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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루프 오브 더 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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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3
최근연재일 :
2022.06.13 14:00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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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
추천수 :
283
글자수 :
10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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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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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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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

날이 밝았다.

좀비 사태가 일어나고 처음 맞이한 아침이었다.

시간은 오전 7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맑고 푸르른 하늘.

전날의 소동이 거짓말 같다.

그 정도로 구름 한 점 없는 청아한 날씨였다.


그러나 세계가 일그러졌다는 걸 잊지 말라는 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공에 이질적인 색채가 번졌다.


검붉은 선혈.

녹림을 더럽히는 피의 분수가 뿜어져 나온다.


첨벙!

이어서 물보라가 튄다.

목이 잘린 몸뚱이가 시냇가에 넘어진 결과물이었다.


유성은 도끼에 뭍은 피를 털어내며 오늘 청소해야할 좀비의 수를 샜다.


‘네 마리 째. 앞으로 둘···.’


총 여섯 마리.

인적이 드문 산지치곤 배회하는 좀비가 많았다.

성가시지만 그룹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방치할 순 없는 노릇.

새삼스럽게 유성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생각해보니 어이없네. 왜 하필 주말에 아포칼립스가 터진 거냐고.’


현재 유성이 있는 장소는 산장에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 계곡 골짜기로···.

특히 여름철 물놀이 명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즉, 오늘 그가 죽인 이들은 모두 토요일을 맞이해서 캠핑에 나온 피서객.

한 밤 중 사이렌소리를 듣고 좀비가 되고만 불행한 희생자들이었다.

어쩌면 전원이 가족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유성은 애써 그런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비극의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일일이 신경 써봐야 소중한 시간만 낭비될 뿐이었기에.


더욱이 지금 당장 유성에겐 신경 쓸 일이 따로 있었다.

바로 동료의 훈련이었다.


“이제 네 차례야.”


유성이 누군가에게 손짓한다.

그 상대는 유성의 머리 하나만큼 작은 키의 여자.

유다희였다.


주변에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동행하지 않았다.

애초에 부상당한 아름의 곁을 팔불출 남친인 동훈이 떠날리 없었다.


대신 그에겐 중대한 임무가 맡겨졌다.

바리케이트의 제작···.

앞으로 세 시간 뒤에 아지트로 돌아가면, 멋지게 설치된 나무 꼬챙이들을 볼 수 있으리라.


좀비에 대처하는 연습은 조금 미뤄지겠지만, 크게 걱정할 거리는 아니었다.


‘뭐, 그 형은 그냥 내버려둬도 나중에 아름이 누나를 지키기 위해서 강해지니까.’


그랬다.

아름이 사망하는 분기점만 아니라면, 그는 언제나 그룹의 든든한 형님으로 있어주었다.

일단 살아있기만 한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동료.

유성에게 동훈은 그런 믿음직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당장의 문제는 다희···.

그녀와의 유대를 쌓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거 잘 봤지? 조금 있으면 또 한 놈이 강을 건너 올 거다. 그럼 이걸로 끝장내버려.”


도끼를 건네는 유성.

무기를 받아든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뭔가 이상하다는 듯 물어왔다.


“음, 정말 괜찮을까요?”


보통 사람이라면 이것을 ‘연약한 여자인 자기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는 뜻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였겠지만···.

유성은 오랜 경험을 토대로 그 말에 담긴 진짜 의미를 알고 있었다.


‘딱 봐도 왜 양보를 하냐는 표정이군.’


실제로도 다희의 의도는 그랬다.

그녀는 지금까지 보여준 유성의 시범을 일종의 놀이처럼 인식하고 있었기에.


하지만 유성은 다희의 이상성에 충분히 익숙해진 상태였다.

이미 질릴 만큼 겪었기 때문이었다.


“내 앞에선 내숭떨지 않아도 돼.”

“네?”

“참을 필요 없다고.”


두 눈을 크게 뜨는 다희.

그녀는 제법 놀란 얼굴이었다.


“···신기해라.”

“뭐가?”

“저한테 그런 말을 해준 건 유성 오빠가 처음이거든요.”


물론 유성에겐 아니었다.

이 대화는 전에도 여러 번 나눴었다.

그녀를 회유하려면 이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했으므로···.


“후후, 지금껏 다들 억누르라고만 했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유성은 검지로 다희의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그 곳에는 남색 난방 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이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루프에서 다희가 상대할 첫 훈련 상대였다.


“어딜 노려야 하는지는 알지?”

“네.”


다희는 도끼를 양손으로 들었다.

유성에겐 작은 장작용 도끼였지만, 역시 여성이 들기엔 가볍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자세는 나쁘지 않다.

그녀는 언제든 도끼를 휘두를 수 있게 무게 중심을 적당히 잘 배분하고 있었다.


“그륵, 우워어어!”


먹잇감을 발견했는지 좀비의 걸음이 빨라졌다.

놈은 곧장 양팔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 순간···.

다희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부웅!

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마자 움직인다.

그녀가 든 도끼날은 정확히 좀비의 안면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콰직!

가녀린 몸에서 나온 것치곤 너무나 사나운 공격.

무자비한 풀스윙이 적중했다.

중년 좀비의 머리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작살이 났다.


“어때요?”

“팔에 힘이 너무 실렸어. 잘못하면 어깨가 탈골될 걸?”

“아하.”

“또 온다. 이번엔 제대로 해 봐.”


마침 두 번째 좀비가 접근한다.

이쪽은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이었다.


다희는 유성의 지적을 받아들였다.

도끼자루를 놓치지 않게 손가락만 고정시키고, 채찍을 휘두르듯 어깨를 탄력 있게 내질렀다.

그러자 성과가 있었다.

다희는 이해력이 좋은 학생이었다.

조금 전보다 훨씬 깔끔하게 여자 좀비의 윗머리를 날려버린 것이다.


다희는 보란 듯이 유성에게로 돌아보더니.


“이번엔 몇 점인가요?”

“80점.”

“애매하네요.”

“아니, 나쁘지 않아. 처음치곤 잘한 거지.”


유성의 칭찬에 다희의 입가가 슬쩍 벌어진다.

내막을 알면 소름끼치는 미소였지만, 그들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귀엽게만 보였으리라.


유성은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이었다.


‘···이것도 어찌 보면 일종의 재능이라고 해야 하나?’


대게 인간은 살인이란 행위에 거부감을 가진다.

그렇기에 한때 사람이었던 존재를 죽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제아무리 영화등의 매체를 통해 익숙한 좀비라 할지라도···.

일단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유성 또한 그랬다.

그조차 처음으로 좀비의 죽였을 때 당장 토악질부터 했다.


···그러나 다희는 달랐다.

그녀의 사고방식은 일반적인 사람의 그것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애초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 없는 것이다.


그래도 유성은 생각한다.

윤리와 도덕이 의미를 잃고, 사회가 제 기능을 못하는 지금···.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다희의 본성은 조금의 단점도 되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강한 거겠지.’


사실 유성이 좀비를 상대하는 방법을 제대로 익힌 계기는 그녀 덕분이었다.

직접적으로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의 스승이나 다름없었다.

적으로 돌아선 특정 루트에서 다희가 보여준 망설임 없는 모습은, 연약하기만 하던 시절의 유성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주었다.


정확히 급소를 노리는 빠른 제압방식.

완력보단 무기의 무게와 원심력을 이용하는 싸움법까지···.

전부 다희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그랬던 유성이 이번 루프에선 아무 것도 모르는 다희를 가르치고 있으니···.

실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십 수 초 정도 과거를 회상하는 유성.

그런데 그때···.


“유성 오빠···.”


스륵.

갑자기 배후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서늘한 감각이 목덜미에 닿은 것이다.


그래도 유성에게 동요란 없다.

그게 다희가 치는 시시한 장난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뒤통수에 도끼날을 들이미는 그녀가 있을 거란 사실도···.


“···음, 역시 전혀 놀라질 않으시네요.”

“당연하지.”


유성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손아귀에서 당장 도끼를 빼앗았다.

다희는 천연덕스럽게 웃더니.


“이것도 다 꿈속에서 보신 건가요?”


꿈.

그 단어에 유성은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지난 밤 유성이 언급한 ‘예지몽’에 관한 이야기였다.


‘깜빡할 뻔 했어. 지금의 나는 그런 설정이었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성은 일행에게 거짓말을 했다.

의도적으로 자신이 루프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대신 예지몽이란 적당한 소리로 얼버무렸을 뿐···.


그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몇 번인가 꿈에서 겪은 일들이 현실에 그대로 벌어졌다.’

‘경험한 것은 약 일주일치의 기억···.’

‘그 외에는 자신도 아는 게 없다’


···라는 식의 편리한 설명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한정된 일주일인가?

왜 유성은 루프가 아니라 굳이 예지몽이라고 말을 지어낸 것일까?

거기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분기를 전부 파악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면, 그 시점에서 다들 나를 지나치게 의지하기 시작하니까.’


그러면 그룹의 운명은 필연적인 파멸로 이어진다. 무슨 일이 생겨도 유성이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안이한 마음을 품기 때문에···.

그들은 보름 뒤의 고비를 끝내 넘기지 못했다.


‘여러 번 실험해봤지만 이게 최선이다. 결국 멤버 전원이 강해지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 유성은 자신의 능력이 불안정하다는 걸 몇 번이고 강조했다.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교묘하게 위기감을 조성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앞선 세 차례의 루프에서 좋은 결과를 냈다.

최대 생존기간이 갱신된 것은 물론, 여태껏 도달하지 못한 통곡의 벽을 넘을 기회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만약 막바지의 틀어짐만 없었다면···.

변수를 예상할 수만 있었다면···.

유성과 동료들은 새로운 운명을 개척할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는다. 반드시 돌파해주겠어.’


그러려면 우선 저번 루프와 완전히 동일한 순서를 거쳐야한다.

지금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동행도 그러한 과정의 일부였다.


‘좋아, 여기까진 무난하게 클리어한 것 같고. 그럼 다음은···.’


손목시계를 본다.

곧 오전 8시.

유성은 배낭을 챙기고 다음 예정을 따르기로 했다.


“슬슬 움직이자.”

“벌써요? 좀 더 연습해보고 싶은데···.”

“방금 네가 잡은 게 마지막이었어. 당분간 이 주변엔 아무 것도 안 나올 거야.”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납득한 듯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다희.

하지만 유성은 그 목소리에서 묘한 낌새를 알아챘다.


‘아직도 날 의심하고 있군.’


저번 루프에서도 그랬었다.

동훈과 아름은 예지몽 설정을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여 유성을 은인으로 대우해주었지만···.

초반 분기의 다희는 간단히 경계를 풀어주지 않았다.

그녀의 성격을 원만하게 바꾸려면 앞으로 일주일은 더 필요했다.


그래도 조금이마나 다희를 얌전하게 만들 방법은 있었다.

그녀의 관심사를 자극하는 것이다.


“너무 실망하지 마.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재미있는 걸 볼 수 있을 테니까.”

“네? 그게 뭐죠?”

“새벽에 내가 이야기했던 걸 떠올려봐.”

“···아, 맞아! 저 그런 거 엄청 좋아해요!”


격한 반응.

뭔가가 제대로 흥미를 끈 모양이었다.

그녀는 곧장 유성의 바로 옆까지 다가오더니···.

눈까지 반짝 빛내며 문제의 그것을 언급했다.


“초자연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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