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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가라 님의 서재입니다.

역류(무림의 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구리가라
작품등록일 :
2018.10.26 19:44
최근연재일 :
2020.12.31 19: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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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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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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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합일

DUMMY

하지만 팽무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분 같은 자가 또 있을 수는 없어!'


그렇다. 상대는 결코 그분과 같을 수 없다. 지나친 비약이며 언급할 가치도 없다.


그분의 경지는 이미 천상의 영역.

그곳에는 그 누구도 발 딛지 못한다.


그리 생각하니 눈앞의 인물이 달리 보였다. 절대자라면 보일 범접 불가의 위엄, 그게 없었다.


'그저 특이한 체질인거겠지······.'


결론이 났다.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향으로.


아니라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칼을 겨눠보면 사실인지 아닌지 금세 드러나리라.


마음을 다잡은 팽무연이 나서려할 때, 그 사이 뒤늦게 합류한 이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


"아빠,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상황에 맞지 않게 생기발랄한 목소리.

팽가의 금지옥엽, 팽연화가 팽무연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그러나 곧 걸음을 멈췄다. 팽무연이 굳은 얼굴로 손짓했기 때문이다.


"물러 서거라. 얘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팽무연은 철없는 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린 딸···

그녀는 눈앞의 위기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알고도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비슷했다. 오직 총관만이 불안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릴 뿐 나머지는 이 사태가 쉽게 정리될 거라 확신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늙은 걸지도······.’


씁쓸하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가문의 주인으로서 만약을 대비해야했다.


그래서 은밀하게 팽연화에게 전음을 보냈다.


- 당장 피하거라!


그의 전음에 팽연화가 눈을 치켜뜰 때 팽무연이 고개를 저었다.


- 아무 말 말고··· 내 말대로 하거라. 살아남은 혈육들을 데리고 비상 계획에 따라 흩어지거라. 서둘러라! 상대가 만만치 않다.


부친의 급박한 전음에 팽연화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너무 뜻밖이라서 부친의 의중을 되물으려 했다.


- 어허, 아무 말 말래도. 정녕 모두에게 알리려고 하느냐? 그래서는 안 된다. 혼란만 가중되니 조용히 행동해야한다!


그렇게 재차 딸에게 명을 내린 팽무연은 잠시 딸에게 눈인사를 했다. 애지중지 키운 딸의 얼굴을 기억에 새겼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이곳에 없는 아들을 떠올렸다.


‘소천이 녀석은 무사하겠지. 그러고 보니 계획된 침입인건가······?’


현재 본가에 남은 전력은 평소의 절반.

나머지는 정의맹에 파견된 팽소천을 따라갔다.


모두 자신의 결정으로 아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조치다. 아직 어린 아들이 능구렁이들 틈바구니에서 휘둘리지 않게 취한 배려다.


그런데······ 그 배려가 결과적으로 뼈아픈 실책이 될 것 같다.


반면 팽연화는 부친의 낯선 얼굴에 말을 잃었다.

부친의 입가에 맺힌 씁쓸한 미소.

그건 강철같던 아비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자신없는 표정이라니···


팽연화는 믿기지 않아서 재차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건지, 아니면 잘못 전달된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비는 그녀에게 더 시간을 주지 않았다. 얼굴을 굳힌 채 적에게 돌아섰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팽무연이 묻자, 무경이 짧게 대답했다.


"저승사자."

"개소리! 장난은 집어치워! 이름을 말하라! 말하기 두렵나?"


팽무연이 불꽃같은 안광을 뿜어내며 재차 물었다. 평소답지 않게 거친 언사로.


그에 무경이 피식 웃었다. 상대의 조급함이 그를 기쁘게 했다. 그래서 복면을 거칠게 뜯어내며 정체를 밝혔다.


"내 이름은 한무경. 한때 인백정이라 불렸다."


팽무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인백정?"


그는 상대의 말을 따라 되뇌며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낯익은 이름이나··· 저 같은 고수에 맞는 이름이 아니었다.


어리둥절한 그를 대신해 총관이 답을 찾아줬다. 그가 팽무연의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놈은 흑웅방도입니다. 5년 전 소가주가 멸문시켰던 흑웅방의 검수가 저 이름을 가졌었습니다."

"아, 여철남이!"


그 말에 잊혀진 얼굴을 떠올린 팽무연이 탄성을 뱉었다. 하지만 의혹은 더 깊어졌다.


"그러면 저자가 그때의 생존자인가?"

"그, 그게···."

"어서 얘기해 보게."

"저 자가 밝힌 이름은 당시 소가주가 직접 처리한 자의 이름입니다.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소가주를 꺾었다고 소문난 자 말입니다."


총관의 말에 팽무연이 다시 한 번 기억을 헤집을 때.


짝-


한쪽에서서 지켜보던 팽연화가 손뼉을 마주쳤다.


"맞아! 저놈 그때 그놈이야!"


제 아비처럼 익숙한 이름에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먼저 칩입자의 정체를 알아챘다.


"아빠, 저 자식 별 볼 일 없는 놈이에요. 5년 전까지도 뒷골목이나 전전하던 하류배란 말이에요. 어디서 무공 좀 익혔나본데··· 그래봤자 그 사이 얼마나 늘었을까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의기양양하게 아비에게 사실을 말한 팽연화가 이번에는 무경을 엄하게 꾸짖었다.


"네 이놈! 살아있었구나. 참으로 질긴 목숨이구나. 그런데 목숨을 구했으면 조용히 살 것이지, 여긴 왜 와서 난리냐? 주제를 모르고 설치다니. 정말 죽고 싶은 게냐?"


위엄을 실어 호통 치는 그녀의 모습에 무경의 눈이 칼날처럼 빛났다.


"예나 지금이나 입이 걸레구나. 곧 너와 네 오라비가 쌓은 혈채를 받게 될테니 조용히 입 다물고 기다려라!"

"혈채? 아, 네놈 여자 말이구나. 이 미친놈아! 그딴 년이 뭐라고 이 난리냐?"

"그딴 년?"


팽연화의 거친 언사에 무표정하던 무경의 눈가에 차가운 살기가 맺혔다.


허나 팽연화는 그걸 보고도 무시했다. 세가 무사들의 호위를 받는 한 두려울 게 없었다.


"그래 그딴 년! 그딴 년이 뭐라고 이곳에 와서 소란이냐? 미친놈이 쳐돌았네. 쳐돌았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녀가 눈을 부라리며 쏘아보았다.


그 뻔뻔함에 무경도 잠시 넋이 나가 말을 잊었다. 그러다 이내 깊은 한숨과 함께 차갑게 웃었다.


"그래, 너희들은 모두 그런 인간이었지. 최소한의 양심도 부끄러움도 없는··· 쓰레기들 말야. 어디 네년이 그대로 당해도 그런지 한번 보자!"


뜨거운 불길을 뿜듯 그의 입에서 분노가 터져 나왔다. 차가운 살기가 한겨울 눈보라처럼 몰아쳤다.


살을 에는 기운···

주위로 늘어선 무사들이 순간 움찔댔다.


그것은 팽연화도 마찬가지.

무공이 낮은 그녀의 낯빛이 핼쑥하게 질렸다. 하지만 이내 눈초리가 더 매서워졌다.


자신이 누구인가?

바로 팽가의 금지옥엽이다. 세상 그 누구보다 완전하고 고결한 사람이다. 그런 자신이 움찔했다니···.


자존심 높은 그녀는 결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얼굴을 붉히며 길길이 날뛰려 했다.


하지만 팽무연이 빨랐다.


"어허! 너는 그만 물러나래도!"


딸의 경박한 언사에 아비인 팽무연이 안색을 붉혔다. 가솔들이 다 보고 있는 곳에서 이 무슨 드잡이란 말인가.


한차례 팽연화를 매섭게 노려본 팽무연이 총관에게 물었다.


"연화 말이 맞나?"

"네, 모두 사실입니다.“

“흐음······.”


수하의 대답에 팽무연이 뒷짐을 지며 긴 숨을 뱉었었다. 그 숨결에 굳었던 긴장감이 딸려 나와 연기처럼 흩어졌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우려는 지나친 기우에 불과했던 거다. 딸애의 드잡이에 비록 눈살을 찌푸렸으나, 어찌되었든 상대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파악한 덕에 자신감을 회복했다. 경계심이 한층 옅어졌다.


"헌데 자네 말대로라면 저자는 누구인가? 당시 그놈은 하북삼랑이 마무리 지었잖아."

"그게······ 당시 보고에 따르면 놈의 시체를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산짐승이 물고 간 것으로 종결지었는데··· 용케 살았나봅니다."


총관이 자신이 아는 사실에 추론을 붙여 보고했다.

팽무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사람들이! 일처리를 어찌 하는거야. 하려면 확실하게 했어야지. 어설피 처리하니 이런 문제가 벌어지잖아?"

"죄송합니다."


팽무연의 질책에 총관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허허···. 참···.. 헌데 그건 그렇다고 치고, 흑웅방에 숨겨진 신공절학이라도 있었나? 아니 신공절학으론 부족하지. 공청석유나 만년설삼이라도 가지고 있었나보지? 그게 아니면 어찌 삼류방파에서 저런 고수가 나타날까?"

"그럴리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이 사태를 만든 저놈 실력은 대체 뭔대?"

"원래부터 하류배치고는 비정상적으로 강했던 놈입니다. 그렇게 보면 아무래도 오래전 정체를 숨기고 흑도에 몸담았던 거 아니겠습니까?“

“다른 정체가 있다?”

“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총관의 추론에 팽무연이 뒷짐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군. 뭐 어차피 곧 알게 되겠지."


의문을 가슴에 묻어둔 채 드디어 팽무연이 앞으로 나섰다. 마당에 널린 시신들이 발길을 막았으나 그의 걸음은 거침없었다. 물 흐르듯 유려하게 유유히 거닐었다.


"정말 죽었다던 그 흑웅방도가 맞느냐?"


팽무연이 물었다.


그 물음 안에 담긴 감정은 노골적인 멸시.

잠시 지녔던 혼란도 두려움도 말끔히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또... 무경이 기대했던 일말의 가책도 없다.


"그래, 너희가 죽였던 보잘것없던 하류배. 그게 바로 나다."


무경이 악다문 이 사이로 신음처럼 말을 뱉었다. 그리고 천천히 검을 들어 팽무연을 겨눴다.


"그런 내가 하늘을 대신해 너희를 징벌하겠다."


겨눈 검봉의 끝, 검극에 조그만 구슬이 생겨났다. 작은 주먹크기에 잿빛을 띤 원구였다.


"같잖은 소리!"


피식 웃은 팽무연이 도를 하늘로 세우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지이잉-


순간 도신을 타고 뿜어져나온 기가 그의 몸을 완전히 감쌌다. 강맹한 호신기가 도와 그를 하나로 잇고 감췄다.


그 결과, 사람은 사라지고 한 자루 도만 남았다.

사람이 도가 되고 도가 사람이 된 경지!


"신도합일!"

"저렇게 완벽한 합일이라니······. 가주께서 벽을 깰 날이 멀지 않았구나!"


살아남은 세가의 무사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 안에 기쁨과 희망이 넘쳐났다.


그러나 그 소리를 팽무연은 듣지 못했다. 눈과 귀가 오직 상대를 향한 채 전력을 다했다.


찌이잉-


사나운 소리가 커지며 전신을 뒤덮은 도기도 점점 커졌다.

5척··· 1장··· 2장!

하늘로 향해 든 도를 시작으로 전신을 날카롭게 벼리고, 집채만 한 바위도 쉽사리 찢어발길 만치 기세를 키웠다.


그렇게 찢긴 바람이 주위를 휩쓸 때,


"멸(滅)!"


사자후와 함께 강맹한 도기가 하나 되어 무경에게 쏘아졌다.


반월형 도기···

그건 그야말로 거대한 파도 같았다. 모든 것을 단숨에 뒤덮듯 그렇게 무경을 덮쳤다.


반면 무경이 내민 건 작은 원구. 그야말로 초라한 크기. 그러니


쾅-


거친 충돌음과 함께 원구가 튕겨나가며 동시에 무경이 일곱 걸음을 물러났다. 어찌 보면 당연한 모습이다. 허나,


“이, 이럴 수가! 시, 신도합일이 막히다니! 내, 내가 뭘 본거야?”

“이건 말이 안 돼!”


주위의 탄성처럼 드러난 결과는 놀람의 연속이다.


신도합일이라는 강력한 수가 막혔다. 상대를 뚫지 못하고, 비록 상대보다 적지만 다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아니 그보다 더 충격적인건...

순간이나마 거대한 도신에 가려졌던 팽무연의 전신이 흐릿하게나마 형상을 드러냈다. 초고수가 아니면 막을 수 없다는 신도합일이... 깨질 뻔한 거다!




무인은 피를 먹고 자라고, 저는 선작과 추천을 먹고 자랍니다.


작가의말

무인은 피를 먹고 자라고, 저는 추천과 선작으로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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