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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변 님의 서재입니다.

끝자락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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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변
작품등록일 :
2018.08.21 15:17
최근연재일 :
2018.08.28 07:09
연재수 :
4 회
조회수 :
311
추천수 :
0
글자수 :
8,229

작성
18.08.23 15:38
조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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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5쪽

끝자락 인생 -3- : 회상(回想)

DUMMY

끝자락 인생 -3- : 회상(回想)




<회상(回想)>



교도소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이야기다. 하루는 모친께서 면회를 오셨다. 유리벽 하나 두고 조용히 말이 없었다. 소리죽여가며 울고 있다가 한참만에 입을 떼신다. 수화기에 대고 하시는 말씀이 이렇다.


"진호야, 앞으로 인제 우리는 모르는 사이다. 행여 옥에 나와도 두번 다시 찾아올 생각도 하질 마러라. 이미 이삿짐도 싸서 나갔응께. 그냥... 지금처럼 조용히 숨만 쉬면 된다.. 그 얘기하러 왔다." 하고는 그녀 무릎에 이마를 대고 흐느끼신다.


대충 견적이 나오네. 뭔 소린 지. 어떤 일이 있었는 지. 지금 마음 약한 모친께서 말문 떼는데 얼마나 괴로워 하셨을지도. 그래도..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런 말이 하나 밖에 없는 피붙이한테 할 소리인가.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나.


***


다들 어려운 시절. 하나 밖에 없는 아들내미 대학 보내겠다고. 대학 나와 사람답게 살라고. 어머니께서 식당일 하며 어렵게 번 돈 모두 학비로 썼다. 그래서 난 밤잠 줄여가며 악에 받친 듯 공부를 했다. 그 놈의 장학금 한 번 벌어보겠다고. 그렇게 대학 공부도 마치고 군대도 갔다 오고. 그 다음 수순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책보며 밥벌이 하는 게 최고라며 대학교수의 길을 가라는 어머니의 말. 그 말 믿고 머나먼 땅 중동까지 왔다.


그 믿음이 어디 잘못되기라도 했던 걸까. 가슴 한가득 품은 꿈과 소망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이색적인 땅. 중동. 새로운 세계를 향한 설렘도 잠시.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때는 6년 전. 생소하다는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전공 교수의 길을 품게 된 건. 그 때 당시만 해도 문제될 거 없어 보였다. 떠날 때 마음에 걸린 건. 이따금씩 신문에 난 이야기가 전부였다. 해외에서 북한 놈들의 사상 교육 받고 불온 서적 유포하려 귀국하다 걸린 유학생들 이야기. 그게 대수일까. 나만 아니면 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순진한 학생 몇몇을 간첩으로 둔갑시켜서 내몰든 내 알 바는 아니다. 일말의 공명심을 두둔하기에는 먹고 살 걱정 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 일단 살아야 하니깐.


성공하겠다는 일념하에 다 내려놓고 이집트에 첫발을 내딛었다. 첫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이집트가 북한이랑 우호적인 관계라는 건 이집트 오구서 알게 됐다. 북한 전쟁 기념관이 있고 북한 대사관도 버젓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 근처에 갈 엄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부스러기 만들어서 좋을 것 하나 없다. 여기에 온 건 단지 아랍어 공부하러 온 것 뿐이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대학교 같은 카이로 대학에 어떻게든 입학 해 보겠다고 손짓 발짓 해가며 입학처 교직원 붙잡고 매달렸다. 아랍어 공부하겠다고 매일매일 찾아오는 동양인 학생이 귀찮았는지. 담당 입학처 교직원이 선심 쓰듯 서류 한 장 한 장 가져오라고 얘기했다. 서류 하나 넣으면 또 서류 한장. 그 서류 넣으면 다시 서류 한 장. 이렇게 1년이란 시간이 다다랐을 즈음 학생증은 커녕 입학금도 넣지 못한 상황에서 어렵사리 수강신청하고 대학 수업을 하게 됐다.


카이로 대학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1년동안 애걸복걸 해가며 입학한 것도 고달팠지만. 학기 시작하고 캠퍼스 생활은 더욱 넘기 힘든 벽으로 보였다. 명색이 카이로 대학교 아랍어과 석사 학생이면 나름 공부를 꽤나 한다는 녀석들이었다. 회교도 국가에 아랍어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클 거라 생각했지만. 이들에 비하면 나는 국민학생 수준만도 못했고. 이들이 외국 학생을 반길 리 만무하다. 어떻게든 그 틈바구니 속에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수업 시작하면 교수가 2시간 동안 칠판에 적는 게 하나 없다. 교수와 학생 간에 열띤 토론이 이어지다가 수업 끝나기 5분 전에 레포트 제출하려는 교수님의 말에 학생들이 부산스레 적는다. 영문도 모른 채 주위를 살피다 수업 끝나길 기다린다. 지들 끼리 떠드는 동료들에게 다가간다. 교수가 뭐라 말했는지 물어본다. 뭐라고 설명을 한다. 고맙다고 하고 노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해에 보기 좋게 낙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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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끝자락 인생 -4- : 기만(欺瞞) (수정중..) 18.08.28 44 0 1쪽
» 끝자락 인생 -3- : 회상(回想) 18.08.23 73 0 5쪽
2 끝자락 인생 -2- : 부정(否定) 18.08.23 59 0 3쪽
1 끝자락 인생 -1- : 악몽(惡夢) 18.08.21 13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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