주세요.”


이안은 눈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동료들에게 말했다.


“허나 이안 공.”

“시데이나의 뜻이 변했다면 이야기를 나누어봐야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불만이 새어나오려 했지만 이안은 담담한 어투로 동료를 설득한다.

테이블 위에 나와 이안만이 남은 순간 이안이 품 안에서 구슬을 하나 꺼냈다. 그 구슬을 테이블 중앙에 올려놓으니 나와 이안을 기점으로 투명한 벽이 생겨난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이들의 목소리가, 게걸스레 음식을 뜯는 소리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주방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가 사라진다.

고해성사의 술법이 펼쳐졌다.

소음이 사라짐과 동시에 팔찌를 벗는다. 에일린이 나를 향해 무어라 소리쳤지만 무시했다.

내가 할 일을 그녀에게 보였다간 변명의 여지가 없어지거든.


“원하시는 대로 술법을 펼쳤습니다. 도련님.”

“고마워. 덕택에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겠네.”

“상황이 급하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나는 오토의 여동생을 살리고 싶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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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야기를 바꾸다(2) +2 20.09.06 317 14 12쪽
5 이야기를 바꾸다(1) +2 20.09.05 379 13 12쪽
4 강해질 방법(1) +2 20.09.04 445 16 12쪽
3 소설의 조연이 되었다(3) +6 20.09.03 439 19 12쪽
2 소설의 조연이 되었다(2) +3 20.09.03 476 21 12쪽
1 소설의 조연이 되었다(1) +5 20.09.03 782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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