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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루프 오브 더 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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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3
최근연재일 :
2022.06.13 14:0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503
추천수 :
283
글자수 :
102,116

작성
22.05.11 14:38
조회
404
추천
48
글자
12쪽

Daybreak(2)

DUMMY

*

원인은 불명.

의미조차 모른다.


사이렌의 정체도.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린 까닭도.

왜 자신이 반복되는 시간의 미궁에 갇히게 되었는지마저 알 수가 없었다.

그것만큼은 유성이 천 번이나 죽음을 돌파한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룰 자체는 단순했다.

루프Loop.

실로 알기 쉬운 절망의 순환이었기에.


불현 듯 찾아온 좀비 아포칼립스.

죽을 때마다 유성의 기억은 사태가 발생하기 불과 20초 전으로 돌아간다.


당장 확실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뭐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변하지 않는 현실뿐.



**

“후우···.”


언덕 위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공포와 혼란의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유성은 가방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마셨다.


다섯 마리 이상의 좀비를 도륙하면서 분주하게 뛰어다닌 지 수 십 분째.

그는 겨우 이마에 맺히는 땀을 소매로 닦아낼 수 있었다.


‘이걸로 10분 동안은 안전해.’


그 여유에는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첫날에는 좀비들 대부분이 주택가의 사냥감을 쫓느라 외곽까지 빠져나올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갈 길이 멀군.’


짧은 휴식이 끝나간다.

유성은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10시 44분.


두 번째 계획을 시작하기까지 앞으로 20분 남았다.

여유롭지만 동시에 초조하다.

특정 위치까지 도달하려면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걸리기에 슬슬 움직여야 했다.


자동차로 가면 시간을 좀 더 줄일 수 있었겠지만, 유성은 그렇게 해서까지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놈들이 소음에 민감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전에도 같은 욕심 탓에 일을 그르친 적이 있었다.


‘긴장 풀지 말자. 예정대로 풀렸지만 아직 겨우 첫 걸음이니까.’


그래도 최적의 출발점이었다.

유성은 예감이 좋았다.

평소보다 시간을 30초나 단축한데다, 사소한 실수조차 없었기에.


체력의 온존.

최소한의 음식과 필수적인 장비.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도주 루트.

모든 것이 완벽했다.


유일한 문제는 이 루트를 찾아내기 까지 반복된 루프가 세 자리 수를 넘는다는 것.

 더욱이 유성은 너무나 가혹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으니···.


가족의 죽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성이 여동생과 아버지의 목숨을 끊지 않고서 무사히 시작하는 루트 따윈 없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 사이렌이 울린 시점에서 가족들은 좀비로 변한다.

애초에 그들을 구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둘, 식량은 그렇다 치더라도 무기는 집 안에 있다.

좁은 공간에서 맨손으로 좀비 둘을 상대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즉, 그들을 처리해야만 장비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조건이 처음부터 정해진 셈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유성이 그런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간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다.

혹여 다른 수가 있지 않을까 부단히 애썼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현실은 영화처럼 녹록치 않았기에.

맨몸으로 좀비가 바글거리는 시내에 나가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자살을 해도 언제나 가족이 좀비로 변화하는 같은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활로가 막혀있다.

선택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떤 기대나 희망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고통에 무뎌진다.

그렇게 절망이 익숙해질 무렵···.

57번째 루프가 시작되고서야 그는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처리해한다는 사실을.

자신이 결단하지 않으면 모두 영원한 지옥에 갇힐 뿐이란 걸.



***

저녁 11시 3분.


도시에서 벗어나자 사방이 확 트인 공간이 나왔다.

논과 밭을 양쪽에 두고 길게 이어진 지평선···.

국도였다.


유성은 그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러다 좌측 갓길 인근에 지어진 주유소의 앞에서 멈춰 섰다.


추돌사고라도 났던 것일까?

아니면 운전자가 좀비로 변해버렸나?

주위에는 방치된 차량들로 가득했다.

어느 쪽이든 탈출에 실패한 이들의 흔적이었다.


‘앞으로 1분.’


유성이 인상을 쓴다.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탄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시야 바깥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왔군.’


그때였다.

유성의 눈동자에 드디어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비춰졌다.


탱크톱 차림새의 덩치 큰 남자와 원피스를 입은 마른 체구의 여인.

저 멀리서 젊은 남녀가 달려온다.

그들은 좀비 무리에게서 쫓기는 중이었다.


좀비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최소 스무 마리 이상.

아무리 유성이 강해도 혼자 상대하긴 벅찬 물량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러나 두 사람의 걸음이 느리다.

여자 쪽이 다리를 저는 것으로 보아 다친 듯 보였다.


“좀 꺼져! 이 X새끼들아!”

“동훈 오빠, 미안해. 전부 나 때문에···.”

“넌 조용히 하고 있어! 지금은 걷는 것만 신경 쓰라고!”


목소리만으로 유성은 그들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둘 다 미래의 생존자 그룹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넌 절대로 안 죽어. 내가 무조건 살릴 테니까. 알겠어? 나, 믿지?”


‘최동훈.’

험상 굳은 근육질 사내.

그는 그룹의 완력 담당이었다.

일전에 유성이 듣기론 학창 시절에 씨름을 배웠다고 했다.

다혈질에 입이 험하고 불평까지 심했지만, 기본적으로 의리파···.

여차하면 자신의 목숨을 동료를 위해 기꺼이 바칠 수 있는 남자였다.

유성도 몇 번인가의 루프에서 동훈에게 목숨을 구해진 적이 있었다.


“제발 그러지 좀 마! 오빠 혼자서라도 가란 말이야!”


이쪽은 동훈의 여자 친구이자, 한 살 아래의 간호사인 ‘서아름.’

유성의 개입이 없다면 대부분의 루프에서 사망할 정도로 연약한 아가씨···.

하지만 일단 초기에 구출만한다면 미래의 돌발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된다.

빠른 눈치와 이타적인 성격이 시너지를 이루어, 응급처치로 여럿을 살릴 수 있는 전력으로까지 성장하는 것이다.

대학 병원 중환자실 출신 간호사란 명함은 결코 장식이 아니었다.


결국 유성이 첫날부터 무리하면서까지 이곳에 찾아온 이유도 두 사람과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꺄아아악!”


비명.

좀비들이 거의 불과 100미터 앞까지 접근했다.

슬슬 움직여야할 때였다.


‘그럼 이쯤에서 시작할까?’


유성은 주유소를 바라보더니, 곧장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빠르게 낚아챈다.

바로 정면에 배치된 급유용 디스팬서의 손잡이를···.


파앗!

유성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듯 손에 힘을 주자, 고압의 휘발유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는 최대한 기름 줄기가 멀리까지 퍼져나가게 만들었다.

다음은 주유소 화장실 옆에 숨겨진 프로판 가스를 끌고 오는 것으로 마무리···.


칙, 치익!

이어서 품속에서 꺼내든 라이터를 켠다.

그의 노림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와중에도 유성은 손목시계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는 머릿속으로 초 단위까지 새며 어떤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3, 2, 1··· 지금이다!’


불이 붙은 라이터를 던진다.


이어서 이탈.

유성이 몸을 돌렸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미친?!”


반대편에서 낯선 이가 부리나케 달려오자, 깜짝 놀란 동훈이 소리쳤다.

몸집 큰 사내는 유성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너 미쳤냐? 왜 이쪽으로 오는 건데?! 저 놈들이 안 보이···.”


하지만 그가 성을 내거나 말거나···.

유성은 자신의 계획을 그대로 실행할 셈이었다.

과거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미래의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서.


“엎드려!”


외침과 함께 몸을 날린다.

유성은 양팔을 뻗어 두 사람을 뒤로 넘어뜨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투콰아아아앙!

귀가 찢어지는 폭발과 함께 화염이 솟구쳐 오른다.

두 사람의 비명 소리는 폭음에 묻혀 사라졌다.


연기와 먼지가 걷힌다.

그러자 폐허가 된 주유소의 모습이 드러났다.

밤하늘에서는 깨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파편이 비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계획은 성공이었다.

추격해오던 좀비들은 한 두 마리를 제외하곤 거의 산산조각이 났다.


“헉, 허억!”


식겁하며 눈을 뜨는 동훈.

그는 당장 상대에게 따지려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움직여. 아직 쉴 때가 아니야.”

“뭐, 임마?”

“내 말 못 들었나? 당장 움직이라고.”


만에 하나 고막이 터졌을 리는 없다.

유성은 이전의 루프에서도 몇 번이나 실험해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연하인 청년이 초면부터 건방지게 명령조로 나오자, 동훈은 미간을 실룩였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서로 주먹이 오갔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손아귀엔 어느새 도끼가 들려있었으니···.


부웅!

돌연 유성이 팔을 치켜든다.

어찌나 갑작스러운지, 키가 10센티나 더 큰 동훈조차 흠칫할 정도였다.


“어, 어어!?”


콰직!

다행히 그가 내리친 것은 배후에서 기어오던 좀비의 머리통이었다.

유성은 도끼날에 들러붙은 피와 살점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더니···.


“저기 보이나? 위로 곧장 올라가면 등산로가 나올 거다. 그쪽으로 뛰어.”

“네가 뭔데 우리한테 이래라저래라···.”

“서둘러. 시간이 없다.”


단호하고 고압적인 말투.

무턱대고 시비를 건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경험상, 첫인상에서 얕보이면 기가 센 동훈이 제대로 지시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아직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5분이 지나면 폭발의 소리에 이끌린 더 많은 무리가 몰려올 것이 뻔했다.


설명이나 자기소개는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금은 두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여기서 유성은 결정적 한마디를 날려야만 했다.


“왜 멀뚱히 서있지? 그렇게 여친이 죽는 꼴을 보고 싶나?”

“뭐? 너, 그걸 어떻게···.”

“다 아는 수가 있지.”


묘한 불안감을 자극한다.

유성은 그걸 노렸다.

동훈이 진심으로 자신의 애인을 아낀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오, 오빠···.”


마침 힘겹게 읊조리는 아름.

그녀의 이마로 식은땀이 흐른다.

딱히 좀비에게 물린 것은 아니었지만, 발목에 금이 간 상태···.

빈말로도 좋다곤 말할 수 없었다.


아름의 용태를 살피고서 수 초 후···.

동훈은 겨우 결정을 내렸다.


“알겠다. 네가 뭐하는 놈인지 몰라도, 일단은 따라가 줄게.”


애인을 부축하며 매섭게 유성을 노려본다.

허튼 수작을 부리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리.

그는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째 미움을 받는 식으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유성은 속으로 웃었다.

어차피 이 감정도 이틀이 지나면 끈끈한 동료애로 변하리란 걸 알았기에.


···모든 것이 예정대로다.

이전의 루트에서처럼 유성은 최강의 멤버를 영입하는 첫 단계를 훌륭하게 마쳤다.


‘그럼 다음은···.’


산 속에 위치한 아지트의 확보.

짧게나마 머물 거처를 선점하는 것이 남았다.

이는 이후 일주일간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었다.


더불어 다른 멤버도 그 장소에 있다.

하필 성격이 더러운 상대.

다소의 갈등이 예정된 상황이었지만, 유성은 개의치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압도적인 폭력으로 제압하면 그만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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