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발할라의 탑(2)
003
“으으으!”
김도원은 머리를 움켜쥐며 깨어났다.
어찌 된 것이 하루 종일 술을 마신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군다나 시트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김도원은 마지막 기억을 되짚어본다.
‘발할라의 탑이니 뭐니. 괴상한 문자들이 나타났어. 개꿈을 꿨구만. ···지금 이 두통도 그렇고 병원이라도 가야할까.’
수분을 보충할 겸 냉장고를 연다.
생수를 페트병채로 마시고서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휴대폰의 액정에는 괴상한 글자들이 적혀있었다.
[ 현재 층수 : 1층 ]
[ 제한시간 29일 23시간 52분 ]
[ - 입장 - ]
[ - 챔피언 소환 - ]
[ - 상점 - ]
[ - 멘토 연결 - ]
배경화면이 켜지지는 않고 이상한 문구들만 떴다.
눈을 비비고서 다시 보았지만 그 문구들은 변함이 없었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다.
여태 자신의 방이라 생각했던 곳이 이제는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김도원은 이 불길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문 쪽으로 향하였다.
‘바, 바깥에 나가보자.’
김도원은 사람이 보고 싶었다.
지금 이 상황을 누군가와 공유해서 공포를 떨쳐내고 싶었다.
그러나 문을 열고서 그는 경악성을 내질렀다.
“뭐냐고!”
원래 있어야 할 현관은 사라지고,
웬 보라색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짚히는 것이 있긴 하다.
어제 있었던 괴상한 문자들.
그것들이 모두 진짜였다는 말이다.
* * *
[ 김도원 (1층) : 챔피언을 소환하고 그 챔피언과 탑을 올라야 한다는 말이지요? ]
[ 박준 (13층) : 어. 휴대폰에 제한시간 보이지? 그거 넘기면 죽는 거야. 게임오버 뜨는 게 아니라. 진짜로 네 목숨이 사라져. 궁금하면 넘겨보던가. ]
김도원은 멘토연결이란 것을 실행했다.
놀랍게도 그만 이런 현상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1,000명가량이 동시다발적으로 겪고 있다고 한다.
멘토연결은 그중에 무작위로 한 명을 김도원과 이어주었다.
그 무작위 한 명이 박준이었다.
박준은 30대 중반에 곱창집 사장님이었다고 한다.
[ 김도원(1층) : 챔피언이란 동료를 소환하고 그들하고 같이 던전을 돌파 한다. 이거 모바일 게임하고 비슷한데요? ]
[ 박준(13층) : 나도 처음에 그 생각했지. 챔피언을 소환해보면 깜짝 놀랄 거다. 등급 개념까지 있는 것이 완전히 똑같아. 게다가 여기도 완전히 운빨이지. ]
[ 김도원(1층) : 운빨이요? ]
[ 박준(13층) : 그래. 높은 등급의 챔피언이 나오면 하이패스야. 반대로 낮은 등급의 챔피언이 나오면 초반에 고생 좀 하겠지. ]
[ 김도원(1층) : 아···. ]
[ 박준(13층) : 야야. 겁먹지는 말고. 어차피 1층은 교관이 보호해주니 쉬워. 대충 쉬엄쉬엄하고 위로 올라가. 빠르게 깨면 추가 보상도 주니 노려보던가. ]
김도원은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겉으로 보기에 이곳은 자신의 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곳이다.
마치 모바일 게임처럼 던전을 돌아야 한다.
이 해괴한 상황이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되었다.
평소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컸으니까.
[ 김도원(1층):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네요. 전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잖아요. 그런데 높은 층에 있는 사람들은 뭡니까? ···1년 이상은 이곳에서 있었던 것 같은데. ]
[ 박준(13층): 소환된 시점은 똑같지만 깨어난 시간은 달라. 지금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사람은 30층도 넘었어. ]
[ 김도원(1층): 층수를 계속 올라가면 무엇이 있는 거죠? ]
[ 박준(13층): 더 강한 적이 있겠지 ]
[ 김도원(1층): 제 말은 마지막 층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 너머 말입니다. ]
[ 박준(13층): 나도 몰라. 그런데 네 질문 우스구만. 이제 1층인 놈이 마지막 층을 논해? 당장 살아남는 걸 걱정해야지. ]
박준은 이 세계의 룰은 일부 알고 있었지만,
‘이곳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 박준(13층): 야! 그만 좀 물어봐. 어차피 저절로 알게 된다고! ]
[ 김도원(1층): 아, 알겠습니다. ]
[ 박준(13층): 내 때는 임마! 혼자서 다 했어. ]
박준이란 남자의 언행을 봐서는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김도원이 질문을 계속하자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멘토란 것은 강제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선의에 기대야할 뿐이다.
* * *
김도원은 챔피언을 소환해보기로 한다.
휴대폰의 액정에 버튼을 터치하자···.
[ 챔피언 소환(일반) ]
[ 1회 한정으로 비용 없이 소환할 수 있습니다. ]
[ 재물을 바친다면 높은 등급의 챔피언이 소환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 ★: 95% / ★★: 4.9% / ★★★: 0.1% ]
신음성이 내뱉어진다.
휴대폰 게임과 완전히 똑같았다.
나은 점이 있다면 확률들을 공표했다는 것.
‘박준은 높은 등급의 챔피언이 소환되면 낮은 층을 프리패스로 깰 수 있다고 했다.’
2성 이상이 뜰 확률은 5%에 지나지 않는다.
우습게도 김도원은 그 5%의 확률이 자신에게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흔히 도박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였다.
자신은 남들과 다를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툭
김도원은 큰 기대를 품고서 챔피언 소환을 눌렀다.
챔피언은 빛 무리가 펼쳐지면서 소환될까.
아니면 어둠속에서 실루엣을 드러내는 식일까.
[ 챔피언을 소환합니다. ]
[ 재물을 바치지 않기에 확률 보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
[ 당신을 향한 운명들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
[ 운명의 화살이 한 지점에 적중합니다. ]
[ 『겁쟁이 사냥꾼 미르반 (Lv.7 ★)』 소환되었습니다. ]
“···.”
소환이 된 것은 맞다.
그런데 왜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지?
무언가 추가적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건가.
박준에게 물어보려는 그때였다.
-똑똑!
노크소리.
김도원은 문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저 문 바깥에는 보라색 세계가 있을 텐데?
설마 저 문을 통해서 소환되는 것인가?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았다.
놀랍게도 한 명의 남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몰봄 숲의 사냥꾼. 미르반이라고 하네. ···자네가 나의 군주인가보군.”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중년인은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었다.
가죽으로 된 방어구에 등 뒤로는 활과 화살 통을 매고 있었다.
어엿한 사냥꾼의 모습이지만,
자신감이 없는지 등이 축 늘어져 있었다.
겁쟁이 사냥꾼이란 말 그대로였다.
* 겁쟁이 사냥꾼 ‘미르반’ (★ Lv.7 )
* 능력치: 근력(Lv.2), 민첩(Lv.3), 감각(Lv.2)
* 보유스킬:
① 불안정한 백발백중(C-):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는 매우 높은 명중 보정을 획득한다.
② 겁쟁이(E): 위험한 상황을 감지해낸다. 감지 후에 모든 능력치가 큰 폭으로 감소한고 공황장애가 이뤄진다.
③ 사냥꾼의 지식(D-): 짐승의 무두질, 조리법, 추격 따위의 기초적인 지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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