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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넛 님의 서재입니다.

너를 쫓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테돌
작품등록일 :
2016.02.21 14:50
최근연재일 :
2016.03.05 19:11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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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수 :
56,879

작성
16.02.2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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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너를 쫓는다 - 3

DUMMY

반포 광수대 사옥 맞은편의 오피스텔 내부. 미주는 오피스텔의 쇼파에 드러누워 간만에 휴식을 만끽하던 참이었다. 기분 좋은 나른함과 함께 조금씩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꺼풀이 막 닫히려는 찰나였다.

띠링-

거실에 가득 메운 정적을 깨우는 카톡 알람음이 울렸다. 미주는 혼자만의 평온을 방해받은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며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휴대폰의 잠금을 해제했다. 한태진이라는 이름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빠 친구 아들’ 관계인 그는 미주보다 두 살이 더 많았다.


[오늘 나우재단 자선파티에 온다며? 아버님이랑 같이 가니?]


오늘 파티가 있었지. 완전히 잊고 있었던 미주였다. 그녀는 한숨을 푹, 쉬며 답장을 보냈다.


[아니, 따로 갈 것 같아]


기다렸다는 듯 답장이 곧바로 날아왔다.


[그럼 같이 갈까? 괜찮으면 내가 태우러 갈게]


미주는 괜찮다는 말을 보내려다가 맥 풀린 얼굴로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뭐 그러든지 말든지. 미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미주의 의지로 참석하는 파티는 아니었다. 경찰청장인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경찰로 활동하고 있는 미주로서는 아버지의 존재가 언제나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후광을 받는다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한 걱정은 차치하고서라도, 수사관으로서 활동하는데 자칫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아버지를 의식한 경찰 고위 간부들은 '청장님의 귀한 따님'을 비교적 위험이 적은 본청 내 사무직으로 발령내려 했다. 물론 미주의 완강한 반대로 인해 그런 일은 없었다. 아버지의 아무런 도움 없이, 오로지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으로 거칠기로 소문난 강력계에서 실력과 깡다구를 인정받았다. 그 이후에는 광역수사대에 차출되어 수년간 활약하며 각종 실적기록을 갈아치운 미주였다. 아버지의 도움 따위가 없더라도, 스스로도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자선 파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오상록 청장은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로서 참석을 부탁했던 것이다.

‘이번엔 내가 아버지한테 완전 당했지’

미주는 피식 웃으며 티비 옆에 놓인 액자 속의 아버지 얼굴을 응시했다가 주방 옆에 위치한 드레스룸으로 시선을 돌렸다. 파티에 입고 갈 적당한 드레스를 골라야 했다. 그리고 그건 미주가 가장 못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미주는 힘없는 얼굴로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쇼파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



나우 재단의 자선파티가 열리는 장소는 알마하라 호텔의 다이아몬드 홀이었다. 입구에서 정장 스타일의 호텔 유니폼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가씨 한 명이 손님들을 상대로 초대장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세 명이나 되는 보안요원이 부동자세로 지키고 서 있다.그 앞을 지나치는 호텔 직원들은 이름 없는 재단의 자선행사 치고 지나치게 삼엄한 경비 수준에 수상한 눈길을 보냈다.

자선파티의 시작시간이 십 여분 전으로 다가왔을 무렵,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훤칠한 외모에 말끔한 슈트 차림을 한 젊은 남자 한 명이 다이아몬드 홀의 입구로 다가왔다. 그는 상당히 키가 큰 편에 속했는데, 목에는 전문가나 쓸법한 육중한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다. 호텔 여직원은 사무적으로 그의 얼굴을 향해 흘깃 시선을 던졌다가 순간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꺼운 뿔테안경으로 얼굴이 절반 가까이 가려져 있었지만, 독보적으로 우월한 외모를 완벽히 숨기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녀는은 친절한 미소와 함께 수줍은 말투로 정중하게 초대장을 요구했다.


“초대장 확인 도와드리겠습니다, 손님.”


그는 자켓 안쪽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구깃구깃하게 접힌 초청장을 내밀었다. 조각같이 생긴 외모와는 달리 행동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이 있었으나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다. 여직원은 초청장 하단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뒤 참석자 명부를 빠르게 스캔했다.


“투즈데이 일보에서 나오신 사진기자님 맞으시죠? 김강준 기자님?”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재단행사를 다룬 기사에 쓸 사진을 위해 나왔습니다.”


여직원은 하단에 김강준 기자라는 글자가 적힌 관계자 출입증을 건넸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이아몬드 홀 안의 테이블들은 자선파티답지 않은 비교적 화려한 음식들로 채워져 있었다. 주변을 쓱 둘러보자 익숙한 인물들이 강준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강준은 날랜 손놀림으로 카메라 세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의 렌즈에 포착된 인물은...

‘이경희 국회의원’

강준은 그녀에 대해 꽤 소상히 알고 있었다. 서울 노원구에서 3선 국회의원 지낸 바 있는 그녀는 정치 입문 이후 서민의 생활안정과 관련된 굵직한 법안들을 연달아 선보이며 국민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현재는 진보야당의 대표를 맡으며 정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다.

강준은 카메라의 방향을 살짝 옆으로 틀었다. 이경희 국회의원의 옆자리에는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 로앤오더의 대표변호사인 윤찬식과 전년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이송정 교수가 보였다. 강준은 그들에게는 별로 흥미가 없는 지 곧이어 곧 단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셔터를 누르는 강준의 손가락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한대근 회장’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한종그룹의 총수로 재계 서열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한 대근 회장이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나우재단의 위상과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기 시작했다. 한 회장은 워낙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탓에 그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찾기 힘들 지경이었다.

특히 강준으로서는 그를 모를 수가 없었는데, 그건 그가 기자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한종타워의 82층 회장실에 침입한 뒤 SNS에 인증샷을 올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한종타워 인증샷 사건’의 주인공이 강준이였기 때문었다.

SNS을 통하여 세상에 자신을 고스트라고 알린 그의 본명은 물론 출입증에 적혀있는 것처럼 김강준은 아니었다. 올해 29세의 윤태호는 투즈데이 일보의 기자도 역시 아니었다. 그가 오늘 나우재단의 자선파티에 기자로 위장해 참석한 이유는 완전히 다른 목적에서였다.

‘역시 평범한 자선 재단이 아니었어’

오늘 파티에 참석하는 회원들의 화려한 면면은 그야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재벌 총수와 현직 국회의원, 그리고 기타 정재계의 주요 인사들이 이렇게까지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까지 막강한 권력을 쥔 인물들이 모인 나우 재단은 사소한 팩트 하나 가지고도 말 만들기와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언론들의 관심에서 비정상적일 정도로 벗어나 있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납득하게 만들 수 있는 설명은 단 한 가지였다. 언론사들에게 손을 쓰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가 자신의 자선 활동에 대해 언론에서 떠들어대길 원치 않는다? 태호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는 사이 연단에 선 한대근 회장은 진부하기 그지없는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우리 나우 재단의 자선 파티에서 거둬지는 기부금은 모두 투명한 절차를 걸쳐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태호는 카메라를 든 채로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면서 참석자의 모습을 담아내었다. 그때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부산스러운 행사자의 소음들을 뚫고 태호의 귓가를 사로잡았다.


“아빠, 전 이제 가볼게요. 아직 문서작업 마무리할 게 꽤 남아있어요.”

"아빠랑 약속한 거 벌써 잊은 거냐? 너도 참..."

"알았어요. 그럼 식사까지만 끝내고 갈게요."


언젠가 들어본 듯 귀에 익은 여성의 목소리에 태호는 본능적으로 카메라의 방향을 돌렸다. 경찰 제복을 입은 오십대 중년 남성과 마주 앉은 채로 잔뜩 지루한 티를 내고 있는 아가씨 한 명이 렌즈 시야에 들어왔다.

우윳빛이 도는 새하얀 피부는 아니었으나 얼굴 라인의 유려한 곡선과 뚜렷한 이목구비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아가씨였다.하늘빛이 감도는 홀터넥 드레스를 걸친 그녀는 과하지 않은 치장으로 심플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나, 트임 사이로 드러난 아슬아슬한 각선미와 가녀린 어깨라인은 은은한 고혹미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카메라로 인해 가려진 그의 눈썹에 보일 듯 말 듯한 떨림이 일었다. 귀에 익다고 생각했던 건 그의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분명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다만, 화장상태와 옷차림이 그때와 너무나 달라서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데 잠시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태호는 마침내 그녀를 기억해내는데 성공했다. 그가 한종타워를 무단침입했었던 12월 29일 새벽에 마주쳤던 그 혈기왕성한 여자 경찰이었다. 경찰 제복 차림의 중년 남성은 너털웃음을 터트리고는 못 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헛. 미주, 너도 고집... 그래, 알았다.”


태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여자의 이름이 미주인 모양이었다. 그녀로부터 아빠라고 불린 경찰제복 차림의 중년 남성은 대한민국 경찰의 최고 권력자인 오상록 청장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가업을 잇는 것일까?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부녀지간이 모두 경찰인 모양이었다.


“그럼 태진이한테 너 좀 데려다달라고 할까?”

“제발요, 아빠. 자꾸 그러시면 더 부담스러워요.”


태호는 오상록 청장과 미주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대화중인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셔터를 눌러대면서도 태호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재벌 총수, 정치인,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교수, 법조인으로도 모자라 경찰총장까지? 확실히 뭔가 있어’

태호는 다양한 각도에서 만족스러울 만큼 사진을 찍은 후에야 시선을 돌렸다. 그 뒤로도 태호는 재단 회원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카메라에 착실히 기록해 나갔다. 나우재단 자선파티가 열리는 알마하라 호텔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대형 벽시계의 시계바늘이 어느덧 아홉 시를 향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파티의 분위기는 최고조로 무르익고 있었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는 미주가 도저히 즐길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였다. 어릴 때부터 경찰 고위급 간부였던 아버지로 인해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참석했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경찰청장인 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 억지로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었다.

‘제발 빨리 끝났으면...’

그녀는 가식과 거짓으로 점철된 사회 특권층들의 인간관계를 경멸했다. 표면적으로 내세운 대의 뒤에 숨겨진 사익을 철저하게 쫓는 부류라고나 할까. 오늘 행사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 자선 활동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맺어지는 관계의 속성이란 너무도 뻔했다.

그녀 역시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녀가 경찰이 된 뒤에 맡았던 몇 건의 사건에서 자신이 속해있던 사회 특권층의 본성에 대해 적나라하게 접할 기회가 있고서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었다.

‘대부분 인맥이나 쌓으러 왔겠지’

그러나 자신 역시 그 특권층의 일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먹물처럼 새까맣게 번지는 불쾌함에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여기 더 있다간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잠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여유가 필요했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도망치듯 자리에서 뜬 미주는 호텔 복도 끝자락의 야외 테라스로 향했다. 문을 젖히자마자차디찬 바람이 와락 달려들었다. 테라스 구석진 자리에서는 누군가 등을 보이고 서 있었으나 미주가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드문드문 맨살이 노출되는 드레스 차림으로 나오기에 매서운 겨울 날씨였다. 찌릿하게 들러붙는 냉기에 작은 어깨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추위는 그녀를 막지 못했다. 난간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고 나자 호텔이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도시의 야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탁 트인 전경에서 밀려오는 만족감은 그녀의 입술에 어렴풋한 호선이 그려지게 만들었다.

“좋다.”

나직한 중얼거림이 새하얀 입김을 따라 흘러나왔다. 상쾌한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우는 느낌은 머릿속을 맴돌던 현기증을 싹 가시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미주는 핸드백을 뒤적거려 휴대폰을 꺼냈다. 오후에 있었던 한상철 심문 결과를 보고하는 내용의 문자가 조경사로부터 한 통 도착해 있었다. 그간 고생한 것에 비해 얻어낸 것이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뒷배가 든든한 한상철이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변호사를 고용했을 테니까. 미주의 입가에서 씁쓸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고작 깡패 주제에... 불현 듯 광수대 사무실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솟아올랐다. 역시 그 곳만큼 편한 곳이 없었다.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인상의 조경사와 철없는 막내 동생 같은 현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주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직장을 가장 편하게 느끼는 이십대 여자라니,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직장이 경찰서라면 더이상 말 할 것도 없었다. 정신없이 사고를 확장시켜나가던 미주는 어느새 추위 때문에 얼얼해진 감각을 느끼고는 다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카메라 셔터소리가 테라스의 고요함을 뚫고 귓가를 파고들었다



계속.


작가의말


본격적인 스토리로 들어가기 전에

시동 거는 중이라고 생각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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