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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및 애니 리뷰] 암살, 탕웨이의 색계를 의식한 영화

암살이란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탕웨이 주연의 색계라는 영화를 많이 의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경이 꼭 굳이 상해라는 것도 그렇거니와,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전지현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탕웨이 주연의 색계에 맞불을 놓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런데 역시나 영화를 보니까 이건 아주 처음부터 끝까지 색계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 영화였다.(이상하게도 이런 예감은 너무도 잘 맞는다)


즉, 이 영화는 색계가 없으면 애초에 만들어질 수도 성립될 수도 없는 영화다.


물론 이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 구성이 최동훈 감독의 전작인 도둑들과 상당 부분 겹치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테면 임무 설정, 임무 실패, 체포, 탈출, 임무 재도전, 임무 완료, 배신자 처단, 이렇게 진행되는 것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 및 캐릭터가 말하려고 하는 그것은 철저히 색계의 그것에서 가져온 것이다. 물론 색계의 그것을 180도 뒤틀어서 말이다.


우선 영화 색계와 암살의 캐릭터를 비교해보면 거의 1대 1로 매치가 된다.


탕웨이-전지현(안옥윤+미츠코)

광위민-하정우

라이수진-김해숙

양조위-이정재

탕웨이 연극 동료들-속사포(조진웅), 황덕삼(최덕문), 오달수

왕치아즈(탕웨이) 아버지-이경영

암살조직 지도자 우영감-상해임시정부 김구 및 김원봉


주요 인물 구성이 거의 완벽하게 색계에서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색계와는 다르게 이들의 캐릭터를 180도 바꾸거나 살짝 변형을 가했다는 것만 다르다.


열혈 애국심만 있을 뿐 실제로는 사랑에 주저했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지도 못했던 발기불능의 무능력한 중국을 상징하는 광위민은 하정우로 바뀌면서 결국 암살 임무를 성공시키고 나는 무능력하지 않다고 포효한다.


왕치아즈의 절친이자 살며시 질투심을 내보였던 라이수진. 그녀는 일본군에 의해 총살장으로 끌려가는 순간 죽음의 공포에 다리가 풀려 제대로 걷지도 못해 질질 끌려가면서 추한 죽음을 맞이하였으나 이 캐릭터가 김해숙으로 바뀌면서 마지막 순간 자결로서 자신의 신념을 증명한다.


라이수진과 마찬가지로 총살장에 끌려가서 온갖 추한 모습을 보여주던 연극 동료들 역시 속사포, 황덕삼, 오달수 등의 캐릭터로 변용이 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친일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며 자신의 운명의 끝을 예감하며 고뇌에 빠져있던 양조위는 이정재로 바뀌면서 독립될 줄 몰랐으니 친일을 했다는, 원래 나쁜 놈이라서 나쁜 놈이었을 뿐이라는 극히 평면적인 악당으로 바뀌고 말았다.


왕치아즈를 끊임없이 밀어내어 결국 색의 세계로 내몰던 아버지는 이경영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색의 세계에 속해있던 전지현 쌍둥이 형제를 죽이고, 이를 통해 극중 안옥윤을 오히려 계의 세계로 밀어내버리고 만다.


왕치아즈를 비정하게 이용하기만하고 목적이 달성되면 가차없이 버리려던 암살 조직의 지도자 우영감은 김구와 김원봉으로 바뀌면서 희생된 독립운동가들을 끝까지 기억하는 따뜻한 지도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지현이 맡은 안옥윤...


이 캐릭터 역시 탕웨이가 맡은 왕치아즈가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캐릭터다.


계의 세계에 진입하고 싶었으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색의 세계를 선택했어야만 했던 왕치아즈와 마찬가지로 안옥윤 역시 절반쯤은 색의 세계에 속한 인물이다.


따라서 언제든 그녀 역시 색의 세계로 날아가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처음 등장에서 그녀가 상관을 쏘아 죽였다는 것에서부터 그녀가 계의 세계와 모종의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모든 주변 인물들, 심지어 민중들까지도 왕치아즈를 배타하려던 그것과 달리 암살에서는 안옥윤을 감싸안으려는 장면이 계속적으로 등장한다. 암살 임무를 위해 떠나던 그녀를 지지하던 젊은 병사들에서 이것을 확실하게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색의 세계를 동경하는 한 여인이기도 하다.


커피라는 것을 마시고 싶어 상해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카페에 찾아가 커피를 마시던 모습, 댄스홀에서 춤을 추는 장면, 안경을 맞추는 곳에서 암살하러 온 사람이 점원에게 자신의 주소를 적어주는 장면(이 주소 적어주는 장면이 개연성 측면에서 말이 안된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캐릭터적 특성을 고려해보면 딱히 틀렸다고는 볼 수 없다).


그녀의 내면에 색의 속성이 있으며 그녀 스스로도 그곳을 동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련의 장치들이다.


사실 안옥윤은 영화 내내 색과 계의 세계에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색의 세계를 택할 것인가 계의 세계를 택할 것인가...


하지만 안옥윤은 왕치아즈가 계의 세계로부터 배타당하던 것과 달리 계의 세계로부터 받아들여지게 된다.


오히려 색의 세계로부터 배타를 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폭발적으로 표출되는 부분이 바로 이경영에 의해 안옥윤의 쌍둥이 자매가 죽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안옥윤과 미츠코는 각각 계의 세계와 색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안옥윤이라는 인물의 내면적 갈등을 암시해준다. 즉, 색의 세계를 택할 것인가 계의 세계를 택할 것인가를 갈등하는 그녀의 내면 세계를 쌍둥이로서 표현해준다.


그러던 것이 결국 이경영이라는 극중 두 쌍둥이의 아버지에 의해 색의 세계에 속해 있는 미츠코가 죽음으로써 안옥윤은 확실하게 색의 세계에서 추방되고 계의 세계로 편입되게 된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색을 선택할 것인지 계를 선택할 것인지 갈등할 여지가 없이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계의 세계로 내몰리게 되고 드디어 최후의 암살 작전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하지만 이경영을 죽여야 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아버지를 죽이지 못하는데 이는 역시 그녀가 아직 색과 계라는 내면적 갈등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며, 결국 하정우가 대신 마무리를 함으로써 그녀의 갈등을 잠시 유보시키게 된다.


그리고 속사포는 죽기 전 그녀의 드레스 입은 모습이 예쁘다고 하고 죽음으로써 색에 속한 그녀를 계로 끊임없이 회유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자신을 희생시켜 전지현과 하정우를 탈출시킴으로써 그녀를 포용하려 하고 있다.


이 장면 역시 마지막 순간에 추한 모습으로 총살당하던 왕치아즈의 동료들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또 하나 색계와 대비되는 장면은 하정우와의 키스씬.


색계에서 광위민과 왕치아즈의 키스씬은 발기불능의 임포텐츠에 빠진 무능력한 남성의 헛된 몸부림이다. 애초에 일을 저지르지도 못할 주제에 질러보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남성의 초라한 욕망 표출일 뿐이다.


하지만 하정우는 그 키스를 마치고 끝까지 적과 싸우다 장렬히 산화함으로써 임포텐츠가 아닌 힘찬 희망과 장래를 가진 남성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정재의 처단.


양조위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다 결국 그를 살려준 왕치아즈와 달리 안옥윤은 이정재를 철저히 응징한다.


양조위와 달리 고뇌도 없고 사랑도 없던 이정재는 원래부터 그냥 나쁜놈이고, 그저 기회주의자 특유의 교활함으로 승승장구하는 매국노일 뿐이며, 따라서 안옥윤 역시 그를 아무런 고민 없이 처단한다.


다만 이 지점에서 영화 내내 색과 계의 세계에서 내면적 갈등을 겪던 그녀는 이정재를 처단함으로써 완벽하게 계의 세계로 편입하게 된다.


즉, 영화가 거의 끝나는 시점까지도 사실상 여전히 타의에 의해 계의 세계에 속해 있을 뿐 아직 자의로 계의 세계를 선택하지는 못하던 그녀가 스스로의 의사로 완전히 계의 세계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이 바로 이정재 처단 장면이다.


그리고 그녀가 계의 세계로 완벽하게 편입된 순간 계는 색의 세계를 누르고 그 승리를 만끽한다.


따라서 이 영화를 총평 하라고 하면 이렇게 하고 싶다.


탕웨이의 색계를 보고 너무 열불난 한국인들이 색이 틀리고 계가 옳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


이렇게 이 영화를 정리하면 될 것 같다.



덧1: 어쨌든 이 영화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지현이 이제 배우로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는 거.


무협소설로 치면 벽을 넘어서 절대의 경지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영화만 놓고 보자면 색계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여배우의 매력으로 놓고 보자면 탕웨이에 딱히 밀릴 게 없었다.


앞으로도 한국영화계에 좋은 시나리오가 많아져서 그녀의 배우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줬으면 한다.



덧2: 하정우는 여전히 벽을 못 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의 78년생 남성의 평균적인 인문학적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이 현재 그의 가장 큰 문제다.


우선 그는 이것을 깨야 한다. 그래야 배우로서나 감독으로서 한 걸음 도약할 테니까.


어쨌든 전반적으로 하정우는 조금 아쉬웠다. 본인도 지금 한계를 느끼고 열심히 벽을 깨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경지에 도달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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