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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세미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 조폭의 제주도 푸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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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세미
작품등록일 :
2024.03.06 00:20
최근연재일 :
2024.04.23 11:18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4,325
추천수 :
46
글자수 :
177,433

작성
24.03.06 21:45
조회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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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3쪽

연화리장 차대풍

DUMMY

“아, 아빠 제발 눈 좀 떠봐, 제발 좀!”


누군가의 애타는 목소리. 여자아이였다. 소리에 울음이 잔뜩 섞여 있었다.


“혀, 형님 제발 눈 좀 떠봅써. 돌멩이도 거뜬히 씹어먹을 사람이 무사 영 정신을 못 차렵쑤광?”


이어지는 애타는 사내의 하이톤! 그런데 말투가 이상하다. 분명히 우리말이었다. 그런데 봅써? 쑤광? 사투리다. 어디서 들어봤을까.


“아빠 제발 좀 눈 좀 떠봐, 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여자아이가 나의 소매를 잡고 흔든다. 눈을 뜨려 했다. 하지만 마음뿐 머리가 핑 돌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기억! 오강필의 무지막지한 칼침! 가슴과 배가 욱신거렸다. 가장 통증이 심한 곳은 머리! 뭔가에 부딪힌 듯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여, 여기가 도대체?”


가까스로 눈을 떠 앞을 봤다. 확 눈이 부셨다. 온통 시야에는 빛! 분명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지옥이었다. 그런데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대신 이렇게 밝은 햇살이라니.


“아, 아빠 정신이 들어?”


여자애가 내 손을 꾹 움켜쥐며 소리를 높였다.


“혀, 형님 내가 누군지 알아지쿠가?”


이어지는 사내의 목소리.


겨우 눈을 떠 앞을 봤다. 밝은 빛 속에 드러나는 두 사람의 형체! 단발머리 여자애와 곰 같은 덩치의 사내, 여자애는 많아 봐야 10대 초반, 사내는 내 또래였다. 범죄도시의 마동석 판박이였다. 우락부락한 덩치에 짧은 머리, 목티를 껴입었지만 감출 수 없는 터질듯한 근육.


“아빠, 나야 솔비! 아빠 딸, 차솔비라고!”


머리가 지끈했다. 아빠? 나의 딸?


“형님, 난 동철이우다. 서동철! 나 누군지 알아보쿠가?”


마치 최고로 볼륨을 올려놓은 듯한 쨍쨍거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 맨정신이었다면 주먹이 먼저 나갔을 것이다. 고막이 다 터질 것 같았다.


“차.....솔비? 서.....동철?”


잠시 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입 한 번 열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응, 맞아, 나 차솔비! 아빠 딸 솔비라구! 나 알아보겠어?”


“맞쑤다게. 나 동철이우다, 서동철! 형님의 하나뿐인 아시(아우)!”다시 고막을 찌르는 두 사람의 오케스트라!


가만히 두 사람을 봤다. 눈가가 이내 붉어지고 있었다. 특히 차솔비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애! 닭똥 같은 눈물이 이내 볼을 타고 흘렀다.


“여, 여기가 도대체?”


겨우 다시 말을 이었다. 쿡쿡, 바늘이 온몸을 찌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차솔비? 서동철?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기억에도 없었고. 그런데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저 표정들이라니!


“병원이우다. 사흘 만에 겨우 이렇게 눈을 떴고.”


큼-헛기침을 하며 서동철이 말끝을 흐렸다.


“병원?”


“맞아, 병원! 아빠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


재빨리 눈물을 닦아내며 여자애, 아니 솔비가 내 앞으로 얼굴을 갖다 댔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봤다. 지옥은 분명히 아니었다. 병원의 4인 병상! 창가로 시원스레 산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선반 위에 놓인 작은 손거울!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생전 처음 보는 사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사각 턱에 앙다문 입술, 시커먼 구레나룻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다. 거울 속의 사내가 따라서 이내 눈을 번쩍 떴다. 이번에는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 사내 역시 왼쪽으로 갸웃!


서, 설마!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갸웃! 사내 역시 오른쪽으로 갸웃했다.


“아, 아빠 괜찮아?”


솔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봤다.


“혀, 형님 정말 나 누군지 알아보쿠가(알아보겠습니까)?”


서동철이 따라서 이내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알 턱이 없었다, 이 둘을! 나로서는 정말 처음 접하는 얼굴!


다시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사내가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


분명 나였다. 그런데 내가 아니었다. 도대체 누구냐, 넌!


* * *


“환자분, 제가 몇 가지 여쭤볼게요. 기억나는 대로 대답해보세요.”


내가 의식을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재빨리 담당의가 병실을 찾았다. 반곱슬머리에 금테안경의 전형적인 엘리트 분위기.


“먼저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이름이요?”


호구 조사의 시작! 담당의가 먼저 내 이름을 물었다.


“대한입니다, 강대한.”


“가, 강대한이요?”


담당의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솔비와 서동철을 봤다.


“아, 아빠.....”


“혀, 형님!”


“아, 보호자들은 잠시 뒤로요. 중요한 순간이라서요.”


담당의가 뒤에 서 있던 간호사에게 눈짓하자 간호사가 솔비와 서동철을 뒤로 밀어냈다.


“큼, 자 환자분, 다시 여쭈겠습니다. 이름이 뭐라구요?”


“말했을 텐데요, 강대한이라구요.”


“그러니까 성함이 강대한이란 말씀이시죠? 차태풍이 아니구요?”


끄덕!


“좋습니다. 그럼 사시는 곳은요?”


“.......지금 뭐 하시는 거죠?”


가만히 담당의를 노려봤다. 담당의가 흠칫하며 나를 봤다. 정색한 나의 눈빛은 웬만한 사내쯤은 오줌을 지리게 한다. 물론 지금 내 눈빛이 통할지 모르겠지만.


“오해는 마시구요, 제 질문에 정확히 대답해주셔야 댁으로 빨리 가실 수 있어서요.”


담당의가 슬쩍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1329-1 승천 오피스텔 A동 1004호! 됐나요?”


“서, 서울이요?”


담당의가 다시 토를 달았다.


다시 고개를 끄덕! 솔비와 서동철을 쳐다봤다. 뜨악한 둘의 표정이고.


“좋습니다, 그럼 나이는요?”


“서른일곱입니다.”


“따님 이름은요?”


따님? 그러니까 딸이란 얘긴데. 설마? 솔비를 쳐다봤다.


솔비가 꿀꺽 침을 삼키며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봤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전 아직 미혼입니다. 당연히 딸이란 게 있을 턱이 없고요.”


“아, 아빠!”


“형님!”


솔비와 서동철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를 높였다.


“분명 말씀드렸죠, 중요한 순간이라고?”


담당의가 둘을 노려봤다. 간호사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재차 경고했다.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잠깐 주위를 둘러보다가 툭 내뱉듯이 말을 던졌다.


“병원 아닙니까?”


“병원이 아니라 환자분이 사셨던 곳이요. 혹시 기억하시겠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서울.......”


하다가 흠칫 창밖을 봤다. 당연히 눈앞에 보여야 할 빌딩 숲이 없었다. 매캐한 하늘대신 쪽빛 파란 하늘, 그리고 눈앞으로 보이는 반쯤 하늘을 가리며 우뚝 솟아있는 회색빛 산봉우리!


그런데 무척이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디서,


어디서 봤을까, 저 모습을!


“서, 설마!”


이번에는 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담당의를 쳐다봤다.


“맞습니다, 한라산! 환자분께서는 평생 제주에서 사셨고요. 서울이 아니라.”


담당의가 툭툭 손가락을 침대 머리를 치며 말을 이었다.


한라산?


제주도?


휙 고개를 돌려 창가를 봤다. 어쩐지 익숙한 모습이다 했다. 거인이 머리를 땅에 박은 채 웅크려있는 모습! 구름이 좌우로 길게 걸쳐져 있어 더욱 장관이었다. 한 번을 봐도, 아니 열 번 백번을 쳐다봐도 틀림없는 한라산!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말이 안 됐다. 당연히 지옥에 있어야 할 내가 이렇게 제주도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 * *


“자 형님, 이거 형님 좋아하는 잔칫집 커피우다. 뜨거울 때 드십서.”


병원 옥상 환자 휴게실! 서동철이 다가와 커피잔을 내게 건넸다.


“자, 솔비 너는 바나나 우유!”


이번에는 주머니에서 바나나 우유를 꺼내 솔비에게 건넸고.


하지만 꾹 입술을 깨문 채 솔비가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솔비야 삼촌 팔 부러지겠다. 어서 받으라.”


가만히 보다가 대신 손을 내밀어 내가 받았다. 솔비가 흠칫 나를 봤다.


“받아, 어른이 주는 거잖아.”


솔비가 이내 그렁해진 눈으로 나를 봤다.


“눈물 닦고. 앞뒤 사정은 천천히 따져보면 될 테고.”


아차 싶었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애였다. 그런데 아우들한테 툭하면 내뱉던 까칠한 말투라니.


“아이구 진짜 내가 아는 우리 형님 맞아? 솔비라면 끔벅 죽던 양반이 툭툭 애 마음 아프게 막말도 던질 줄 알고.”


무슨 말인가 싶어 서동철을 봤다.


“어서 커피나 받읍써. 팔 부러지고 다 정말. 솔비 너도 어서 우유 받고. 아빠가 주는 거잖아.”


솔비가 못 이기는 척 바나나 우유를 받아 들었다. 살짝 애의 손가락이 손등을 스쳤다. 화끈 타오르는 통증! 몸 전체가 활활 불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뭐지, 이 느낌은.


일단 커피를 받아 입에 갖다 댔다. 잔칫집 커피라서 무슨 말인가 했다. 일회용 커피 믹스! 평소의 나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건달 시절, 내 유일한 호사! 질 좋은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특히 술로 떡이 됐다가 겨우 눈뜨며 일어난 아침 날! 에스프레소 한 잔만큼 속을 풀어주는 것도 없었다. 특히 나폴리식 에스프레소! 후끈한 정도의 진한 쓴맛과 묵직한 단맛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형님 너무 걱정맙써. 충격으로 잠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뿐이지 몸에는 아무 이상업뗀 마씸. 오락가락하는 것도 시간이 가면 많이 좋아질 거라고 하고.”


담당의 왈, 대뇌가 손상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래서 헛소리 아닌 헛소리가 나오는 것이라 했고. 어이가 없었다. 완전히 사람을 병신 취급했다. 성질 같아서는 멱살 잡고 올려 차기를 날리고 싶었지만 애가 있었다. 자칭, 나의 딸이라고 우기는 이름하여 차/솔/비!


“동철이라고 했지?”


“네 서철이가 아니고 동철이 마씸.”


동철이가 씨익 웃으며 비비 말을 꼬았다.


“같은 동네에서 자란 형 아우 사이고?”


“거기다 플러스! 형님은 연화리 이장, 난 연화리 청년회장! 형님은 넘버 원, 나는 넘버 투!”


슬쩍 녀석을 노려보듯 봤다.


“그러니까 동네 이상이 무슨 벼슬이라고 마을 포제 준비를 형님 혼자 다 허젠 했쑤강? 세상에, 아무리 힘이 장사라지만 80kg이 넘는 도세기 (돼지)를 어떵 옮기젠 형님 혼자 그 독박을 다 씁디가? 그것도 눈이 무릎까지 펑펑 쌓이는 날에.”


스무 고개 같은 말들이 녀석에 입에서 다다다 튀어나왔다.


연화리 마을 이장? 마을 포제? 도세기? 분명 우리 말이면서 마치 영어와 불어를 섞어 놓는 듯한 느낌.


“그러니까 삼촌네가 도와줬어야지. 왜 맨날 우리 아빠만 부려먹냐구, 왜 우리 아빠만!”


갑자기 솔비가 버럭 소리를 높였다. 눈물이 그렁해진 상태.


“소, 솔비야......”


동철이가 안절부절 솔비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아빠도 미워. 맨날 맨날 할머니와 솔비는 눈곱만큼도 생각 안 하고 매일 밖으로만! 죽든지 살든지 아빠 맘대로 해. 이제부터 나도 할머니랑 단둘이서만 살 테니까.”


솔비가 쾅- 손에 쥐고 있던 바나나 우유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고 후다닥 뛰어나갔다.


“소, 솔비야!”


“싫어, 싫다구 모두!”


눈을 가린 채 솔비가 쾅- 문을 열고 안으로 사라졌다.


“아이구 정말 우리 형님 딸 맞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저렇게 바락바락 성깔 있는 걸 부리는 걸 보면”


동철이가 허-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어이없는 것은 바로 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가 있어야 했다.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내 딸이 맞다니? 분명히 말했다. 아직 미혼에 딸 같은 것은 키워본 적이 없다고.


그런데 뜬금없이 내 딸이라고!


“형님이 이해해붑써. 솔비, 재 지금 속이 속이 아닐꺼우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형수가 그렇게 가신디 형님마저 이렇게 지옥 문턱까지 갔다 와 신디.”


동철이 큼- 헛기침을 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번에는 나의 허- 하는 헛웃음.


하, 미치겠다. 산 넘어 산이었다. 뜬금없는 딸에 이어 형수까지라! 그러니까 내가 아내까지 있었다는 얘기.


“이름이 서동철이라고 했지?”


“네 형님.”


훌쩍 커피를 마시며 입을 열었다. 역시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저 달기만 하고 입맛만 버리는 싸구려. 하지만 지금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다시 훌쩍-!


“부탁 하나 하지. 말해주면 좋겠어, 토씨 하나 빠트리지 말고 하나에서 열까지! 도대체 내가 누군지.”


정말 미치도록 궁금했다.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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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1 24.03.06 350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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