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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악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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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2.03.04 23:26
최근연재일 :
2018.01.12 12:31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15,872
추천수 :
181
글자수 :
172,566

작성
11.12.21 20:14
조회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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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9쪽

여든여덟의 추도문 - 7. 유토피아 - 10 end

옛날에 썼던 글이에요




DUMMY

이후로 나는 홀로 집에 틀어박혔습니다.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고, 옷장으로 문을 막고 아무도 방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멍한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왔습니다. 그것은 섬뜩한 정도로 무미건조한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한 때, 당신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토록 염원했던 '유토피아'를 가진 당신이라면... 분명 저는 감싸지못했던 저 이미 죽어버린 녀석을, 그 풍만한 어둠으로 감쌀 수 있을거라... 그리 여겼습니다.

녀석은 당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했습니다. 사랑... 그래요,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 하나만을 안고 당신의 눈구덩으로, 축축한 어둠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분명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그 추악하게 짓이겨진 왼눈과 업화가 넘실거리는 오른눈이 당신의 세계를 부수는 순간, 그 안으로 들어간 녀석까지 함께 부숴버린겁니다.

아마 당신은 녀석이 당신을 사랑한만큼 녀석에게 사랑을 돌려주지는 못한거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어리석은 나는 내게 결여된 것만을 쫓느라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곤해도 저는 당신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처럼 현실을 버릴 수는 없었으니까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현실과 이상 둘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두 동굴 안에 단단히 틀어박혀있습니다. 하나만, 하나만 가지고 있었다면 그를 구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까지 제가 했던 말을 모두 잊어버려도 좋습니다. 그래도 좋으니 그 녀석의 이름과 지금부터 할 한 마디만큼은 부디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리시 게르디. 죽은 불꽃을 낳고 죽은 불꽃에게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런데도 끝끝내 그것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인간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나는 그가 떠나고 난 뒤에 나지막히 중얼거렸습니다.

아아... 그랬군요. 그래서 그 때, 당신은 눈물을 흘릴 수 있던거로군요. 그리고 도서관에서 당신이 중얼거렸던 그 말을 이젠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오른눈으로 손을 옮겨, 이미 휑하게 뚫려버린 그곳에 손가락을 넣었습니다. 이미 나의 오른눈은 나를 떠난 뒤였습니다.

나의 오른눈을 앗아간 그 자는 나를 찾아와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불합격이다. 말은 않고있지만 자신의 사랑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모습이로군. 그대의 눈, 돌려받겠다."

그자는 내 오른눈으로 손가락을 가까이 했습니다. 그 날, 밤거리에서 마셰가 하지 못했던 일을 대신하려는 것처럼 눈가로 손가락을 깊게 찔러넣더니, 눈을 살짝 쥐고 힘껏 뽑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텅 빈 오른눈구덩으로 그것을 밀어넣었습니다.

오른눈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그자는 달콤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험은 끝났다.

이제 더 이상 네게 의미는 없으니, 흙으로 돌아가도 좋다.


그자는 진정 악마였습니다.

아니, 악마란 원래 그런 존재였던가요.

결국 나는 그의 불에 이끌려 나풀나풀 날아가 날개를 태워먹은 멍청한 나방일 뿐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날부터 나는 주욱 죽어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상향을 갈망합니다. 그것은 삶의 동력이자 미래의 꿈이자 자신을 살아있게 만들어주는 심장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상향은 목표가 될 수도 있고, 미래가 될 수도 있고, 꿈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손을 뻗고 말았습니다.

내 단 하나의 목표이자 꿈이자 미래였던 것이 사실은 지옥의 한 편과도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향이 실은 나의 진실된 것이 아니었고, 거짓을 얻는 대가로 진실한 이상향을 누구도 아닌 내 손으로 파괴하고 말았다고 깨닫는 순간.

저는 죽고 말았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내게 또 다른 이상향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겁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유일한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처절하게 웃어젖힌 다음, 다시 비웃어주겠습니다.


'파괴'되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이상향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난 죽어있습니다.

아마 영원히 죽어있을 겁니다.

아아... 마음의 관은 누가 짜주던가요.

얼른 그 안에 피안화를 깔고 부차적인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누워있고 싶습니다.



그렇게 죽음만을 기다리던 내게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오른손에 새하얀 쇠사슬을 칭칭 감고, 어깨에 큼지막한 여행가방을 짊어진 중년 신사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방 안으로 들어왔는지 문앞에 옷장은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깨닫고보니 그자는 내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모사가談寫家라고 소개했습니다.

"당신께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우선 소개를 하자면 저는 당신과 같은 악마 소유주입니다."

"악마... 소유주?"

"당신의 눈 말입니다."

아아... 그렇군.

"으음, 저는 엄밀히 말하면 장의사입니다. 악마에게 희롱당한 이들의 사심死心을 처리하는 관리사이지요. 그래서 방금 말했듯 당신에게 제안을 하려고 왔습니다."

그는 쇠사슬이 칭칭감긴 자신의 오른팔을 내밀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악마랍니다. 제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 악마가 넘겨주고 간 팔이지요."

"악...마."

듣기만해도 쓴물이 끓어오르는 그 이름...

"그래서 내게 무엇을 바라는겁니까."

"제가 바라는 건 없습니다. 바라는 것은 당신이지요."

"나, 내가 바란다고?"

"사심死心은 모두 죽어서 심의사心醫師를 바랍니다. 사자死者들이 장의사를 요구하듯 말입니다."

분명, 그의 말이 맞았습니다. 나는 마음의 관을 짜줄 관쟁이를 필요로 했습니다. 이는 그가 말하는 심의사와 뿌리는 같았습니다.

그는 가방을 내려놓더니 온갖 책들을 내 앞에 늘어놓았습니다. 질감이나 색상 등 각양각색의 책이었습니다.

"자, 이것이 당신의 관입니다."

"이게... 내 관이란 말입니까?"

하나를 집어서 책장을 넘겨보았지만 점 하나 찍혀있지 않은 새하얀 백지였습니다.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친절히 나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책으로 엮어내는 것이 저의 사랑입니다. 물론 당신께 일일이 인생사를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조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습니다.

"악마는 참 굉장하지요. 이 악마의 팔은 제가 원하는 사람의 인생을 글로 써낼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면 또 달랐을지도 모르지요. 이래서 악마를 두렵다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네... 그렇군요."

"만약 허락한다면 저는 당신의 인생을 당신이 고른 책에 담을겁니다."

"내 인생이 책에 담긴다는 말입니까? 내 이 마음이 부패하지 않고 고스란히 관에 담길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한치의 주저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나를 안치시켜주십시오."

"그럼 원하는 관을 고르십시오."

이번에도 망설임없이 내 바로 앞에 놓여있는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내 친구의 얼굴처럼 보라색 꽃이 아름답게 흐드러진 표지의 책이었습니다.

"이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제 친구를 부탁합니다."

나는 아라바의 목줄을 그에게 내밀었습니다.

"제 안식처가 되어준 소중한, 정말 소중한 친구입니다. 부디 저 대신 함께 있어주지 않겠습니까?"

그는 한동안 나와 목줄, 아라바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왼손으로 오른손에 감긴 쇠사슬을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꽤 조잡스럽게 묶여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의외로 나름 방법대로 묶었는지 조금 만지작거리자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오른손으로 제 책상에 있는 펜을 잡았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당신의 책이 완성될 경우에 당신은 죽은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될지도 모릅니다. 방금 전의 당신과 같은 모습으로.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오히려 그 떄의 저는 지금보다 한결 후련해져있겠지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생각해주세요. 이 책은 말그대로 당신의 인생이니 당신이 생각하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적히게 될 것입니다."

"하하, 마치 소설을 쓰는 것 같군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굳이 생각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미 내 묘지에 적힐 말 정도는 몇 가지 생각해두고 있었으니까요.

자, 그럼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도록 하죠.


이상은, 현실과 섞이지 않았기에 이상이라고 하는건가봅니다.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작가의말

유토피아편이 끝났습니다~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후로나 키인'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다음 화는 이틀 후에 올리겠습니다. 분량이 너무 빨리 줄어드네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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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43 암월청수
    작성일
    11.12.22 03:57
    No. 1

    좀 이해가 안가네요. 친구는 몸이 적색이라 따돌림을 당하는거였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나르키어스
    작성일
    11.12.22 13:22
    No. 2

    네, 죽은 불꽃은 부패된 시체처럼 온몸이 보라색이어서 기피당하는 거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라이도
    작성일
    11.12.22 17:23
    No. 3

    으음... 의문이라면 주인공이 색을 구별하고 있다는게... 악마에게 받은 눈은 도로 빼앗겼는데 말이죠. 그리고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편에서는 '왼쪽 눈'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사라졌네요... 뭐, 설정이 달라졌으니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나르키어스
    작성일
    11.12.22 21:32
    No. 4

    쪽지 보내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3 이게뭐야
    작성일
    11.12.31 00:03
    No. 5

    뭔소린지 모르겠당...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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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1 +4 11.12.23 264 4 4쪽
» 여든여덟의 추도문 - 7. 유토피아 - 10 end +5 11.12.21 314 3 9쪽
17 여든여덟의 추도문 - 7. 유토피아 - 9 +2 11.12.20 312 2 6쪽
16 여든여덟의 추도문 - 7. 유토피아 - 8 +3 11.12.18 202 2 8쪽
15 여든여덟의 추도문 - 7. 유토피아 - 7 +2 11.12.18 176 2 7쪽
14 여든여덟의 추도문 - 7. 유토피아 - 6 11.12.17 142 3 8쪽
13 여든여덟의 추도문 - 7. 유토피아 - 5 +2 11.12.16 180 3 7쪽
12 여든여덟의 추도문 - 7. 유토피아 - 4 +1 11.12.15 198 3 9쪽
11 여든여덟의 추도문 - 7. 유토피아 - 3 11.12.14 219 4 13쪽
10 여든여덟의 추도문 - 7. 유토피아 - 2 +3 11.12.12 212 4 8쪽
9 여든여덟의 추도문 - 7. 유토피아 - 1 +3 11.12.12 262 4 7쪽
8 6. 귀의 음악 - 7 end +3 11.12.11 589 10 6쪽
7 6. 귀의 음악 - 6 +2 11.12.10 344 3 7쪽
6 6. 귀의 음악 - 5 +1 11.12.09 346 4 12쪽
5 6. 귀의 음악 - 4 11.12.08 332 4 18쪽
4 6. 귀의 음악 - 3 +1 11.12.08 540 4 7쪽
3 6. 귀의 음악 - 2 +4 11.12.06 648 4 10쪽
2 6. 귀의 음악 - 1 +1 11.12.05 1,322 4 8쪽
1 프롤로그 한 마디. +3 11.12.04 1,465 8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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