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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省元) 님의 서재입니다.

이방인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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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省元)
작품등록일 :
2020.11.28 17:19
최근연재일 :
2022.08.11 00:05
연재수 :
2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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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47
추천수 :
1,767
글자수 :
1,373,441

작성
22.03.0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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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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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175화 - 경황망조.

DUMMY

내관과 궁인들이 평원왕의 앞길을 밝게 비추던 밤.


침전의 대문이 열리자 내부로 걸어 들어온 평원왕을 따라 목재 함을 든 내관이 뒤를 따랐다.


의복을 소복으로 환복한 평원왕은 곧장 침실로 향했다.


뿌드득거리는 나뭇결 바닥의 소리가 왕후 대실진이 있는 침실에 가까워졌다.


미리 왕세제 고건무를 재운 대실진은 심란한 기색으로 침실에서 전전긍긍했다.



‘폐, 폐하께서 이 시각까지 어딜 다녀오셨을까..’



바닥을 두들기는 발걸음 소리가 침실의 문에 다다르자 대실진은 얼른 일어나 남편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궁녀들이 방문을 열자 따듯한 온돌바닥의 온기와 함께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긋한 냄새가 슬며시 풍겨왔다.


사방에 넘실거리는 여러 개의 호롱불에 비친 평원왕의 모습을 유난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쳐다보던 대실진이 무겁도록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부인, 아직 안 주무시었소?”


“소, 소첩이 어찌 먼저 잠을 청하겠사옵니까. 폐하...”



평원왕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내관이 들고 온 목재 함을 받았다.


방문이 닫히자 그는 목재 함을 침상 근처의 탁자에 올려두었다.



“폐하. 그게.. 무엇이옵니까?”


“내 재미난 물건을 받게 되어 부인에게도 보여주려고 가지고 왔소. 침실까지 이렇게 들고 온 게 뭔지 궁금하지 않소?”


“처, 처음.. 보는 물건을 침실에 들이시니 어찌 궁금하지 않겠사옵니까..”



평원왕은 건조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하다가 곧 침상에서 자는 아들 고건무를 바라보았다.



“내 평소에 건무를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는구려.”



평원왕은 잠이 든 아들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비가 머리를 쓰다듬자 잠에서 깬 고건무는 아비의 형체에 반기듯 방긋방긋 웃으며 아비를 향해 손짓했다.



“꺄아~~ 바바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정치판에 휘말릴 것을 걱정하던 평원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아이를 안고 어부바를 하며 포동포동한 아이의 볼기짝을 만졌다.



“으구~~ 우리 건무도 자라면서 태왕의 기백을 이 아비에게 보여줄 수 있겠지? 암~ 그렇고말고. 누구의 아들인데.”


“아바바바바~~”



아기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비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오랜만에 부자간의 정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러나 난데없이 ‘태왕’이라는 말을 꺼낸 평원왕의 의중을 우려하던 대실진은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다.



“화, 황공하옵니다. 폐하.”


“어떻소? 부인. 우리 건무도 대원이 다음으로 태왕 놀이를 한번 시켜주는 것이?”


“폐, 폐하!? 태, 태왕 놀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부인.”


“예!? 아... 예.. 폐하.”


“함을 열어보시오.”


“예?”


“함을 열어보라고 했소.”



마치 아이를 인질로 안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에 대실진의 턱이 부르르 떨렸다.



“예.. 예. 폐하..”



대실진은 천천히 탁자로 다가가 함을 손에 쥐었고 평원왕은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천천히 뚜껑을 들어 올리자 반짝이는 의수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덜그럭!-



정하시의 의수가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을 확인한 대실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쁜 눈이 마치 튀어나올 것같이 커진 그녀는 차마 뒤돌아서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있었다.



‘마, 맙소사.. 맙소사.. 이를 어찌.. 폐, 폐하께서.. 저, 정하시 그자를...’



고건무의 볼기짝을 어루만지던 평원왕은 그녀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경황망조라는 말이 있단다. 그게 뭔지 이 아비가 가르쳐 주랴? 건무야.”


“아바바바~~”


“저기, 네 어미의 모습을 보아라.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처지를 뜻하느니라.”



얼어붙은 대실진의 눈망울은 순식간에 습기를 머금었다.



“폐.. 폐.. 폐하..”



뒤돌아서서 평원왕의 용안을 바라보는 순간 고여 있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진아.”


“예... 예. 폐하..”


“애지중지하던 명림단을 먼저 보내고 나서 대실 가문의 너를 후궁으로 들인 이유를.. 잘 알고 있겠지?”


“예, 예. 폐하.. 황실과 왕권의 균형을 위해...”


"흥! 나는 너를 진심으로 여겼건만."



평원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건무를 안고 방을 배회하며 말을 이었다.



“진이 네가 건무를 낳으면서 이 아이의 처신에 대해서 늘 생각했었다. 태자로서는 이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신하로 둘 지 목숨을 거둘지 결정하겠지.”


“폐하...”


“내 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 애써 몸과 마음을 사렸건만, 네가 감히 이 나라 태왕인 내게 비수를 꽂다니.”


“그, 그건 오, 오해이옵니다. 폐, 폐하.”


“오해라? 진. 묻는 말에 가감 없이 대답해라.”



화들짝 놀란 대실진은 그 자리에 엎드려 고개를 땅에 박으며 대답했다.



“하, 하문하시옵소서..”


“그 의수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으렷다.”


“예, 예.. 폐하..”


“하아....”



숨이 넘어갈 듯 깊은 한숨을 내쉬던 평원왕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꾸부리고 앉아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 어찌 그런 경거망동을 했단 말이냐?”


“폐, 폐하.. 소첩은.. 그, 그...”


“네 소망이 이 아이가 태왕이 되는 것이냐?”


“예!?”


“건무가 태왕이 되는 것이 네 소망인 것이냐? 응?”


“폐, 폐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는 그녀의 태도에 평원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대답을 못해!!!”



갑작스러운 호통에 품에 안겨있던 고건무가 깜짝 놀라 자지러지듯 울음을 터뜨렸다.



“아아아아아앙!! 아바바바.. 아앙 아아앙!”


“폐, 폐하.. 살려주시옵소서.. 흐흐흑!”



아들이 울음을 터뜨리자 어미인 그녀 역시 재차 왈칵 눈물을 쏟아내며 머리를 조아렸다.


왕세제의 갑작스러운 울음에 검은 도복과 복면을 쓴 시위들이 들어오자 평원왕이 재차 소리쳤다.



“모두 나가거라!”


“존명!”



시위들이 나가고 다시 문이 닫히자, 평원왕은 울고 있는 어린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바.. 아바바. 아아앙..”



어린 아이는 어미 대신 용서를 구하려는 듯, 아비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평원왕 역시 애써 글썽이는 눈물을 참기 위해 아이를 안고 한참을 방안을 배회했다.



“흑흑.. 폐하. 건무를 살려주시옵소서.. 부디 건무만큼은 살려주시옵소서..”



대실진은 바닥에 엎으려 염불 외우듯 계속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어느 정도 진정되자 평원왕은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건무를 살리고 싶은 것이냐?”


“예, 예! 폐하! 무슨 일이라도 하겠사옵니다. 부디 건무만큼은 살려주시옵소서.”


“건무가 태왕이 되는 것이 네 소원이라면, 내 들어줄 것이다.”


“폐, 폐하...?”


“단 조건이 있다. 네가 이를 거절하거나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이 아이는 물론이요, 대실 가문 자체를 멸족시킬 것이다.”


“조, 조건이라 하심은...”



평원왕은 아이를 업은 채로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귀를 대고 속삭였다.



“폐, 폐하!? 어, 어찌. 그, 그런...”



평원왕의 미간과 눈매가 또다시 일그러지자 대실진은 별수 없이 평원왕의 제안을 따랐다.



“아. 알겠사옵니다. 폐하의 분부대로 따르겠사옵니다.”


“앞으로 네 일거수일투족 역시 감시당할 것이니, 나를 원망 마라.”


“흐흐흑...”



한참을 울었던 고건무가 아비의 품에서 잠들자 평원왕은 대실진은 신경도 쓰지 않고 아이와 함께 침상에 누웠다.


대실진은 일어서지도 못하며 그저 바닥에서 흐느낄 뿐이었다.



***



공주가 잠이든 것을 확인한 온달은 다시금 정하시가 갇힌 중리부의 감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지기들은 전쟁영웅의 재등장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아! 온부마. 어찌 이 시각에..”


“어쩐 일이십니까, 온부마.”


“내일 장안성으로 되돌아가기 전에 죄인과 이야기를 좀 나눠야겠어. 들어가게 해줘.”


“하, 하오나 폐하께서 아무도 출입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기에..”


“그래도 좀 부탁할게. 내게 정말 급한 일이야.”


“으음..”


“어찌하지..?”


“허면.. 이번 일은 비밀로 해주십시오. 저희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문지기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난감해하자 온달이 대꾸했다.



“혹시라도 폐하께서 이 상황을 알게 되신다 한들 나 이 나라의 부마야. 부마. 걱정하지 말라고. 폐하께서 날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지?”


“아.. 소신들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우문옹을 보내버리신 고려의 전쟁영웅 아니십니까.”


“온부마께선 고려 만민의 영웅이시니..”


“그러니까. 빨리 들여보내 줘. 아무 일 없을 거야.”


“음..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온달을 흠모하던 문지기들은 고민 끝에 감옥으로 들어가게 해주었다.



“오, 온부마!?”


“수고! 당황하지 마.”



미로 같은 감옥으로 들어간 온달은 중간마다 보초를 서는 병사들에게 하나씩 인사를 하며 정하시와 재이가 있는 감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하시가 있는 감옥을 지나친 온달은 우선 재이가 갇힌 감옥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재이는 이불을 덮고 벽 쪽을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오, 온부마. 어찌..”


“쉬잇. 허락받고 들어온 거니까, 놀라지 마. 문 좀 열어봐.”


“괘, 괜찮겠습니까?”


“응. 어서 열어.”



누군가의 속삭임에 잠에서 깬 재이가 일어나자 온달이 가까이 다가갔다.



“역시. 지난날 마을에 쳐들어왔던 그 얼굴이군.”


“너, 너는!?”


“너라니. 상황 파악 안 되나 보네. 이 나라 부마한테 너라니.”


“...”


“됐고. 너희 둘.. 여기 들어왔으니 죽는 건 시간문제야.”


“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


“병신 같은 소리 하지 마. 앞으로 너희를 죽이려는 이들이 황실뿐인 줄 알아?”


“...”


“살 수 있도록 힘 써줄 테니까 나 좀 도와줘.”


“도와달라니, 무슨 소리냐?”


“너, 주인인 정하시.. 살리고 싶지? 너도 살고 싶고.”


“신하가 주인이 무탈하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 누가 주인이 죽길 바라겠나?”


“그럼 날 도와줘.”


“...뭘 원하는 것이냐? 아니, 감옥에 갇힌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냐만은..”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지 알지? 황영을 잡게 도와줘. 나 황영을 잡아야 해.”


“뭐라고?”


“내 아내와 나의 원수를 잡아야 해. 그놈을 죽여야 내 운명이 바뀌어.”


“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그리고 너 정하시 좋아하잖아. 얼굴에 다 쓰여 있어. 여자로서 러브러브하니까 목숨 걸고 지키려는 거지. 황영을 잡거든 너희 인생을 살아.”


“그, 그.. 난 주인님의 신하일 뿐! 그리고 러브러브가 뭐냐!?”


“암튼. 황영을 잡게만 해준다면 너희 목숨을 보전할 수 있도록 힘써줄게. 메시지는 전했으니까 난 주인 만나서 얘기해봐야겠어.”


“주, 주인님은 무탈하신 것이냐!?”


“죄인한테 이런 이불이 제공된 거 보면 모르겠냐? 대역죄인들이 이런 특례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



재이의 감옥에서 나온 온달은 곧장 정하시가 있는 옥으로 향했다.


정하시는 온달의 인기척에 이미 잠에서 깬 상태였다.


온달이 감옥에 들어오자 정하시가 묵례했다



“제 시위를 만나고 오는 길인가 보군요. 온달 부마.”


“어. 방금 만나고 오는 길. 눈치 하난 빠르네.”



온달은 가까이 다가가 앉아 맨얼굴의 정하시를 빤히 바라보았다.



“을지문덕과 함께 너한테 잡혔을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는 반대의 상황이 됐군.”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사형 날짜라도 알려주러 온 것입니까?”


“너와 거래를 하러 왔어.”


“거래라니요? 죄인의 몸이 어찌 거래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여기서 나가게 해줄게.”


“그건 또 무슨 해괴한 말입니까?”



어떤 손을 잡을지 고민하던 온달은 정하시의 잘려나간 손목을 부여잡고 말했다.



“무, 무슨!?”


“정하시.. 부탁이 있어. 여기서 나가게 도울 테니까 황영을 잡는데 도와줘. 너라면 쉽게 잡겠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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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191화 - 깨어난 기억. +2 22.04.19 61 2 14쪽
192 190화 - 기이한 곳으로의 잠입. +2 22.04.14 56 2 13쪽
191 189화 - 반격의 패. +2 22.04.11 52 2 15쪽
190 188화- 눈물나는 연기. +2 22.04.09 54 2 13쪽
189 187화 - 미래를 의심하는 사람들. +2 22.04.07 58 3 14쪽
188 186화 - 조문 +2 22.04.05 51 2 13쪽
187 185화 - 수배자의 조수. +2 22.03.31 60 3 14쪽
186 184화 - 형제혁장의 끝. +1 22.03.29 55 3 13쪽
185 183화 - 빚. +2 22.03.26 69 2 13쪽
184 182화 - 말벌 떼. +2 22.03.23 58 3 13쪽
183 181화 - 죽여야 할 존재. +2 22.03.22 55 3 12쪽
182 180화 - 재회. +2 22.03.12 78 3 12쪽
181 179화 - 시위를 발견하다. +1 22.03.09 52 3 13쪽
180 178화 - 절름발이. +2 22.03.07 42 3 14쪽
179 177화 - 와해. +1 22.03.05 48 3 12쪽
178 176화. 거래. +2 22.03.03 45 2 12쪽
» 175화 - 경황망조. +1 22.03.01 69 3 12쪽
176 174화 - 이실직고. +2 22.02.26 62 3 13쪽
175 173화 - 붙잡힌 문덕의 원수. +1 22.02.24 56 3 13쪽
174 172화 - 퍼지는 역적의 상(像) +2 22.02.22 51 3 13쪽
173 171화 - 몽타주. +2 22.02.19 50 3 14쪽
172 170화 - 평원왕의 의심. +2 22.02.16 54 3 14쪽
171 169화 - 혼인. +2 22.02.15 54 3 15쪽
170 168화 - 왕후의 의심. +2 22.02.12 56 3 12쪽
169 167화 - 모두의 행차. +2 22.02.10 61 3 15쪽
168 166화 - 왕후와 대행수② +2 22.02.08 58 2 14쪽
167 165화 - 왕후와 대행수① +2 22.02.04 5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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