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 주인공은 무료로 해줍니다!
이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현대판타지의,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의,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있는 그대로 엮은 가슴 따뜻한 휴먼 스토리다.
진짜다. 믿어라. 나 궁서체다.
- 캬아아아아아!
“허.......”
어느 건물의 옥상 3층. 남자는 허탈한 얼굴로 눈앞에 띄워진 시스템창을 보았다.
<튜토리얼 퀘스트 - 영혼을 건 막타!>
[ 인생이 쉬우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건 니가 주인공이라도 마찬가지죠.
힘을 원하나? 주인공 강화를 위한 게임 시스템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최종보스 뚝배기도 깨부수고 다닐 수 있는 강력한 먼치킨이 되길 원한다면 당장 도전! 롸잇나우!
- 목표: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레이드급 몬스터, 검은 이무기의 막타를 쳐라. 무슨 짓을 하든 막타만 먹으면 된다.
- 보상: 게임 시스템]
남자의 시선이 건물 아래로 향했다.
- 캬아아아아아아!
거의 KTX 크기만 한 거대한 뱀이 도심 한가운데서 날뛰는 모습이 보였다.
“당장 막아! 저지선까지 오게 두면 안돼!”
“시민들 대피가 아직 덜 됐대! 무슨 수를 써서든 여기서 막아야 돼!”
“저딴 걸 어떻게 막아! 알파팀 지원은 아직이야?!”
그리고 그 거대 뱀 주위에서 열심히 칼질하는 헌터들의 모습도.
그러니까, 특수능력인지 뭔지는 쥐뿔도 없는 쌩 일반인의 육체로 저 아나콘다가 지렁이로 보일 만큼 커다란 뱀새끼를 잡으라는 소리였다.
그것도 막타 스틸을 하란다.
“야이 시팔 장난하냐?!”
욕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날아오는 돌 부스러기 하나만 맞아도 시퍼렇게 멍이 들 연약한 일반인의 몸으로 레이드는 무슨 얼어 죽을 레이드란 말인가!
안 해. 못 해.
이딴 거지같은 대우 받고 헌터 하라면 때려죽여도 못한다. 남자는 굳게 마음먹었다. 그냥 까짓 거 주인공 때려 치고 소시민으로 살면 되지.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 퀘스트 거부나 실패시 사망합니다.]
“아니 뭐 이딴 개떡같은 퀘스트가 다 있어?! 튜토리얼이라며 이 새끼야!”
자율성따윈 엿이나 먹으라는 듯한 추가 메시지를 본 남자가 다리 난간을 쾅쾅 걷어찼다.
물론 시스템창은 티끌만치도 반응이 없었다. 남자의 부아가 치밀었다.
“이대로 죽으나 저 밑에서 뱀 새끼한테 깔려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잖아! 다 때려 쳐! 이 엿 같은 시스템에 반항이라도 하고 죽으련다! 난 니 체제의 일부가 아냐!”
[물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맨몸으로 가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흙수저 주인공인 너를 위한 친절한 초보자 특전!]
“......그래!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초보자 특전이란 말을 들은 남자는 태세를 전환했다. 그런 게 있으면 해볼 만하지. 역시, 주인공인 자신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뭘 줄까? 쪼렙부터 만렙까지 우려먹을 수 있는 성장형 아이템? 세상에 하나뿐인 초특급 능력? 아니면 S급 헌터로의 각성?
[초보 주인공을 위한 특전! 강!력!한! 무기를 얻을 수 있는 무기 룰렛 1회 무료 이용권!]
“야 이 거지같은......!”
남자가 다시 역정을 냈다. 아니 특전을 주려면 줄 것이지 염병할 놈의 룰렛은 또 뭐란 말인가.
하지만 남자가 아무리 지랄발광을 해도 시스템 창은 묵묵부답이었다. 선택권 따위 없이 뽑기를 강요당하는 억울한 상황.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무료뽑기X1이라고 적혀있는 시스템창을 눌렀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삐삐루삐루삐루삐삐루삐-!]
그래, 꼭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지. 그는 생각했다. 흔히 소설을 보면 나오지 않는가. 이런 랜덤룰렛식의 전개에선 꼭 최상급의 아이템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빠라바빰빠밤~!]
“오......오옷......!”
두근두근. 다시금 뭔가 스페셜하고 화려한 이펙트가 나오자 남자의 기대감도 한껏 올라갔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나타난 그것은......!
[짜잔~! F등급 무기를 뽑았습니다!]
“......응?”
[너도 한방 나도 한방, 죽~창~!]
그것은.
죽창이었다.
대나무로 만든.
말 그대로의 죽창.
“.......”
남자는 손에 들린 죽창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설명: 단단한 대나무를 잘라 만든 죽창.
- 특수능력: 찔리면 아프다.]
“개.”
남자의 입이 열렸다.
“개소리 집어쳐-!!!”
그는 손에 들린 죽창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죽창은 텅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죽창?! 주욱창?! 니미 시팔 장난하냐?! 이딴 걸로 저런 몬스터를 어떻게 잡아! 너 이 시스템 만든 새끼 나와! 어!? 내가 이거 줄 테니까 한번 저 뱀새끼 아구창으로 용감하게 돌진해 보라고!”
바락바락 소리치는 남자였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쿨하게 무반응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정말이지 더럽게 일방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때, 별안간 아래에서 거대뱀 몬스터의 괴성이 들렸다.
- 캬아아아악!
“거의 다 잡아간다! 거기 마무리 지어요!”
남자가 시스템창과 격한 갈등을 빚는 동안, 헌터들의 거대 뱀 사냥은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죽는 소릴 해도 나름 헌터는 헌터인 모양이었다.
이제 다른 길은 없었다. 저 시스템창에 의하면, 지금 이 죽창을 들고 거대 뱀의 막타를 먹지 못하면 그는 죽는 것이다.
뚝. 극한의 상황에서 처절한 현실을 깨달은 순간, 그의 머리에서 결정적인 무언가가 끊어졌다.
남자는 깨달았다.
그래, 이 세상은 존나 미친 게 분명해.
그러니까 나도 정신줄을 놓자.
“푸히히.”
남자가 실실 웃었다. 그는 좀비마냥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죽창을 집어들었다. 대나무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츄르릎.”
남자는 핥짝-. 하고 죽창 끝을 핥았다. 청량한 대나무의 풍미가 그의 미각을 자극했다. 이 서민의 기상이 가득한 죽창이면 저깟 뱀대가리 정도는 한방에 삼천포 저 너머로 날려버릴 수 있으리라.
남자는 양손에 죽창을 꼬나쥐고 3층 옥상 끄트머리에 섰다. 그의 발아래 다 죽어가는 거대뱀과 그 거대뱀의 아구창에 마무리의 일격을 날리려는 헌터들이 보였다.
남자는 실실 웃으며 하늘을 향해 잘 빠진 중지손가락을 곧추세웠다.
“그래, 니들 소원대로 해주마. 히히히힛.”
하나. 둘. 셋. 그는 놈의 머리에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Witness me-!
“기억해줘-!”
- 작가의말
독자님들이 어떤 제목을 좋아할 지 몰라서 다 준비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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