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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님의 서재입니다.

모험하는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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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작품등록일 :
2024.03.01 22:02
최근연재일 :
2024.04.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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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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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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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6화

DUMMY

몰락해가는 항구도시 블라켄트.


많은 이들이 도시를 떠나면서 도시 곳곳은 한적했다. 오죽하면 범죄의 온상인 뒷골목마저 한산할까.


그런 바다 비린내에 찌들고 오가는 사람도 없는 골목길이 웬일로 부산스러워졌다.


“빨리 옮겨!”

“서둘러!”

“성공하면 우리한테도 몇 푼 떨어지겠지?”


루버릭 남작 휘하의 죄수병들이었다.


음침한 골목길의 그늘에 숨어 그물을 그러쥐고 고기잡이를 하지 않아 녹슬어버린 작살을 움켜잡았다. 혹여나 여관 쪽에서 낌새를 느낄까 봐 그들은 나름 은밀히 돌아다니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자신들의 움직임이 누군가의 눈에 진작 모조리 포착되었단 걸.


‘사람 있나 없나 알기에는 참 편하네.’


사람의 모습은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이를 바삐 오가는 수많은 ‘문장’들은 마빈의 눈에 잘만 보였다.


폭언, 폭행, 절도, 살해, 강간......


살면서 누구나 한두 번씩은 할 법한 죄부터 저지르면 노역장이나 감옥 혹은 저승으로 직행할 죄까지. 엉성한 흙더미처럼 쌓인 죄목들이 건물 사이를 뽈뽈뽈 돌아다녔다.


비록 관련 없는 이들의 죄까지 다 보여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긴 힘들지만, 갑자기 분주해진다는 수상한 움직임을 깨닫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빈은 뒤를 돌아보았다.

불편한 로브를 벗어던진 다크루먼은 할 일이 없어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류티 오빠분, 습격 오려는 거 같아요.”

“다크루먼이라 부르라고.”

“그게 더 편해서요. 헤헤.”

“쯧, 뭘 바라겠냐. 그래. 뭐 본 거라도 있어?”


마빈은 어깨를 으쓱했다.


“대충요. 골목길이 시끌거리는 게 곧 들이닥칠...... 왔네요.”


다른 이들에 비해 높이가 확 차이나는 죄의 탑이 골목길 저편에서 여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차가운 푸른 시선이 개중 몇몇 죄목에 꽂혔다.


<악마와의 계약-1회>

<악마에게 제물 공양-102명>




***




“마법사......”

“말로만 들었지 처음 봐.”

“쉿! 힐끔대지 마. 기분 나빠하시면 어떡하려고?”


죄수들의 두려움에 찬 시선을 받으며 마법사 이와네는 남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낮게 중얼거렸다.


“위대하고 사악한 비늘 가진 마안이시여, 당신께 바친 제물만큼의 힘을, 만물을 떨게 만드는 공포의 시선과 바위를 지배하는 힘을 제게 내려주시옵고.......”


이와네의 재능은 평범했다.

한 가지 종류의 마법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아주 깊게 파고들 정도로 유능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범재.


그러나 이와네는 재능에 비해 욕심이 많았다.


그녀에게 현 시대는 축복과도 같았다. 지옥과 인세의 경계가 옅어져 간편하게 힘을 내려줄 수 있는 존재를 섬기는 이들과 접촉이 쉬워졌으니까.


그렇게 탐욕스러운 성정에 맞는 탐욕스러운 존재와의 ‘계약’이 이루어졌다.


그 덕에 힘이 증폭되어 유능한 마법사 행세를 할 수 있게 된 그녀는 대귀족의 아래에 들어가 넉넉한 봉급을 받으며 지낼 수 있었다.


물론, 그 힘의 원천이 뭔지는 그녀만 아는 비밀이다.

마침 그녀가 섬기는 존재는 은밀함의 성격도 지니고 있어, 성직자 옆에서 쓰지만 않는다면 누구도 그녀가 흑마법을 쓰는 사람이란 걸 몰랐다.


‘얼른 처리하고 가서 쉬어야지. 으 냄새.’


향수 냄새가 풍기고 고급 원단이 곳곳을 장식한 자신의 방이 벌써부터 그리웠다. 대체 왜 내가 장기 휴가까지 써 가면서 여기 있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더 많은 돈하고 힘을 준다는데. 어쩌겠어.’


그녀가 속한 악마숭배자 단체는 약속했다.


한때 유명한 인어사냥꾼이었던 이와 접촉해 그를 도와주고 인어를 수급하라. 그러면 제물의 일부를 네 몫으로 해 더 큰 힘을 갖도록 주관하겠다.


‘인어를 잡은 다음엔 그치들한테 연락해서 빼돌려야겠어.’


저번에 수적들의 배를 습격한 것처럼 말이다.


웬 사도 이단자가 중간에 끼어들어 악마숭배자들을 도와주고 배를 탈취해 카트라그 쪽으로 몰고 간 건 의외였지만, 인어에 욕심은 가지지 않았다니 별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하여튼 이번에 잡은 남자 인어를 이송 중에 탈취하면 이 지긋지긋한 짠내 가득한 도시와 루버릭 저 촌뜨기 어부 놈과는 영영 안녕이다.


보라색 로브를 뒤집어쓴 이와네가 손짓하여 작전의 개시를 알리자, 죄수들이 골목길에서 여관 앞길로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여관 문을 박차고 일단의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베델라 상단의 경비들이었다.


그 선두엔 무기에서 빛을 내는 둘이 있었다.


“간악한 인간들이 어딜!”


다크루먼은 로브가 가리지 못한 부분에서 인어 특유의 비늘을 반짝이며 일갈했다.


다크루먼의 무자비한 손속에 죄수병들의 몸이 꿰뚫리고 베이며 피웅덩이를 만들었다.


“이얍!”


마빈도 은은한 빛이 도는 검으로 순식간에 여럿을 베어 죽이며 어느 한 곳으로 돌진했다.


“히익! 기, 기사다!”

“튀어!”


죄수들은 두 명의 무기에 번들거리는 빛을 보자마자 지리멸렬했다.


이와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야!?’


루버릭에게 혹시라도 인어가 마력 칼날을 쓸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이와네는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 하나 정도야 죄수들을 방패삼은 뒤 다리에만 석화를 걸어도 바로 무력화될 테니까.


‘그런데 왜 둘이야?’


적어도 바로 도망치지 않을 깡은 되는 죄수들이 외쳤다.


“그그, 그물! 그무울!”

“씨발 그물 던지라고!”

“마법사 님! 도와주십쇼!”


다크루먼은 죄수들이 그물을 던지기 전에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 가운데로 파고들어 창을 넓게 휘둘렀다.


‘어딜 감히!’


죄수들의 팔다리가 후두둑 날아가며 그의 로브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의 눈이 힘없이 끊어져 무너진 그물로 향했다. 인어를 잡겠다고 준비한 것치고는 너무나 형편없었다.


‘대체......’


이깟 별 거 아닌 밧줄 무더기 따위에 동족이 우수수 잡혀갔다니.


문득, 그의 아버지가 얘기해준 옛날 얘기가 떠올랐다. 인어에겐 인간이 그물을 쳐놓은 곳으로 물고기를 몰고 가는 어획법이 있었다.


-그러다가 같이 그물에 걸려 올라가면 서로 멋쩍게 웃으면서 만선을 축하하곤 했지. 물고기도 약간 받아 가고.


어린 인어들도 그걸 따라해 그물에 일부러 잡히는 놀이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 어부들은 껄껄 웃으며 마을로 데려가 육지 음식을 대접하고 작은 선물을 쥐여 보내주었다.


이후에 그 인어가 크게 되면 그 어촌과 같이 어울리며 어획을 도와주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그물에 인어를 집어넣는 것이 단순한 업무상 실수이고 놀이였던 시대.


‘이제는 오지 않겠지.’


적어도 그와 류티가 살아가는 시대 동안은 말이다. 그 안타까운 감정에 대한 화풀이로 그의 창이 더욱 자비 없이 죄수병들을 꿰뚫었다.




***




한편, 마법사는 처음부터 자신을 향해 직진하는 소년을 마주 노려보았다.


‘단번에 석상으로 만들어주마!’


이와네가 미리 준비한 주문을 갈겼다.


얼마나 빠르고 간략히 마법을 시전하느냐에 따라 마법사의 급이 결정된다.


그런 면에서 흑마법은 발동이 빠른 편이다.

마법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심상의 구현과 발동 의지를 악마가 내려준 힘으로 대신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가 계약한 악마는 강력한 악마 군주라는 악마숭배자들의 설명에 걸맞게, 제프의 입에 석화를 걸었던 것처럼 작은 손짓만으로도 마법 발동이 가능했다.


이를 위해 단순히 계약을 위해 작은 마을 하나를 통째로 불태워야 했으며, 지속적으로 주문을 얻기 위해서 마법사 동기들을 포함해 주기적으로 제물을 바쳐왔다.


그러한 노력의 결실은 이와네를 배신하지 않고 이처럼 강력한 힘과 편안한 삶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헌데......


‘뭐야!’


그 힘이 이 중요한 순간에 말을 듣지 않았다.


분명 석화 주문을 쏘았다. 그런데 살벌한 검기를 두른 소년은 멀쩡하게 죄수병들을 베어내며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실수했나 싶어 전신을 뼛속까지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마법을 재차 썼으나 결과는 동일했다.


악마가 직접 나선 것도 아니고 강력한 흑마법사도 아닌 이와네가 날린 저주 따위는 사도의 앞에서 봄날 햇살을 받은 싸락눈처럼 녹아내렸다.


‘설마 성기사? 튀, 튀어야 돼!’


이와네는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안색이 창백해지며 얼른 퇴로를 확보하려 들었다.


콰드득!


이와네의 손짓에, 관리가 안 되어 잡초가 무성한 돌길이 위로 쭉 솟아올라 돌로 이뤄진 가시밭길이 되어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은 하등 쓸데없었다.


텅!


마빈은 골목길 옆에 쌓여 있던 나무상자를 밟고 골목을 이룬 집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이와네는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텅텅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고,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빛의 칼날을 목도했다.


“크윽!”


마법사의 체통 따윈 내버린 이와네가 옆으로 몸을 던졌다. 마빈의 검이 땅바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바닥을 구른 마법사가 재빨리 일어나 통하지 않는 석화 주문 대신 다른 주문을 시전하려다 잠시 멈칫했다.


‘자, 잠깐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더라?’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지금까지 앞에서 누가 막아줘서 편하게 주문만 외워봤지, 이렇게 적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건 처음이었다. 위장 때문에 화염마법도 미리 준비해놓지 않아 완전히 무방비 상태.


‘급속시전 주문을...... 기, 기억이 안 나!’


손짓만으로 사용 가능한 흑마법을 워낙 오랫동안 써먹어 버릇해 백마법의 급속시전 방식을 그만 까먹어 버렸다.


급박한 상황에 허둥거리며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악마의 힘에만 의존해 수련을 게을리한 대가였다.


“위, 위대하고 사악한 비늘을 가지신 마안이시여......!”


이와네가 기댈 곳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악마밖에 없었다.


마지막 남은 주문은 골목을 이루는 담벼락의 벽돌을 창살처럼 쭉 뽑아내 자신을 지키는 시간벌이용으로 날려버렸다.


‘아무리 마력 칼날이 있다지만 일일이 잘라내려면 시간이 걸리겠......’


하지만 마빈은 마력 칼날 대신 다른 것으로 장애물을 주파했다.


콰자자작!!


신성력이 묻은 마력 방패를 만들어 들소가 돌진하는 것처럼 장애물을 그냥 밀어버린 것이다.


돌기둥들이 과자처럼 바스라지며 자욱한 돌먼지가 흩날렸다. 그 속에서 빛을 머금은 칼날이 튀어나와 이와네의 배에 푹 박혔다.


“으어, 어, 꺼어어억......!”


칼에서 스며든 신성력에 의한 고통은 마법사의 머릿속을 하얗게 표백시켰다.




연약한 마법사의 몸체는 끔찍한 고통을 이겨내지 못했다. 입을 쩍 벌린 채 칼에 꿰여 푹 처진 꼴사나운 모습이 흑마법사의 마지막이었다.


심장이 멎은 육신에서 빠져나온 그녀의 영혼은 저 깊은 지옥의 심연으로-


파슷!


-가지 못했다.


무언가 반투명하고 시커먼 연기 덩어리가 이와네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오자, 마빈은 흑마법사의 마지막 발악인가 하고 검을 휘둘렀다.


[아아.......]


귓가에 수많은 감정이 담긴 한숨소리가 들려오더니 덩어리가 서서히 허공으로 흩어졌다.


“도망가!”

“으아아아!”


마빈은 골목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는 시체의 발목을 움켜쥐고 달렸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 많은 이들의 영혼을 팔아먹은 죄인의 시체가 바닥에 긁히며 길게 핏자국을 남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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