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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변 님의 서재입니다.

늪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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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변
작품등록일 :
2018.04.02 17:56
최근연재일 :
2018.04.1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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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2

작성
18.04.0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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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늪지대 -1-

DUMMY

-1-

"이봐 김팀장. 사람 마음 받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너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개되지 같은 것들한테 내가 고개 숙여가며 개고생한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


그의 너무도 솔직한 말에 뭐라고 덧붙일 말이 없었다. 이런 질문에 별로 대답하기 싫다. 그래도 살려면 대답을 해야 한다. 이 괴물같은 녀석한테 일주일간 시달리지 않으려면 빨리 머리 굴려 적절한 단어 선택을 해야 한다. 박태식 의원실에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배우고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단어 하나 잘못 쓴 거 가지고도 일장연설을 반나절은 족히 할 수 있다는 거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의원님. 어제도 오늘도 국민들에게 허리숙여 일하시는 걸 매일 보지 않습니까."


"지당은 무슨 개뿔. 내가 '지당'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니라고 몇번을 말해 알아듣겠어? 아무튼 그래 그거야. 내가 말하고 싶은 게 그거야 김팀장. 내가 이렇게 개되지만도 못한 잡것들을 '국민 여러분'이라 해가며 일일이 악수 하는게 여간 드러워서 하고 싶지 않은데, 삼선 의원으로서 무사히 마치고 더 가야하지. 그 때 까지만 좀만 더 고생하자.


내 반응에 흡족해하는 박의원의 얼굴빛이 뭔가 말하고 있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서 비열한 그의 음성이 덧입혀지는 것만 같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에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다. 이 괴물이 뭘 말하려는지 얼굴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간다. 전직 권투 선수였던 나는 상대 눈깔 돌아가는 거만 봐도 다음에 뭐가 나올지 대충 감 잡을 수 있어서 바로 이어 상대선수 얼굴에 카운터를 꽂아 넣었다.


말하고자 하는 건 간단하다. 이 새끼한테 나는 인간이 아니고 개다. 지금처럼 어느때건 자기 자랑 늘어놓을 때마다 항상 같은 자리서 딸랑거려주고, 마음에 안 드는 일 있으면 죽을 때 까지 처맞아도 꼬리 흔드는 그런 개다. 그리고 이 괴물이 적당한 때를 봐서 목졸라 죽일 거라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솔직히 이렇게 박의원을 대하고나면 화장실 변기에 머리 처받고 토해내고 싶은 게 정말 많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근데 말이야 김팀장. 최사장 요즘 어때? 새끼가 통 연락이 없어. 내가 꼭 말해야 하나. 하여튼 개새끼들은 때되면 몽둥이 찜질을 해줘야 알아듣는다니깐."


"최사장한테는 안그래도 말해놨습니다. 이번 주까지 늦지 않게 입금하라고 해놨습니다."


최사장은 건설업 중소기업 사장이다. 불경기에 건설수주 건 좀 따보겠다고 박의원에게 접근한 게 그의 최대 실수였다. 룸방에서 애들 불러다 노는 건 이 바닥에서 흔한 일이지만, 상대는 박의원이다. 박의원을 거쳐간 사람치고 사지 멀쩡한 사람 하나 없다.


"최사장한테 얘기해서 내가 오늘 기가 좀 허한데, 기력보충 좀 해야겠다고 말해놔. 그리고 이비서 오늘 출근했나? 하루종일 안 보이네?"


"알겠습니다. 이비서는 의원님 시키신 일 있어서 외근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입니다. 지금 의원님이 찾으신다고 연락할까요?"


"아냐아냐. 내가 직접 연락할게. 이비서가 요즘 고생이 많아. 요새 선거 준비하느라 주말없이 일만 했는데, 쉬게 해주고 속 좀 달래줘야지."


"... ..."


박의원이 최사장한테 얘기한 건 자주 가는 개고기집에 예약해 두라는 것이다. 단골집 보신탕 한 그릇이 요즘은 3만원이다. 의원인데 몇푼이나 한다고 자기돈 들이지 않고 굳이 남의 돈을 빼먹는다. 박의원의 흔들림없는 경제철학이다. 박의원이 여기저기 빨대 꽂은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박의원이 손만 대면 '파산'은 기본이다. 그리고 종종 그 사람이 어딘지 자취마저 사라지곤 한다. 여기 의원실만 해도 뭣도 모르고 왔다가 증발한 당원들이 수두룩하다.


"야 김팀장. 그 뭐냐 마레카즈(marecage)인가 뭔가하는 화장품 가게 있지? 뉴월드 백화점에 있는 거. 김사장한테 말해 놨으니깐 그거 들고 오면 돼. 내 차에 실어놓고 오늘 일찍 퇴근해. 고생했어."


길건너 백화점에 들러서 박의원이 말한 화장품 가게를 들렀다. 화장품 가게 김사장이 나를 알아보더니 활짝 웃으며 반긴다. 일부러 가슴파인 옷을 즐겨 입는 김사장은 은근히 가슴골을 보이는 것을 즐기는 듯 하다. 이 사람은 단 한번도 진짜 웃음을 지어본 적이 없다. 김사장에게는 그저 나를 빨리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 뿐이다. 난 어차피 여기서 물건 받고 인사하고 자리 뜨면 그만이다. 그런데 가끔씩은 신제품 나오면 잘 진열된 화장품 진열대 앞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향수를 손에 집어 손등에 뿌려보고 냄새를 맡아본다.


"김팀장. 여자친구한테 선물하려구? 아우 여자친구도 김팀장 닮아서 고급스러운가 보네. 이거 이번달 신상으로 나온건데 물건 좋아. 이건 재고가 없어서 못 팔아 요새. 김팀장 마음에 들면 내가 특별히 김팀장한테만 공짜로 줄게. 선물."


"저 돈 있어요 사장님. 이거 얼마에요?"


"아이 왜 이래 김팀장. 우리끼리 서운하게시리. 그러지 말고 내가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계산은 다음에 해. 알았지?"


"카드로 계산해도 되죠? 그리고 여자친구 아니고요. 그냥 아는 사람한테 선물하려구요. 아 죄송한데 선물 포장 좀 부탁드릴게요."


화장이 짙은 김사장의 안면근육이 이젠 경련을 일으키는 것만 같다. 김사장 역시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박의원집 개까지 뒤치닥하려고 하니 마음 상할 법도 하지... 나도 폐끼치기 싫어서 올 때 마다 내 돈 주고 사가는데 김사장은 항상 변함없이 나를 대한다.


비좁은 계산대에서 내가 산 향수 포장하는 알바생 손이 떨린다. 그러고보니 한달 전에 본 알바생은 어디갔는지 없고 새 알바생이 일한다. 김사장이 밑에 부하직원 갈아치우는 게 스페어(spare) 갈듯 하는데, 이 어린 친구는 굼뜬 손으로 뭐하겠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자기 용돈 제손으로 벌겠다고 나가지 않고 일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김팀장. 의원님한테 선물이랑 항상 감사하다고 내 얘기 꼭 좀 전달해줘. 그리고 우리 김팀장도 자주 보고 싶은데 자주 들르고."


뻔한 거짓말에 알겠다고 하고 돌아선다. 그리고 밀려들어오는 인파를 거슬러 백화점을 빠져나온다. 횡단보도 앞에 선다. 횡단보도 맞은 편에 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신호등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이비서.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차는 멈추고 사람은 기계처럼 횡단보도를 가로지른다. 초점없던 이비서가 한박자 늦게 발걸음을 뗀다. 이 정도 거리면 나를 알아볼 법도 한데 딴 생각에 사로잡혀 날 보지 못한다.


"어이 이은혜. 언제까지 넋을 두고 다닐거냐. 나랑 갈 데가 있어."


"어? 팀장님. 잠깐만요 이거 놓고 얘기해요."


"싫어. 너 내가 이렇게 안 잡으면 딴 데로 갈거잖아. 잠깐이면 되니깐 잠자코 따라오기나 하셔."


느닷없이 팔짱 끼고 자연스레 끌고가는 내가 이비서는 다소 당황스러웠는지 팔을 뺄려고 하다가 금방 포기하고 발을 맞춘다.


"의원님 불러서 가는 길인데..."


"야 그 영감탱이 하루종일 보는데 지겹지도 않냐. 우리가 기계도 아닌데 일 좀 작작 부리라고 그래. 그리고 너도 좀 쉴 때 되지 않았냐?"


이비서를 끌고 간 곳은 내가 자주 가는 단골 카페다. 카페 인테리어가 복고 스타일이다. 영화에서 볼 법한 낡은 소파의자에 나전칠기 탁자라니. 그런대로 느낌 있어 좋다. 뭐니뭐니해도 여기가 좋은 건, 카페 구조가 탁트인 게 아니고 방 별로 나뉘어 있어 손님들끼리 알게 모르게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뭐 마실래? 아 미안. 늘 먹던걸로? 그럼 카페라떼에다 티라미스. 오케?"


이젠 익숙해졌는지 말도 안 하고 소파에 앉아 핸드폰 화면만 돌려본다.


이은혜. 지금은 이렇게 같은 곳에서 일하는데 사람 인연이 참 재밌다. 내가 이은혜를 처음 만난 건 호스트바에서 일할 때였다. 체육관에서 같이 운동하는 형 따라 용돈 좀 벌자고 호빠에서 일을 좀 했었다. '운동으로 먹고 살기 힘드니깐 부업이라도 하는 게 좋다'면서 꼬드긴 형 따라 간 곳은 정말 가관이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그런 생각도 있었다. 까짓것 손님이 2차 요구하면 떡도 치고 돈도 버니깐 일석이조라 생각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제법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일상이 되어버리니깐 슬슬 부담이 되어갔다. 여자들 가슴 주무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일주일에 세네명 상대하려 하니 온몸이 아프다. 잘 좀 해보려고 하다가도 뭔가 안 맞으면 바로 귀싸대기 날아오는 것도 한순간이다. 이건 손님이라 어떻게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앉은 자리서 맞아야 한다. 욕들어주는 것은 기본 옵션이고 주는 술 다 받아먹고 화장실 가서 토하고 정신차리고 다시 들어가야했다. 여자가 이렇게 무서운 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다음날 아침 속이 쓰려서 이 짓 얼마나 더 할까 싶어 몇달 일 나가다가 때려쳤다. 호빠일을 그만둘까 생각할 때 쯤 이비서를 처음으로 만났다.


돈을 왕창 쓰고 가는 VIP 손님 올 때만 불려가는 10번방에 간만에 호출되서 들어갔다. 오늘은 운이 좋다. 우리팀 에이스가 얘기도 없이 출근을 안해서 매니저 형이 나를 급하게 부른 것이다. 10번방 앞에서 거울 한 번 더 보고, 문열고 들어갔다.


"김진수입니다. 오늘 즐거운 시간 보내요!"


내 말을 마치고 보니 정장차림을 한 아담한 아가씨가 술에 취했는지 자리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있었다. 얼굴도 반반하고 몸매도 예뻐서 땡큐라 생각했는데, 영 여기 세계랑 어울리지 않는 여자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늘은 얼마나 벌 수 있을까 가늠해 보고 이빨 한 번 털어보려고 하는데, 흐린 시선의 그녀가 내 옷깃을 잡았다.


"안아주세요."


짧고 강렬한 말이다. 의외의 반응이라 당황했지만 생각해보니이러면 나도 이것저것 할 필요 없고 편하니깐 좋다. 그리고 최소한 오늘은 뺨을 대주거나, 하이힐 굽으로 머리맞을 일은 없으니깐. 그녀의 허리뒤를 오른팔로 감아서 그녀를 안아본다. 왼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당겨 품에 묻는다.


그 날에 그녀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 품에 안긴 그녀는 얼굴을 파묻고 소리없이 울었다. 분위기가 영 안 좋다. 아직 양주도 안 깠는데 벌써 이러면 곤란하다. 술 팔아 장사는 하는 이 바닥에서 매상 좀 팍팍 올려야 한다고 매니저 형이 신신당부했는데 오늘은 좀 날이 안 풀린다. 계속 흐느끼는 여자를 안고 십분 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슴이 타들어가는데, 안 되겠다 싶어 말을 붙여봤다. 계속해서 묻는 말에도 대답 없이 계속 울기만 한다. 가슴이 답답해서 그녀를 안은 채 목에 잔을 털어넣는다.


"언니, 여기 처음이지? 다음부터 이러면 안 돼. 여긴 술도 팔고 2차도 가고 그래야 하는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나 매니저 형한테 혼난단 말야."


"그냥 이렇게 있으면 안 돼?"


그뒤로 그녀는 그렇게 종종 나를 10번방으로 부르곤 했다. 사실 딱히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고 그녀도 그닥 잠자리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침대 위에서 그녀랑 하룻밤 보내는 건 대개 그녀의 이상한 얘기들을 들어주다 끝나곤 했다. 그녀랑도 종종 잠자리를 가졌지만, 그녀가 잠자리를 두려워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관계를 가질 때면 꼭 눈을 질끈 감곤 했었다.


어느날 그녀랑 이상한 일을 겪게 되었다. 긴 애무의 과정을 끝내고 그녀의 은밀한 곳에 삽입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녀는 괴물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벽으로 도망쳤다. 그리고는 벽구석에서 웅크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동안 흐느낌이 멈추지 않았고 나는 뭔 일인지도 모르는 채 담배만 피어대고 있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 도대체 왜 우는거야? 얘기라도 좀 들어보자."


"......"


그렇게 곧 죽을듯이 눈물만 흘리던 그녀는 부르튼 눈으로 나를 한 번 보더니 다시 고개를 땅에 떨궜다. 울음소리가 멈췄다. 곧이어 그녀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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