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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님의 서재입니다.

모험하는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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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작품등록일 :
2024.03.01 22:02
최근연재일 :
2024.04.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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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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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9화

DUMMY

연회가 끝난 이튿날.


마빈은 해룡 이타카니아의 둥지로 향했다.


꾸응

끼루룩


큼직한 동굴 입구 근처에서 고래 가족이 배회하고 있었다. 이전에 마빈을 입에 태웠던 그 고래의 가족이었다.


마빈은 고래 가족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맞이하는 거대한 푸른 용.


[고생했다. 우리에게 많은 걸 해주는구나.]

“헤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아무리 그렇다 한들 목숨을 걸고 남을 돕는 건 쉬이 할 수 없는 고귀한 일이지. 그 일이 세상의 부담을 줄여주는 크나큰 업적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용의 칭찬에 마빈은 그저 쑥스러워하며 웃기만 했다.


[이제 마지막 과제만 남았단다. 다룰마, 안내하거라.]

“예.”


마빈이 다룰마의 뒤를 따라 용의 둥지 깊숙한 곳까지 다다랐다.


“여기가 지옥문이야. 어때, 흉흉하지?”


외신의 파편이 있던 곳과는 다르게, 새빨갛게 불타오르며 휘몰아치는 가장자리를 가진 원형의 무언가.


영락없이 지옥불부터 연상되는 외견이 어디와 연결되었는지 참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이제 이걸 닫으면 된다.”


다룰마의 눈이 하얗게 불타오르며 말투가 사뭇 달라졌다. 이타카니아와 그의 몸을 빌려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여기로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그럴 필요는 없다. 내가 이전에 뭐라 말했지?”

“음, 지옥문을 닫는 걸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그래. 이 지옥문을 닫기 위해서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


바닷속에 열린 지옥문 대다수가 강력한 수압에 짓뭉개진 것처럼, 지옥문을 닫는 방법은 강력한 물리력을 동원하거나 마력 혹은 신성력을 주입하면 된다.


“그러면 딱히 제가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질량이나 마력은 용이, 신성력은 지상의 교단에서 빌려오면 될 텐데?


“지금 저 지옥문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안다면 그런 말은 못할 거란다.”


본디 지옥문이 열리면 지옥 태생 마수들이 유입되지만 현재 바다에는 기존 생물들이 지옥에 영향을 받아 생긴 마수뿐이었다.


왜냐면 저 문 너머, 지옥의 바다를 지배하는 악마 군주가 지옥 바다의 마수들을 죄다 한데 끌어 모았으므로.


“내가 상처를 이때까지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인어들을 밝은 곳으로 인도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지.”


해룡은 방대한 군대를 갖고 있다.

대륙을 감싼 온 해양의 지성 없는 괴수 숫자를 조절하거나 세상을 침공하는 적대 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대 사도와의 전쟁에서 상당수가 파괴되어, 그들을 도로 수복시켜 움직이려면 해룡의 힘이 필요했다.


현재 인세로 통하는 구멍을 넓히려 드는 악마 군주와 힘싸움을 벌이고 있는 해룡으로서는 버거운 일이었다. 치료에 필요한 마력마저 온종일 이어지는 힘싸움에 투자하고 있는 마당.


“현재 지상의 온 성직자들이 달려든다 한들 이걸 무너뜨리는 건 무리다.”


둘이 벌이고 있는 힘싸움은 공성전에 비유할 수 있다.


지옥의 것들은 지옥문을 타고 이미 넘어온 게 아닌 한, 인세에 영향을 끼치려고 하면 그 힘이 줄어든다. 그래서 그 법칙을 성벽 삼아 중상을 입은 해룡도 공격을 어찌어찌 막아내 왔다.


그러나 통로를 붕괴시키는 시도는 반대로 인세 쪽이 공격자가 된단 것. 성벽을 벗어나 악마 군주 본연의 힘을 직접 상대해야 한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강자는 대부분 전대 사도와의 전쟁으로 죽거나 정양 중.


따라서 남은 수단은 하나밖에 없었다.


“천상의 힘을 빌려야 해.”


천상과 맞닿은 존재, 사도를 통해서 말이다.


“그래서 제게 강해질 시간을 주신 거군요.”


이타카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상의 문을 여는 건 몸에 부담을 주니까.


“다룰마를 통해 들었다. 마력과 신성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면서.”

“네. 하지만 완전하게 익숙해지진 않았어요.”

“그렇다면 시간이 더 필요하느냐?”


이 일은 카트라그 성당 지하의 악마를 잡을 때보다 훨씬 오랫동안 문을 열고 있어야 한다. 다른 일도 아니고 악마 군주와의 힘싸움에 끼어드는 일이니.


“바닷속의 모든 걸 본 건 아니라 들었다. 아직 성장의 여지가 남았으니, 유예를 더 갖는 건 어떠하느냐.”

“음...... 일단은 한번 시도해 볼게요.”

“네 선택이 그렇다면야. 무리하여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않도록 조심하고.”


마빈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몸을 열어 마력을 받아들인 뒤 검으로 유도하며 동시에 체내의 신성력도 움직였다.


곧, 소년의 검이 두 힘이 뒤섞이며 만들어낸 광채에 휩싸였다.


마빈은 여기에 추가적으로 의지를 더했다.

해룡님을 도와주고 싶다. 그리하여 인어들이 더 안전해지도록 해주고 싶다. 그리하여 세상의 평화에 일조하기를.


‘흡!’


지옥문의 가장자리에 검신이 쑤욱 들어갔다. 공중에 뜬 허상에 불과하던 이글거리는 불꽃이 실체를 가지며 자신을 파괴하려는 시도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지옥문을 확장하려는 악마 군주와 그걸 막으려는 해룡 사이에 자그마한 용병이 참가했다.


“상황을 가늠하거라. 할 만하다 싶으면 말해다오. 온 힘을 짜내더라도 도와주마.”


마빈은 해룡의 말에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


‘으윽!’


심해 밑바닥에 맨몸으로 던져진 듯한 압력이 검을 통해 전해져왔다.


‘그래도, 아직, 견딜 만 해......!’


마빈의 마력을 흡수하는 방식은 특이했다.

보통은 자연의 마력을 끌어 모은 뒤 자신에게 맞게 가공하여 저장한다.


반면 마빈은 자신의 몸을 파이프처럼 이용해 바깥에서 마력을 그대로 끌어다 쓰는 방식이라, 지속적으로 지원군이 몰려들고 있는 것과 같다.


여기에 천상의 힘까지 더한다면-


‘할 수 있어!!’


마음 속 깊은 곳.

다룰마가 가르쳐 준 대로 자신만의 심상을 그려냈다. 지금껏 보아 온 모든 것들을 이용해서.


아름다운 자연 풍광부터 시작해 마을과 도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온갖 인간군상을 겪은 경험들이 하나의 거대한 손이 되었다.


그 거대한 손을, 세상을 지키고 그렇게 지킨 세상을 거닐며 여행하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으로 움직여 천상의 문의 문고리를 움켜잡았다.


벌컥하는 환청이 들린 듯했다.


<열고자 하면 열리지 아니하고, 간절히 원한다면 열리리라.>


성경에서 한 사도의 훈화를 기록한 부분이었다. 그게 그거 아니냐는 아리송함만 준 문장이었으나, 지금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마빈의 내부에서 또 하나의 급류가 생겨났다. 폭우가 내린 계곡처럼, 천상의 문에서 시작된 방대한 힘이 매섭게 전장으로 나아갔다.


정신을 잃은 건지, 오히려 집중력이 강해진 건지. 온 세상이 까맣게 물들어 마빈의 눈앞에는 두 가지의 색채밖에 남지 않았다.


지옥의 사나운 불길.

검신의 온화한 광채.


그 둘이 수컷 사슴처럼 뿔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문득, 어떠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크흐흐흐! 천상이 개입했는가! 좋다. 나의 힘이 천상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 히이이익! 네년이 어떻-!


검은 어둠 저편에서 꺼림칙한 비명이 마빈의 심신을 자극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뒤에서 부드럽게 받쳐주는 힘이 있었다.


[견디거라.]


두 광채가 사라지며 어떠한 환상이 소년의 눈앞에 펼쳐졌다.


해와 달과 별이 동시에 공존하는 찬란한 밤하늘 아래. 오랜만에 보는 주신이 투구를 덮어쓴 채 고요히 서 있었다.


주신의 창에는 검은 피가 묻어 있었으며 지평선 저 너머에서 허물어지는 거대한 검은 덩치가 보였다.


[내가 인세에 개입할 수 있는 한계는 너무나도 작다.]


그 말대로 중무장한 외모의 주신은 너무나 흐릿해 눈을 찡그려야 겨우 볼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도 악마 군주를 퇴치했으니, 그 강함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고선 직접 널 도울 수 없어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주신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마빈은 그렇게 말했다.


대화는 많이 하지 못하지만 같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안심이 되는데요.


아름다운 오색 빛에 가려진 입가가 빙긋 부드러운 선을 그렸다.


[잘 보거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여신의 창이 허공을 내저었다.


지금 이 순간.


주신은 무(武)의 결집체가 되었다.


마빈의 모든 감각이 홀린 듯 창의 궤적을 따라갔다.


분명 창을 휘두르고 있는데, 세상의 모든 무기가 투영되어 보이는 듯 했으며 수많은 이들의 다양한 이치가 담겨 있었다.


정의롭고 명예로운 기사이자 하루하루 바닥을 뒹구는 용병이요, 전쟁을 이끄는 장군인 동시에 전장을 이루는 한낱 구성원이며, 무술의 극의를 이루기 위해 떠돌아다니는 방랑자이면서도 또한 살의와 비탄에 잠식당한 희생자가 덧씌워졌다.


주신의 동작 하나하나가 석판에 글자를 새기는 것처럼 마빈의 기억에 각인되어-


마빈이 보고 있는 장면이 일그러졌다.


정신이 천상과 맞닿을 수 있는 시간이 벌써 끝난 것이다. 이 이상은 마빈이 버티지 못한다.


고작해야 몇 초.

그렇지만 그 어떤 때보다도 길었던 시간이 눈앞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마빈의 기억에 새겨진 장면의 대부분도 망각이란 흙먼지에 뒤덮였다.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거라.]

[네가 원하는 대로.]


마빈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나중에 또 봐요, 주신님!


눈앞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검은 돌로 이루어진 동굴 천장이 보였다.


“괜찮으냐.”

“......으어.”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바위가 온 관절과 온 근육을 짓누르는 듯했다. 혀를 움직일 힘도 없어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짧은 발음만이 툭 튀어나왔다.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오로지 눈뿐.


“동공이 움직이는 걸 보니 정신이 나가진 않았구나.”


다룰마의 몸을 빌린 이타카니아가 마법으로 마빈의 눈에 밝은 빛을 비추었다가 껐다.


그녀가 마빈의 상체를 손수 일으켜주었다. 지옥문의 붉은 화염은 온데간데없었다.


“수고했다. 문은 붕괴되었어.”


잘 되었네요. 마빈은 속으로만 답했다.


“조금 모자랄 뻔 했지만, 다행히도 문을 부술 수 있었지.”


상처를 회복하고 있던 마력까지 모조리 끌어다 쓴 탓에 정양 기간이 더 길어질 거라 투덜대는 용의 말에는 후련함이 가득했다.


“덕분에 악마 군주가 큰 타격을 입었다. 바다의 다른 지옥문에서 수작을 부리진 못하겠지. 다 네 덕이다.”


아. 다행이네요.


“고생했다. 이제 푹 쉬려무나.”


네. 부탁드립니다.


마빈은 지친 몸과 정신을 위해 눈을 닫고 잠에 빠져들었다.




***




‘아.’


조개로 장식된 낯익은 천장이 소년의 시야에서 일렁였다. 푸른소라 궁전에 마련된 마빈의 숙소였다.


“으그극.”


쭈욱 기지개를 펴면서 몸을 점검했다.


늘어진 해초 같던 몸은 도로 힘을 되찾았고 뭉개진 진흙 같이 멍했던 정신도 다시 선명해졌다.


“히히.”


참 많은 걸 해냈다는 성취감이 가득 담긴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가장 큰 성과는 주신님을 다시 봤단 거였다. 비록 흐릿해 극히 일부만 생각나 아쉬웠지만.


‘언젠간 기억나겠지!’


망각이라는 지층 속에 묻힌 절세의 장면이 담긴 암각화를 발굴하는 것. 그것이 마빈의 또 다른 목표가 될 것이다.


여러 가지를 떠올리며 그렇게 앉아 있자니, 방문이 열리며 다룰마가 들어왔다.


“여, 깨어났나 우리의 영웅! 열흘만이야.”

“잘 지내셨어요 아저씨?”

“나야 잘 지내지. 정말로 고생했다. 정말로.”


다룰마가 한없는 기쁨으로 충만한 얼굴로 마빈을 껴안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소년이 인어를 위해 해준 일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마빈은 그동안 도시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해룡님은 괜찮나 등등을 물어보았다.


“근데 말이다.”


이것저것 대답해주던 다룰마는 마빈의 분위기가 뭔가 요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의 허물없는 수다라기보다는 어쩐지 뭔가를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는 분위기.


“너 날 보는 표정이 좀 이상한 거 같다? 그 검은 지옥문에서 나온 다음부터.”

“어......”

“내 머리 위는 자꾸 왜 봐? 뭐 묻었어?”


마빈이 눈동자를 돌려 시치미를 떼려 했다.


“혹시 이상한 거라도 보이냐?”

“아뇨?”


다룰마가 피식 웃었다.


“이 녀석아. 너 말이야, 정곡을 찔러서 튀어나오는 거짓말은 못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냐? 다 티나. 솔직히 말해 봐. 무슨 일이야?”

“음.”


마빈의 눈에 다룰마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글자들이 보였다.


살해, 폭행, 폭언......


개중 가장 인상적인 문장 하나.


<악마와의 계약-3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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