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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나무 님의 서재입니다.

무명이었는데, 80년대 톱스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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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하스
작품등록일 :
2023.11.27 16:13
최근연재일 :
2024.01.1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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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12.2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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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개구리들의 왕

DUMMY

“잘했어요.”


방송국을 나오자, 정유희는 날 향해 그렇게 말했다.


잘했다는 그 말이, 내가 대본 리딩에서 보인 연기에 대한 칭찬인지 아니면 강주혁의 유치한 도발에 넘어가지 않은 것을 말함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뭐, 둘 다일 수도 있고.’


아무튼 중요한 건, 정유희에게나, 다른 배우들에게나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당장, 대본 리딩이 끝나고 나에게 말을 걸어 온 배우 중에는 꽤 유명한 이들도 섞여 있을 정도였으니까.


거기다, 강주혁이 보인 반응을 보면 그도 내 연기를 가지고는 더 이상 꼬투리를 잡을 생각이 없을 것이었다.


“참, 서혜정 어때 보였어요?”


내가 똥 씹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강주혁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던 그 순간.


정유희는 날 바라보며 조금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서혜정이요?”

“네.”


그런 건 왜 묻냐는 얼굴로 되묻는 내 모습에 정유희는 특유의 야릇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에 장난기가 잔뜩 숨어 있는 것이 보였지만, 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정유희라는 사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꽤 괜찮은 연기를 하던데요? 재능이 아주 많은 거 같았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내 말에 정유희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날 향해 그리 물었다.


대충 무슨 반응을 기대하는지는 예상이 됐지만, 그녀의 장난에 어울려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네. 전부입니다만?”

“···뭐, 현준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그래서 말인데, 그 재능 내가 키워볼까 하는데?”


나는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하는 정유희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서혜정이야 방송국에 속한 몸도 아니었으니, 정유희가 탐을 내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서혜정 또한 연예계 활동을 위해 개인적으로 매니저를 두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정유희의 이름값이라면 그녀를 데리고 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으니까.


어쩌면 정유희는 본능적으로 서혜정에게서 스타가 될 기운 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한 번 최고의 자리에 서 봤던 여배우였으니,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는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내가 헛웃음을 흘린 이유는 간단했다.


정유희가 고심 끝에 내 제안대로 소속사를 차리기로 결심을 한 것이 고작 얼마 전의 일이었으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속사 차리는 거, 망설이시지 않았습니까?”


나는 순수한 호기심을 담아 정유희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그녀가 망설인 이유야 여럿이 있을 테지만, 그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 질문에 대한 정유희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망설였죠. 그런데, 이왕 시작했으면 최고가 돼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당연한 걸 묻냐는 것 같은 얼굴로 그리 답하는 정유희를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어쩌면 그녀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지금과 같은 성향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런 정유희가 키워 낸 서혜정이 어디까지 갈지도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서혜정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여배우였으니까.


**


“형! 너무 긴장하지 말고, 떨지 마.”

“긴장도 안 했고, 떨리지도 않아.”


나는 나보다 훨씬 더 긴장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는 현성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에게 오늘이 첫 촬영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부터가 문제였다.


정작 촬영을 하는 것은 나였으나, 현성이 녀석은 전날 잠까지 제대로 못 이룰 정도로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녀석의 귀에는 닿지 않는 모양.


하지만, 문제는 현성이 뿐만이 아니었다.


“그래요. 누가 처음부터 잘하나? 가서 기죽지 말아요.”

“오빠! 가서 강주혁 박살 내고 와요!”


꼭두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집 아줌마는 물론이고, 방민주까지 나와서 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내 차 옆에 멀뚱히 서 있던 김지훈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은 도망치듯 차 안으로 숨어버렸다.


김지훈이 그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오늘 첫 촬영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현성이는 물론이고, 주인집 아줌마와 방민주에게까지 떠든 범인이 바로 녀석이었으니까.


물론 김지훈도 나쁜 뜻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잘되는 것이 제 일처럼 기뻤기에 오버를 한 것에 불과했다.


거기다 그 자랑을 늘어놓은 상대가 주인집 아줌마와 방민주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잘못이라고 할 만큼 뭔가를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다만 김지훈이 퍼뜨린 그 소식 때문에, 촬영 날 아침부터 모두가 대문까지 따라 나와서 날 배웅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생겼다는 것이 난처했을 따름이었다.


‘아니, 기도 안 죽었고. 강주혁이랑 싸우러 가는 게 아니라, 촬영하러 가는 거라니까?’


나는 해맑은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는 주인집 아줌마와 방민주를 보며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엉뚱한 응원이기는 했지만, 사실 기분이 나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민망한 구석은 있어도, 어째선지 간질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 썩 싫지 않은 느낌에 가까웠다.


솔직히 주인아줌마의 입장에서 나는 그저 자신의 집에 세를 들어 사는 세입자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일부러 이렇게 배웅하고, 응원을 해주는 것은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싫어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대문까지 나온 세 사람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너.”

“죄송합니다. 형님. 저는 그냥, 진짜, 좋은 뜻에서···.”


내가 조수석에 타자마자 변명을 늘어놓는 김지훈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뭐 하러 가족도 아닌 주인집 아줌마에게까지 그런 이야기를 했냐고 따지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런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어린 나이에 보육원 식구들과 자라 온 김지훈에게 가족이라는 것은 핏줄이 섞인 사람만을 의미하는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


“됐다. 운전이나 해, 인마.”


나는 김지훈을 향해 그렇게 말했고, 녀석은 내 말에 또 해맑게 웃었다.


**


“사람이 꽤 많네요?”


나는 김지훈의 말에 차창 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춘 예찬]은 대학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였고, 당연히 촬영 분량의 상당수가 대학교에서 찍을 수밖에 없는 드라마였다.


문제는 대학이란 곳이, 언제나 학생들이 붐비는 장소라는 것에 있었다.


일부러 방학 기간을 생각하고, 또 이른 아침부터 촬영을 시작하려 했음에도 이미 촬영 장소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 구경꾼들이 가득했다.


아무리 제작진들이 비밀을 지키려 노력해 봐야, 대학교에서 촬영하기 위해서는 학교 측의 허가가 필요한 법이었다.


그리고 그 허가를 얻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소문은 퍼지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 주인공이 누군데?”

“강주혁.”

“에이, 괜히 왔네. 나 강주혁은 별로···.”

“누가 강주혁 구경하러 왔대? 여기 서혜정도 나온다던데? 그리고, 정유희도.”

“진짜? 서혜정? 거기다 정유희가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차에서 내리자, 촬영장을 구경하러 온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렸다.


나는 생각보다 시들한 강주혁의 인기와 반대로 엄청난 서혜정의 인기와 정유희의 인지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 웃음 소리에, 그렇게 떠들던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근데 저 사람도 탤런트 아냐?”

“그러게. 엄청 잘 생겼다.”


자기들 딴에는 조용히 말한다고 하는 말 같았지만, 원래 사람이란 게 제 이야기는 신기할 정도로 잘 들리는 법이었다.


나는 민망한 표정으로 웃으며, 날 두고 그리 말하는 학생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멀리서 날 발견한 드라마 조연출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김현준 씨. 분장팀은 저 건물 안쪽에 있으니까 그리로 이동하시면 돼요.”


조연출은 날 향해 그렇게 필요한 정보만 전달하고는, 정신이 없는 얼굴로 또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으니, 현장을 통제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와, 진짜 탤런트인가 봐. 이름이 뭐지?”

“나, 이 드라마 봐야겠다.”


조연출에게는 갑작스럽게 사람이 몰려든 것이 악몽 같겠지만, 나에겐 달랐다.


오히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연기를 지켜본다고 생각하니, 짜릿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전에 찍었던 영화[외지인]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외지인] 또한 구경꾼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애초에 한적한 시골 마을이 배경이었다.


그러니 구경을 하러 나온 사람들도,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연령층도 높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서울 중심에 있는 대학가.


그 대학생들이 날 보며 하는 말은, 내게 어떤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확실히 이 외모는 먹혀.’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연기만 잘 하는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다.


연기도 잘 하고, 인기도 많은.


그래서 누군가에게 받는 것보다 베풀어 줄 것이 많은 그런 배우가 되는 것이 이번 생의 내 목표였고, 그건 꽤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


“일찍 좀 다니지?”


조연출의 말대로 건물 안으로 향하자, 분장팀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 분장을 받고 있던 강주혁은 뒤늦게 들어오는 날 향해 대뜸 그렇게 말했다.


사실, 시간으로 따지면 내가 늦은 것은 아니었다.


아직 촬영 전이기도 했거니와, 도착하지 않은 배우들도 꽤 있었으니까.


정유희가 없다고 다짜고짜 시비를 거는 건가 싶었지만, 거울로 비친 강주혁의 표정은 그게 아닌 듯싶었다.


“그래도 신인인데, 열심히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그리 말하는 강주혁의 표정은 그야말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는 데다,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반응이 묘했다.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조금 뒤늦게야 놈이 그러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이거, 조언인가?’


그러니까, 내 생각에 강주혁은 나에게 나름의 조언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리딩 현장에서 그렇게나 시비를 걸어대던 그가, 나에게 조언한다는 것은 나름의 인정과 사과라고 봐도 무방했다.


뭐 얼마나 삐뚤어진 인간이면, 사과를 이런 식으로밖에 못하나 싶기는 했지만, 그의 입장을 고려하면 무리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 장소에는 공채 탤런트들이 꽤 있었고, 그들의 대표나 다름없는 강주혁으로서는 그 정도의 말을 한 것만 하더라도 자신이 많이 물러선 것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우물 안 개구리, 그것도 그 중의 왕이냐?’


내 눈에는 자신들의 실력을 키울 생각도 없는 공채들이나, 그들의 대표 노릇을 하는 강주혁이나 한심하게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강주혁이 그 정도의 양보를 보인 것은 내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한 번 그렇게 물러난 이상에는, 적어도 전처럼 유치한 시비를 걸어오지는 않을 테니까.


“박호영! 이 개자식, 어디 있어?”


하지만, 내가 강주혁의 말에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누군가가 들어와 그렇게 소리치는 것이 보였다.


“국장님이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호영이는 또 왜요?”


그리고, 그 화가 난 남자를 향해 강주혁이 그렇게 묻는 것이 보였다.


‘박호영? 그리고 저 아저씨가 국장이라고?’


나는 꽤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며, 잔뜩 화가 난 남자를 바라봤다.


강주혁의 말에 의하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들이닥친 남자는 KBC의 드라마 국장인 듯했고, 박호영은, 분명 내게 ‘장필도’역을 빼앗긴 공채 탤런트의 이름이었다.


“이거나 보고 말해.”


드라마 국장은 대답 대신 강주혁을 향해 손에 쥐고 있던 신문지를 던졌다.


강주혁의 몸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진 신문지에는 생각지도 못한 기사가 대서특필되어 있었다.


‘이게 뭔 개소리야?’


작가의말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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