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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님의 서재입니다.

백구렁이뎐(온기를 빼앗는 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치북
작품등록일 :
2021.12.16 10:18
최근연재일 :
2023.10.21 09:4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0,510
추천수 :
94
글자수 :
76,812

작성
22.04.07 06:05
조회
765
추천
1
글자
10쪽

내 애정은 적당히가 안 돼

DUMMY

“ 아무리 좋아해도 그렇게 많이는 필요 없습니다! ”


기대와 달리 채경의 반응이 그리 달갑지 않자 이한의 산뜻했던 얼굴이 우중충하게 늘어졌다.



“ 하..하긴 너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이긴 했지. ”


나의 애정을 감자로 표현해보려 하니 아무래도 너무 지나쳤던 모양이다.


내 마음이 그리 감당하기 어렵다면 이제부턴 조금만 아껴야겠다.


내일부터는 감자의 양을 반에 반에 반으로 줄여야지.



“ 그리고! 전 감자보다는 고기를 더 좋아합니다. 것도 살아있는 녀석으로다가! ”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예까지 달려온 채경은 큰 목소리로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했다.


감자는 팔아도 값이 얼마 안 나올 테니 비싼 고기로다가! 그리고 썩으면 값어치가 내려가니 생물로다가 부탁합니다!



***



“ 그 여인이 감자보다 고기를 더 좋아했다니··· ”


좋아하는 여인의 취향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한은 평상에 누워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실수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은 감자는 좋아하지만 그렇게 많이는 좋아하지 않으며, 감자보다는 고기를 좋아하는 육식파란 말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사냥이겠다.



“ 살아있는 녀석으로다가 준비하려면 까다롭겠어. ”


살아있는 고기를 뜯어 먹는 건 구미호들만 하는 짓인 줄 알았는데 이 여인 또한 식성이 특이한 편이었다.


구렁이인 내게 사냥이란 개울가에서 물놀이하듯 손 쉬운 일이었지만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건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뾰족한 송곳니를 너무 깊이 박아서도 안 되며, 단 한 방울로도 상대를 사지로 몰 수 있는 맹독도 사용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조르기 기술을 사용할 땐 힘 조절에 유념해야 했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집 바로 뒤로 연결된 산길로 향했다.


그 앞엔 진이경이 똥줄이 탄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정신 사납게 서성이고 있었다.



“ 남의 집 뒷산에서 뭐해? ”


“ 내 자네가 올 줄 알았어! 설마 지금 고기 사냥하러 가는 건 아니지? 에이 설마! 그 여인이 고기 좋아한다 했다고 산짐승을 잡아주려 가는 건 아닐 거야. 그렇지?! ”


이경은 제발 아니길 바라며 물었다.


어찌 천하의 구렁이가 여인이 한 마디 했다고 바로 산으로 조르르 달려올 수가 있냐고!


난 나의 벗이 그렇게 멍청이는 아니라 믿고 싶었다.


것도 내가 고기 고기 노래를 불렀을 때에는 아무거나 먹으라며 입에 밍밍한 풀을 처넣던 저 구렁이가!



“ 뭐야. 너도 그 여인이 고기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어?! ”


이한이 나도 오늘에서야 겨우 안 사실을 감히 네가 어떻게 아냐고 항의하는 얼굴로 물었다.


내 여인에겐 관심도 없다며 혐오하는 기색을 보였던 자가 내 여인의 식성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설마 너 진짜 내 여인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내 오늘 다른 산짐승들은 놔두고 너부터 사냥해줄 거다.


이한이 경고하듯 서슬 퍼런 이빨을 들어내자 이경은 지겹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 세상에 고기 싫어하는 인간이 어디 있나. 특이 체질 빼고 백이면 백, 당연 감자보단 고기를 택할 걸세. 우선 나부터가 그러네. ”


아무래도 구렁이가 도원경에서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인간이었을 시절의 기억을 잃은 모양이었다.


감자도 맛있는 별미가 될 수 있지만 고기의 깊은 육즙을 따라오려면 한참을 멀었다.


자기는 뭐 태어났을 때부터 구렁이였는 줄 아나. 무릇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터득했을 그 진리를 어찌 잊을 수 있는지 원!



“ 그렇게나 고기를 좋아한단 말이지. ”


드디어 깊은 진리를 깨달은 이한은 고기란 고기는 전부 멸종시킬 기세였다.


이 도원경에 사는 짐승의 씨가 마르기 전에 서둘러 그를 말려야 했다.



“ 그리고 인간들의 배통은 좁쌀만 해서 하루에 한 마리도 다 못 먹네. 오래 두면 썩어서 맛도 떨어질 테니 늘 적당히, 잊지 말게. ”


“ 그렇게나 소식을 한다고?! ”


자기도 한 때 좁쌀만 한 배통의 소유자였으면서 그가 처음 듣는 냥 놀라 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었다.


집채 만한 구렁이님께서 배를 채우려면 마을 식량 창고를 통째로 삼켜도 부족할 터.


그가 밥 대신 온기를 먹고 사는 구렁이라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도원경에서 대대적인 학살이 벌어졌을 거다.


어쨌든 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S#. 채경의 집



다음 날 채경은 부자가 될 생각에 빈속에 김칫국부터 마시며 눈을 떴다.


어제 선비님께 꼭 찝어 고기를 좋아한다고 언질을 드렸으니 지금 내 마당엔 맛 좋은 가축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 놀고 있을 거다.


난 그 아이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키워 비싼 값을 주고 전부 팔아버릴 거다!


그럼 부모님께선 금의환향하고 돌아온 날 얼싸안고 반겨주실···



“ 아, 맞다! 언니도 찾아야 하는데..! ”


가축들을 빼돌리기 전에 우선 언니부터 찾아 더는 도망 못 가게 기둥에 묶어놨어야 했는데.


끼니 때마다 수련에 힘쓰는 시간을 제외하곤 틈틈이 언니를 찾아 다녀 봤지만 내 존재를 이미 눈치 채고 꽁꽁 숨어버렸는지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내 몸은 하나고 만나야 할 사람은 태산만치 쌓여 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당연했다.


허나 먹성 겨루기 대회가 시작되면 상황은 급변할 거다.


마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축제의 현장에서 난 한번에 더 많은 얼굴을 확인하고 언니를 찾아낼 거다.


이 정도면 꿩 먹고 알 먹고, 매부 좋고 누이 좋은 전략이었다.


내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기만 하는 식충이가 아니라니까!



“ 좋아. 내 계획대로 되고 있어. 이제 고기만 얻으면 완벽해! ”


그 고기를 가져다 주실 분을 대놓고 날 연모하는 잘생긴 선비님이라 참으로 다행이었다.


생존을 위해 그 분의 호의를 이용하는 게 살짝 미안했지만 그 대가가 무려 고기라면 양심 따위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먹는 것만 밝히는 식충이 하고 말지 뭐.


오랜만에 고기를 영접하기 직전, 난 들뜬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오늘이 첫날이니 그리 크게 바라진 않겠다.


간단하게 딱 닭 한 마리만!


그럼 먹성 겨루기 대회에 안 나가도 3등 상품은 확보한 셈이었다.



“ 꿰에엑!! “


내가 선비님의 성의를 너무 얕봤던 걸까. 밖에선 닭이 아닌 돼지 울음소리가 들렸다.


설마 나에게 2등 상품인 돼지를?!


이 선비님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시기에!


난 그 분의 절절한 연정에 감동하여 서둘러 마당으로 나갔다가 성난 눈동자와 눈을 마주치고 도로 방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갔다.


밖에 있는 것은 분명 돼지가 맞았다.


헌데 언제부터 분홍빛 살결을 가진 귀여운 돼지에게 가을의 우중충한 갈색 빛깔 털이 자랐을까?


죽음의 순간에도 웃는 상으로 생긴 그 순한 녀석들이 언제부터 쌈닭의 매서운 눈매를 하고 있었단 말이냐고!


아무래도 녀석은 내가 알던 보통 돼지가 아닌 거 같았다.


저것은 분명 멧돼지였다!



“ 왜 하필 멧돼지야! 왜왜왜! 차라리 그냥 닭 한 마리를 달라고!! "


답답한 마음에 난 벽에 머리를 박으며 절규했다.


분명 내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품종까지 정확히 말해주고 왔어야 했던 거다.


닭. 돼지. 소! 이걸 꼭 말로 해야 아냐고!


저 선비님을 깨우치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먹성 대회에서 2등을 하는 게 빠를 거 같았다.


얼른 감자 가져와. 메뚜기 떼처럼 전부 먹어 치워줄 테니까!



“ 꾸에에엑!! ”


문제는 감자와 내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저 멧돼지 녀석이었다.


저 녀석을 쫓아내야 감자를 찌던가 삶던가 할 텐데, 녀석이 마당을 지키고 있으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허나 이대로 방구석에 처박혀 아까운 시간을 날려 버릴 수만은 없었다.


난 황급히 눈알을 굴려 방에서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았다.


몇 개 없는 살림에 그나마 있는 거라곤 벽에 걸려 있는 소쿠리와 낫이 전부였다.



” 결국 우리 둘 중 하나는 피를 봐야 하는 건가. ”


난 소쿠리와 낫으로 단단히 무장하며 의지를 다졌다.


우리 둘 중 하나가 다쳐야 한다면 그건 내가 아닌 멧돼지가 될 거다.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 남고 말 거다.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꺼져주면 안 될까?



“ 꾸에에에에에엑!!!!! ”


역시 산짐승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 난리판이었다. 난 내게 주어진 최강의 방패 소쿠리를 앞세워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갔다.


녀석은 이 집 지박령 마냥 마당 중앙에 엎드려 날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잔뜩 화가 나 있으면서도 섣불리 공격하지 않겠다는 침착함이 엿보였다.


나보고 저걸 먹으라고 산 채로 갖다 준 선비님이 제 정신이 아닌 거다.



“ 큭큭. ”


그때 담벼락 어귀에서 누군가 설사처럼 쏟아져 나오려는 폭소를 참는 듯한 안타까운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 숨소리에서 묻어 나오는 경박함은 재수 없는 구미호 선비님이 분명했다.


남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어 죽을 둥 살 둥 버티고 있는데 웃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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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백구렁이뎐, 온기를 빼앗는 자 몰아보기] 23.10.21 4 0 5쪽
15 내 여인을 넘보냐? 22.04.07 761 1 11쪽
» 내 애정은 적당히가 안 돼 22.04.07 766 1 10쪽
13 무한 감자 무덤 22.04.07 759 1 9쪽
12 먹성 겨루기 대회 22.04.07 761 1 10쪽
11 찾지 마. 경고했다 22.04.07 762 1 11쪽
10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해 22.04.07 766 1 10쪽
9 빼앗으려는 자 VS 지키려는 자 22.04.07 761 1 12쪽
8 그대의 온기를 주오 22.04.07 763 1 12쪽
7 내가 돌봐줄게 +1 22.04.07 770 3 11쪽
6 난 살아남을 거야 22.04.07 773 3 12쪽
5 탐해서 미안 22.04.07 781 3 12쪽
4 요괴 사기단 22.04.07 780 3 12쪽
3 구미호의 시험 22.04.07 802 3 12쪽
2 나한테 시집 오라니까 +1 22.04.07 824 3 11쪽
1 백구렁이와 도원경 +2 22.04.07 896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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