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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넛 님의 서재입니다.

너를 쫓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테돌
작품등록일 :
2016.02.21 14:50
최근연재일 :
2016.03.05 19:11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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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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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수 :
56,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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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2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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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너를 쫓는다 - 0

DUMMY

프롤로그




하늘에 짙은 어둠이 깔린 지는 이미 오래였다. 도무지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황량한 공사장 바닥 위로 희뿌연 달빛만이 외롭게 흐르고 있었다.

같은 시각이면 으레 도심을 정복했을 인위적인 조명의 흔적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공사가 중단된 이후 간혹 연인들의 은밀한 놀이터가 되거나, 동네 소년들의 아지트로서 활용되기도 하였으나, 그것도 이제는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거의 몇 년 동안이나 적막함과 쓸쓸함만이 머무르던 이곳은 갑자기 들이닥친 정장 차림의 남자 무리로 인해 오랜만에 소란스러워졌다. 여러 명이 급박하게 뛰는 듯한 발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순간 찾아오는 정적.


“괜한 수고 말고 여기서 마무리 짓자, 이 새끼야. 더 이상 도망 가봐야 소용없다는 건 너도 알지 않나?”


정적을 깨며 울려 퍼지는 음산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얼핏 봐도 운동 좀 했다싶을 정도로 다부진 체격의 중년 남성이었는데 잘 다듬은 콧수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뒤에는 패거리로 보이는 남자들 열 명 정도가 서 있었는데 한 눈에 봐도 조폭이었다. 그들 모두 손에 흉기를 쥐고 있어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벌일 듯한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 누가 도망을 갔다는 거야?”


그들과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대치중이던 남자, 고스트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받았다. 그는 전혀 기죽은 기색 없이 도발적인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내가 아무리 경찰에 쫓기는 도둑고양이 신세라고 해도, 너희 같은 양아치 새끼들한테까지 등보이고 내뺄 줄 알았어?”


검정색 야구모자에 마스크, 그리고 깊게 눌러 쓴 후드로 얼굴을 완벽하게 가린 고스트는 꽤 언뜻 봐도 185는 가뿐하게 넘어 보이는 키에 날렵해 보이는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길쭉한 손가락에는 30cm가 조금 못 미치는 길이의 대거가 쥐어져 있었다. 이어 느릿한 동작으로 손목을 돌리며 손을 푸는 포즈를 취하며 도발하자 대치중이던 조폭들의 입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잠자코 그들을 응시하던 고스트의 입술 사이에서 싸늘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내가 니들을 여기로 끌고 온 거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왜냐면 여기가.”


그는 의도적으로 잠시 말을 멈추고는 조폭들을 향해 살기에 찬 푸른 안광을 번뜩였다. 그리고 대거를 쥔 오른손을 까딱거리며 툭 내뱉듯 말했다.


“니 새끼들 무덤이거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스트의 몸이 흐릿해지는 듯싶더니 조폭들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놀라울 정도로 폭발적인 스피드를 동체시력이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잠시 후, 제일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비명을 내지르며 복부를 부여잡는다. 손가락 틈으로 흥건한 피가 새어나온다. 순식간에 한 명을 항거불능 상태로 만든 고스트는 곧바로 알루미늄 배트를 들고 있는 다음 타겟을 향해 달려 들었다.

크게 도약한 고스트는 오른손에 쥔 대거를 위로 높이 쳐들어 머리를 내려찍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상대는 무의식중에 알루미늄 배트를 횡으로 들어 올리며 대거를 막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스륵-

순간적으로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여 대거의 방향을 살짝 틀어 야구방망이를 쥔 손목을 빗겨치는 고스트. 살갗 베는 소리가 비명소리와 섞여 환청처럼 울려 퍼진다. 경동맥을 스친 모양인지 놈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는 손목을 붙잡으며 무기를 떨어트렸다.


“야, 씨발! 덮쳐”


순식간에 벌어진 참극에 손 하나 꿈쩍 못하고 있던 나머지 조폭들은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명색이 조폭씩이나 돼서 우두커니 자기편이 당하는 것만 구경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잘 갈린 사시미의 날카로운 칼끝이 고스트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고스트는 몸을 오른쪽으로 살짝 굽혀 숙이면서 놈의 찌르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대로 상대의 정면으로 파고들자 놈은 기겁하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뒈져라!”


그 틈을 타 옆에서 기회를 엿보던 삐죽머리 한 놈이 정민의 옆구리를 노리고 잭나이프로 찔러온다. 고스트는 순간 왼손으로 앞으로 뒷걸음질 쳤던 사시미를 쥔 놈의 목덜미를 잡아채듯 당기며 자신의 옆구리 쪽으로 내팽개쳤다.


“으악!”


영문도 모르고 자기 동료의 칼에 허벅지를 찔린 조폭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가 잠시 후 닥쳐오는 고통에 인상을 구기며 크게 비명을 질렀다.

연이어 날아오는 공격들을 간결한 위빙동작으로 너무나 손쉽게 회피해낸 뒤 침착하게 거리를 벌리는 고스트. 워낙에 급박했던 전투에 거친 숨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터져 나왔지만 아직 체력적으로는 충분히 여유 있었다.

제대로 된 반격 한 번 못해본 조폭들은 분을 못 이기고 씩씩 거리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세 명이 도륙당하는 장면을 두 눈을 똑똑히 목격한지라 감히 함부로 덤벼 들지 못했다. 물론 입에서는 쉴 틈도 없이 갖은 욕짓거리들이 튀어나오고 있었지만.


“후.”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경계하던 고스트의 입가에 의미를 아쉬움이 담긴 미소가 떠올랐다. 저 멀리 공사장 밖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발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경찰기동대가 착용하는 워커 특유의 둔탁한 소리였다.


“니들 운 좋다. 오늘은 진짜 다 쓸어버릴 계획이었는데.”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툭 내뱉듯이 말하고는 미련 없이 몸을 뒤로 돌렸다.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조폭들의 눈동자에 일제히 황당함이 스쳤지만, 막무가내로 뒤쫓을 정도로 상황파악을 못하는 바보들은 아니었다.


“짭새다. 일단 가자!”


대장으로 보이는 콧수염은 다른 조폭들을 독려해 부상자들을 데리고 서둘러 현장을 벗어났다. 잠시 후 다부진 체격의 중년 형사가 몇 명의 기동대를 이끌고 공사장에 들이닥쳤지만, 고스트는 이미 공사장을 한참을 벗어나 행방이 묘연했다. 형사는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누구 쪽으로 갔으려나?"





***





“당장 거기 서! 더 이상 달아나면 발포하겠다!”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가냘픈 두 손에 쥐어진 권총의 총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총구가 향한 곳에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아나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놓칠 수 없어. 미주는 지체 없이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경찰이 소지한 권총의 첫 발은 언제나 공포탄이다.

벼락같은 총소리가 텅 빈 거리에 메아리쳐 울렸다. 고스트는 비로소 달아나던 발걸음을 멈췄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총구를 그에게 겨냥하는 미주. 지근거리에서 터진 총성에 얼얼해진 귀는 원래대로 청각을 회복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미주는 석고상처럼 굳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녀는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거듭 경고하는 걸 잊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다시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주지.”


미주는 최대한으로 위협적인 목소리로 명령했다.


“천천히 뒤로 돌아.”


그는 대답이 없었다. 침묵으로부터 번지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마른 침을 넘기는 미주의 목울대가 일렁였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손끝이 저려올 지경이었다.

스윽-

가만히 있던 그가 일순간 몸을 옆으로 비틀자 미주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고스트, 손 끝 하나 움직일 생각하지마!”


그 남자, 아니 고스트에게서 하아, 하는 옅은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언제는 뒤로 돌라면서?”


중저음의 깊고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자신의 등에 총구가 겨눠져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편안한 말투였다. 거기에 이렇게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가 조금 전에 조폭들과 일전을 벌였다고 한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고스트의 대꾸에 미주는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발끈하며 재차 외쳤다.


“시끄러! 손은 움직이지 말고 몸만 뒤로 돌면 되잖아!”

“분부대로 하지요.”


의외로 고분고분한 대답이 돌아왔다. 미주는 고스트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됐나?”


고스트가 온전히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 순간, 미주는 얼굴에 작은 경련이 일었다. 실제 얼굴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으나 확실히 범죄자 치고는 쓸데없이 잘생긴 얼굴이었다. 깊은 눈매에 오뚝한 콧날에서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갸름한 턱선은 안 그래도 작은 얼굴을 더욱 도드라졌다. 게다가 위험한 기운을 마구 풍기는 눈빛은 금방이라도 앞에 있는 모든 걸 빨아들일 것처럼 강렬하다.

‘쳇’

미주의 눈썹이 미세하게 치켜 올라갔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도둑이다. 그런 범죄자를 두고 기껏 한다는 생각이 잘 생겼다라니, 경찰로서 결코 해선 안 될 생각이었다. 미주는 권총을 상체로 끌어올리며 따발총을 쏘듯 죄명을 빠르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스트, 너를 무단침입, 폭행, 경찰 폭행, 상해, 공무집행방해, 특수절도를 이유로 체포...”


흥미로운 표정으로 잠자코 듣던 고스트는 억울하다는 듯 말을 잘랐다.


“그렇게 많이?”


“양팔 내밀어. 한 번만 더 똑같은 말 반복하게 하면 정말 다시는 두 발로 걷지 못하게 만들어주지.”


미주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어조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범죄자의 기를 눌러주는 건 형사로서 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행동이다. 미주가 그동안 강력계 현장에서 뼈저리게 배웠던 교훈 중 하나였다.

특히 이미 좀 전에 한 발을 실제로 발사했던 그녀의 손에 권총이 쥐어져 있을 때 이런 위협은 더욱 효과적이었다. 일반적인 범죄자라면 이미 발사되었던 공포탄 다음으로 권총의 약실에 장전된 총알이 진짜 실탄일 수도 있다는 사실쯤은 이미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역시 보통 범죄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미주의 말에 복종하기는커녕, 실탄이든, 뭐든 쏠 테면 쏘라는 듯이 두 손을 주머니에 건들건들 찔러 넣은 것이다. 그리고 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강렬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뿜어내는 눈빛에 미주는 잠깐이지만 넋을 놓아버릴 뻔했다.

곧이어 그의 눈매가 한결 부드럽게 변했다. 순간적으로 웃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긴장감에 빠짝 얼어있는 그녀를 보는 그의 눈가가 둥글게 휘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사실 꽤 괜찮은 경찰 같은데 말이야...”


농담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진지하고 부드러운 어조였다. 다만, 지금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칭찬이었다. 느닷없는 칭찬에 미주는 벙찐 표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고스트는 그녀의 속내를 알아챈 듯 서둘러 말을 이었다.


"조롱 따위가 아니야.”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잠시 가만히 멈춰있다 이어 미주의 표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노력하는 걸 보면 나도 아주 가끔은, 정말 가끔은 잡혀주고 싶긴 하더라고. 썩어빠진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런 경찰도 진짜 있긴 하구나 싶기도 하고...”

“미친 새끼... 무슨 개수작이야?”


미주는 기가 찬 듯 욕설이 섞인 말을 거칠게 내뱉었다. 그러나 이런 거친 말은 그녀가 현재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스트로부터 감추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 그녀는 입술 안쪽의 살을 물어뜯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혹시라도 그가 도주라도 시도했을 때 곧바로 사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정신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오미주 팀장.”


작은 키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입을 놀리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위로 한참 올려다보아야 했다.


“내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진 않아. 하지만 내가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거든.”


느릿하지만 또렷한 목소리와 함께 그윽한 눈빛이 미주의 얼굴을 향해 쏟아졌다. 금방이라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 눈빛이 당황스러워 인중을 향해 눈길을 내리는 미주.


“설사 당신 손에 오늘 죽는 한이 있어도.”


목 주변에 열이 화악,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울림이 있었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사이 범죄자 따위에게 감정적인 동화라도 됐단 말인가? 미주의 입가에 자조적인 웃음이 어렸다.


“나중에 출소한 뒤에 해도 늦지 않아.”


마음 한쪽 구석에서 호소해오는 불편함을 강하게 부인하며 조롱 섞인 비난으로 반박하는 미주. 그러나 고스트는 들은 듯 만 듯 여유롭게 말을 이어나갔다.


“내 외투를 이 지경으로 만든 주제에 감방에까지 처넣으려고 하다니. 사식이라도 넣어줄 것도 아니면서, 그건 너무 양심 없는 거라고.”


얼굴에서 진지함이 사라지고 장난기 어린 미소가 나타났다. 그는 갑자기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는 외투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기 시작했다. 이어 시선은 외투에 고정한 채로 미주에게 툭 내뱉듯이 말하는 고스트.


“모든 게 끝난 뒤에는 아마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울 사람이 있다면 바로 당신이 될 거야. 약속하지.”


당장 미주로부터 벗어나는 건 일도 아니라는 어조였다. 자신에게 총을 겨눠진 상황에서도 저딴 개소리를 대담하게 지껄이는 걸 보면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아니면 총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도주를 시도하겠다는 것일까. 하긴, 그간의 행적을 되짚어봤을 때 충분히 그런 미친 생각을 할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시끄러!"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입술을 가르며 위태롭게 새어나왔다. 그녀의 평정에 미세한 균열이 가고 있었다. 미주의 눈동자 위를 스치는 망설임을 놓칠 리 없는 고스트였다. 그의 눈가에 은은한 웃음기가 머물다 바람처럼 흩날리며 자취를 감추었다. 나긋하게 느껴질 정도로 평온한 음성이 미주의 귓가를 파고 들었다.


“내가 오늘 만약에 살아남는다면 우린 또 보게 될 거야.”


미주는 총구 방향을 그에게 유지한 채 더욱 목청을 높이며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닥치고 팔이나 내밀어. 아니면 진짜 쏠거야! 내가 못 쏠 것 같아?”


고스트는 순순히 잡힐 생각이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했다. 그렇다면 미주가 해야할 행동은 명확했다.

놈을 쏜다.

심장이 미친 듯 펌프질 해대기 시작했다. 온몸의 신경이 권총 방아쇠 위 손끝으로 몰린 듯이 느껴졌다. 시간이 갈수록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심박수가 빨리지고 몸에 열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고스트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럼 이만.”


말을 끝맺기 무섭게 그의 신형이 살짝 흔들린다 싶더니 미주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3미터 이상으로 벌어졌다. 이제 그녀에게 허락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강력계에 있을 당시부터 수많은 흉악범들과 상대해왔지만 사람에게 실탄을 발사해본 경험은 없었다. 난생 처음 겪는 극도의 긴장 탓에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메뉴얼대로

총기 발사로 인한 과잉진압 논란 등의 후폭풍 따위는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사실 ‘다른 가능한 대안이 없다면, 경찰관은 범죄자의 도주 방지를 위해 총기를 사용할 수 있다’라고 명시한 직무집행법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쏜 총알에 사람이 죽는다? 이건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로 가치관과 관련된 것이다. 미주는 이론적으로는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된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경찰이 되기 전부터 수만 번도 더 생각해왔으며 다짐했던 부분이었다. 언제나 현실은 생각과는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인 법이다. 막상 실제상황을 접하자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미주는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이대로 놓칠 수는 없으니까

미주는 하반신을 겨냥했다. 그의 다리는 리듬감 있게 움직였지만 워낙 교차하는 속도가 빨라 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못 맞출 정도는 아니다.이제 곧 차디찬 총알은 그의 연약한 살갗을 파고들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해선 안 될 의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죽게 되는 걸까? 물론 빗나간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허나 그럴 확률은 높지 않았다. 미주는 권총사격에 있어서는 광수대 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망설임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는 방아쇠를 힘껏 잡아당겼다. 총소리가 귓가에 파고드는 걸 느끼며 그녀는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작가의말


다음 화부터는 6개월 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 프롤로그 수정이 있었습니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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