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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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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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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448

작성
23.06.1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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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9쪽

토사구팽 (4)

DUMMY

11화


모두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원래도 로저 놈의 강함에 질려 있었다.

거기다 마법사가 합류했음에도 상황이 딱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아, 그들의 머릿속에 공포가 스멀스멀 차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로저 놈이 기어코 자신의 악명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을 해 버리고 말았다.


‘미친... 애초에 건들면 안 되는 새끼를 건드렸어... 미친 왕 새끼...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우리까지 끌고 와서...’

‘잘난 척은 다하더니 대마법사 새끼도 별 거 없구나. 결국 우린 모두 저 새끼한테 고문당하다 죽게 될 거야...’


로저는 브리갠트 왕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슈퍼스타였다.

물론 그의 명성은 살벌하고 끔찍한 소문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토러스의 서식지를 공격해 혼자서 거의 대부분의 토러스를 때려죽인 후, 몇 마리만 살려둔 채 부하들과 갖고 놀았던 이야기들은 유명하다.

안 들어본 사람을 찾기 힘든 고전 명작 같은 이야기들이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부하들이 팔다리를 잡고 있는 상태에서 토러스들의 양 눈알을 뽑고, 양 귀를 잡아 찢고, 양물을 잡아 뜯은 후 그것들을 아득히 먼 거리로 집어 던져 버렸다는 것이다.

후각만으로 찾으러 가라고 웃으면서 놓아준 후 쫓아가면서 박수까지 치고 응원했다는데, 그들 전부 달려가다 과다출혈로 죽어 버렸다고 한다.


비슷하게 유명한 이야기로 토러스의 양 다리에 쇠사슬을 감고 자신의 성 앞 광장에서 줄다리기 대회를 열었다는 것도 있다.

금덩이를 상금으로 걸어서 부하들이 눈이 뒤집혔었다는 말도 함께 전해진다.

그 외에도 축제를 위해, 토러스들을 잡아 와서 광장에서 돼지머리 괴물인 수스나 개머리 괴물인 케이니스와 강제로 교미를 시켰다느니 하는 밥맛 떨어지는 소문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전사들은 웃었다.

자신들도 괴물들을 상대로 혹은 하인이나 농노들을 상대로 잔혹 행위를 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세상 사람들이 호들갑을 떤다고 여긴 것이다.


최초의 전사 위드링튼의 로저가 토러스의 피를 마시고 초인이 된 후, 괴물들의 피를 먹고 신체를 강화시키는 것은 괴물들을 상대해야 하는 기사들에게 필수적인 일이 되었다.


하지만 멀쩡한 인간이 괴물의 피를 먹었는데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었고, 강화된 신체만큼이나 그들의 폭력성과 잔인함 또한 한층 강화되어 버렸다.

물론 원래도 아랫사람들을 장난감처럼 다루던 놈들이지만.


동료들과 소문을 들었을 때는 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눈에서 폭포가 쏟아질 것 같다.

옆에 있는 마법사 놈은 불덩이를 몇 발 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더위 먹은 개처럼 헐떡이고 있다.


마음 편한 상태에서 던지는 평범한 불덩이라면 과장 안 보태고 한 시간 내내 던질 수도 있는 초월자가 바로 대마법사 거버스다.

그가 지금까지 살면서 태워 죽인 괴물들과 전사들의 수만 해도 대충 천은 넘을 거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오늘처럼 마음 졸여 본 적도 없었고, 이렇게 빨리 지쳐 본 적도 없었다.

로저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면서 불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고 정신력을 지나치게 소모했더니 평소보다 수십 배는 빨리 지치고 있었다.


‘병신 같은 왕 새끼, 하필 왜 이런 나무가 천지인 곳에 장소를 잡아가지고!’


이제는 거버스 자신의 뒤에 서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왕 놈의 존재가 더 짜증나기 시작했다.

로저보다 먼저 이 왕 놈을 콱 죽여 버리고 싶어졌다.


거버스가 평소처럼 불덩이를 표적이 맞든 말든 마구잡이로 던졌다면 아무리 잘난 로저라도 벌써 불에 타 죽었을 것이다.

금세 주변이 불바다가 되어서 발 디딜 공간 자체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장소다.

이렇게 거대한 나무들이 지천에 깔린 곳에서, 그것도 표적과 거리도 가까운 상태에서 마법의 불을 그딴 식으로 난사해 버리면 거버스 자신도 생존을 장담할 수가 없게 된다.


거버스가 만든 불은 의지력 하에 있을 때나 그의 종이지, 그의 의지력의 범위 밖으로 나가면 생판 남이다.

자신조차도 신체에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타 죽어 버릴 것이다.


땔감이 사라지면 순식간에 꺼져 버리는 것이 마법의 불이다.

하지만 땔감이 있는 한, 그리고 불에 담긴 마력이 전부 소실되지 않는 한 절대 꺼지지 않는 것도 마법의 불이다.


‘이젠 이판사판이다! 수단, 방법 안 가린다!’


나이 아흔여덟에 고작 스물세 살짜리 애새끼에게 가랑이가 벌려진 채 고문당하는 상상을 해 본 마법사 거버스는 눈알이 뒤집혀졌다.


“폐하, 뭐 하고 계십니까? 저놈이 저렇게 쥐새끼처럼 피하고 있지 않습니까. 수하들을 시켜 저놈의 팔다리라도 잡고 있으라 명하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신이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알려 드려야 하옵니까?”


방금 전까지 손을 덜덜 떨고 있던 험프리 왕이었지만, 신하에게 이렇게까지 무례한 말을 듣자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왕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마법사가 아닌 수하들에게 풀었다.


“짐이 즉위식에서 자비를 베푼 가문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을 경들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홀브룩의 스티븐에게 붙어 짐의 혁명을 방해했던 자들 말이다. 짐은 이들에게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흔쾌히 품으로 받아주었다. 이제 짐이 베푼 자비에 목숨으로 보답해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어서 나서서 저 역적 놈의 사지를 붙잡아라. 네 놈들의 피붙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왕성 웬도버에서부터 총 일흔 명의 전사가 험프리 왕과 함께 출발했다.

그들 중 서른아홉이 이곳에서 로저의 손에 비명횡사했다.

아직 살아있는 서른한 명 중에 열넷이 온 몸을 덜덜 떨면서 앞으로 나섰다.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든, 비열한 군주에 대한 분노 때문이든 그들의 떨림은 멈추지를 않았다.


하지만 가족까지 들먹이면서 노골적으로 협박하는 왕이라는 놈과, 자신들은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어서 나서라고 대놓고 눈을 부라리는 다른 전사 놈들을 보면서, 버티고 서 있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검을 바닥에 꽂고는 맨손으로 걸어 나왔다.

심지어 몇 놈은 장갑까지 벗어 던졌다.


아무리 로저와의 무력의 차이가 심하다고 해도, 그들이 머리까지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잠시만 지켜봐도 거버스의 마법 때문에 로저가 일정 거리 이상을 접근하지를 못하는 것이 보였다.

그저 흉기를 집어던지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도 없어 보였다.


괜히 어설픈 실력으로 로저 놈 앞에서 검 들고 설치다가 투척 무기만 더 제공하는 꼴이 될 듯했다.


‘어차피 마법사 놈이 먼저 퍼져 버리면 우리 모두 죽는다. 왕성에 남아서 기다리고 있는 식솔들까지도... 저놈이 제 죽이는데 가담한 이들을 곱게 살려 둘 리가 없다.’

‘불덩어리 한 발만 맞히면 끝나는 일이다.’


“폐하, 오늘을 기해서 저희 가문들의 원죄에 대해서는 깨끗이 잊어 주실 것으로 믿겠사옵니다.”

“물론이다, 벨펀트 경! 마음 편히 나서라!”


‘미친 새끼, 마음이 참 편하기도 하겠다. 날 붙잡고 같이 타 죽으라는데.’


마법사 영감과 왕 놈이 펼치는 지랄극 한 편을 보면서 열정적인 청년 로저는 참지 못하고 또다시 고언을 뱉어 냈다.


“이야! 니들 둘이 정말 씨발놈들이구나! 감탄했다, 감탄했어! 니들이 이 정도인 줄도 모르고, 난 내가 세상에서 제일 흉악한 놈인 줄 알았지 뭐냐. 이래서 나더러 애라고 했구나! 그럴 만했다! 내가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어. 나 지금 반성 중이다. 니들 정도는 돼야지. 과연 군주와 대마법사의 품격이다! 보기 좋다!”


로저는 두 잡놈에게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더 쓴 말을 남기고 앞에 나선 자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웨스털랜드의 백작이여. 우린 네깟 도살자 놈에게 동정 받을 이들이 아니다.”

“너 기억난다. 로킹엄 백작의 둘째였던가. 저 쌍놈이랑 반역질 할 때 선왕을 지키던 네 형을 내가 죽였었지. 춘부장께 내가 정말 못할 짓을 하는군. 뭐 결과적으로는 나도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형님을 입에 올리지 마라! 네 놈만 아니었어도...”

“어쩐지 아까부터 좀 이상하다 했다. 이상하게 비장한 놈들이 중간중간에 있더라고. 몸으로 다 처막아 내고 말이지. 그 놈들에다 너희까지 더해서 한 서른 놈이 협박받고 끌려나온 거구나. 저 새끼가 도대체 어디서 일흔 놈이나 끌고 나왔나 했다.”

“길게 떠들 것 없다, 로저 드레이시. 이제 그만 끝을 보자.”

“잠깐만! 볼일 좀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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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죽어서야 웃기다 (2) 23.06.17 306 5 9쪽
15 죽어서야 웃기다 (1) 23.06.17 324 5 9쪽
14 토사구팽 (6) 23.06.17 323 6 9쪽
13 토사구팽 (5) 23.06.17 318 4 9쪽
» 토사구팽 (4) 23.06.17 322 5 9쪽
11 토사구팽 (3) 23.06.17 342 4 9쪽
10 토사구팽 (2) +2 23.06.17 372 6 9쪽
9 토사구팽 (1) 23.06.17 424 7 9쪽
8 최초의 전사 (7) +2 23.06.12 451 11 9쪽
7 최초의 전사 (6) +2 23.06.12 457 9 9쪽
6 최초의 전사 (5) +2 23.06.12 485 11 10쪽
5 최초의 전사 (4) +2 23.06.11 531 10 9쪽
4 최초의 전사 (3) +2 23.06.11 692 11 9쪽
3 최초의 전사 (2) +2 23.06.11 863 13 9쪽
2 최초의 전사 (1) +2 23.06.11 1,485 13 9쪽
1 프롤로그 +10 23.06.11 2,110 2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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