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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juan0720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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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juan0720
작품등록일 :
2022.08.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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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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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자회담

DUMMY

여진우는 강은혜와의 대화를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다짐했고, 그녀와도 약속했다. 대신 유진환에게 부탁한 일에 대해서는 셋이서만 아는 것으로 하고 비밀을 유지한 채 계속 진행했다. 여진우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한시름 놓게 된듯한 기분이 들어 왠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그런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세상은 빠르게 그를 옥죄어 왔다. 강은혜와의 대화가 있고 며칠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방벽이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을 때 그는 방벽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볼 요량으로 밖으로 나섰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려고 혼자 걷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뒤를 밟는 인기척을 느꼈다.




"계속 따라 올 건가요?"




일부러 으슥한 골목길로 향한 후 걸음을 멈췄다. 그의 뒤를 따라오던 낯선 이는 여진우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여진우의 예상대로 그는 그동안 내부에서 함께 지내며 몇 번 보았던 사람이었다.




"할 말이 있으신 거죠?"




"예.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낯설면서 낯설지 않은 이는 가볍게 인사를 했다.




"별말씀을요. 그동안 들키지 않고 어떻게 정보는 계속 원하는 곳에 보내주었나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비밀입니다."




"왜 이제 와서 모습을 들어낸 거죠?"




순간 그의 얼굴에서 보이던 여유가 사라졌다.




"마지막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




여진우는 '마지막'이란 그 단어가 왠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살아 있는 단어가 자신 앞에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방벽의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나흘 뒤. '그곳'에서 우리 세명의 대표가 만나야 합니다. 혼자 오지 않아도 괜찮지만, 세명이 모이는 자리에는 혼자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날, 세명의 안전은 모두 보장합니다. 그날은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가 마지막 평화의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라며, 나흘 뒤에 뵙겠습니다.'"




여진우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전령을 들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의 말을 미루어보아 그들은 검은 후드를 입었던 사람들과는 다른 집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날 방벽에서 만난 그 사람은 지금 자신뿐 아니라 검은 후드의 집단의 리더에게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전달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좋습니다. 나흘 뒤에 뵙도록 하죠. 당신은 이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은 그분의 품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가시죠. 배신자이지만, 적의 사자를 죽여 전쟁을 앞당길 필요는 없겠죠."




그는 여진우를 향해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정확히 나흘 뒤 하늘은 다시 폭우가 드리웠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그동안 내리지 못한 비를 몽땅 지상에 쏟아부으려는 듯 엄청난 기세로 내렸다. 우비를 챙겨 입는 여진우 옆에는 선우정과 최두희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서있었다.




그날, 연구소로 돌아온 여진우는 모두를 소집하고 담담하게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오히려 전쟁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생각했던 것보다 무덤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듣던 이들도 예상하던 일이 이제야 시작되었다는 냥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 이제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준비한 샘이었다. 아직 적들의 정체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그들은 지금 하던 것 외의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잘 준비된 방어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무사히 다녀와라."




K는 떠나는 여진우에게 말했다.




"별일 없을 거예요. 적어도 오늘은."




그는 연구소 입구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을 보았다. 그 안에는 두려움도, 희망도, 절망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제 여진우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 그 눈동자 안에 희망을 담아주는 것이었다.




연구소를 나선 일행은 묵묵히 걷기만 했다. 딱히 어떤 말이 필요하지 않음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그것'을 만났던 곳 근처에 다가오자 멀리서 달에 비친 검은 두 그림자가 보였다. 비가 오고 있음에도 그들의 그림자 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요."




"괜찮겠어? 어디에 적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데."




"네. 괜찮아요. 아마 저를 죽이려고 했다면 이미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으로 긴장을 풀 수 있는 날이 될 거예요."




"알겠어. 근처에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바로 뛰어갈게."




"네."




최두희와 선우정은 각자의 성격에 맞게 적당한 곳에서 여진우를 기다렸다. 여진우는 그들을 한번 보고 난 후 두 그림자가 보이는 달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 두려움도 없었고, 공포도 없었다. 마치 오랜 시간 준비한 시험을 치르러 가는 기분이었다.




두 그림자는 여진우가 다가오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왼쪽에는 이전에 방벽에서 보았던 '그것'이 서 있었고, 오른쪽 편에는 검은 후드의 리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라고 특정 지을 수 없는 세 개의 생명체가 각 생명체를 대표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서로를 견제할 수 있도록 삼각형 모양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제야 여진우는 자신의 어깨 위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이 세삼 느껴졌다.




서로를 탐색하던 중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검은 후드의 리더였다.




"인간. 우리가 당신을 기다려 준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의 말투는 어딘가 모르게 어눌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거죠?"




여진우는 자신이 인류의 대표로서 나와 있는 것이기에 무엇하나 밀리지 않으려 했다.




"지구가 이렇게 된 것이 왜 일거라고 생각하나. 진작에 우리는 인간을 멸종시킬 수 있었다. 너희 인간들이 자연을 더럽히고 훼손시키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수천 년 동안 너희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지켜볼 수 없다. 너희 인간을 멸종시키려고 한다."




그의 말투는 확실히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강했다.




"잘 이해할 수 없네요. 그동안 인간을 지켜봐 왔다고요? 당신들의 존재는 최근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요?"




"아니. 우리는 인류보다 오랜 시간 지구에 살았다. 너희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각종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로 인류의 틈에서 살아왔다. 그동안 모든 생명체에 직접적인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생명체를 숙주 삼아 활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고, 인류는 우리의 먹이에 불과하다.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보다 우리는 더욱 진화했다."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나요?"




여진우는 인상을 쓰며 떠올려 보았지만, 그를 만난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 그때는 너도 지금과는 다른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지금이 더 많은 성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희는 너 한 사람만 성장하는 반면에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진화하고 있다."




여진우는 그가 내뱉는 진화라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그들이 언제 만났는지가 궁금했다.




"아니, 그래서 우리가 언제 만난 거죠?"




"너희가 우리를 쫓아 강으로 왔을 때. 너희는 차 뒤에 숨어서 우리를 훔쳐보았다. 내가 너희를 못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미 난 너희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강까지 쫓아올 수 있도록 흔적을 남겨두었다."




여진우는 탄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자신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도망치는데 급급 했던 그때, 아무것도 몰랐던 것은 그들뿐이었다. 검은 후드도 박민혜도 이미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그날 일부러 돌려보낸 건가요?"




"그렇다."




"왜죠?"




"바로 저 녀석 때문이다."




검은 후드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것'을 가리켰다. 그제야 '그것'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너희 두 종족 모두 다 지구상에 필요 없는 존재들이야. 환경을 파괴하고 세상을 좀먹는 존재들일뿐이지."




검은 후드는 웃기 시작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너는 무엇이지? 원래 지구에 살던 인간도 아니고, 인간에서 진화된 우리와도 다른 존재이다. 정말 네가 지구에 필요한 존재가 맞기는 한 것인가? 네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나?"




"굳이 설명하자면 신인류라고 해두지."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려 해도 너야 말로 지구에 어울리지 않는 가장 이형에 가까운 존재다. 네 녀석만 없었어도 우리는 이미 인간들을 멸종시킬 수 있었다."




이형의 존재라 부리는 '그것'은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과연 그럴까? 정말로 너희가 인간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오히려 너희가 승기를 붙잡기 위해,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진화할 때 까지 나를 핑계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 아닌가?"




여진우는 두 존재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그동안 알았어야만 했던 것들을 모두 놓쳐왔던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이형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정보였다.




"저도 당신의 존재가 궁금해요. 당신은 정확히 무엇이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거죠? 당신은 살아 있는 생명체인가요? 그리고 혼자인가요?"




"나에 대해 알고 싶나?"




"당연하죠. 당신도 우리의 적이니깐요."




"그렇지. 우리도 인간의 적이지."




이형의 존재는 여진우가 걸어왔던 곳을 주시했다.




"오늘은 함께 오지 않았군."




"누굴 말하는 거죠?"




"저번에 내가 말했던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




이형의 존재는 강은혜에 대해서 단순히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여진우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이상의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그럼. 잘 알고 있지. 그리고 네가 단독으로 우리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알기에는 이미 늦었다."




"무슨 말이죠..?"




"우리는 한 인간에 의해 인간도 괴물도 아닌 존재로 탄생했다. 덕분에 너희가 말하는 두억시니와도 교감할 수 있었고, 인간과도 교감할 수 있었지. 우리를 처음 만들어낸 존재는 세상이 멸망할 처지에 놓이자 인간이 더 오래도록 살 수 있도록 연구했다. 그 결과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적화된 환경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두억시니들에게 최적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인간의 유전자와 두억시니의 유전자, 그리고 재생세포를 배합해 우리를 만들었지.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저번에 너와 함께 왔던 여자야."




여진우는 그의 말에 당황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는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고, 그에 비해 자신은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 검은 후드의 귀매에 관해서도, 이형의 존재에 관해서도 그들은 지금껏 진짜 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이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채 전쟁이 시작되었다면 가장 먼저 지구에서 살아지는 것은 인간 쪽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을 만들어 낸 인간은 어떻게 되었죠? 인간이 당신들을 만들어 냈다면 당신들 역시 인간의 편에 서야 하는 게 아닌가요?"




"틀렸다. 우리는 인간에 의해 탄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 이상의 지구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인간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 물론 너희도 마찬가지다."




이형의 존재는 검은 후드의 귀매를 가리켰다.




"오직 우리만이 지구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존재라고 판단했지. 하지만 우리 중 딱 한 명 만이 우리의 의견을 반대했어."




"그게... 강은혜 군요?"




"그렇다. 그녀는 우리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우리는 그녀를 살려둘 수 없어서 죽이려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지. 그녀는 스스로의 몸을 잘라 분신을 만들어 내고 도망쳤다. 그리고 이제는 너희와 함께 하고 있지."




여진우는 너무 많은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덕에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었다. 어떤 이야기가 가장 먼저이고 가장 나중인지 시간의 흐름이 섞여 버렸다.




"귀매의 말처럼 우리는 수가 많지 않아. 하지만 충분히 늘릴 수 있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고 인간과 귀매를 샘플로 얻어 아버지가 했던 연구를 우리가 계속 이어간다면 충분히 우린 종족을 늘릴 수 있다."




여진우는 뒤죽박죽 된 정보들로 혼란스러웠지만, 이형의 존재의 마지막 말에 정신이 들었다.




"결국, 당신들도 지구를 위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 당신들이 살아가기 위해 전쟁을 하는 것이군요. 지구를 위한다 뭐한다 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할 뿐이에요. 자신들의 종족을 늘리기 위해서 인간과 귀매의 샘플이 필요할 뿐인 거죠."




"부정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확실히 해야 할 건, 현재 지구에 가장 어울리는 존재는 우리라는 것이다."




"그건 살아 남아 봐야 아는 것이다. 지구의 환경은 오히려 우리에게 더 잘 맞게 존재해 왔다. 인간과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 즉 반은 인간인 너희와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지."




이형의 존재와 검은 후드는 각자의 종족을 위할 뿐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 모인 누구도 지구를 위한 자는 없었다.




"둘 다 틀렸어요. 인간은 지금까지 지구의 환경과 잘 맞아온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처음 알몸으로 살던 시대에도 동물들에게 쉽게 잡아 먹히는 먹잇감에 불과했죠. 세상이 발전했을 때에는 전염병에 수많은 사망자가 나왔죠. 하지만 끊임없이 발전하며 적응해 왔어요. 여전히 지구는 인간과는 맞지 않는 환경이지만, 이번에도 인간은 지구에 적응할 거예요. 결국 살아남는 건 언제나 그랬듯이 인간이 될 거예요."




이형의 존재와 검은 후드의 귀매는 동시에 여진우를 쳐다보았다.




"재밌다. 그럼 한번 해보자. 과연 누가 끝까지 살아남는지."




귀매는 뒤집어쓰고 있던 검은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달빛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피부는 창백했고, 살결들 위로는 핏줄들이 비쳤다. 몸은 말라서 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오늘 너희 두 종족을 끝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오늘만이 날은 아니다. 다음엔 너희 목을 부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말을 마친 귀매의 등에서 날개가 튀어나온 뒤 하늘로 날아 올라 사라졌다.




"처음이자 마지막 회담이 끝났다. 인간이여. 다음번에 우리가 만나는 날이 인류가 마지막으로 하늘을 보는 날 일 것이야."




이형의 존재는 귀매가 날아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서서히 걸어가더니 일순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진우는 그들이 사라진 곳을 쳐다보고 최두희와 선우정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초조한 듯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엄습해 있었다.




"어떻게 됐어?"




최두희가 초조해하며 물었다.




"뭐, 예상한 대로예요. 곧 전쟁이 일어날 거예요."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글쎄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죠. 하지만, 우리가 지구상에서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선우정은 여진우를 보고 딱 한 마디 내뱉었다.




"고생했다."




그들은 서둘러 연구소로 복귀했다. 이동하는 동안에 그들과 했던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그는 자신이 놓친 부분은 없는지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여진우는 모든 대화를 녹음에 두었다. 다만 걸리는 것은 강은혜에 대한 이야기와 그가 따로 유진환에게 부탁했 던 일에 대한 대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 더 이상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형의 존재의 발언 덕분에 강은혜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이 더욱 확고해졌다. 강은혜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중요한 열쇠가 된 것이다.




여진우는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강은혜를 포함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준비해 두었던 녹음기를 켰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대화를 들었다. 중간 중간에 놀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누구도 녹음기가 끝날 때까지 방해하지 않았다. 여진우는 강은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사람들의 동향을 살폈다. 몇몇 사람은 강은혜를 쳐다보기도 했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만 이었다. 마지막에 녹음기의 버튼이 올라오는 '탁' 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여진우에게 쏠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리더의 말을 듣고 싶었다.




"아마 대화 내용을 듣고 놀라신 부분도 있을 것이고, 배신감을 느끼신 부분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그것에 대한 변명을 하지는 않겠어요.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 없으니깐요.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지금도 그들은 전쟁을 위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을 거예요. 우리도 앉아서 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반복적인 훈련으로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모든 인원을 전방에 배치하고 전쟁을 준비해요. 이번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그다음이 있어요."




"좋아. 강은혜에 대한 일은 살아남은 다음에 묻기로 하지. 지금은 네 말처럼 전쟁을 준비하는 게 옳은 것 같아."




선우정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는 강은혜의 일로 다른 사람들 입에서 문제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을 연 듯했다. 이어서 황백희가 말했다.




"지금부터 전시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전략 회의를 해야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가 사람들을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꽤 길고 지루한 시간이 되겠군."




김택윤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가진 능력별로 부대를 편성하고 연락 체계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상하관계를 만들었다. 유진환에게 최대한 많은 양의 무전기를 부탁했고, 그는 빠르게 움직였다. 연구 소장에게는 이형의 존재와 싸우기 위한 화학물질을 제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일은 진행되었다. 전쟁은 소리 없이 턱 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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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전쟁(2) 23.02.23 27 0 18쪽
51 전쟁(1) 23.02.19 25 0 18쪽
50 서막 23.02.16 25 0 18쪽
» 삼자회담 23.02.12 24 0 18쪽
48 결정 23.02.09 30 0 18쪽
47 모래위의 성 23.02.05 27 0 19쪽
46 인간이 아닌자. 23.02.02 32 0 19쪽
45 광기 23.01.29 35 0 19쪽
44 강은혜 (마지막) 23.01.26 38 0 18쪽
43 강은혜 (3) 23.01.22 38 0 18쪽
42 강은혜 (2) 23.01.19 37 0 19쪽
41 강은혜 (1) 23.01.15 35 0 18쪽
40 기억 23.01.12 40 0 22쪽
39 낯선 이 23.01.08 45 0 18쪽
38 준비 23.01.05 48 0 18쪽
37 원인과 결과 23.01.01 50 0 19쪽
36 자질 22.12.29 49 0 21쪽
35 의미 없는 상식 22.12.26 52 0 18쪽
34 재회 22.12.22 50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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