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화에서 제갈량이 언급되어서 우리나라에 제갈씨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한번 찾아보니 우리나라에 실제로 제갈씨가 존재합니다 바로 남양제갈씨(南陽諸葛氏)로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를 시조로 삼았다고 합니다 제갈규의 5세손 제갈충이 신라에 망명하여 한국의 제갈씨의 중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려 고종 때 제갈홍(諸葛泓)과 제갈형(諸葛瀅)이 출세하게 되면서 형 제갈홍(諸葛泓)은 제씨(諸氏), 아우 제갈형(諸葛瀅)은 갈씨(葛氏)로 분종(分宗)하였다고 합니다
출처 성씨와 본관 남양제갈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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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씨로 분가한 제갈홍의 자손중에 제말(諸沫)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웅주, 김해, 의령 등지에서 왜군을 무찔렀다고 합니다 그 공이 홍의 장군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조정에 알려져 성주 목사에 임명되었으나 1593년에 성주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습니다 정조때 병조 판서에 추증되었다고 합니다
제말의 조카 제홍록(諸弘祿)도 선조 때 무과에 급제, 임진왜란 때 제말과 함께 전공을 세웠으나 정유재란 때 전사하였다고 합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칠원 제씨 [漆原 諸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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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의 난은 1630~40년대 명을 멸망시긴 난입니다.
1627년 섬서성에서 농민 반란이 발발하고, 이자성은 1631년 고영상이 이끄는 농민군에 합류하여 고영상이 죽자, 틈왕의 명칭을 이어받아 명의 10만 대군에게 멸살을 당하고 은거하게 됩니다. 1639년 명의 전역이 가뭄이 일어나자, 힘을 얻은 이자성이 1641년 농민군을 이끌며 낙양을 점령한 뒤, 복양을 죽이고 세력을 키워 나가며 오삼계가 청군에 항복하고 1645년 청군에 의해 이자성이 피살될 때까지를 이자성의 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한 참 뒤의 일어날 난이 이자성의 난입니다. 또한 이자성 뿐 아니라 동 시기에 사천 지역에서 일어나 성도에서 대서 왕조를 세운 후 황제가 된 장헌충도 있습니다. 물론 장헌충도 1646년 피살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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