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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대신 서바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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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퍼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1
최근연재일 :
2024.04.19 04:21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5,487
추천수 :
362
글자수 :
828,215

작성
22.12.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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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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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0. 답지(2)

DUMMY

유지함 PD는 자신이 지켜보던 학생이 별안간 볼을 감싸며 고개를 숙이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가?’


잠시 후 학생은 고개를 들었다. 지함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살폈으나, 그녀는 전이랑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여전히 상황을 주도하는 사람은 도영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두 학생에게 지시를 내렸고, 어리버리한 둘은 지시를 제대로 따라오지 못했다.

그러나 단발머리 학생은 곧, 참가자들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했다.


그 학생이 별안간 이젤 더미 밑을 보더니 ‘붉은 물음표’에 손을 댄 것이다.


‘아이고. 하긴, AI니까 할 수 있는 실수다.’


‘붉은 물음표’는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만 접근할 수 있다. 조건을 만족하지 않은 채 건드려 봤자 함정이 발동되거나 사이렌이 울리는 등,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었다. 만족해야 하는 조건은 몇 개의 방에 놓인 ‘붉은 문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붉은 물음표’에 대해서는 학교 측에서 학생들에게 따로 알려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대다수 참가자는 그 사실을 달에 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전 시즌 중 일부 시험에 나왔으니까.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기출문제 파악은 필수지.’


그리고 AI인 단발머리 학생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AI 학생은 시험과 수업 때를 제외하면 늘 의식이 ‘꺼진’ 상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정보라고는 수업과 시험 때 제공되는 게 다였다.

이전 시즌을 자유롭게 찾아볼 수 있고, 이 학교에 오기 전부터 접했을 대다수 참가자에 비하면 모르는 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AI 학생이 일으킨 이 돌발적인 상황은 지함 PD의 호기심을 조금 자극했다. 그는 단발머리 AI 학생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학생들은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방을 탈출하고 다음 방으로 연결된 통로로 들어갔다. 이때 도영의 개인 카메라가 잠시 말썽이었다.

통로 안에는 다른 카메라가 없어서 개인 카메라로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그 개인 카메라와 도영에게 달린 마이크가 잠시 작동을 멈췄다.


‘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통신 장애인 경우와 도영이 고의적으로 카메라와 마이크를 껐을 경우.


지함은 처음에 전자일 거라고 판단했다. 통신 장애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촬영장은 달에 있고 방송국은 지구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이래서 실시간 방송 때마다 욕도 많이 얻어먹곤 하지. 고질적인 문제야.’


그때 경고음이 울렸다. 그 소리에 지함은 화들짝 놀랐다.


경고음은 참가자가 고의적으로 송출을 방해했을 때만 울린다. 즉 도영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끈 게 맞다는 뜻이었다.


‘뭘 하려고? 설마.’


그와 함께 있는 다른 팀원은 모두 여학생이고 AI여서 보통 사람보다 지능도 떨어졌다. 지함은 순간 머릿속으로 수백 가지 나쁜 경우의 수가 생각났다.


곧 개인 카메라는 다시 제대로 작동했다. 그의 상상과는 달리, 아무 일도 없었다. 긴 머리 여학생은 앞서가는 중이었고 도영과 단발머리 학생은 조금 뒤처져서 가는 중이었다. 세 사람 모두 평온한 상태였다.


‘뭐, 어지간하면 방송 도중에 이상한 짓을 할 리 없지. 멍청이가 아닌 이상은.’


이전 시즌 중에는 그런 멍청이가 여럿 있었다. AI를 데리고 불장난을 하려던 참가자들이었다. 이들은 발각된 즉시 달에서 지구로 보내졌었다.


‘카메라 돌 때는 생각을 좀 하고 살라고. 어쨌건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야. 저런 비주얼은 방송계에서도 찾기 힘드니까.’


다음 방에서 사건이 진행되면서 세 명의 AI 학생이 탈락했다. 이 셋은 1학년 3반에 소속된 학생이었다.


이렇게 탈락한 학생들은 사망 직전까지 백업된 데이터를 새 신체에 이관한다. 시험이 끝난 후 참가자들이 다시 교실에 들어가면 몸을 갈아 끼운 세 학생이 있을 것이다.


‘늘 생각하지만 스폰서가 돈이 진짜 많은 모양이야. 저 많은 손실을 어떻게 다 감당하는 걸까.’


탈락 학생들이 진짜 ‘사망자’라고 생각한 남은 두 명의 AI 학생들은 겁에 질렸다. 반면 그들이 AI 로봇이라는 걸 아는 두 참가자는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했다.

이 차이 때문에 참가자들은 몹시 믿음직하고 멋져 보였다.


‘하지만 실제 위기가 닥치면 저 애들이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지···아니, 아니. 어휴. 정신 차려, 쟤넨 진짜 애들이라고. 그런 일이 발생해서야 되겠어.’


지함이 잡생각을 하는 사이 도영과 단발머리 학생은 지하로 내려갔다.


단발머리 학생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도영이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고 하자, 그녀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그녀의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오? 뭔가 결심한 눈빛인걸. AI에게서 저런 풍부한 표정이 나오다니.’


다만 그 결심이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참가자와 AI 사이의 정보량 차이가 너무 컸다. 그 격차는 이전 시즌에 대한 사전 지식에서 나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방에 들어간 후에도 그들은 서로 주어지는 정보가 달랐다.


이를테면 도영의 팀이 처음 도착한 미술실에서 잠긴 문을 지긋이 쳐다보는 경우, AI 학생에게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뜬다.


< ! 잠긴 문>

⦁다른 출입구를 찾기


하지만 참가자인 도영에게는 이런 문구가 뜬다.


< ! 잠긴 문>

⦁다른 출입구를 찾기

- 문 너머에 괴물이 있으며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다. 이 방 안에 또 다른 출입구가 있을지도···?


또한, 단발머리 학생은 벽지가 찢어진 벽을 살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영이 같은 벽을 보았을 때는 문구가 떠올랐다.


<찢어진 벽지>


그는 즉시 그 벽이 수상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하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영은 그 넓은 방을 잠깐 살피자마자 조사할 문서가 어떤 것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인체 실험 기록 1>

<형광 메모지>

<찢어진 연구 일지>



문구가 뜬다면, 조사해야 했다. 문구가 안 뜨면 무시해도 상관없었다.


반면 AI인 단발머리 학생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녀가 2층에서 별 의미 없는 문서까지도 구석구석 살피며 책장을 겨우 한 개 조사하는 동안 도영은 1층에서 모든 조사를 마쳤다. 그는 AI 학생을 충분히 도울 수 있었다. 돕고도 남았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AI 학생이 조사에 정신이 팔린 사이 2층으로 슬쩍 올라와, 그녀가 아직 보지 못한 구역에 있던 ‘붉은 문서’만 챙겨 다시 내려갔다.


그 문서는 잉크가 많이 번져 있었지만 알아볼 수 있는 부분도 몇 군데 있었다.


[···피로 새겨진 문···같이 온 동료를 모두 희생···홀로···열린다.]


도영은 그 문서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 드디어 조건을 알아냈네.’


‘붉은 물음표’ 조건을 충족한 후 접근하는 데 성공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은 언제나 '시험을 곧장 통과할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이번 시험은 방탈출이니, 해결책이란 당연히 '탈출'이다.

큰 혜택이 주어지는 만큼 조건을 고안해내는 일도 제작진에게 언제나 큰 숙제였다.


‘이번 조건은 아주 고리타분한 조건이었어.’


이번에 ‘붉은 물음표’ 해결책 제시 조건을 제안한 사람은 지함이 아니었다. 그는 반대파였다. 하지만 연차가 좀 더 쌓인 다른 PD는 말했다.


“첫 시험이니까 쉽게 가도 좋아. 그리고 대중들은 뻔한 걸 좋아해. 클리셰가 괜히 클리셰겠어?”


‘각 참가자의 팀에서 팀원이 모두 탈락하고 딱 한 명만 남은 경우에만 ‘붉은 물음표’를 해제하고, 즉시 탈출할 수 있다’.


그게 조건이었다.


반드시 누군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제약만큼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기 쉬운 것도 없었다. 거기다 살아남은 사람이 단 한 명뿐일 때 나오는 절박함이 더해지면 몰입도는 더욱 상승한다.


그래서 지함은 그 조건이 싫었다. 그는 뻔한 상황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붉은 물음표’ 해제 조건을 읽은 도영의 쓴웃음을 보는 순간, 지함은 생각했다.


‘이거···나쁘지 않은걸.’


아무리 이 시험이 현실이 아니라고 해도 참가자들은 상황에 몰입했을 때 실제 상황인 것처럼 반응하곤 한다. 그리고 그 반응에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방금 예고편에 넣을 컷이 하나 나왔군.’


그리고 이어서 도영은 더욱 보기 좋은 그림을 만들어주었다.


‘붉은 물음표’로 가는 조건을 알아챈 그는 단발머리 학생을 대신해 자신이 희생했다. 그는 탈락하는 순간까지도 조건에 대해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탈락함과 동시에 ‘붉은 물음표’로 가는 길이 열렸다. 그들이 들어왔던 문의 잠금이 전부 풀렸다. 단발머리 학생은 도영이 알려준 대로 미술실까지 되돌아가 붉은 열쇠로 숨겨진 문을 찾아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붉은 열쇠를 본 순간 지함은 무릎을 탁 쳤다.


‘아! 통신을 끊었을 때 알려준 게 혹시 붉은 물음표에 대한 정보인가?’


그녀 혼자 힘으로 붉은 열쇠를 찾아냈을 리는 없다고 지함은 생각했다. 하지만 도영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붉은 물음표를 해제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언질해 준 거라면 가능했다. 왜냐하면 지난 시즌에서 나온 붉은 물음표는 언제나 최후에 열쇠를 꽂아 돌리는 방식으로 해제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저 애를 살리기 위해서···’


<시험 대신 서바이벌>에서 AI 학생의 생존률은 지극히 낮다. 특히 참가자들이 아직 문제풀이에 서툰 첫 중간고사에서는 더욱 그랬다. 거기다 참가자 대부분은 AI 학생이 로봇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흔히들 자신을 대신해 AI를 희생시키곤 했다.

하지만 도영은 달랐다. 그는 자신을 희생했다.

단발머리 학생은 열쇠를 써서 생긴 붉은 문 안으로 들어갔고, 살아남았다.


‘허.’


지함은 감탄했다.


‘역시, 클리셰는 클리셰인 이유가 있어.’


괜찮은 장면을 건졌고, 참가자는 탈락했다(첫 중간고사이므로 집에 가야 하는 그 '탈락'은 아니었다). 더는 이쪽 카메라에 볼일은 없었다.

그는 편집 방향을 기록해 놓고 주목할 만한 다른 참가자를 찾아 이리저리 채널을 넘겼다.


한 참가자가 사물함에서 뛰어내리며 책상으로 괴물을 내려찍었다. 하지만 그 괴물의 머리는 아직 사람이었다. 책상이 괴물의 몸통을 짓누르는 순간 그 머리가 사람 목소리로 살려달라는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학생증이 떨어져 있었다. 괴물의 목에서 떨어진 학생증이었다. 그 괴물의 정체는 방금 전까지 그 참가자와 같은 팀이었던 AI 학생이었다.


지함은 거기서 채널을 고정했다.


2035. 05. 04 14:38


월광고등학교 1학년 3반 교실


방전된 전자기기는 충전을 해도 바로 켜지지 않곤 한다.


그것과 아주 같은 예시는 아니지만, B-54의 머릿속은 한동안 방전된 상태와도 같았다. 좀처럼 다시 불이 들어오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하루, 이틀, 사흘.


그녀의 전두엽에 불을 켜준 것은 즐거움도 놀라움도 아니었다.

고통이었다.


“악!”


어금니를 찌르는 듯한 고통 때문에 B-54는 또다시 깨어났다. 벌써 세 번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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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 학교의 영웅(1) 23.01.03 51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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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 재입학(3) +1 22.12.31 58 4 10쪽
18 17. 재입학(2) 22.12.29 49 4 11쪽
17 16. 재입학(1) +4 22.12.28 60 5 13쪽
16 15. 재회(2) 22.12.26 51 5 12쪽
15 14. 재회(1) 22.12.25 53 5 10쪽
14 13. 능력, ‘돌려서 잠금해제’ +2 22.12.22 65 5 11쪽
13 12. 작은 거래(2) +1 22.12.21 51 5 13쪽
12 11. 작은 거래(1) +1 22.12.19 58 4 12쪽
» 10. 답지(2) 22.12.18 62 6 12쪽
10 09. 1-1 중간고사(6)/답지(1) 22.12.15 59 6 14쪽
9 08. 1-1 중간고사(5) +1 22.12.14 61 5 10쪽
8 07. 1-1 중간고사(4) 22.12.12 63 5 12쪽
7 06. 1-1 중간고사(3) 22.12.11 85 6 10쪽
6 05. 1-1 중간고사(2) +1 22.12.08 78 5 14쪽
5 04. 1-1 중간고사(1) 22.12.07 94 7 10쪽
4 03. 상황 파악(2) 22.12.05 91 6 11쪽
3 02. 상황 파악(1) 22.12.04 126 6 12쪽
2 01. 각성 +1 22.12.01 190 7 13쪽
1 프롤로그 +1 22.12.01 347 7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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